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울진/봉화 3-2(봉화)
2012.10.27(토) 계속
감사스럽게도 혼자서 누린 불영사에서의 고즈넉함. 여기서 즐긴 시간은 한시간 정도. 들어오고 나가는 시간도 만만치는 않아서 버스 정거장까지 다시 나온 시간은 08:10 정도였다. 여기서 시내행 버스를 20분 정도 기다렸다. 기다리기 지루하고 언제 올지 몰라 경운기를 얻어 타려 해도 행선지가 바로 앞이라 실패. 불영사에서 나오는 공사 관계자 트럭 좀 얻어 타려니 개무시 통과. ㅡ,.ㅡ; 무엇보다 불영계곡의 전망대에서 한 번 정도 들러 계곡을 내려다 보고 싶었지만 이 곳은 버스편이 많질 않았다. 08:30이 되자 드디어 버스가 왔다. 울진터미널에서 봉화로 가는 버스는 단 두편. 11:20과 18:40이다. 11:20분 차를 놓치면 봉화 일정이 난감모드다. 다음 버스가 언제 몰지 몰라 불영계곡 전망대는 포기!
야, 이 버스 재미 있다. 전형적인 시골 버스다. 수확한 고추를 가득 담은 비닐, 농산물 같은 짐을 잔뜩 실으며 올라 오신 어르신들 저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목적지를 향해 목을 늘이신다.
나가는 길에 동영상 또 하나 확보 안할 수 없지.
나오고 나니 09:00가 조금 넘은 시간. 근처 성류굴을 가볼까 싶어 발길을 잡아봤다. 내가 내린 버스 정거장에서 1.8km 거리. 걷기 좋아하는 나로선 그다지 먼 거리도 아니고 잠깐 둘러 본다면 나올 때 택시 잡아 탈 경우 어렵지 않게 11:20발 봉화행 버스를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냥 걸었다.
걷기만 해도 기분 좋은 시골길이다. 다 좋다. 기분도 좋고 경치도 좋고 걸어 다니니 세로토닌 마구 분비돼 아드레날린도 괜스리 덩달아 머시기 한다. 허걱! 갑자기 거시기해져 오는 둔부 사이. 뿌그르륵...! 어제 과식도 안했구만 술도 많이 안마셨구만 좋지도 못한 장이 지금 와서 새삼 속썪인다. 하지만 내 앞에 펼쳐진 것은 길뿐이고 나를 도와줄 공공장소 같은 것은 없었다. 아무래도 자연을 벗삼는 방법밖엔 없었다. 젠장. 야산으로 들어가 구비구비 들어갔다. 깊이 들어가지 않기 위해 움푹 패인 제법 으슥한 곳으로 들어갔다. 도로에 차만 오갈뿐 행인은 없지만 그래도 소심증 후군은 좀 더 가려지고 좀 더 으슥한 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길이 아닌 곳으로 오르다 보니 썪은 나무 가지들이 수북히 여기저기 쌓여 있고 발이 푹푹 빠진다. 이끼는 수시로 나를 미끄러뜨려 자빠지고 엎어지게 만든다. 부슬부슬 비도 조금씩. 나는 할 수 없이 문명을 포기하고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다만 과정상 유쾌하지 못한 냄새를 풍겨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산토끼, 노루, 산새 나도 느덜과 동급이다. ㅡ,.ㅡ;
일 보고 도로로 나오니 나 이런. 여기서 20분 정도 허비했다. 대중교통은 없거나 드문지 버스를 볼 수 없었다. 택시라도 있으면 잡겠지만 이것도 여의치 않다. 시내로부터 성류굴 방면으로는 외진 곳으로 가는 방향이니 택시는 드물고 있으면 손님이 이미 타고 있었다. 동굴 포기. 다시 걸어 나와 택시를 잡았다. 기사에게 물어 근처 가장 좋다는 식당으로 가봤다. 울진엔 먹을게 없다며 안내한 식당. 여기서 해믈된장 먹었다. 맛? 묻지 마라 그냥 먹었다.
어려서 호기심에 훔쳐봤던 "선데이 서울"을 연상시키는 3류 잡지들은 아직도 터미널에선 유행 없이 판매되나 보다.
봉화행 버스다. 밥먹고 바로 옆 터미널로 가 버스표를 끊어 올랐다.
이동중에 비는 추적추적 내린다.
오는거 좋다만 나 봉화 도착하거든 멈춰주면 좋겠구만...
거대한 고가도로가 이 오지를 잇기 위해 건설중이다.
이동중의 경치를 동영상에 담아보았다.
13:00가 되어 도착한 봉화. 터미널에서 나와 밖을 보니 봉화시장부터 눈에 띤다. 렌트카 업체부터 찾아봤다. 알고 보니 렌트카 업체는 봉화에는 없고 영주 시내로 나가야 한단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영주로 나가는건데...
미리 조사해 온 렌터카 업체 중 하나와 연락이 되어 찾아 가기로 했다.
영주행 시내버스는 의외로 자주 있었다. 렌터카 업체가 터미널 주면에 있을 줄 알고 두리번 거리다 말고 바로 앞 시장 구경 하느라 시간을 약간 허비한 나는 14:00가 되어 영주에 도착했다.
14:20분쯤 차를 빌렸다. 토스카를 24시간 빌렸다. 원래 8만원인데 봉화에서 일부러 왔으니 교통비 빼준다며 7만원만 내란다. 친절하구만. 참고로 업체는(조은렌트카 054-674-0576) 담에도 가게 되면 이 곳을 다시 찾을란다.
터미널에 도착했을때 가장 먼저 찾아 본 것은 당연히 여행정보 자료. 울진엔 이쁘게 비치되어 있구만 봉화 터미널엔 그땅거 없었다. 벽에 관광지도가 그려져 있지만 그걸로 되겠냐고. 손아귀에 쥘 수가 있어야지. 네비를 찍고 봉화군청부터 찾아 갔다. 우메나... 이 오지에 세운 군청 청사 건물과 조경좀 보소. 여기 오지 맞어? 돈이 남는군. 규모가 어찌나 큰지 당직실을 찾지 못해 민원실에 표시된 아무 전화나 돌려 보았다. 누군가 받는다. 친절하다. 당직실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준다. 찾아 갔다. 찾아가니 기다렸다는 듯 여직원이 나와 있다가 자료를 내 준 뒤 대략적인 안내를 해 준 뒤 당직실로 들어갔다. 공무원들도 많이 달라졌다.
우선 가고자 했던 곳은 불영사. 가다 보니 닭실마을이 보이넹? 원래는 계혹에 없었지만 게부터 들러봤다.
고풍스러운 담벼락에 가지런히 심은 꽃들이 보기에 좋다.
지은지 그리 오래지 않은 집들이 대부분이다.
여기가 왜 관광지로 유명한지는 그저 사람들이 사는 집들이 고풍스러워서 그런 줄만 알았다.
물론 오래된 집들도 있기는 하다.
문짝과 벽만 봐도 정감 넘치는 모양새다.
일단의 대학생들이 지도교수로 보이는 이의 인솔에 따라 마을을 둘러 보는데 섞이고 싶지 않지만 워낙 작은 마을이라 그게 쉽질 않다.
문이 없는 집들도 많지만 담벼락이 둘러쳐지고 문도 국게 닫힌 집들은 담넘어 찍어야 한다. 이곳은 안동 하회 마을이나 경주 양동마을처럼 개방되는 곳이 아니다.
가을걷이가 진행중인 이 곳은 아직 걷히지 않은 논이 황금물결을 이룬다.
여기서부턴 정말 오래된 집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대문은 굳게 닫혀져 있다.
마을에는 조상 대대로 이어 오늘에 이른 후손들이 살고 있는 모양이다.
그 중 눈에 띠는 집이 있다. 여기가 왜 닭실이라 불리는지 설명이 없군.
권충재 대문에는 출입금지라 써있다.
촬영 방법은 카메라를 담넘게 하는 방법뿐이다.
한 번 들어가 둘러보고 싶은 생각 간절하다.
물론 개방된 곳도 있다.
바로 이 곳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달랑 건물 한 채와 정자가 딸린 정원이 전부인 자그마한 곳이다.
선비들이 공부했을법한 이 건물과
작은 해자처럼 물을 둘러친 정자 하나. 역시 자그마한 돌다리 하나 놓여져 있다.
자연을 그대로 끌어 안은채 정원을 만드는 전형적인 한국식 정원인데
어떻게 이런 명당을 확보했을까.거대 바위 주위로 물을 둘렀는데 그 모양새가 가히 하나의 자연풍광에 가깝다.
절정에 이른 단풍 역시 여기에 운치를 배가했다.
정자에도 올라보고 싶었지만
이미 단체 학생들이 장악하고 나올 생각을 안한다. 들어가 앉아 보는건 포기. 대신 셀카 기념촬영 한 컷.
이 곳을 나와
주변을 다시 둘러 보았다.
고풍스러운 마을에
자연풍광 역시 뛰어나고
잘 정돈된 농토까지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노년에 정착해 보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이 곳 사람들은 타지인에 대해 무척 폐쇄적일 것 같은 선입감이 든다. 하기는 시골 사람들일수록 굴러온 돌이 박힌돌 뽑을 새라 겨계의 눈초리부터 보낸다. 왕따의 원조는 아이들이 아니라 바로 어른들이 아닐지...
이 곳을 떠나
다시 차를 몰아 불영사로 향했다. 절정에 든 단풍에 나는 넋을 잃을 지경이었다. 오죽하면 운전중에 해선 안되는 일인즐 알면서도 이동중 동영상을 찍어봤다. 나중에라도 다시 보고 싶었기 때문이지만 역시 코딱지만한 카메라로 대자연을 담기에는 너무나 작은 그릇이었다. 이 영상이 그 때만큼 아름다운가... ㅡ,.ㅡ;
가다 한 곳에 잠깐 내렸다. 풍경사진을 찍고 싶어서였지만 역시 담고 보니 별로다.
목적지인 청량사에 도착한 시간은 17:30. 좀 늦은 시간이었다.
청량산 공원 입구.
주변이 풍광이 홀리는 탓에 여기서 머문 시간도 적지 않았다.
방금 건너운 다리를 건너다 찍은 3D 촬영사진.
불영사에 들러보기 위해 안으로 들어가 봤다.
입구로부터 청량사 입구까지의 길 역시 그냥 지나기엔 아까운 생각이 들어 동영상으로 담아봤다.
청량사 입구에 도달햇을 때는 이미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급경사의 청량사를 올라간다 하더라도 이미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으니 볼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좋다. 오늘은 여기서 잔다. 근처 민박집을 알아 보았다. 엉? 가는 곳마다 방이 없어? ㅡ,.ㅡ; 방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은 나 뿐이 아니었다. 난 동동 구르지는 않는다. 잘 데가 여기밖에 없냐. 이 곳은 봉화의 다른 곳들과 달리 워낙 유명세를 타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난 사람 많은 곳이 싫다. 잠깐 머릴 굴려봤다. 어차피 봉화 시내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여기까지 와서 창량사를 들러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내일 아침 돌아오자면 거리가 꽤 멀다. 그렇다고 포기하자니 아쉽다. 젠장. 어쨌든 어디서 잘까 생각해 봤다. 전통한옥으로 마음을 바꿔 먹었다. 세워둔 차를 가질러 가기 위해 다시 공원 입구로 돌아갔다. 차를 돌리던 순간. 아 젠장 오늘은 뭐가 되는게 없냐. 입구에 세워둔 커다란 꽃화분 두 개중 하나를 건드려 발랑 넘어갔다. 차 범퍼가 긁혔다. 젠장. 렌트한 찬데... 어쨌든 입구에 쓰러진 화분을 세웠다. 화분은 손상이 없으나 꽃과 흙이 전부 쏟아졌다. 양이 적지 않은데 무슨 장비라도 있어야 치우지. ㅡ,.ㅡ; 다 시 아침에 올까 말까 고민하다 이 핑계로 아침에 이리로 다시 오기로 했다. 어쨌든 기분 별로 좋지 않다. 19:00에 돼지 숯불구이 단지로 유명한 상봉읍으로 갔다. 어차피 봉화로 가지면 거쳐야 하는 곳이다.
상봉으로 가 농협에서 돈부터 찾았다. 숙소는 전부터 고려했던 전통한옥으로 결정했다. 한 곳에 전화하니 주인장이 전화를 안받는다. 이 번엔 권진사댁으로 전화했다. 혼자 간다니까 얼마나 받아야 할지 난감해 하시는 모습이다. 난 대략 7~8만원 정도 고려했는데 혼자 오니 4만원만 받으시겠다니 고마운 일이다. 돼지화로구이집에서 저녁을 하려니 어느 집이 잘 하는지 알 수가 있나. 대부분 한산하다. 손님이 비교적 많아 보이는 집으로 가봤다. 단체손님을 받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주인이 죄송하지만 손님을 받을 수 없단다. 자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많은 손님이 들이닥친 모양이다. 다른집 어디가 좋은지 추천해 달랐더니 모두가 다 잘하니 어디 가서 드셔도 맛있을거라나. 그래서 한 곳 들러봤다. 손님 은근히 많은 집이다. (19:00)
어딜 가나 고길 먹으면 최소한 2인분은 주문해야 한다. 난 당연히 2인분은 주문해야 할걸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 곳은 1인분 주문도 가능하단다. 귀찮게 굽지 않아도 된다. 구워서 나온다. 양념구이 1인분 10,000원이면 착한 가격이다. 1000원짜리 공기밥 하나 주문하면 이걸로 식사 한끼 충분하다. 숯불에 구운 고기의 목초액 향이 어우러져 맛이 기막히다. 봉화에 가면 상봉면에 가서 꼭 먹어보길 권할만 하다.
네비를 찍어 25분정도 소요되어 춘양면에 있는 권진사댁으로 갔다.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느라 전화했더니 주인어른 마중나와 기다리신다.(20:00)
감동적인 곳이다.
이미 해가 져서 어두워졌지만 집안에서 나오는 불빛에 의지해 둘러보기만 해도 감동이 느껴지는 곳이다.
샤워를 한 뒤 내게 배정된 방으로 들었다. 고미다락이 있다.
하나 열어 봤다. 여긴 왠지 모르게 글공부 분위기가 잡힌 방이다. 이 고미다락엔 엿이나 꿀단지 대신 책이 빼곡하게 수납되어 있었을 것 같다.
마당을 향해 열린 장지문도 별도로 있고
뒤란으로도 뚫려있다. 마루로 통하는 문도 있어 공부하다 말고 사면팔방 아무데나 열고 마당쇠를 부르면 부려먹기 좋은 시스템이다.
장지문을 열고 대문과 행랑채를 내다 보고 찍어봤다. 행랑채의 방에는 마당쇠가 살았을까 갈 곳 없는 양반 식객들이 묵었을까.
나는 장지문을 열고 문지방에 걸터앉아 툇마루에 발을 대고 맥주를 마셨다.
책이나 보다 자려니 맹숭맹숭해서 가게방에서 맥주 몇 캔 사왔다. 옛날 양반들이 이러고 놀았겠지. 왠지 내가 그런 느낌이다. 이런거 안해본 사람은 약 좀 오르시오. 카~~~! 죽인다 죽여. 맥주만 좀 좋은 맥주였으면 금상첨화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