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11 일본 the 3rd

간사이 또왔냐 4-2(나라)

코렐리 2011. 7. 29. 13:43

2011.7.18(월) 계속

찾아 가는데 적잖이 헤맨걸 보면 오래전이지만 방문 경험이 있는 교토와는 달리 나라는 완전 낯설은 곳이라는 실감을 하게 됐다면 괜한 핑계가 될까 몰라도 전술했듯이 구석구석을 다 보았으니 사실 목적지들 못지 않은 즐거움이 이 때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가스가타이샤(春日大社)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길게 늘어선 석등들이다. 누구하나 만지는 사람이 없는지 이끼가 있는대로 껴 묘한 분위기를 낸다. 신사로 들어가는 입구는 이렇게 늘어선 석등과 울창한 수림이 길게 이어져 있어 걷는 기분이 그만이다.

 

들어가다 보니 엉성한 목마 위에 올라탄 궁수의 궁술시범이 있었다. 나름 법도가 있는지 절도있게 뒷춤에서 뽑은 촉없는 화살을 기압과 함께 활에 재더니 쏘는데 안쓰럽게도 화살을 기냥 흘려버리넹? 안보고싶었데 이미 봐버려서 미안함다요. 저땜에 많이 쪽팔리셨죠?

 

신사입구

 

알고 보니 이 곳이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석등은 입구를 통과하고도 길게 길을 따라 배열되어 있다.

 

가스가타이샤(春日大社)는 768년 유력 호족세력이었던 후지와라 나가스테(藤原永手)가 가문의 신사로 창건하였으며 다케 미가치노 미고토, 후쓰누시노 미고토, 아마노코야노 미고토, 히메신 등 4명을 제신으로 모신 곳이라 한다. 제신을 하얀 사슴 등에 태워 맞이했다는 전설 때문에 이 곳 사람들이 사슴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사원은 헤이안 시대에 지금의 규모로 정비되었다. 입구에서 본전까지 이르는 참배도와 본전에서 와카야마 신사(若宮神社)를 잇는 오아이미치(御間道) 참배도에 설치된 석등의 수는 2,000 여개라 하니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다. 이 석등은 2월 세쯔분(節分) 축제와 8월 15일의 주겐에키신사이(中元疫神祭) 때에 모든 석등에 물을 밝힌다고 하니 그 장관을 보지는 못하고 상상만 해 볼 뿐이다.

 

출입문에 다다라 계단을 오르니 어린 아이 하나가 사슴의 목을 쓰다듬고, 사슴은 어린 아이의 어루만짐을 즐겨하는 모습이 코앞에서 펼쳐졌다. 후에 본 어떤 아이는 사슴의 접근을 두려워해 자지러지게 놀라는 상반된 모습도 있었지만, 이 아이가 사슴과 교감하는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순수함의 상징과도 같은 사슴과 어린 아이의 교감이 있는 이 모습이 더 없이 순수해 보인다. 정신없이 이 아이를 찍고 보니 이 아이의 부모는 나 때문에 이 모습을 비디오로 찍는 걸 놓쳐버린 것 같았다. 에구 미안해서 이걸 어쩌나. 내가 당황해 하자 아이의 엄마는 웃으며 괜찮다는 무언의 웃음을 보내왔다. 이 사진이라도 보내줄 연락처라도 받아올 걸 잘못했는 가 하는 아쉬움 마저 남는다.

 

신사 출입구 좌우에도 석등이 길게 늘어섰다. 특이한 것은 석등 상단부에 등이 들어갈 부분은 사면이 나무로 되어 있고 그 위에 돌지붕을 얹은 형태였다. 우리 나라의 석등이 전체가 돌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입장 전 한 컷.

 

이 곳은 본전 외에 폐전, 남문, 경하문, 회랑 등 27개의 건물이 있다고 한다. 세어 보진 않았지만 크고 작은 건물을 모두 합치면 그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본전 안으로 들어가면 처마마다 길게 늘여 매달아 놓은 등이 인상덕이다.

 

이 곳 신사는 아기를 데리고 온 가족이 유난히도 눈에 많이 띤다.

 

 

여기도 갓난이를 동반한 가족

 

저기도 갓난이를 동반한 가족. 아마도 이 곳은 갓낳은 아기를 데려와 신사에서 축복을 구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인 모양이다.

 

노송나무껍질을 이용해 지붕을 엮는 인부들의 사진이 한 쪽 구석에 붙여져 있다.

 

사실 궁금했다. 노송껍질을 가지고 지붕을 어떻게 엮는지. 위 사진과 아래 샘플을 보고서야 궁금증이 풀렸다. 예나 지금이나 이걸 감당할만큼의 노송껍질 구하자면 정말 많은 경비가 들텐데...

 

안으로 더 들어 가야 본전을 볼 수 있는데, 그러자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 이 곳은 입장권이는 것이 없고 입장료를 내면 팸플릿을 내준다.

 

신사의 여사제라고 해야할지 아님 직원이라 해야 할지. 이 곳에 근무하는 여사젠지 직원인지 하는 여자들은 흰색 옷에 반짝이가 치렁치렁 번들거리는 족두리를 쓰고 있어 마치 선녀(?) 같다.

 

 

돈내고서야 볼 수 있는 본전 건물이다. 지붕은 대부분 직선이지만 본전 중앙 일부는 곡선 형태로했다.

 

이 건물 역시 처마를 따라 길게 등을 매달았고

 

중앙에는 참배하는 이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청춘남녀나 부부도 오고

 

갓낳은 아기의 축복을 구하는 가족도 있는데 아기는 대부분 엄마가 아닌 할머니들이 안고 있으니 이 역시 무슨 전통인 모양이다.

 

수백년 된 향나무가 여기저기 꽂혀 있는데

 

그 중 한 그루는 신사 지붕을 뚫고 올랐다. 아니 아마도 먼저 자리잡은 향나무를 고려해 건물을 지은 경우인 것 같아 눈길을 끈다.

 

한 쪽 구석에 공개된 방에는 옛날 서당 같은 분위기로 배치된 다다미 방이 있어 뜀도령이 들어가 포즈를 잡아 봤다.

 

다른 사람들 없어 왠지 밋밋해 눈으로 시익 둘러보고 나가려다 몇 몇 사람들이 몰려 들어가 자리를 잡고 무언가 적고 있었다. 아마도 염원하는 바를 적어 바치려는 것인지... 나도 함 따라해 봤다. 끓어 앉는 것이 습관이 된 이들을 따라 꿇어 봤지만 이거 책상다리 앉음새가 편안한 한국인으로선 쉽지 않다. 꿇음은 겸손이라기 보다는 왠지 복종과 비굴함의상징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이 곳 사원의 분위기를 깔고 있는 많은 설치물들 중에 특히 고목이 많이 눈에 띤다. 이 나무들은 이 곳 가스가타이샤의 역사를 고스란히 지켜봤을 것이 아닌가. 입이 없어 말못하니 물어볼 수도 없고.

 

 

신사 본전을 다시 나오면 왼 쪽에 눈에 띠는 긴 석등길이 워낙 운치가 좋아 걸어보지 않고는 배길 수가없었다. 게다가 분위기 자체가 사람을 끌어 당기는 이 길이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을지도 궁금해 갈 수 있는 곳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이상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길을 밟아 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엇다. 이미 가봤기 때문인지, 중요한거 다 봤으니 미련없이 간다는 것인지 알 길 없지만...

 

하트 모양의 패찰들이 다닥다닥 걸려 있고 그 옆에는 또 하나의 작은 신사가 있어 연인들이 참배 하고 걸어놓은 모양이다.

 

하트 패찰이 가득한 거치대와 박스 바로 옆에 차려진 자그마한 신사. 이 곳에서 참배하고 하트형 패찰을 거는 부부도 있을까. 없을거 같다. ㅋㅋ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크고 작은 신사, 개방된 신사와 폐쇄된 신사 등이 줄을 이어 세워져 있다.

 

작지만 금룡신사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은 작은 신사.

 

더 깊숙히 가면 이게 바로 진짜 산림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오래 묵은 나무들이 수직으로 촘촘히 뻗어 있고 침엽수림의 가지와 잎이 하늘을 가린다. 시원하지는 않다. 워낙 습도 높고 오락가락 비가 오다 마는 중이라 눅눅하고 후덥지근하다. 하지만 운치 하나로 걷다보면 기분도 금새 좋아진다.

 

동시에 찍은 사진인데 한 사람은 우산을 접어 말은 채 들고 다니고

 

한사람은 우산을 받쳐 들었다. 변덕스럽던 날씨가 새삼 기억난다.

 

이 곳이 끝이다. 뒤로는 울창한 숲만 있고 자그마한 오솔길이 있기는 하지만 입산금지 표시가 되어 있어 여기서 잠깐 지친 다리를 쉬었다. 아래 사진의 오른쪽 건물도 신사인듯 한데 이 건물은 미닫이 문이 있는 것 같지만 어디로도 열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4개의 벽 중 좁은 벽은 하얀 회칠이고 나머지 넓은 벽면은 미닫이 문처럼 생겼지만 문이 아닌 희한한 건물이었다. 귀신이나 들어갈 수 있고 귀신이나 나올 수있는 그런 신사인듯하다. 되는지 안되는지 물어볼 사람도 없고 경고문도 없고 다니는 사람들도 뜸해 눈치 볼 것도 없이 처마밑에 앉아 지친 다리를 쉬어봤다. 오는듯 마는듯 하는 비를 피해 앉아 쉴만한 곳은 이 곳 뿐이었다.

 

처마밑 툇마루에 앉아 걸어 들어온 길을 향해 찍은 사진.

 

나올때는 들어갔던 입구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가봤다. 식상하게 같은 경치를 보느니 다른 경치를 보자는 생각이었다. 그 생각은 일부 행운을 안겨 주었고 일부 저주였다. 허락없이 신사 툇마루에 앉아 잡담을 해서 받은 저준가...?

 

어쨌든 행운을 안겨준 바로 그 길이다. 가다말고 발견한 식당. 상업적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 고즈넉한 곳에 식당 간판에 장삿속의 느낌 보다는 왠지 모르게 정겹게 느껴진데다, 이 근방 이 곳 말고는 음식점 찾기 쉽지 않을거라는 지레짐작이 이 식당으로 우리의 발길을 인도했다. 입간판의 그림과 문자에서 왠지모를 포스가 느껴진다.

 

아니나 다를까 운치 있는 이 식당은 이미 자리가 꽉 찼고 한 커플이 자리가 나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최소한 후회할 선택은 일단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간의 기다림 끝에 자리를 안내받았다. 메뉴판이라고 보면 뭐 아나? 해독할 줄 알든 모르든 음식문화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와 지식이 있지 않고는 봐봤자 무용지물이긴 마찬가지렸다. 사람 많을 때는 다른 사람들 먹는거 보고 가장 맘에 드는걸로 하나 고르는게 장땡이지.

 

아주머니가 주문을 받으러 왔다. 녹차부터 한 잔 받았는데 색깔과 향이 그윽하게 공짜로 먹기에 황송하다. 바로 옆 노부부의 탁자에 놓여진 모리소바와 덴뿌라 세트메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전 날부터 먹고싶어 거의 환장하기 직전까지 갔던 바로 그 모리소바. 실례가 될지 몰라 조십스럽게 손가락으로 어르신들의 음식을 가리키며

"저걸로 주세요."

했더니 외국인임을 알아보고 사진이 첨부된 메뉴판을 다시 가져왔다. 내 주문을 제대로 접수한 것 같았지만 진짜로 원하는 것을 고르는데 도움을 주기 위함인 것 같았다. 쭉 훑어봤지만 역시 그 메뉴였다. 맥주를 주문하려다 사케인지 아님 뭔 과실주인지 우리나라 소주 광고처럼 눈에 띠는 포스터가 벽에 매달린채 그 안의 술병이 계속 추파를 보내는 통에 작은 병으로 하나 주문해 봤다. 주문을 받는 주인 아주머니가 뭐라고 하는데 내가 못알아 들으니 운전하는 시늉을 하신다.

"운전하냐고요? 아뇨 안해요."

이 대답을 듣고 나서야 한 병 들고 오셨다. 사께는 아니고 매실주였다. 청주도 아니고 걸쭉하고 탁하다. 달작지근한게 맛은 좋지만 이거 한 병 다 마셨을땐 은근히 정신이 돈다. 한국식 표현을 빌자면 앉은뱅이술 또는 작업주 정도 되겠다. 혀끝에서 느껴지는 달작지근한 맛과 함께 혓바닥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새콤함. 걸쭉하게 혀를 감싸는 부드러움, 코끝을 자극하는 감미로운 과일향. 이 것이 이 술을 마시며 느껴진 맛인데 한 두 번 먹기엔 감동적이지만 단술이어서 더 먹자면 싫증날 것 같다. 녹차와 매실주의 천연색 조화가 보는 눈까지 즐겁게 한다. 눈으로 먹는 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런지.

 

우리의 주문을 접수해 주신 아주머니. 실내는 일본의 식당답게 깔끔하기 짝이 없다.

 

드디어 나온 모리소바와 덴뿌라. 소바의 면발은 쫄깃하고 소바를 담글 소스는 진한 편이다. 와사비는 우리가 먹는 가짜가 아니고 진짜 와사비를 갈아 향이 그윽하고 단맛이 난다. 여기에 무우와 파를 넣고 먹는 모리소바의 밧은 비가 오던 우중충한 날씨에도 먹는 느낌이 아주 놓다. 전 날부터 먹고 싶어 환장했으니 더하다. 여기에 함께 나온 튀김. 새우튀김 2개, 강호박 튀김 2개, 고추튀김 1개였던 것 같다. 맛도 좋고 양에서도 비교적 만족한 식사였다. 여기에 달작지근한 술도 딱 어울리고.

 

이 길로 나온 것이 신사의 저주였다는 것은 이 길이 이미 이 곳에 오기 전에 본 형태의 길이었음을 간파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 길로 가면 그 곳이 다시 나온다는 것을 눈치챘다면 이미 그 저주의 한가운데에 들어 왔음을 알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을만큼 길은 우리가 가고자 했던 방향과 거리많이 벗어나 있었다. 이 길을 따라 계속 가면서도 오른쪽 방향으로 틀어야 함은 계속 의식하고 있었지만 방향을 꺾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 가운데 마을 구경은 구석구석 샅샅히도 했다. 결국 가스가타이샤를 찾아가기 위해 최초 헤맸던 그 길로 다시 들어서 원점으로 돌아온 다음에야 우리는 새삼경악을 했고, 다음 행선지로 가까와졌어야 할 동대사(東大寺)와는 오히려 더욱 멀어지고 말았다. 이럴 줄은 꿈에도 몰랐지롱. ㅡ,.ㅡ; 

 

그 덕에 들른 자그마한 사찰.

 

문은 열렸지만 사람은 없다.

 

가는 곳마다 있는 작은 곰 세라믹 인형은 무슨 의미를 담고 있기에 이 곳 작은 사찰의 입구에도 놓여져 있다.

 

사찰 본당을 들여다 보고 싶었지만 사람도 없고 본당 문은 잠겼다.

 

이 곳에서 나오니 재미있고 목가적인 풍경이 많이 나온다. 뭐하는 집인지는 몰라도 범상치 않은 토용이 바깥에 놓여져 있는 이 집은 그냥 가정집 같지는 않은데 문이 닫혀 있어 살짝 궁금증만 일으키고 답은 주지 않는다.

 

이러한 토용을 만들어 파는 가게인건지...

 

방금 언급한 길에서 마을이 길게 형성된 그 안으로 들어가

 

고전적 분위기가 있는 집들을 하나하나 구경하며 걷다 보니

 

허걱! 처음 길을 잘못 들어 방향을 꺾었던 그곳이다. 아~~~ 젠장.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