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타고 씽씽 정선영월 1
2013.5.17(금)
모처럼의 황금연휴지만 난 휴일 하루를 도둑맞았다. 직장 생일이 부처님 생일하고 겹치는 탓이다. ㅜㅜ 그래도 이게 어디냐. 바빠서 휴가도 못찾아 벅는 불쌍한 신세 이거라도 이용해야지. 강원도 영월을 가겠다고 계획을 잡아놓고 나니 바람소리군이 같이 가잔다. 영월이면 오지라 대중교통으론 다닐 수 도 없는 곳이라 현지에서 렌트할 작심을 했었다. 같이 떠나면 경비를 절약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 여행중의 동무가 있다는 것도 좋은일. 함께 떠났다. 바람소리군의 차로 06:30쯤 양재동에서 출발했다.
부분적으로는 길이 막히기도 했지만 그래도 일찍 출발한 탓에 대부분은 길이 뻥 뚫려 기분좋게 달릴 수 있었다. 마음씨 고약한 뜀도령은 이 날 본가인 포항을 가는 길이었고 가는 길에 바람 잠깐 쐴 겸 문경인가 어디를 들른다고 했다. 고약한 사람이 가는 길마다 엄청 밀렸던지 뜀도령으로부터 하소연이 문자로 수시로 날아온다.
아리랑의 고장 정선. 바로 그 정선아리랑의 발상지 마을을 지나치다 잠깐 들러봤다.
몇 가구만 있는 아주 작은 마을에도 가게가 있었다. 커피가 생각나 함 들러봤다.
주인이 없다. 가게문도 잠겼다. 바로 이어진 집에서 소리쳤다.
"이리오너라!"
좀 있으니 주인 아저씨 나오신다.
"누굴 찾아 오셨소?"
"캔커피 좀 사려고요."
"없어요."
"뭐 있어요?"
"사이다하구 맥주밖에 없어요."
"ㅡ,.ㅡ;"
워낙 산골에 달랑 길 하나 뚫린 곳이라 진짜로 암것두 없다.
"맥주나 두 캔 주세요."
상온에 있는 맥주 그냥 내준다.
"냉장고에 든걸로 주세요."
"냉장고 안켜요."
살렘 사고 말렘 말라식 객접대다. 하긴 여기서 돈벌겠다고 하는 장사는 아닌듯하다. 그저 주민을 위한 일종의 봉사의 개념으로 운영하는 간이 가게인듯하다.
걍 나왔다. 암것두 없지만 마을은 예쁘다.
아니 길 건너편에 뭔가 있다. 지붕을 덮은 기왓장도 보이고
울 노인네 보시면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눈을 반짝이실 오래된 항아리가 아무렇게나 뒤집어져 방치중이다. 음메.
고려가 망하고 이씨조선이 들어서자 망국의 한을 안고 깊은 산중으로 들어 끝까지 변절하지 않고 나물을 캐먹으며 살았던 7현을 모신 사당이다.
이름 하야 7현사. 그들이 임과 가족을 그려며 한을 달래 불렀던 노래가 바로 정선아리랑의 효시란다.
그리움과 한을 품은 7현이 숨어 살았지만 이 공기 좋은 곳에서 무공해 나물을 캐서 드셨으니 고사리도, 드릅도, 미나리도, 곤드레도, 취나물도, 씀바귀도, 냉이도, 최고급 송이도... 이만한 웰빙은 오늘날 찾아보기 어려운 혜택이라는... 퍽! ㅡ,.ㅋ;
길을 가다 보니 여기저기 편도 레일을 볼수 있다. 즈 주변은 강이나 절벽을 끼거나 굴을 관통한다. 바람소리군과 나눠본 이야기는 기차를 타고 저런 길 한 번 달려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이었다.
정선군 오일장에 도착했다. 오일장은 5일에 한 번 열리는가 했다. 연휴기간엔 오일장이 맨날장으로 둔갑해 있었다.
터키 아이스크림도 부스 한켠에 자리 잡아 특유의 익살스러운 동작으로 손님을 끌고 있었다.
시골장의 백미는 역시 먹거리. 이지방 특산 중 하나인 아우라질 옥수수막걸리, 장떡, 메밀떡, 부꾸미. 시자기가 반찬이랬다. 잠깐 앉아 즐기는 요기는 천국에 앉은 기분을 선사했다.
시장 상인들에게 구수를 맛있게 하는 집을 물어봤다. 역시 규모큰 시장에 유독 사람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집이 한 곳 있었다. 우리도 줄 뒷꽁무니에 가서 순서를 꿰차고 머릿수 줄기를 기다렸다.
딴집서 저과 막걸리를 먹고 이동해 왔는데 여기서도 전을 팔더라는... 어쨌든 나는 콧등국수(제목이 이거 맞나 몰라), 바람소리군은 올챙이국수를 시켰다. 투박한게 강원도의 맛이다. 기대하고 먹으면 절대 감동은 하지 못할 맛이지만 이 지방의 명물인만큼 안먹통과금지.
대충 한바퀴 둘러봤다 싶어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페루인의 팬플륫연주를 볼 기회가 있었다.
작년 1월 안데스음악의 본고장인 쿠스코에서 수준높은 폴클로레를 감상할 수 있을 줄 기대하고 갔었지만 , 이미 본국에서는 우리의 아리랑만큼이나 무관심 상태고 본고장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수준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었다. 쿠스코 현지에서와 국내 활동하는 폴클로레 뮤지션들을 접해본 결과 최고의 뮤지션들은 한국을 비롯한 외국을 떠돌고 있더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서울의 지하철이나 축제장에서 만나는 폴클로레 연주자들을 접하면 그들은 최고의 연주자들인만큼 그냥 지나치지 말고 일청을 권한다.
아래의 연주자도 그저 기술적인 연주능력만 뛰어난 연주자가 아닌 마음을 울리는 연주자였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동영상으로 담아왔다. 아쉽게도 음악을 들으며 쉬어 가자는 생각은 한 곡 더 듣고나자 휴식시간에 들어간 다음에야 접었다.
우리는 곧 아우라지에 도착했다. 장터에서 먹은 막걸리가 뙤약볕 아래 쩔어가는 우리의 맥을 있는대로 빼놓았다. 우린 아우라지에 도착하자마자 그늘에 주차한 채 창문 열고 의자를 제낀채 새우잠을 청했다. 그렇게도 맛있을까. 바람소리군은 진동에 사이드 브레이크가 풀리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우렁차게 코까지 골며 맛있게 잤다.
아우라지도 취침후경이라던가. 약간의 휴식으로 졸음을 걷어내자 이 번엔 무력감이 전신을 감고 돈다. 머야 이거. 더위에 약간 지친 모양.
그래도 이름만 듣던 아우라지에 와봤으니 둘러는 봐야할게 아닌가. 다리를 건너면 공원이 조성되어 있건만 우리는 건널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갔다가 돌아올 일도 끔찍했다. 그냥 주변을 둘러 보기로 했다. 그동안 가문 탓인지 물도 별로 없고 감동할만큼 깨끗한 물도 아니었다.
멋드러진 다리는 세 개의 물길에 하나씩 걸쳐 놓았다.
이거 보려고 우리 여기까지 온겨?
우리는 아우라지라는 이름을 아 우라질로 바꿔준 뒤 이 곳을 떠났다.
워낙 첩첩산중이라 가는 곳마다 경치가 무척 좋다. 그저 사람의 손때 묻언 것이란 간간히보이는 민가와 도로 그리고 철길이 전부였다.
만항재는 1,050여미터의 고지대 고개였다. 아주 자그맣고 예쁘게 단장된 마을에는 불편한 기운이 역력했다.
마을의 집들과 가게는 이렇듯 낭만적인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관공서의 규제로 주민들은 개발 제한은 물론 이제까지 살아온 집을 보수조차도 할 수 없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었다. 마을 주민으로부터 사연을 경청해 주고 있는 바람소리군.
이들은 탄광개발기부터 정착하기 시작해 형성한 자그마한 마을이다. 곳곳에 삶의 고단함과 절규가 묻어나는 현수막이 여기저기 붙어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이 심란하다. 잘 해결되어야 할텐데...
황금연휴라 그런지 조용하고 아늑한 이곳에 민박 방이 모두 동이 났다. 만만하게 생각했던 우리는 가는 곳마다 방이 없다는 말에 적이 당황했다. 숙소를 이 곳으로부터 떠나 다른 마을에서 숙소를 잡으려던 우리는 마을을 벗어나기 직전 도로변에 예쁜게 세워진 민박집 안내 입간판이 있어 전화해 봤다. 엉? 방이 있다넹?
차를 몰고 만항재 정상에 잠깐 들러 본 우리는 다시 돌아와 민박집을 찾아가 보았다. 입간판이 서있던 도로로부터 약간 안쪽 후미진 곳으로 들어가자 아담하고 운치있는 집이 나왔다. 아래 사진 왼쪽이 주인이 쓰는 안채이고 오른쪽 자그마한 건물이 민박용 방 3개를 가진 외인숙박용이었다. 값도 저렴하게 1박 4만원. 여행자에게 있어 행복한 요금이다.
직접 깎아 만든 것으로 보이는 장승이 나란히 서 들어오는 객을 가장 먼저 정겹게 맞아준다.
마을 이곳 저곳에는 자신의 집을 꾸미기 위해 합판을 오래내 색을 입히고 벽에 붙인 모양을 적잖이 볼 수 있는데 이 것이 이 마을의 이미지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우리는 짐을 풀고 다시 정상으로 올라가 만항재 정상을 다시 둘러 보기로 했다. 솟대도 보이고
들꽃이 지천에 피었다.
수많은 종의 들꽃이 ㅣ 곳에서 자생하고 있어 보호 울타리를 쳐 놓은 이 곳은 산책하기에 운치가 그만이다.
오바성 포즈 한 컷.
파노라마 기능을 이용해 찍은 산책로의 푸르디 푸른 모습.
이 번엔 맑디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두고 한 컷.
이름은 모르고 여기저기 핀 들꽃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바람소리군의 오바성 포즈 한 컷.
길 건너편엔 빽빽하게 심어진 나무 사이로 산림욕도 즐겨 볼수 있었다. 이게 뭔나무였더라...?
만항재 전상은 군부대가 있어 갈 수 있는 곳이 제한되어 있었지만 가증한 한도 내에서 구석구석 다녀봤다. 공해에 찌근 공기만 마시다 이곳의 신선하고 차운 공기를 맞으니 몸이 정화되는 듯한 느낌 마저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 같다.
이 곳은 낙조를 보기에 아주 좋은 곳이라고 하는데 지나치게 기대했던 탓인지 저녁에 지는 노을은 저 말리만 조금 붉을 뿐 큰 감동은 받기엔 좀 역부족이 아닌지.
다시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샤워를 마친 뒤 숙소 주변을 둘러 보았다.
이들은 들꽃단지를 조성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었지만 각종 건축과 개보수 관련 각종 규제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모양이다. 이 마을이 동계올림픽을 위한 스키장 건설에 최적의 조건을 가졌다는 이야기도 솔솔 나오고 어쨌든 주민들이 원하는 방향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 생활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숙소 앞을 휘감는 개울은 계속 시원하고 청량한 소리를 내는 가운데 그 개울 건너에는 자그마한 사당이 자리잡고 그 왼쪽으로는 옹달샘도 있어 왠지 토속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무척이나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이는 긴의자도 객의 쉼을 기다리고 있는 흐믓한 곳에 숙박하게 된 것도 여행의 가장 큰 기쁨 중 하나였다.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해 숙소를 나온 우리는
가는 곳마다 자리가 없거나 두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작은 메뉴가 없었다. 대부분 오리나 닭백숙 전골이 이 마을 식당 메뉴의 전부였다. 그러다 자리잡고 앉은 곳이 밥상머리라는 이름의 식당이었다. 여덟시가 갖넘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손님을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는 눈치가 보인다. 저녁 9시에는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이란다.
내 온 반찬은 더 없이 정갈하고 깔끔해 반찬만 놓고도 소주 1병을 비울 정도였다.
반찬 놓고 소주를 비우던 중 나온 닭볶음탕. 백숙을 먹고 싶었지만 술안주로는 영 적당칠 않아 벌건 볶음탕으로 주문했다. 이 마을 식당들이 내놓는 닭은 모두 토종닭이라 외래종 사육닭에 맛이 들린 우리 입맛엔 조금 질기고 뻣뻣하게 느껴진 것도 사실이지만 암심해도 될 것 같은 믿음도 먹는 느낌을 즐겁게 해 주는 것도 사실이었다. 맛은 아주 좋았지만 둘이서 먹다 먹다 남았다.
우리는 남은 닭볶음탕을 포장해 맥주를 사러 동네 유일한 가게바으로 가봤다. 주인아주머니 문닫고 보시는 TV의 불빛이 유리문을 통애 새나왔다. 문을 두드려 주인아주머니를 불러낸 우리는 맥주를 몇 병 사들고 숙소로 돌아와 야외에서 즐기기 위해 테이블에 앉아 보았다. 여기서 우리가 버틴 시간은 30분이 채 되지 못한다. 어찌나 춥던지. 낮에 살짝 더위먹은 상황과 비교하면 묘한 생각마저 든다. 우리는 방으로 들어와 2방문을 연채로 바로 앞 개울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맥주를 마셨다. 이게 신선노름이 아니면 도대체 뭐가 신선노름인가. 행복지수 엄청 올라간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