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11 일본 the 3rd

간사이 또왔냐 2-1(교토)

코렐리 2011. 7. 21. 17:53

2011.7.16(토)

밤새 끔찍한 더위와 사투를 벌인 탓에 잠 한 숨 제대로 자지 못했기 때문일까. 피곤한 몸에 맥주 한 잔 걸치고 잤음에도 불구하고 알콜기는 죄 땀으로 빠져 나가고 정신이 말짱해 더 잘 수도 없었다. 뜀도령도 나와 같았던 모양이다. 우리 옆침대는 혼자 여행온 일본 처자의 차지였는데, 남정네들과 방을 같이 쓰기 뭐했던건지 칸막이가 50%나 둘러쳐진 침대에서 잤으니 우리보다 더욱 심한 더위에 시달렸을 터였다. 일어난 시간이 7시는 조금 넘었던 것 같다. 샤워를 마치고 2층에 있다는 주방으로 올라 가봤다. 자그마한 방에 빵, 주먹밥, 사과, 바나나, 차 등이 놓여져 있는데 이미 에어컨이 가동중이었다. 아침식사를 위해 이 곳에 왔다가 무릎을 쳤다. 차라리 이 곳에서 잤으면 시원하게는 잤을텐데... ㅡ,.ㅡ; 할머니 혼자 운영하시는지라 여기저기 사람의 손과 발이 스치지 않는 구석에는 먼지가 살짝 뽀얗다. 하지만 오래간만에 만나는 시원한 공기라 아침식사는 일단 기분좋게 마쳤다.

 

2층의 다른 방들을 보니 창문도 열리고 작은 공간에 에어컨이 있으니 이거 괜찮을 것 같다. 그러면 뭘하나 방이 없다는데. 우리는 오늘 돌아다니는데 쓸 작은 가방 하나 꾸리고 나머진 할머니께 맡겼다.

 

205번 버스를 타고 기사양반한테서 1일 승차권을 샀다. 1회 승차에 220엔인데 무제한 1일권이 500엔으로 무척 싸다. 유타카를 입고 게다를 신은 계란이 인상적인 그림이다.

 

 

버스 안엔 미처 잔돈을 마련하지 못한 승객을 위해 동전 교환기도 설치되어 있다. 왼쪽의 녹색 입력기가 1일권 리더기. 오른쪽 보라색 통은 잔돈 교환기. 편리해 보인다. 첫 날 첫 일정부터 버스 하차 벨을 누르지 않은 통에 한 정거장 더 갔다. ㅡ,.ㅡ; 

 

첫 방문지인 교토고쇼로 통하는 문.

 

교토고쇼(京都御所)는 도쿄로 천도하기 전 천왕이 살던 곳으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관람이 가능하고 1일 2회 10시와 14시에 입장이 가능하다. 단독 관람은 불가능하고 오전과 오후 일정 인원을 선착순으로(100명이던가 200명이던가) 신청받아 1시간 동안 안내인의 인솔하에 브리핑과 함께 관람한다. 볼 가치가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무료다. 이 날은 토요일. 하지만 매월 세째 토요일은 관람이 가능하다는데 이 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입구를 찾아 뱅뱅 돌다가 경비원에게 물었다. 그의 말로는 이 날은 토요일이라 관람이 불가능하고(가이드 책자가 엉터리인가 아님 뭐가 바뀌었나?) 화요일엔 가능하단다. 월요일엔 왜 안되느냐고 물었더니 국경일이란다. 이런 젠장 연휴였군. 게스트하우스에 방이 왜 없는지 그제서야 파악이 되었다. 이 때가 9시 20분경. 괜스리 시간만 낭비했다. 난 이미 2004년도에 봤으니 상관없다. 뜀도령은 나중에 또 와서 보면 된다며 미련을 버렸다.

 

반대편 대로로 나오니 생각난다. 2004년 오사카에 숙소를 두고 막 도착해 오후신청을 완료한 뒤 남는 시간을 이용해 킨카쿠지(金寺)로 가려고 나왔던 그 길이다. 자전거를 몰고 가던 처자를 막아세워 가는 길을 물으니 설명을 못하고 우물쭈물이었다. 그녀는 가던 길을 되돌아 자전거를 끌고 앞서 가면서 따라오라는 급친절에 급감격을 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버스 정거장에 멈춰 서더니 버스노선도를 꺼내 내게 보여주며 버스편과 하차장소를 알려준 뒤 돌아갔는데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지도는 그녀에게서 반강제(?)로 빼앗다시피 얻은 물건이다. 그걸 지금까지 갖고 있었던 덕에 지금 쉽게 다니는 것이다. 이제 가고자 하는 곳은 킨카쿠지(金寺)가 아닌 긴카쿠지(銀寺).

 

북쪽으로 걸어 올라간 우리는 203번 버스에 올라 동쪽으로 향했다. 중학생 수십명이 현장학습이라도 가는지 버스정거장에 몰려 있어 나의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그 때가 생각나서인지 한국에서도, 이 곳에서도 중학생들 몰려다니는걸 보면 너무나 귀엽다. 고등학생들은 왠지 징그럽고...

 

긴카쿠지 마에(前)에서 내려 이정표의 지시된 방향을 따라 걷다 보니 어쭈그리? 긴카쿠지 다음에 가고자 했던 철학의 길이 여기에 있넹? 알고 보니 철학의 길은 긴카쿠지로부터 남쪽으로 길게 뻗은 긴 길이었다. 

 

길을 따라 걸으니 긴카쿠지로 향하는 이정표도 나와 주시고

 

입구에 다다르자 고전적인 냄새가 나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긴카쿠지 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길게 심어진 키 큰 나무와 대나무 울타리와 석축으로 이루어진 길이 볼만하다.

 

달필로 휘갈긴 입장권(500엔)이 아주 재미있다.  절 안에 비치된 자료 중 한글로 병기된 안내 팸플릿 내용을 잠깐 들여다 보면, 긴카쿠지(銀寺)는 1482년 무로마치 막부의 8대 장군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에 의해 건립되었다고 한다. 요시마사는 그 조부였던 3대 장군 요시미쓰(足利義滿)가 건립했던 서쪽 소재의 킨카쿠지(金寺)를 모방해 이 곳을 건설했으며 자신의 은둔생활을 위해 지은 이 곳을 처음에는 히가시야마도노(東山殿)라 이름하였다. 긴카쿠지는 속칭으로 원래 명칭은 히가시야마지쇼지(東山慈照寺)인데 이는 요시마사의 법명이었던 지쇼인(慈照院)에서 유래된 이름이라 한다. 이 곳은 히가시야마 문화의 발상지이며, 일본인의 근세적 문화의 발상지로도 통한다고 한다.

 

모래를 쌓아 만든 이 설치물은 정원의 일부로 후지산 형태로 쌓았다는 고게쓰다이. 가이드 책자에는 건축 초기에는 없다가 에도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바로 옆에는 이 절의 가장 중요한 건축물로 긴카쿠(銀)가 있다. 이 건축물은 로쿠온지 절의 사리전과 세이호지 절의 루리전의 형태를 계승하고 있으며 당초에는 관음전이라 불렸다고 한다.  1층 신쿠전(心空殿)은 쇼인즈쿠리(書院造)양식이며 2층은 조온카쿠(潮音閣)양식으로 여기에 달린 창문은 꽃잎 모양의 가토마도(花頭窓)라 불린다, 꼭데기에는 금동 봉황이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킨카쿠지(金閣寺)를 바라보는건지...

 

이 정원 구성의 일부인 모래장식인 긴샤단(銀沙灘)

 

긴카쿠를 한움쿰에...

 

긴카쿠지 전경

 

이 건물 역시 국보로 지정된 중요 건축물 도구도(東求堂)이다. 요시마시의 전용 불당이었다고 하는데 팔작지붕 양식으로 노송껍질로 지붕을 얹은 가장 오래된 서원양식이라고 한다. 남쪽으로 툇마루와 정방형 불당이 두 칸 있으며 북쪽으로는 다다미 6장과 4장반 크기의 방이 각각 있다. 작은 방이 도진사이(東仁齊)로 히가시야마 문화를 탄생시킨 무대이자 초암다실(草庵茶室) 규격의 효시가 되었다고 한다.

 

 

어딜 가나 물과 돌이 있는 곳에는 동전을 던지는 습관이 있는 모양이다. 행운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속보이는 전설 내지 속설도 있게 마련. 주머니를 뒤져 동전을 던지는 노인들.

 

 

긴카쿠지를 나오자(11:17) 쫄쫄 흐르는 물에 뜀도령이 입을 대며 사진을 찍으란다.

 

에... 뭐라고 써있나 함 보자. 이 물은 마실 수 없습...

 

모양만 예쁜 빙수. 얼음가루 위에 색소만 뿌렸군. 한국에서 이렇게 줬다간 망하는건 시간 문제다. 팥 들어가죠, 과일 쪼가리 들어가져, 찹쌀떡 쪼가리 들어가져... 파, 마늘 양파... 아, 이건 아니지. 먹을때 푸짐하게 마련인데 예서 이거 먹었다간 소변밖에 안나온다. 비싸긴 또...

 

긴카쿠지를 내려오다 눈에 띤 인형. 아마도 이 집의 수호신이 아닌지.

 

천년 고도인 이 도시 골목골목엔 예쁜 집도 예쁜 대문도 많이 눈에 띤다.

 

배가 고팠다. 아마도 이 때 시간 11:40. 다음 행선지에 먹을거 없으면 곤란하겠다는 핑계거리와 이 집 괜찮아 보인다는 생각이 들어 뜀도령과의 협잡하에 일단 들어가 봤다.

 

맥주부터 한 병 시키고 라멘을 주문(도합 1,600엔)했다. 양이 왜이래 이거? 맛은 좋다만 젓가락 몇 번 휘저으니 남는거라곤 파쪼가리 몇 개하구 국물뿐이다. 국물까지 다 마셨지만 나 짐 뭐 먹은겨? 음식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며 저 깊은 곳을 향해 외친다. "어이! 간뗑이! 나 들어간다." 눈치없는 간뗑이는 뭐가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기별을 못받았으니 일도 안한다. ㅡ,.ㅡ; 나가서 군것질을 추가로 하든지 아님 저녁 일찍 먹고 밤참을 또 먹든지 하기로 결정.

 

12:10쯤 허전한 배를 쓰다듬으며 라멘집을 나오니 기모노를 입은 두 처자가 서로 사진 찍어주며 노닥거린다. 사진을 찍자고 허락을 얻느라 물어보니 지쩍어하며 서로를 마주 본다. 그럼 허락한거지.

 

도시 구석구석을 관통하는 하천은 청결하기 짝이 없다. 얕은 물에서도 이따만한 생선도 노닐고

 

가는 곳곳에 인력거꾼도 종종 보인다. 한 때는 교통수단이었을 이 인력거가 이제는 관광상품으로 존재하지만 이 뜨거운 날 사람 혹사시켜 가며 타고 싶은 생각은 미안해서라도 들지 않는다.

 

길가다 계획에 없던 사찰이 하나 눈에 띠었다. 우연히 지나다 남들 안가는데도 함 가보자며 내가 제안했다. 알고 보니 뜀도령이 가진 책자에는 이미 소개가 되어 있는 젠린지(禅林寺)절이었다. 나무가 돌아버린건지 한여름인데 단풍이 든 나무가 보인다.

 

얼씨구리? 사실 선심 쓰고 들어온건데 입장료가 600엔이나 한다? 여기까지 걸어들어 온 것이 억울해 들어가 보기는 한다만...

 

 

뭐 걍 평범한 절....

 

인줄 알았는데... 어, 좋은데! 사람들이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이 곳은 마룻바닥에 앉아 정원을 내려다 보는 여유가 신선노름처럼 보인 탓에 일단 들어와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공미가 주류지만 산뜻한 정원이 압권이다. 왠지 편안하다. 이 곳에 앉아 한동안 휴식을 취해봤다. 그새 뜀도령은 똥싸러 갔다.

 

길게 이 건물 저 건물로 마루가 연결된 특이한 형태의 이 사찰은 일단 신을 벗어 봉지에 담아 들고 다니다 보면 이 곳을 나올때까지 신을 다시 신을 일은 없었다. 규모가 작냐면 그건 절대 아니다. 오래된 마루바닥의 색은 오랜시간 스치고 닳아 반짝반짝 빛이 나고 삐걱거리며 그 안을 걷는 느낌은 그만이다.

 

아래의 사진처럼 모든 건물이 이 마루로 연결되어 있다.

 

이 곳이 불당이다. 우리가 말하는 대웅전쯤 되지 않는지.

 

 

이 건물 끝으로 가면 지대가 약간 높은 건물로 이동하기 위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가 다시 열리길 기다렸지만 열리지 않기에 뭔일인가 했다. 알고 보니 들어간 반대편 문이 열렸는데 그걸 깨닫는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고 아줌마들이 우리가 나오길 우리의 뒷꼭지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던 상황. 생각해 보니 들어간 곳이 열리면 그 곳은 허당이다. 쓩~~ 퍽! 뜀도령의 쓸데없는 촬영으로 뒷문이 열리는 순간이 잡혔다.

 

애걔... 이게 단청이야? 어깨너머로 뭔가 보긴 한 모양인데 배울려면 제대로 배우던가. 멉니까 이게.

 

이 곳에서 참선의 삶을 살다간 스님들의 묘인지 묘비가 빼곡하다.

 

높은 지대에서 내려다 본 건물. 이 곳을 내려가는 경사진 나무계단에는

 

대나무관을 통해 쫄쫄거리며 나오는 물을 받아 놓았다. 이게 뭔가 했다. 영문 설명을 보니 여기서 물떨어지는 소리를 즐겼다던가 어쨌다던가. 받아 놓은 물을 떠서 대나무 덮개 사이로 흘리자 저 아래 허당에서 낙수의 공명이 울려온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단순함의 미학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ㅡ,.ㅡ;

 

맨발로 오를 수 있는 곳은 이 곳이 마지막인듯하다.

 

왔던 길을 되짚으며 자연에 담긴 신비의 마루를 다시금 밟아 본다.

 

내려가는 휘어진 이 계단을 와룡랑이라 이름했단다. 이름도 구조도 감각적이군. 좋아좋아.

 

처음 도달했던 건물로 되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 사찰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는 뜀군.

 

바로 앞엔 자그마한 연못이 있어 이따금 생선이 주둥이를 내밀고 뻐끔거리곤 한다.

 

이 자그마한 정원을 "ㅁ"자 형태로 둘러싼 이 건물도 함 둘러 보았다.

 

 

사무라이 영화에서 함 본듯한 구조다. 드르륵 열면 두 세개 방이 하나가 되고 드르륵 닫으면 여러개의 방으로 다시 나뉘고... 방귀 뀌는 소리까지 다 들리고 훔쳐먹는 음식 냄새도 다 풍길테니 사생활은 없겠다. ㅡ,.ㅡ;

 

지난 번 이주 아타가와에 갔다가 마사요시의 아버님으로부터 선물 받았던 부채를 들고 폼잡는 뜀도령.

  

뜀도령이 찍어준 사진. 어쭈그리 잘찍었는데. 인정! 이 곳에선 차를 무료로 제공한다. 자판기처럼 생긴 작은 기계에 컵을 들이밀고 버튼을 누르면 뜨거운 녹차가 나온다. 그 옆에는 차를 마신 뒤 설거지를 할 수 있도록 수도꼭지 달린 싱크도 설치되어 있다. 여기서 차향을 즐기며 즐겨 본 여유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당문이라 이름 붙여진 문이 바로 옆에 붙어 있다. 직선이 대세인 일본 건축물에서 종종 보는 곡선의 지붕을 얹은 모양새가 이채롭다.

 

신을 다시 신은 우리는 후면에 설치된 탑으로 가 보았다.

 

탑은 높은 곳에 있어 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주변을 마저 둘러보고 나가던 차에

 

아름다운 연못에 다리를 걸쳐 놓았다. 역시 약간 정신나간 나무가 때 아닌 단풍을 달고 있는 것이 눈에 띤다.

 

다리를 건너봤다.

 

작은 신사인지 작은 지붕을 인 머시기가 나온다.

 

비교적 깊고 비교적 맑은 연못의 바닥은 보이지 않고 수면을 노니는 물고기가 환상을 보는듯 꿈속을 거니는듯 유연하게 헤엄친다.

 

걸핏하면 보던 흔해 터진 금잉어를 이렇게 정신놓고 본 적도 달리 없는듯 기억된다.

 

연못 한쪽으로는 어디에선가 받은 물을 쉬지않고 낮은 곳으로 흘려 보낸다. 인공미가 가득하지만 아름다운 정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