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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V의 파산 - 레코딩 역사의 산실 역사의 뒤안길로

코렐리 2013. 1. 16. 11:33

2013년 1월 16일인 오늘 아침. 출근하다 말고 문득 한 언론사의 전광판에 눈을 의심케 하는 기사 한 줄이 나로 하여금 뒤돌아 다시 확인하게 만들었다. "영국 대형 음반 유통사인 HMV 파산." 레코딩 역사의 한 장에 엄청난 족적을 찍은 HMV가 흔적만 남겨 놓고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순간 내가 알고 있던 레코딩의 역사와 HMV가 차지하는 그 위치, 그리고 내가 가진 HMV 음반들이 갑자기 떠올라 섭섭함과 아쉬움이 마음 속에 묻어났다. 역시 개 눈엔 똥만 보이는가.

CD만 즐기는 음악애호가들에게 있어 EMI는 알아도 HMV(His Master's Voice)라는 레코드사는 생소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LP라는 매체를 선호하는 클래식 애호가들에 있어 HMV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유명하고, 그중 특히 중요한 메이저 레이블 중 하나다. HMV는 영국 Columbia(미국 Columbia와는 전혀 다른 회사임)와 함께 거대 음반산업 EMI의 양대 산하 레이블 중 하나였다. LP가 개발되기도 전 78회전의 전축(SP)시대였던 1930년대에 이미 두 회사가 합병하여 생긴 회사가 바로 EMI다. HMV 레이블에는 니퍼라는 귀여운 개가 그려져 있다. 니퍼는 실존했던 개의 이름인데 이 개를 키우던 사람은 무척 니퍼를 사랑했다고 한다. 주인이 죽고 나자 돌봐줄 사람이 없자 살아생전 절친했던 친구가 니퍼를 데려다 키웠다. 어느날 축음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이 신기했던지 니퍼는 나팔에 눈을 대고 귀를 쫑긋거렸다. 이를 본 새 주인이 그림으로 그렸다. 이 것을 HMV(His Master's Voice: 주인님의 목소리) 레코드사에 상표로 제안했고 이것이 성사되어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 니퍼의 그림이 HMV사의 로고로 사용되었다. 개가 귀엽게 생겼지만 이 녀석의 이름이 니퍼(Nipper)인 이유는 걸핏하면 손님의 다리와 손을 무는 드러운 성질 때문이었다고 전한다. 드러운 성질의 개가 마스코트인 이 레코드사의 음반은 역설적이지만 푸근하고 섬세한 사운드가 매력이어서 많은 컬렉터들을 거느린 레이블이다. 나 역시도 이 레이블의 음반들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저작권 문제가 묘하게 꼬인건지 미국의 RCA사에서도 이 니퍼를 로고로 썼다.

 

 

이 레이블의 음반들은 특히 음질이 뛰어나다. 내 개인적으로 보자면 세계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음질을 가진 레코드 회사는 HMV, Columbia, Decca 일케 3개사다. HMV는 푸근하면서도 섬세한 사운드를 자랑할 뿐 아니라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앙드레 클뤼탕스, 루돌프 켐페,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레오니드 코간, 지오콘다 드 비토, 지네뜨 느뵈 등 당대 최고의 연주자들이 즐비했다. 이들의 전설적인 연주를 풍성하고 섬세한 사운드로 담아둔 HMV가 있었기에 그들이 떠난 오늘날에도 그들의 연주를 즐길수 있으니 감회가 새삼스럽다. HMV가 어쩌다 음반유통사로 전락하고 이지경까지 되었는지 내막은 알 길 없지만 그들이 가진 마스터 테잎만은 인류의 문화유산이니 만큼 잘 보관되어야 할텐데 걱정스럽다. 과거 우리 음악의 소중한 음원들이 관리 부실로 대부분 소실된 현시점에서 보자면 조바심이 날듯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