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12 페루·네덜란드 the 2nd

오락가락 페루 7(리마→서울)

코렐리 2012. 5. 25. 15:39

2012.2.5(일)~2.7(월)

리마에서의 마지막 아니, 페루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의외로 리마에서는 볼거리가 그다지 많지 않아 남은 시간 중 오전을 해표섬 크루즈(Isla Palomino Tour)에 참가하기로 했었다. 카야오(Callao)항에서 요트를 타고 물새와 해표가 서식하는 작은 섬으로 떠나는 반나절 코스였다. 08:25에 일어나자마자 동전부터 긁어 가이드북에 나온 여행사로 전화를 해 보았다. 다행이 전화번호도 바뀌지 않았다. 신호도 가고 전화도 받았다.

 

"쏼라?"

"여보세요. 두 사람이 오늘 해표섬 크루즈에 참가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돼지요?"

"쏼라 쏼라"

"뭐라고요? 영어로 말씀해 주시죠."

"쏼라쏼라"

짜증이 났다.

'이런 젠장. 이러고도 아직까지 굶어죽질 않았네.'

"그럼 우리가 그리로 찾아갈테니 만날 수는 있는거죠?

"쏼라쏼라."

"주소 맞아요? 여차저차 이 주소?"

"예쓰!"

'죽여버릴라.'

 

의사소통이 온전치 않은 상황이라 반 쪽짜리 확신만 갖고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고 가다 보니 마라톤 대회 때문에 마침 가는 길이 막혀버렸다. 택시 기사는 막힌 곳에서 멀지 않다며 걸어가길 권했다. 일단 내렸다. 전화기에 동전을 다시 긁어  공중전화부터 찾았다. 가이드북엔 10시에 시작한다는데 이미 10시가 가까웠다. 전화기에 동전을 넣었다. 먹통이었다. 반환버튼을 눌렀다. 동전 먹었다. 전화기 부숴버리고 싶었다. 참고 그 옆 전화기로 옮겼다. 동전 넣었다. 신호 간다. 번호 눌렀다. 먹통이다. 다시 시도했다. 신호 간다. 번호 눌렀다. 다시 먹통이다. 성질 같아선 전화 부스 폭파시키고 싶었다. 참고 그 옆 전화기로 다시 시도했다. 동전 먹었다. 10시가 되기 직전이었다. 열여덟 소리가 입에서 절로 나올라구 한다. 참았다.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한테 물어 보려도 통제구역인 심지어 통제 경찰도 달리는 선수도 없고 개 한 마리 안다녔다. 차량 통제로 차도 안다녔다. 다른 공중전화를 찾아 봤다. 주유소 옆에 공중전화 부스 또 하나 찾아 전화했다. 신호 간다.

 

"쏼라?"

'또 이 친구야? 젠장, 영어 하는 직원 없나? 혼자 일하는 사람인 모양이군.'

"근처에 와 있어요. 여기에 무슨무슨 주유소가 있는데 여기서 어떻게 가야 하는거요?"

"쏼라쏼라."

참 나도 어지간 하다. 이 쯤 되면 포기할만도 했다. 하지만 달리 갈 곳도 없고 할 것도 없었다.

강조를 해봤다.

"무슨무슨 주유소. 당신 그 주유소 알아요?"

"쏼라쏼라."

'ㅡ,.ㅡ;'

화가 났다. 정말정말 화가 났다. 오기가 나서 찾아 가기로 했다. 주유소에 물어보니 모른단다. 문 밖에 의자를 내와 혼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노인을 만났다. 길을 물으니 방향을 일러 준다. 다녀봤다. 어찌어찌 비슷한 주소지 구역을 찾아냈다. 번지수가 1,2,3,4 순서가 아니었다. 거의 찾아 냈지만 우리가 찾아 가려던 번지수 하나만 비었다. 어찌된지 알 수가 없어 주변을 한참 배회했다. 그런데 빈다는 그 주소지 근처에 연립주택 비스므리하게 생긴 건물 하나에 여행사 포스터가 창문에 덕지덕지 바깥을 향해 안에서 붙인 곳이 보였다. 그렇지만 번지수가 달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두 개의 번지수가 그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당시엔 자꾸 이 곳이 그 곳 아닐까 생각했지만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통화도 했는데 사람이 있고 우리가 온다는걸 알면 문을 열고 기다릴텐데... 그럼 여긴 아니겠지... 몇 번을 왔다갔다 했다. 어느새 그 건물 옆쪽 작은 철문이 열려 있었다. 우리가 왔다갔다 하면서도 열린 문을 못 본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새삼 열려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어가 봤다. 주소에 나와 있는 202는 홋실인 것 같아 2층으로 올라갔다. 202호에는 현관문 바깥면으로 철문이 겹쳐져 있고 그것 역시 잠겨 있었다. 치안이 그렇게도 안좋은가?

초인종을 눌렀다. 반응이 없다. 조금 뒤 다시 눌렀다. 반응이 없다. 큰 소리 내봤다.

 

"아무도 없어요?"

그제서 안에서 누가 대답하는 것 같았다.

"쏼라?"

"여기 여행사 맞아요?"

다시 대답이 없었다.

조금 후 여러겹으로 잠겨진 현관문을 하나씩 차례로 따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이 곳이 여행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관문에 홋실 외에는 어떠한 표기도 없었다. 여행사 출입구라는 표시는 눈씻고 봐고 없었다. 건물이 정사각형이 아니고 사방으로 변형된 구조로 되어 있어 밖에서 유리창을 통해 본 그 여행사의 문인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현관문 바로 바깥면에 이중철창문까지 설치해 잠갔는데 현관 안에서는 몇 중으로 된 시건장치를 하나씩 푸는 소리가 들리자 이게 과연 여행사가 이럴 수있나 싶어 퍼뜩 든 의심이었다. 문 열고 나오는 사람이 '아침부터 늦잠을 방해하는 당신은 누구요?' 하며 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약간 겁을 집어 먹었다.

 

곧이어 누군가 현관 문을 열고 이어 철창문을 열었다. 나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물었다.

"여기가.... 여행사... 맞나요...?"

그는 대답도 않고 문을 연채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렇게까지 성의가 없을 수 있나. 이걸 그냥 확!

 

자리를 가리키며 앉기를 권했다. 가이드북에 의하면 이미 크루즈는 이미 시작된 시간이었다.

"오늘 크루즈 참가가 가능한가요?"

그는 대답 대신 화일철에 담겨진 코스와 요금표를 보여 주었다. 11:00 코스도 있었다. 내가 가진 가이드북에 나온 자료는 워낙 오래된 자료라 금액은 기억 안나지만 그새 이미 요금이 많이 올라 있었다.

11시 프로그램에 참가의사를 밝힌 뒤 선착장이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다. 그가 지도를 꺼내 가는 코스를 일러줬다. 나는 그제서야 이 곳이 바닷가에선 멀리 동떨어진 곳에 있고 직접 운영하는 것이아니라 중간 소개업소임을 알게 되었다. 영어를 아주 간단한 것만 간신히 알아듣는 통에 대화는 정말 어려웠다.

여기서 참가요금을 내고 택시로 선착장을 찾아가야 하는데 30분정도 걸린단다. 그 때 시간이 10:25이었다. 여기서 나가면 마라톤때문에 통제하는 거리를 벗어나 택시를 잡아 타야 했다. 게다가 오늘처럼 헤매거나 하면 돈과 노력만 날릴 판이었다. 아무래도 안전장치가 필요했다. 간신히 묻고 간신해 대답을 들었다.

여기서 그리로 데려다 주는 유료 또는 무료 서비스는 없고, 그 곳에서 데리러 오는 서비스도 없단다. 그는 우리를 데려다 줄 생각도 데리러 오도록 수배해 줄 생각도 전혀 없었다. 그 가운데 "할래 말래?"였다. 당연히 안하지 젠장. 포기하고 나서 안땡기지만 가보지 않은 곳을 가보는 것이 남은 방법이었다.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이렇게 영업하면 진작에 굶어 죽고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을게다. ㅡ,.ㅡ; 어쨌든 이 곳을 나와

 

신시가지로 이동하기 위해 교통편이 있는 곳으로 나가봤다. 마라톤 골인 지점인지 중간 응원단 모인 곳인지 음악 틀어놓고 대충 흔드는 일패를 만났다. 그야말로 따라 하는 막춤 페스티벌이다. 우리는 이 근처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로 불쌍한 점심을 마친 뒤 버스를 타고 신시가지인 미라플로레스 지구(Miraflores)로 갔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신시가지 해안가에 있는 라르코 마르(Larco Mar) 공원으로 가봤다. 태평양을 면한 해안가 공원이다.

 

이 곳에는 고급 레스토랑과 부티끄 같은 곳들이 즐비하다.

 

 

해안가를 따라 길게 이어진 공원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걸어볼만한 거리였다.

 

아래쪽으로 함 내려가 보고 싶었지만 내려가는 길은 아무데나 설치되어 있지 않아 한참 걸어야 했다.

 

길게 이어진 산책로를 걷다 보면

 

꾸며진 모양새도 좋고 멋진 설치물들도 보인다.

 

20분 정도 걸으니 연인들의 공원(Parque del Amor)이 나온다. 연인의 키스상부터 눈에 들어온다.

 

이 곳은 연인들이 많이 찾아 오고 아래와 같은 자세의 연인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라고도 한다.

 

가우디공원을 흉내낸 타일 장식의 벤치도 설치되어 있고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해변으로 내려가는 내리막길도 멀지 않았다. 모래 사장은 없고 온통 자갈해변이다. 이곳엔 볼거리가 이걸로 끝인가? 좀 싱겁다. 그래도 시간은 남았다.

 

우리는 신시가지에서 볼거 다 봤다는 판단하에 다시 구시가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 잡기를 시도했다. 날이 더워 거대 다리 아래 그늘에서 지나가는 택시를 잡으려 했지만 빈택시가 흔치 않았다. 배가 부른건지 어쩌다 빈택시를 만나도 우릴 개무시하고 가버렸다. 간신히 잡은 택시를 타고 리잉키시시온 뮤지엄(Museo del Tribunal de la Inquision: 종교재판소 박물관)으로 갔다. 

 

종교재판소는 1569년 처음 개설시기에는 라우니온 거리에 있었지만 볼리바르 광장(Plaza Bolivar)으로 옮겼다고 한다. 1820년 폐지될 때까지 이 곳에서 이단자들을 엄중하게 추궁했다고 한다. 황금에 눈이 어두운 식민지 개척자들이 카톨릭을 강압적으로 전파했고 이교도나 이단으로 의심이 되면 혹독하게 다뤘다고 한다. 그 만행이 어떠했는지 궁금했다. 아래 사진은 박물관 입구.

 

좌정한 재판관들의 모습

 

고문당하는 죄수의 인형.

 

환장하겠군.

 

어걱! 켁!

 

잡아 땡겨라. 좀 더 세게!

 

젠장 이 방법은 동서고금 세계공통인 모양이군.

 

수건도 사용했을텐데? 목마른 죄수한테 자비롭게 물을 먹여주는 장면은 아닐테고

 

이젠 세계 어디에서도 이런 잔인한 장면이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없어야 할텐데.

 

언젠간 그런 날 오겠지. 최소한 종교적인 문제로는 더더욱 그렇고.

 

다시 이동해 전날 내부를 보지 못한

 

라 메르세드 교회로 가봤다. 마침 개방시간이었다. 이때 시간이 15:00

 

이 곳도 규모는 작지만 장식은 섬세한 편이었다. 벽화는 그리 감동할 수준은 못되었다.

 

대부분은 콘크리트로 되어 있는 것 같다.

 

 

이 곳을 둘러보는데는 워낙 작은 규모라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이 번에는 라우니온 거리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이 곳에도 교회가 하나 있었다. 외관을 보고 이게 어느 교회라는둥 뜀도령과 이야기를 나눴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 번 둘러 보고 나왔다.

 

장식은 비교적 화려하고 섬세한 편이지만 벽화의 작품 수준은 여기도 수준 이하였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며 이른 저녁 먹을 곳을 찾아봤지만 결국 숙소에 도착할때까지 들어가고 싶은 좋은 식당은 보이지 않았다.

 

숙소 바로 옆 레스토랑으로 한 번 들어가 보기로 했다.

 

아담하고 예쁘기는 하다.

 

맥주와 함께 주문한 스테이크. 이제까지 먹어본 고기 중 가장 질기다는 것만 기억난다. 그래도 배고픈데 안먹으면 어쩌리. 남김없이 다먹었다. 맥주 없었으면 그나마 삼키기도 어려웠을게다. ㅡ,.ㅡ;

 

한국인으로 보이는 우리를 보고 반가와 하는 이들이있었다. 근데 이게 뭔소리여? 한국 갔다 왔어요?

 

티셔츠 등짝에도 써있다. 개신교도들로 보이는 이들이 뭐라뭐라 구호를 외치고 다니는데 도대체 의미는 둘째 치고 한국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걸까.

 

 호텔에서 공항까지 송영서비스를 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택시비보다 저렴하고 편리해 이용했다.

 

이 공항에 벌써 네 번째넹? ㅋㅋ

 

티케팅을 했다. 줄서서 티켓을 기다리다 보니 거대 랩으로 부칠 가방을 둘둘 싸는 서비스업자가 있었다. 이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은 도난이라도 당할까 그러나? 포장하는 사람들도 종종있다. 여직원이 줄선 사람들 열을 따라 스페인어로 뭐라뭐라 했다. 짐 싸세요. 짐 싸세요. 뭐 이런 소리였나부지.

나를 쳐다 보더니 물었다.

"Packing your... 고개갸웃 다바오(打包: 포장하실라우)?"

첨엔 무슨 소린가 했다. 페루인이 중국어로 무슨 말을 할 거란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는데 그녀가 지나고 나서야 어줍잖게 배운 중국어를 내게 써먹은 것이었음을 깨달았다.가는 곳마다 내가 중국인인줄 안다.  ㅡ,.ㅡ; 어쨌든 티켓을 발급 받아

 

떠날 시간만 기다렸다. 21:15발 암스테르담행이었다. 

 

12시간이 걸려 다음날인 2월 6일 18:55에 암스테르담에 도착하자마자 19:45발 인천행 항공기로 환승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대기시간 짧아서 아주 좋다.

 

이 때 먹었던 기내식이 뭐였는지 기억도 안난다. 맛도 기억 안난다. 네덜란드 항공 기내식이 뭐 그렇지.

 

10시간이 넘는 거린데 아마도 좀 일찍 도착했지 아마? 어쨌든 이른 저녁시간에 인천에 도착할 수 있었다.

 

 

두 번 째로 나왔던 기내식. 역시 뭐였는지 기억 안난다. ㅋ

 

 

 

먼거리인데 비해 비교적 짧은 일정의 여행이었다. 페루 여행을 간단하게 결산해 보면 몇 가지 기억에 강하게 남는 사실들이 있다.

이 번엔 너무나도 준비없이 여행을 했다. 전같으면 없었을 일이었다. 직장 일이 바빠 허구헌날 야근한 탓에 뭘 할 시간이 없었던 탓이다. 리마에서 쿠스코로 가는 비행기를 구할 때도 정보 부족으로 많이 헤맸다. 운 좋게 값싼 항공권을 구입하긴 했지만 비수기라 항공권이 남아돌거라 생각한데다 구체적으로 알아 보지도 않았던 것이 불찰이었다. 비수기였기에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표 구하기도 만만할 줄 알았다가 여차하면 애만 먹고 불편한 시간대로 비싼 표를 구할뻔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운이 좋아 잘 풀려 좋은 값에 다녀 오기 좋은 시간대로 기차표를 구할 수 있었다. 쿠스코에서의 일정도 대충대충 짜 놓았던 탓에 오얀타이탐보로 향하는 장거리 코스를 두 번이나 왕복해야 했다. 모두가 준비 부족 탓이었지만 그래도 이상하게도 그 때마다 운이 풀려 크게 손해보거나 낭패를 본 일은 없었다. 어쨌든 오락가락 페루여행이었다.

 

리마에서의 인상은 식민지 시대 계획도시의 가지런함과 다양한 채색의 건물들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대부분 콘크리트로 이루어져 있어 삭막함도 느껴진다. 그동안 TV에서 보던 식민지의 계획도시를 직접 거닐어 본 것에도 큰 의의를 둘만하다고 생각된다.

 

쿠스코에서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전통의상을 입은 원주민들도 수시로 볼 수 있어 전통적 향기가 많이 남아 있었다. 도시를 죄 뜯어 저희들 취향대로 고친 침략자들의 만행에도 물구하고 잔존하는 문명의 흔적은 그들의 위대함을 알고도 남음이 있을만큼 엄청났다. 물샐틈 없을 것 같은 섬세한 돌벽은 지금도 내가 가장 큰 충격으로 남아있다. 주변의 유적 중에서도 오얀탐이탐보, 삭사이와망 등의 유적은 내게 강한 인상을 남긴 가장 대표적인 곳이다.

 

그동안 사진으로만 봐오던, 꼭 한 번은 가보겠다고 다짐했던 마추픽추 역시 놀라움 그자체로 내 기억에 남아 있다. 바퀴도 없고 철도 없던 이들이 그 많은 돌을 어떻게 이동했는지도 놀랍지만 태양의신전의 섬세한 아름다움은 지금도 눈 앞에 선하다. 이 번 여행의 가장 큰 의를 두고 있는 곳이다.

 

이 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순수함 그 자체라 해도 좋다. 나는 이 곳에서 바가지를 썼던 것으로 기억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들은 설사 바가지를 씌운다 하더라도 그 정도가 거의 애교수준이다. 그만큼 순수하다는 얘기다. 관광지를 가도 그들은 관광객을 쫓아다니며 귀찮게 구는 법이 없다. 정찰제가 자리잡은 곳도 아닌 곳에서 사기도 속임수도 바가지도 없다는 것이 이들 말고 가능할까. 중국인이나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바가지나 씌우는 우리네가 반드시 배워야 할 자세 내지는 성향이라 봐야 옳을 것 같다. 거기서 만난 세 사람이 기억에 남는다. 리마의 아르마스 광장 가장행렬에서 잠깐 만난 섹시미녀, 레스토랑에서 만난 지적인 미녀 올가. 특히 쿠스코에 머무는 동안 친구처럼 친절하게 대해 주었던 카를로스 생각 많이 날 것 같다. 쿠스코의 돌벽과 마추픽추의 유적만큼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