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페루1(리마/쿠스코)
2012.1.29(일)
암스테르담에서의 짧은 일정을 마친 우리는 다시 리마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10:30발 열차를 타고 여유있게 스키폴 공항에 도착했다. 출국수속을 하고 정해진 탑승구로 갔다. 이상하게도 탑승구로 갈 때까지 짐 검색이 없었다. 이 것 때문에 네덜란드의 탑승관리 시스템은 너무나도 느리고 탑승자를 번거롭게 했다. 야그인 즉슨, 탑승자의 촬영과 짐검색이 출국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우리와 달리 이들은 항공기 탑승과정에서 한다. 결국 면세점에서 무언가를 사면 이 것 역시 검색 대상이 되는 셈이니 탑승에 더욱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한국의 공항관리 시스템이 얼마나 신속하고 정확한지 다시금 확인된다. 지지부진한 공항 관리 시스템은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뜀도령과 나를 쉬지 않고 궁시렁거리게 만들었다. 비행기는 예정시간보다 10분 늦은 10:40에 탑승구를 밀어내고 활주로로 이동했다. 아래 사진은 리마까지 우리를 태우고 떠날 항공기.
아마도 기내식으로 치킨과 생선 중 선택이었던 것 같다. 용량 문제로 내가 가진 사진은 지워 먹고 뜀도령이 먹은 기내식임. ㅡ,.ㅡ;
가는 동안 식사때마다 마셔 준 하이네캔. 뜀도령이 찍은 사진. 손가락도 뜀도령의 손가락.
간식으로 나온 아이스크림.
항공기에서 내리기 직전에 주었던 기내식. 파스타 못지 않게 맛이 끔찍하군. 이런건 왜주는거야? ㅡ,.ㅡ;
이어폰이 청각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고 음악을 무척 좋아하는 나로서도 이어폰이나 헤드폰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하지 않으면 무슨 재주로 기내에서 장시간을 보낼까 하는 생각에 영화도 열심히 봐주고 음악도 열심히 들어주며 이어폰을 써댔다. 항공기 엔진 소음때문에 볼륨은 더욱 커지고 귀는 더욱 혹사를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흔히 있는 일도 아니니 기분좋게 즐기기로 했다. 기내에서 들은 AC/DC의 백 인 블랙 앨범.
지루한 여정 끝에 리마가 코 앞으로 다가오자
승무원들이 입국 서류 양식을 준다. 작성하다 보면 양식지의 글씨도 넘 작고 애매한 내용이 많아 작성중에 짜증이 적잖이 난다. 간신히 작성했다. 11시간 조금 넘는 비행 끝에 도착한 리마 현지 시간은 18:30경으로 예정시간보다 1시간 가까이 일찍 도착한 셈이다. 지루한 비행 속에 1시간이 절약되었으니 대박이다. 이 곳 페루의 계절은 여름이고 한국에서 떠날 때는 1월 말의 겨울이었다. 짐을 줄이기 위해 한국에서 떠날 때 그동안 버리려고 했던 겨울 옷들만 입고 가벼운 등산복 위주로 여름옷을 배낭 안에 준비했다. 코트는 암스테르담에서 호텔을 나서며 방풍점퍼로 갈아 입은 뒤 버렸고 스웨터와 청바지는 이 곳 리마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에서 준비해 둔 옷으로 갈아 입고 버린 덕에 몸도 가벼워지고 짐도 줄어 기분도 좋아졌다. 도착기념 촬영 한 컷.
입국 스템프까지 받고 나서 가고자 했던 민박집으로 전화하기 위해 작성해 둔 자료를 뒤져 보았다. 도착 첫 날이니만큼 가급적 익숙한 분위기 속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싶었고, 익일 항공권 구입과 관련해 정보를 쉽게 얻기 위하여 일반 호텔 보다는 민박집으로 가기로 했다. 우리는 가고자 했던 곳의 주소도 갖고 있었지만 택시 기사가 찾아내지 못할 가능성도 있고 지금도 영업중인지 알아볼 겸 전화화부터 해 보기로 했다. 뜀도령의 전화로 몇 번을 시도해 봤지만 이상하게 전화가 되지 않았다. 로밍 전화가 현지에서 안되는 경우 종종 있다. 공항에서 200달러를 환전해 513솔을 받은 뒤 생긴 동전으로 전화를 걸어봤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받는다.
"안녕하세요. 지금 막 리마 공항에 도착했는데 민박을 좀 하려고요."
"어쩌나 방이 없어서..."
방이 없다니 거 참 이상하다. 이제까지 여행을 다니며 예약없이 잘만 다녔는데 이 번 여행은 성수기도 아닌데 왜 이런건지... 하긴 특수 상황이긴 했지만 얼마전 교토에서도 그런 경험은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도 의외였다. 어쨌든 새로 숙소를 알아보기도 귀찮았고 한글이 서포트되는 컴퓨터와 항공권 구입 정보도 아쉬웠다.
"내일 쿠스코로 떠날거거든요. 담요만 주시면 거실에서 자도 되요."
"저흰 손님한테 그런 푸대접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서 거실은 곤란하지만, 하루만 묵으신다면 마침 하루만 비는 방이 하나 있으니 오세요."
장거리 비행을 두 번이나 한 우리로선 듣기에 반가운 말이었다. 출발전 주소를 다시 한 번 확인하자 택시비가 45솔(Sol)이라 귀띰해 준다. 우리는 택시를 타기 위해 공항청사 밖으로 나갔다. 여기 저기서 자기 택시를 타라며 많은 기사들이 수작을 걸어왔다. 그 중 한 사람을 따라 갔더니 택시가 아닌 일반 승용차였다. 정식 택시가 아니면 바가지나 사기를 당하기 쉽다는 말을 가이드북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뜀도령도 타지 말잔다. 물론 거절했다. 그 기사는 계속 따라 다녔지만 우린 외면했다. 택시를 다시 잡고 나서 목적지인 리마 센트로까지 얼마인지를 물었다. 이 곳 페루 역시 미터기가 아닌 협상을 통해 택시요금이 결정된다. 30솔(1솔당 450원 정도로 45솔이면 한화로 20,000원이 넘는다. 30솔이면 13,500원정도이니 훨씬 싼 것이다)을 부르는 소리에 우리는 귀를 의심했다. 알고 있던 것보다 더 저렴했다. 택시에 올라타자 처음 우리에게 접근했다가 실패했던 그 운전기사가 조수석에 따라 탔다. 뜀도령이 말했다.
"이 친구 왜 따라 타지? 우리 이 택시 탈 때 기사양반한테 윙크하면 뭔가 수작을 하는 것 같던데?"
내가 물었다.
"당신은 왜 따라 탄거요?"
"염려 마세요. 내가 안내 하지요."
나는 택시를 세웠다.
"우리 택시에서 당신은 내리시오. 우린 이 택시를 선택했고 당신의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
돈을 더 받아 내고 택시 기사와 나워 먹자는 속셈인 것 같았고 우리의 완강한 태도에 꼬리를 내리고 택시 문을 열고 그가 나갔다. 바보.
택시 기사는 무척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는 주소와 번지수를 보아 가며 이사람 저사람에게 묻고 물어 원하는 주소지에 데려다 주고자 노력했다.
택시에서 짐을 들고 내린 뒤 이 근처 어디임에는 틀림이 없었지만, 아니, 당시엔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찾기가 결코 용이하지는 않았다.
이 곳 주소 시스템이 완전히 뒤죽박죽임은 우리가 직접 찾아도 된다며 기사를 보내고 난 뒤 30분 이상을 헤맨 뒤 전혀 짐작하지 못한 엉뚱한 곳에서 뜀도령이 주소지를 찾아 냈을 때에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참, 빨리도 깨닫는다. ㅡ,.ㅡ;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의 한국인 민박집에 드디어 도착했지만 그 때까지 저녁 식사는 하지 못했다. 근처에 적당한 식당도 헤매는 동안 보지 못했고 해서 식사가 가능한지를 안주인에게 물었다. 밥이 없단다. ㅡ,.ㅡ; 뜀도령이 준비한 전투식량이 이 때 빛을 발했다. 뜨거운 물을 붓기만 하면 밥이 되고 여기에 소스를 넣고 비벼 먹는 전투식량은 군에서 이미 먹어 봤다. 바로 그 추억의 전투식량이었다. 뜀도령은 이걸 인터넷에서 구입했단다. 주인장이 여기에 잔뜩 호기심을 보이며 소주를 한 병 내놓았다. 거실에서 비밤밥과 소주로 허기가 채워지자 이 번엔 쿠스코행 항공권 구입에 대해 물어 보았다. 주인 아주머니는 저가항공인 페루비안 항공을 권하며 예약을 하지 않았으면 상당히 비쌀거라고 했다. 안테넷에서 다음날(2012.1.30) 출발하고 5일째 아침에 돌아오는 항공권을 알아 보았다. 일정상 쿠스코와 리마 2 개 도시 이상은 보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그 두 도시만 충분히 보기 위해 정한 계획이었다. 주인장 부부의 예상과 달리 두 사람의 항공권이 366.96달러에 나왔다. 좋다며 결재하려 하니 시스템에서 계속 에러가 난데다 세번째 다시 시도했을 때는 그새 항공권이 400달러로 올라가 있었다. 이 마저도 결재가 이루어지지 않고 에러가 나자 화가 치밀었다. 다음날 가까운 여행사로 가서 직접 구입하기로 하고 일단 접었다.
여러번의 결재시도가 무산되자 일단 포기하고 샤워를 마친 뒤 잠자리에 들었을 때는 이미 12시가 넘어 있었다. 취침 준비중인 뜀도령.
2012.1.30(월)
1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잠은 새벽 4시 30분 정도가 되자 자동으로 달아나 가벼워질대로 가벼워진 눈꺼풀이 서로 붙어있질 못하고 헤어졌다. 시차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었다. 잠을 청하기 위해 다시 누워 봤지만 어설픈 선잠 끝에 6시 30분에 일어났다. 짐을 다시 챙기고 나서 08:00가 되길 기다려 아침 식사가 준비되자 주인장 부부와 투숙객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식탁에 둘러 앉았다. 그 중 한 여행자가 전 날 우리의 항공권 구입 실패담을 듣고는 내가 사려고 여러번 시도했던 그 항공권은 미끼상품이며 그 미끼상품은 구입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일거라고 했다. 자신도 쿠스코에서 막 돌아왔다고 했는데 1인당 200달러 정도라면 편도 밖에 안나온다며 자신도 상당히 비싼 항공권을 구입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우리 나라의 제주왕복권 보다야 설마 비싸랴고 생각했던 나는 잔뜩 겁을 주워 먹었다. 민박집 주인도 이 여행자도 나의 생각보다 비싼 항공권을 구입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말을 하니 여행경비는 예상보다 훨씬 더 될 것 같았다. 가까운 여행사 주소와 연락처를 받아들고 나갈 준비를 하던 중 뜀도령이 다시 한 번 시도해 보자고 했다. 역시 뜀도령의 말은 영양가가 있었다. 다시 시도해 보자 전 날 400달러로 뛰었던 항공권 값은 다시 366.96 달러로 내려 앉았고 왠지 잘 될 것 같은 느낌을 배신하지 않고 결재가 완료 되었다. 주인장 부부와 아침에 식탁에서 만난 여행자의 예상보다 훨씬 저렴한 항공권을 얻은 우리는 마치 기적이라도 겪은 듯이 기분 좋게 집을 나설 수 있었다. 11:00 발 항공기를 타러 나가기에 딱 좋은 시간이었다. 민박집 안주인이 대문 앞까지 따라 나와 38솔에 요금을 협상한 뒤 태워 주고 들어 갔다. 이 곳에선 대부분의 택시가 티코였다. 한국의 차를 여기서 만나면 반가운 마음이 들어야 정상이었지만 티코 택시는 안전과 승차감 등을 고려할 때 사양하고 싶었다. 근처에 마침 택시도 뜸해 마지못해 타긴 했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는 도로도 비교적 깨끗한 편이었다. 공사장 먼지를 재우기 위해 출동한 살수차도 보인다.
타고 있던 택시의 신호 대기중 창 밖에 신문을 보고 있는 원주민의 옷과 포즈가 왠지 좋은 사진을 내 줄 것 같아 카메라를 들이댔지만 하필이면 그 순간에 휙 떠난다. 등받이 쪽으로 벌렁 자빠지며 찍은 사진은 한 쪽으로 치우쳐졌다. 아깝다. 좋은 사진이 나와 줄 것 같았는데...
형형색색으로 도색한 버스와 건물들, 그리고 야자수 같은 가로수가 이방인으로 하여금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택시를 타고 공항 방향으로 가던 중 밖으로 내다 보이는 풍경 중 길건너편에 길게 쳐진 담벼락에는 세계각국의 풍물과 명물이 벽화로 그려져 있었다. 서울과 이순신 장군상 그리고 한글이 그려진 모습에 반가움이 앞선다. 우리 나라도 이젠 변두리의 낯선 나라만은 아니구나 하는 뿌듯함과 반가움이 일던 기억이...
공항에 도착해서 받은 항공권이다. 공항에 도착해 국내선 파트로 가 보니 칠레의 항공사인 란항공에는 길게 줄을 늘어서 장사진을 쳤다. 줄서서 기다리는걸 싫어하는 나로선 살짝 긴장이 되었다. 하지만 페루비안 항공 부스를 찾아 내고는 한산한 분위기에 기분이 갑자기 업되었다. 항공권을 받고 나자 길게 늘어선 란항공 고객들을 보며 미소를 짓는 여유까지 생겼으니 나도 참 못됐어. ㅋ
항공기 이륙시간이 지연되면서 탑승 시간도 같이 지연되었다. 한 시간이나 더 기다리자니 지루하고 시간도 아깝다. 기다리기 지루해 하는 뜀군.
드됴 항공기로 데려다 줄 버스에 올랐다.
우리가 탈 페루비안 항공의 항공기다.
기내식 참 구리다. 하긴 1시간짜리 비행에 음료수만 주는게 보통인데 음료수에 이런 기내식까지 주면 고마운 줄 알고 먹지 나도 참 뭔 말이 그리 많은지. 어쩼든 구리다.
상공에서 내려다 본 쿠스코는 왠지 황량한듯 삭막한 듯한 느낌이 든다. 아래 사진은 쿠스코의 공항.
우리는 택시를 타기 보다는 버스(0.6솔)를 탔다. 나하고 같이 다니다 보니 전염된걸까. 내가 제안 하기도 전에 뜀도령이 먼저 버스를 타잔다. 현지인과 섞여 타는 대중교통 속에서의 감흥은 여행에서 느끼는 백미중에서도 백미다. 버스에 올라탄 외국인은 우리 뿐이었다. 한동안 평지를 가던 버스가 경사진 길을 계속 오르면서 가고자 했던 아르마스 광장이 쿠스코에서도 고지대임을 깨닫게 된다.
10여분을 달려 아르마스 광장 입구에서 내린 우리는 드디어 페루에 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는 고대건축의 기초 위에 지은 식민지풍의 건물들과
전통의상을 입은 원주민들, 그리고 이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동물인 야마를 보면서 느끼게 된다.
행복감에 미소지으며 한 컷.
가이드북에 나오는 쿠스코에 관한 이야기를 빌자면 다음과 같다.
쿠스코는 과거 잉카제국의 수도였다. 쿠스코라는 이름은 케추아어로 배꼽[그리스인들도 자기네가 세계의 중심인줄 알고 델피에 옴파로스(배꼽)을 두었는데 서로 자기네가 세상의 중심이라면 이 놈의 지구는 배꼽이 졸라 많은가보다. 오염으로 그만큼 괴롭혔으면 됐지 기형으로까지 만들면 쓰냐고)이라는 뜻이다. 태양신을 숭배하고 대잉카제국을 건설했던 이들에게 쿠스코는 세계의 더 나아가 우주의 중심이기도 했다. 16세기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잉카제국은 산속 깊이 쫓겨 가야만 했다. 스페인 사람들이 만든 것은 잉카의 초석 위에 세운 교회와 저택이었다. 이 이상한 대조가 쿠스코를 특별한 도시로 만들었다. 마추픽추를 비롯해 쿠스코 교외에는 잉카시대의 유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우선은 종이 한장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정밀한 잉카의 석벽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잉카시대의 길도 있는데 카미노 델 잉카(Camino del Inca)라고 하며 당시 잉카가 지배하고 있던 지역에서 쿠스코로 집중되어 있다. 지금의 도로도 잉카의 길을 기초로 건설된 곳이 많고 당시의 다리와 터널, 관개수로 등을 교외의 마을에서는 여전히 쓰이고 있다. 안데네스라는 계단식 밭도 현재 사람들에게 양식을 제공해 주는 중요한 존재다. 그 옛날 명망했다는 잉카가 오늘날의 쿠스코인들의 생활 속에서 숨쉬고 있는 셈이다. 매년 6월이면 남미 3대 축제의 하나로 잉카시대의 의식을 재현한 "인티라이미(태양의 축제)"가 사크사이우아만 유적에서 열린다고 한다.표고 3,360미터의 다소나마 공기가 엷어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첫 날에는 무리하지 말고.... 어쩌고 저쩌고.....
이 곳이 고지대인 탓에 산소가 희박함이 걷다 보면 금새 느껴진다. 걷기를 즐기는 나로서도 걷기에 숨이 차다. 늦은 점심을 먹기위해 식당을 찾아 골목길로 들어섰다.
우리가 들어선 골목에 두 세군데의 식당이 보였고 그 중 비교적 사람이 많은 곳으로 들어가 보았다. 이 곳에 외국인은 우리 뿐이고 모두가 현지인들 뿐임을 보고 나니 현지인들과 똑같이 먹기를 좋아하는 내게는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느낑이었다. 실내도 아늑하고 페루의 유명 인사들이 많이 다녀갔는지 액자에 담겨진 손님들의 사진을 정성스럽게 잔뜩 걸어 놓았다.
사진을 보고 주문한 음식이다. 음식값이 대충 15솔 정도였던 것 같다. 돼지고기, 감자, 치즈, 옥수수, 타말에 양파와 허브를 얹어 내놓았다. 돼지고기는 어찌나 바싹 튀겼던지 보통 뻑뻑한게 아니어서 칼로 잘라 입에 넣기도 쉽지 않았다. 결국 손에 쥐고 뜯어 먹는데 고기를 삼킬 때마다 목이 매어 물이나 콜라 같은 음료를 계속 들이키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육질은 그랬지만 비계와 껍데기는 있는대로 쫄깃해져 맛이 아주 좋긴 했다. 첫 날은 고산지대의 공기에 적응하기 위해 그 좋아하는 맥주도 주문하지 않고 콜라만 마셨다. 치즈는 짭짤하지만 개성은 그다지 강하지 않은 맛이고, 옥수수를 반죽해 만든 타말(아래 사진 옥수수껍질 속에 든 음식)은 달작지근한 맛에 부드러운 느낌이지만 촉촉한 느낌이 없어 역시 먹다 보면 목이 맨다. 이 곳 페루의 감자는 수십가지라고 하는데 그 중 하나를 이 날 처음 맛보는 셈이다. 껍질을 벗긴 상태에서 찐 것 같은데 씹는 맛은 한국의 그것보다 단단한 느낌이지만 식도를 타고 넘는 느낌은 훨씬 수월하고 목넘김이 편안하다. 양은 어찌나 많던지 어지간해서 남기지 않는 내가 결국 음식을 남기고 나왔다.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 주변의 골목골목은 돌벽이 운치를 내지만, 그 돌벽의 견고함과 섬세함은 놀랍기만 하다.
우리가 가고자 했던 아르마스 광장 주변의 호텔을 찾기 위해 광장(Plaza de Armas)으로 들어섰다. 오른쪽에 광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카테드랄(Catedral: 대성당)이 보인다. 스페인인들이 세웠지만 어디에도 스페인풍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걸 소위 식민지풍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건물에 우아함이나 화려함은 보이지 않는다.
광장에 면한 교회와 분수대를 가진 중앙의 정원, 그 곳에 여유로운 휴식을 즐기는 쿠스코 시민들의 모습이 무척 평화롭게 느껴진다. 아래 사진의 왼 편에 우뚝선 교회는 라 콤파니아 데 헤수스 교회(Iglesia La Compania). 하나의 광장에 45도 각도를 두고 카테드랄과 라 콤파니아 데 헤수스 교회가 있으니 대성당과 일반성당을 이렇게까지 지척을 두고 건설한 이유가 뭘까.
이 곳 아르마스 광장 주변의 지도는 정확하고 단순해서 가고자 하는 곳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처음 갔던 호텔은 가이드북에서 본 숙박요금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 이 호텔의 더블룸 하루 숙박비는 120솔이나 했다. 우린 처음 찾아 갔던 호텔을 포기하고 나와 한인 민박집으로 가봤다. 방이 없단다. 숙박비가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어 추천할만한 곳을 물었지만 숙박을 해보지 않아 모르겠다며 건너집이 호텔이니 그곳으로 가보란다. ㅡ,.ㅡ;
건너집으로 가봤다. 출입구부터가 아주 예쁘다.
허걱!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호텔 중정의 꾸밈새에 잠깐 얼이 빠졌다. 이렇게 예쁠 수가 있나. 가운데 놓여진 자그마한 분수대와 그 주변에 놓여진 탁자와 의자, 부드러운 베이지톤의 벽과 식탁보, 초록색 문과 2층 난간의 대비가 멋지고 큼직큼직한 식물화분이 보는 이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힘이 느껴진다.
이 곳에 꼭 숙박해 보고 싶었다. 방을 먼저 보고 싶다는 말에 빈방을 하나 보여 주었다. 방도 좋고 욕실도 딸려 있었다. 숙박비를 물어 보았다. 1박에 60솔이라는 말에 귀를 의심했다. 이렇게 좋은 곳이 이렇게 저렴한 요금이니 우린 마냥 행복할 수 밖에 없었다.
방 분위기도 고풍스럽고
욕실도 아주 깔끔했다.
운치있는 2중 창 밖으로는 마을 주민들과 여행객들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이 곳에 짐을 푼 우리는 바람을 쐬러 나갔다.
고지대인 만큼 구름은 비교적 낮게 떴고 그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맑고 청명했다. 나 어렸을 때도 서울 하늘이 이랬었는데 하는 생각에 잠시 추억에도 젖어 본다. 카테드랄과 라 콤파니아 데 헤수스 교회가 나란히 보인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한 블럭 지나면 아담한 아름다움을 지닌 광장이 하나 더 나온다. 레고시호 광장이다.
첫 날은 고지대 적응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구경 다니는 것도 자제하기로 했었다. 그렇다고 호텔방에서만 있을 수 없어 산책을 나왔지만 걷기는 힘들고 숨은 무척 가쁘다. 평소 마라톤으로 체력이 다져진 뜀도령도, 거의 매일 헬스로 건강을 유지해 온 내게도 더 많은 산소를 요구하는 몸뚱이를 감당하기에 이 곳의 공기는 버겁게만 느껴졌다.
대충의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무척 힘이 들었지만 이 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조깅을 하는 여행객을 보고 우리는 아연실색했다.
"우리도 곧 저렇게 될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라구."
뜀도령에게 이렇게 말했지만 정말로 그렇게 될지 당시엔 의문스러웠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늦은 점심식사에 과식까지 했던 탓에 저녁때가 되어도 밥생각이 없었다. 리마에 도착했을 때만 빼고 주구장창 비행에 시달려 왔던데다 시간 마저도 우리가 왔던 곳과는 반대였던 터라 너무나도 피곤한 나머지 9시도 되지 않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오늘 쉬고 고산에 적응 되어야 구경도 다닐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