도쿄 레코드샵 순례기1(신주쿠)
2013.12.05(목)
지난 여름 도쿄에 놀러 왔다가 잠깐 짬을 내서 진보초의 한 레코드점을 방문한 것이 결국 반년만에 다시 발을 들이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일본에서의 음반값 그동안의 생각만큼 크게 비싸지 않다는 생각은 아마도 엔화가치 하락이 컸던 탓이다. 국내에서의 입수가 쉽지 않은 비밥재즈 음반에 목말라 하던 나는 진보초의 한 레코드점에서 환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만만치만은 않은 가격을 감수하고 32장의 블루노트 레이블의 음반을 집어온 적이 있었다. 이 이야기를 엘피음악 동호회의 같은 재즈매니아인 바람소리군에게 이야기했고, 나의 당시 컬렉션을 보고 꼭지가 돈 그가 다시 가자는 제안을 했다. 일본 다녀온지 얼마 안돼 일본행 비행기를 다시 끊었다. 호텔도 예약했다. 항공권은 마일리지로 받은 덕에 TAX 105,000원만 들어 갔다. 호텔 예약을 하려고 보니 게스트하우스가 밀집된 아사쿠사와 달리 신주쿠에는 게스트하우스가 드문데다 호텔들은 값이 비쌌다. 도쿄에서도 복잡한 중심가이니 무리도 아니다. 아사쿠사에서 머물자니 래코드점이 밀집한 신주쿠와 시부야에 대한 접근성도 떨어지고, 저녁에 사케나 생맥주를 즐기기에도 신주쿠가 나았다. 바람소리군이 이리 뒤지고 저리 뒤져 신주쿠 바로 옆동네이며 한인지역인 신오쿠보에 비교적 저렴한 호텔을 찾아냈다. 화장실과 욕실이 딸린 트윈룸 4일간 일인당 16만원이면 무척 좋은 조건이었다. 항공권을 구입한 것이 10월 18일. 호텔 예약을 마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안있어서였다. 이 번 여행에도 마사유키군이 도움을 주기로 했다. 나를 위해 도쿄 음반가게 정보를 찾아내 안내해 주겠다고 했다. 허구헌날 야근하느라 자료를 뒤져내고 정리할 시간이 없는 나로선 그의 도음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그 많은 여행을 다니면서도 이렇게까지 눈이 빠지게 기다린 적은 없었다. 더디게 가는 시간을 억지로 밀어 붙여 빨리 보내고 싶은 마음은 초등학교 소풍 전야보다 더했다. 희귀음반들을 눈으로 보고 만져보는 것만으로도 짜릿한 내게 일본 땅은 보물섬과도 같은 존재처럼 나를 못견디게 유혹했다. 그 두 달 보내기가 그리도 어려웠던가. 어쨌든 그 D-데이가 왔고 나는 이 날을 위해 업무를 끌어당겨 그 주 내내 야근을 해야 했다. 음반을 넣기 좋은 백팩과 캐리어는 리빙사 사장 블루노트군이 빌려줬다.
재즈음반 100장을 집어 오리라 호기를 부리며 김포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6시 반정도. 8시 반이 이륙시간이었다. 티케팅을 하고 나니 시간 널럴하게 남는다. 인천공항이라면 면세점 구경 재미도 쏠쏠하겠지만 여긴 면세점 규모나 가짓소에 있어 별로 볼 게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국적기를 선호한다. 왜그럴까. 항공료가 외국으로 빠져 나가질 않아서? 그 이유도 일부 있겠지만 주요 이유는 아닌 것 같고 아마도 영어를 안해도 된다는 점때문일게다. 헌데 비행기 열심히 타고 나디는 나지만 스튜어디스와 대화할 일은 원하는 메뉴와 물 달란 소리 말곤 없었다. ㅡ,.ㅡ; 나는 오히려 국적기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이유인 즉슨 값이 비싼데다 기내식이 별로다. 한식이라며 내놓는것 같지만 아무리 봐도 국적불명이다. 이건 불고기 덮밥인가? 맛이 불고기맛도 아니고 스튜도 아니고 데리야끼는 더더욱 아닌듯한데... 어쨌든 주니까 고맙게 먹긴 했다. 난 말이 넘 많어...
11시 조금 넘어 하네다에 도착했다. 일본엔 다섯번째다. 도쿄는 3번째고. 그동안은 나리타 공항으로 다녔다. 전에는 도쿄에 와서 나리타 공항에 내려 일정이나 숙소를 찾아 이케부쿠로 또는 아사쿠사로 갔다. 공항에서 상당히 멀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리고 교통비도 눈 나오게 많이 나왔다. 하네다 공항에선 그에 비하면 시간도 짧게 걸리고 경비도 적게 들기에 이 번엔 하네다 공항으로 비행을 예약했다. 바람소리군은 내가 잊고 조언을 하지 않은 탓에 나리타 공항으로 비행을 했다. 출발 공항도 도착 공항도 도착 시간도 조금 다르다. 호텔에서 만나기로 했다. 입국 절차를 밟기 위해 입국장으로 가니 낯익은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친동생의 고교 절친인 기배군이 사업차 일본에 왔는데 나와 같은 편을 탔던 모양이었다. 숙소도 나와 가까운 신주쿠의 한 호텔로 예약을 했단다. 동행을 했다. 기배군에겐 도쿄가 특히 신주쿠가 그의 손바닥이었다. 신주쿠로 가는 버스표를 구입하는 기배군.
리빙사 블루노트군이 빌려준 백팩과 캐리어. 그가 일본으로 유럽으로 딜러들 만나러 갈 때 항상 갖고 다니던 것들로 음반 갖고 다니기에 써보니 그만이었다. 다 좋은데 백팩에서는 노숙자 냄새가 났다. 그동안 백팩을 매고 다니며 흘린 땀 냄새가 누적된 모양이다. 가기 전날 빌린 탓에 빨지도 못하고 그냥 들고 왔다. 냄새 장난 아니지만 이만큼 유용한 물근들도 흔치 않은듯 하다. 돌아와서 빨아 반납했던가? 아니, 그냥 반납했군.
어쨌든 표를 끊고 기다리니 얼마 되지 않아 신주쿠로 가는 버스가 왔다.
그동안 나리타 공항에서 가는 코스만 기억하던 내게 하네다로부터 시내로 가는 길은 낯설고 새로와 보였다. 모노레일도 다닌다는 사실은 이 날 알았다.
가다 보면 바닷도 눈에 띤다.
버스에서 내려 기배군이 묵는 신주쿠의 호텔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처음으로 일본에서 타보는 택시다. 원래 여행에서 일반 대중교통을 즐기는 탓에 택시를 가급적 타지 않는 나지만 기배군의 제의로 처음 탔다. 기사양반 왜그리 무뚝뚝하고 불친절하신지. 일본 택시기사들 안그런걸로 아는뎅....
기배군이 일본에서 대학에 다니던 시절 신오쿠보 주변에서 살아 지리가 뻔하다며 호텔에 짐을 맡긴 뒤 내가 묵을 호텔로 함께 가 주었다. 덕분에 조금도 헤매지 않고 도착했다. 기배군은 이 곳에서라면 한류 바람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근처 한국 식당과 기념품점이 지천에 깔려 있어 많은 일본인들이 이곳에서 저녁을 즐기고 지방에서 오는 단체관광객들이 수시로 들른다나. 바람소리군도 곧 호텔에 도착했다. 때는 마침 점심시간.
기배군이 맛있는 라멘집을 안다며 가까운 곳으로 우릴 안내했다.
이 집에서 특히 맛있다는 돈코츠 츠케멘을 주문했다. 전에도 마사유키의 안내로 유명 라멘집에 들러 먹어 본 적 있는 소바식 라멘이었다. 국물과 면이 따로 나오고 면을 국물에 조금씩 담았다 건져 먹는 라멘으로 돼지고기 두 장과 김을 국물에 함께 담아낸 국물은 아주 조금 달고 짜고 진한 국물이 풍부한 맛을 낸다. 여기에 쫄깃한 면을 담았다 건져내 입안에 넣으면 그 맛은 정말 최고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을 정도다.
비즈니스 일정이라 빡빡하겠지만 돌아가기 전에 저녁과 함께 사케 한잔 할 시간을 내기로 하고 일단 기배군과는 헤어졌다. 바람소리군과 나는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 신주쿠의 레코드샵부터 방문하기로 했다. 아래 사진은 레코드샵과는 별 상관이 없는 곳이지만 특이하고 눈을 끄는 간판이라 한 번 카메라에 담아봤다.
평일 대낮이라 그럴까 신주쿠의 거리는 그다지 복잡하지도 활기가 넘치지도 않았다. 대도시 복판이 어찌 이리 조용한지 의아하다.
1st visiting: Book Off in Shinjuku
첫 방문지: 북오프 신주쿠점
레퍼토리: ???
가 격: ???
※ 이 곳에는 내가 원하는 LP는 없고 CD와 DVD만 있으므로 가격과 레퍼토리 비교는 불가함
디스크 유니온부터 가보려던 우리는 우연히 중고 서적과 음반을 취급하는 북오프부터 발견했다. 우린 눈에 띤 김에 이 곳부터 들러 보기로 했다.
들러본 우리는 실망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 곳엔 책, CD, DVD만 있을 뿐 우리가 찾는 LP는 없었다. 규모가 무척 크고 방대한 양의 책과 CD, DVD가 있지만 엘피를 찾는 우리로선 아무것도 없는거나 다를 바가 없었다. 담 장소로 고고!
그냥 들러본데 만족하기로 하고 우리는 이 곳에서 멀지 않은 디스크 유니온 클래식관을 잠깐 들러봤다.
2nd visiting: Disc Union Classical Music Store in Shinjuku
두 번째 방문지: 디스크유니온 신주쿠점 클래식관
레퍼토리: ★★★
가 격: ★★★☆
※ 재즈 때문에 간 여행인 만큼 이 곳은 잠깐 들러보았고 머문 시간동안 본 정도를 느낌에 반영했으므로 편협한 평가일 수 있음을 미리 밝혀둠.
이 곳은 오래 머물 곳이 못되었다. 내게는 클래식도 무척 중요하지만 한국에서도 클래식은 기회가 많은데다, 우선 바람소리군에게 있어 클래식은 아직은 관심도가 크지 않은 분야인 탓에 내만 좋다고 여기 오래 머무는 것도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은 것 같아 20분 정도 머물며 잠깐 구경해 봤다.
그 잠깐 사이 이 곳에서 음반 두 장 좋은 가격에 집었다. 루지에로 리치 연주의 프로코피에프 바이올린 협주곡 1,2번(런던 와이드 밴드)와 사라사테 스페인 무곡집(영국 런던 모노반)을 좋은 가격에 집어 들었다. 들를 이유 충분히 있었다. 일본반도 보긴 했지만 한국에서의 가격과 비슷한 듯 하다.
3rd visiting: Disc Union Main Store in Shinjuku
세 번째 방문지: 디스크 유니온 신주쿠점 본관
레퍼토리: ★★★
가 격: ★★★☆
※ 이 곳은 여러 장르를 볼 수 있는 곳인데 비교적 본인이 좋아하는 락 계열의 좋은 음반을 많이 보았으며, 평가내용은 사견임을 밝혀둠.
다음으로 들른 곳은 클래식관에서 멀지 않은 디스크 유니온 본관. 이궁, 사진이 흔들렸넹, 언넘이 찍은겨?
본관인만큼 층별로 다양한 품목을 구비했다.
이 곳에서는 락과 포크 위주로 뒤져봤다.
열심히 뒤져봤지만 당장 구매욕을 자극하는 음반은 그다지 흔치 않았다.
롤링스톤스는 나도 워낙 좋아해 1집 영국 모노반을 손아귀에 쥔 뒤로 영국 음반의 사운드로 이들의 데뷔 앨범을 즐기곤 한다. 여기에 같은 1집 미국 모노 샘플반이 나오길래 무심코 가격을 봤다. 허걱! 149,000엔? 150만원? ㅡ,.ㅡ; 내가 가진 음반의 몇배지? ㅡ,.ㅡ; 내가 가진거하구 이거하구 바꾸자고 하면 난 안바꾼다. 이게 더 귀한진 모르겠지만 난 미국 프레싱의 사운드에 대한 신뢰도는 일부를 제외하면 그리 높지 않다. 좌우간 와~~~
4th visiting: Disc Union Jazz Store in Shinjuku
네 번째 방문지: 디스크유니온 신주쿠점 재즈관
레퍼토리: ★★★★
가 격: ★★★☆
※ 평가내용은 사견임을 밝혀둠.
다음으로 들른 곳은 이 날 가장 가보고 싶었던 디스크 유니온 신주쿠점 재즈관이었다. 그 앞에서 포즈 한 번 잡아봤다.
이 곳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재즈 레퍼토리가 풍부했지만 이 곳이 들른 곳 중 가장 레퍼토리가 좋다고 단정할 수 는 없다. 한국에서 재즈음반 기근에 시달리다 보니 이 곳의 재즈음반은 거의 널린 수준으로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이 곳에 머무르며 거의 모든 음반을 다 쓸며 구경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게다.
이 날 중요한 것은 음반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집의 음반 가격을 보는 것이었다. 열심히 구경하는 바람소리군.
나도 일본 블루노트 재즈 출반 히스토리 자료까지 비교해 가며 가격을 봤다. 숙소에서도 가장 가까운 곳이므로 이 곳에선 구입보다는 가격과 레퍼토리를 봐두는 정도에서 멈춰야 하지만 이곳은 5장 이상이면 10% 할인을 해주는 행사를 하고 있었다. 이 날 이 곳에서 2 장 이상은 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왔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엄청난 절제력을 발휘해 5장만 구입했다. 가격이 아주 착하진 않지만 그래도 할인 폭 덕에 적잖은 만족도가 있었다.
5th visiting: Disc Union Blues and Soul Store in Shinjuku
다섯 번째 방문지: 신주쿠 유니온 블루스 및 소울관
레퍼토리: ★★★
가 격: ★★★★★
※ 평가내용은 사견임을 밝혀둠.
다음으로 들른 곳은 지하의 블루스 및 소울관이다.
일본에서의 블루스와 소울 음반 가격이 이렇게 착할 줄은 몰랐다. 환율을 따지고 거시기 머시기 해도 무척 저렴한 이유는 그만큼 음반이 많기 때문일게다. 하지만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이 곳에선 엘버트킹 한장만 샀다. 들고갈 음반이 너무 많아도 문제. 나의 목표는 이 곳 도쿄에서 100장의 음반을 갖고 가는 일인데 재즈가 주된 목적인 만큼 블루스에 있어서는 자제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에서도 블루스는 재즈에 비해 구입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첫날의 음반가게 순례를 마치고 저녁을 겸해 사케 한 잔 하기 위해 오모이데 요코초를 찾았다.
마사유키의 안내로 지난 여름 들러 본 이후 계속 다시 찾고 싶었던 곳이다.
도쿄로 오기 전, 바람소리군에게 사진을 보여줬더니 그도 도쿄에 올 때까지 오모이데 요코초증 후군에 걸려 고생을 하던 차였다. 이제 그 병을 치료할 날이고 그 시간이다.
우리는 하꼬방 같은 이자카야들이 밀집한 오모이데 요코초의 선술집 중 특히 붐비는 작은 집으로 쑤시고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사케 한잔! 간빠이!
안주 맛은 거의 환상에 가까울 정도로 맛이 좋았다. 약간은 짭짤한 돼지고기 꼬치. 부드럽고 연하기가 짝이없는 육질은 도대체 고기에 무슨 짓을 했는지 의심스럽다.
생쑥갓을 얇디얇은 삼겹살에 말아 꼬챙이에 꿴 이 음식은 몇 날 며칠이고 끓이고 졸인 것으로 보이는 큰 육수냄비에 넣어 데쳐 내왔다. 맛? 살짝 데쳐져 아작거리는 쑥갓의 식감과 신선한 향내, 거기에 더해진 돼지고기의 풍부함, 거기에 육수에 젖어 혀끝을 희롱하는 감칠맛. 아 씨, 미치고따. 다시 갈 수도 없고.
이건 옆사람들이 시켜먹은 내장 날것 그대로의 간과 내장인데 파와 머스타드 비스므리한 소스를 곁들여 내왔다. 생긴거와 달리 맛은 평범하다. 비교적 향이 강하지 않은 내장에 파향을 곁들이고, 소스를 곁들인 이 것들은 날것인 탓에 양념과 주재료가 각개전투로 따로 논다. 맛없진 않지만 감동적이지도 않다. 담에 가면 안먹어 본 딴거 맛봐야지...
밥도 안먹은 시점이었지만 안주를 마구 시켜먹어 배도 그들먹하다. 안주값을 절약하기 위해 작은 접시에 약간의 안주만 놓고 술잔을 기울이는, 그래서 안주가 짭짤한 이들의 기준으로 우리가 먹는 안주를 본 사람들은 특이하게 보였을지 모른다. 우리는 주류전문점에 들러 산토리 맥주와 안주용 치즈를 잔뜩 사서 돌아가 더 마시고 잤다. 그 곳에 카메라를 두고 나와 담날 어디다 흘렸는지 속이 새카맣게 타게 될 줄도 모르고 실컷 더마시고 푹 늘어져 잤다. 지금 생각하면 쓸개 흘린 신선노름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