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타고 씽씽 정선영월 2
2013.5.17(금)
정선, 태백, 영월의 경계선인 만항재에서 하루를 보낸 우리는 담날 아침 약간의 늦잠을 즐긴 뒤 묵었던 방을 대충 치우고 만항재를 넘어 영월로 고개를 넘었다.
간혹 인공물이 눈에 거슬리긴 하지만 오지 한가운데의 경치는 더 이 상 바랄 것 없은 만족감을 갖게 했다.
영월군 쪽으로 이동하던 중 자그마하게 꾸며 놓은 공원(?)이 눈에 띠어 잠깐 들러봤다. 심어 놓은 꽃이 흐드러지게 화단을 덮었고
흐르는 물을 이용한 자그마한 물레방아도 혼자 하릴없이 돌고돈다.
위에서 내려다 본 공원.
파노라마 기능으로 휘둘러 찍은 사진.
수백년의 수령을 지닌 고목이 이 곳을 신비한 분위기로 만들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무게의 가지를 감당하고, 줄기가 버틸 수 있도록 썪은 빈공간을 메꾸고, 굵은 와이어로 보강했다. 몇 년을 더 버틸 수 있을까. 지금 사시는 아버님 댁 바로 앞에 버티고 있는 500년 이상 수령의 향나무가 생각난다. 우리 가족이 처음 이사를 했던 30년 전에는 어마어마한 키에 가지를 사방으로 뻗고 잎도 무성해 그 아름다움이 비할 바 없었다. 고령으로 밑둥이 부분적으로 썪고 가지가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자 전문가들이 썪은 곳을 파내고 속을 채운 뒤 마른 가지를 쳐냈다. 오백년의 세월 역사를 지켜보아온 소나무는 이제 볼품없이 말라 시름시름 앓으며 죽어가고 있다. 풍모가 아름다운 이 소나무는 좀 더 오래 역사를 지켜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는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를 찾았다. 강줄기가 휘돌아 지나는 아름다운 이곳은 육지속의 섬으로 고립되어 있다. 그 아름다움 만큼이나 슬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다리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표를 사서 배를 타자니 쑥스러울만큼 단거리 떨어진 섬으로 들어가면 단종이 머물던 가옥과 시설을 재현해 놓았다. 부엌 풍경.
본채.
본채의 내부.
책을 보는 단종과 그를 알현하는 선비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문간에 선 이는 단종을 모시던 내관이었던듯.
이 곳은 울창한 소나무숲이 조성되어 있어 분위기를 내고
단종이 궁궐을 그리워하며 올랐다는 언덕에서 내려다 보면 무심한 산과 강줄기만이 당시 단종의 쓸쓸함을 전한다.
단종과 함께한 두 그루의 소나무도 보호되고 있어 가슴뭉클하게 한다.
늦은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들른 영월의 한 유명 식당. 늦은 시간인만큼 줄서서 기다리는 일은 없을거라 확신한 우리는 세 시가 넘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줄을 늘어서 있음에 적이 당황했다. 줄 뒷꽁무니를 꿰찬 우리는 늘어선 줄의 규모에 비에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대기자의 수를 보고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이들의 일처리 속도는 마냥세월이란 말이 실감날 정도로 느린데다 효율성이란 것 조차 염두에 두지 않는 듯한 인상이었다.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자리에 앉자 아무리 기다려도 주문을 받으러 오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우리 앞을 지나가는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려 봤지만 결국 바람소리군이 주방에 몰려 있는 직원들에게까지 가서 주문을 해야 했다. 주문 후 기다렸지만 함흥차사였다. 우리의 주문이 잊혀진 모양이었다. 지나가던 직원을 간신히 붙잡아 다시 주문을 넣었다. 그런데 우리보다 나중에 자리를 잡고 앉은 사람들에게 먼저 음식이 제공되기 까지 하는 모습이 계속 이어지니 어이가 없었다. 그냥 나오고 싶은 생각 굴뚝같았지만 기다린 시간과 노력이 아까운 생각에 그냥 앉아 있기로 했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옆테이블 사람들에게 먼저 돌아갈 줄 던 막국수가 우리 테이블에 놓이는 순간 우린 살짝 당황했고 옆자리의 손님은 참았던 언성을 높였다. 옆사람들의 주문도 잊혀진데다 순서가 계속 뒤집히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맛은 좋았지만 다시 가고 싶지는 않더라는... 아무리 여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라지만 이런 풍경은 서울사람들에겐 받아들이기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마지막으로 작은 한반도지형으로 불리는 옹정리에 들러봤다. 역시 강줄기가 휘돌아 나가는 지형 가운데 한반도 모양의 땅이 보인다.
이 지역의 명물은 뗏목도 여유롭게 노저어 간다.
여기서 마지막 기념촬영을 한 뒤 서울로 발길을 돌렸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바람소리군과 함께 찍은 사진. 1년 가까이 운동 못하는 사이 배만 나왔다. ㅡ,.ㅡ;
강원도 오지의 풍경은 가는 길이나 오는 길이나 도로를 제외하면 사람의 손때가 타지 않은 곳이 아직도 무척 많다. 휴가를 제대로 쓸 수 없는 업무환경때문에 해외로 나가는 대신 주말을 이용해 국내를 돌아다니는 걸로 만족하고 있지만 국내에도 좋은 여행지는 참으로 많은듯하다. 하지만 강렬한 문화충격을 원하는 나로서는 언제 다시 해외로 유랑(?)을 하게 될 수 있을지. 앞날이 불분명하다.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