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렐리 2011. 6. 26. 12:01

스포일러적인 요소가 있는 관계로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신 분 중 보고자 하시는 분은 읽지 않으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 영화를 보는 일은 절대로 없겠군.'

수다쟁이로 보이는 소녀들의 얼굴만 나오는 밋밋한 이 영화의 포스터를 처음 봤을 때 혼자 중얼거린 말이었다. 쇠똥만 굴러도 우스워서 자지러지는 여자들의 세계는 남자들 세계에서의 웃음코드와도 완전히 다르고, 모였을때의 관심사와 화제는 같은 인간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철저히 다르다. 청소년기 남자들의 세계는 영화 '친구'와 '말죽거리 잔혹사'에 잘 녹아 있지 않을까 싶다. 다시 말하자면 여자들이 관심하는 그들의 세계에 남자들은 진부하게 느껴져 철저하리만큼 관심이 없다는 얘기다.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관에 비치된 그 영화의 작은 펨플릿과 티켓을 모아 화일철에 넣어 두고 앞으로도 보고자 하는 영화의 팸플릿까지도 챙겨두는 나의 괴벽(?)을 수행하기 위해 앞으로 개봉할 영화들이 뭐가 있나 보던 중 "써니"라는 영화의 포스터를 보고 느낀 이야기다. 이 영화에 관심을 끄고 있던 내게 그 뒤로 흉흉한 괴소문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 영화가 재밌다는 둥 유쾌하다는 둥의 무섭고도 괴이한 이야기들 말이다. 신문기사를 읽어도 어느 신문이든 50% 이상은 절대 믿지 않는 나지만 심지어 무가지에 실린 영화평까지도 이 영화를 안보려 했던 나를 괴롭혔다. 술자리에 함께한 LP음악동호회 동료멤버가 이런 말을 했다.

"형은 이 영화를 아직도 안봤다면 이건 범죄야 범죄!"

취향이 나와 비슷한 이 사람이 하는 말에 나는 종영 전에 봐야갰다는 조급증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평일에 퇴근하면 운동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둘 중 하나였기에 그 주 토요일이 되어서야 영화를 봤다.

 

    

 

이 영화는 내 나름으로 정의하자면 여고 불량소녀들의 성장영화이며, 동시에 눈가에 주름이 깊게 패이기 시작한 40대 아줌마들의 추억담이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이 영화에 대하여 자꾸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이유는 뭘까. 내 나름의 시각으로 함 되짚어 봤다.

 

영화의 배경은 군사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1985년과 바로 오늘을 쉬지않고 교차한다. 영화속에서 1985년이란 직접적인 말은 없지만 배경이 그 때라고 판단되는 근거는 영화의 도입부분 점심시간 학교 방송시간에 방송반 담당 학생이 학우들을 위해 틀어주던 곡이 바로 1985년에 대힛트했던 신디로퍼의 'Girls Just Want to have Fun"이라는 곡이었기 때문이었고, 주요 인물 중 하나가 죽고 묘지에 1968년생이라고 표기되며 종료되는데 이들이 여고에 다니던 시절이면 바로 1985년 전후라는 점이다. 어쨌든 40대라면 그리운 시절이라는 것만은 틀림없다.

 

소설이나 영화가 재미있으려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캐릭터의 개성이다. 아무리 스토리 구조가 탄탄하고 살을 잘 붙였다 하더라도 저마다의 캐릭터가 개성이 뚜렷하고 그 개성이 설득력이 있지 않고서는 보는이의 공감과 설득력을 얻기 힘들게 마련이다. 이 영화의 캐릭터들은 그러한 개성을 설득력 있게 창조해 냈다.

전라도 벌교에서 막 전학 온 주인공 나미(심은경, 유호정)는 사랑에 가슴아파하고 속으로만 삼키는 촌스러움과 함께 순수함을 겸비했고 우등생이면서도 불량서클의 친구들과 공감하는 포용력을 가졌지만 극한 상황에서 뚝심녀로 돌변하는 모습이 촌스러움을 딪고 매력있는 캐릭터로 성공했다.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과묵과격한 성격이지만 정의감마저 겸비한 탓에 춘화(강소라, 진희경)의 카리스마는 강렬하기까지 하다. 내가 만일 여자로 태어나 청춘으로 돌아갔다면 고집 세고 굽힐줄 모르는 나로서도 보스로 인정할만할 수 밖에 없는 인물이 바로 춘화다.

이 두 사람이 스토리를 이끌어가지만

어떻게든 수박이 되어 보려 하지만 호박을 벗어나지 못하는 장미(김민영, 고수희)와 잘 때마다 걸레를 물고 자는지 입만 열면 장황하게 걸쭉한 욕부터 쏟아내는 진희(아역이 누군고...? 홍진희), 혼자서만 세련된 척 고고 도도한 수지(민효린)의 캐릭터도 간과하기엔 너무나도 매력적인 캐릭터다. 그 외에 미용실집 딸 복희와 설득력 없는 문학소녀 금옥도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는데 한 몫 한다.

 

시대배경은 당시 그 잘난 성명을 발표하던 군부독재자의 실재 TV 영상, 노동운동으로 인해 경찰에 쫓기는 나미의 오빠, 전투경찰과 노동운동의 주역 대학생들과 노동자들의 충돌장면 등이 생생하다. 교복이 자유화된 뒤 몇 년간의 부작용을 경험한 교육부가 다시 교복정책으로 회귀하기 전인 당시에 입었던 촌스러운 여고생들의 사복은 도대체 어디서 구했는지 추억을 불러 일으킬만큼 생생하다.

 

 

당시에 흔해 터졌지만 지금은 보기 어려운 음악다방도, 지직거리며 돌아가는 엘피음반도 당시의 풍경 그대로다. 주먹다짐으로 남자를 이길 수 없었던 당시의 불량소녀들은 면도날을 입으로 씹어 조각을 상대의 얼굴에 내 뱉은 다음 자신의 손에 상처가 생김을 감수하면서까지 상대의 얼굴에 손으로 문질러대던 전설적인 공격방법이 있었다. 이러한 것까지도 영화에 녹여낸 감독의 재치도 칭찬할 만 하다. 패싸움을 벌이던 으슥한 뒷골목은 우리네 40대가 청소년 시절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싸움을 벌이기 위해 찾던 바로 그런 분위기의 폐허다. 세트장인건지 아님 그런 곳을 찾아낸건지 당시의 분위기를 재현하는데는 일부 성공했지만 당시에는 가는 곳마다 있던 DDD 공중전화기와 Green, Blue, Red로 도색하고 표기한 오늘날 이전의 버스 한 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현재 한국의 경제를 주도하는 40대의 추억을 자극할 경우 영화나 공연은 경제적 성공이 제작자들에게 보답으로 돌아오곤 하는데 감독은 이러한 점도 십분 고려한 것 같다.

 

 

 

남자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여자의 심리를 여자가 아닌 남자 감독이 다루었기에 보는 남자들을 강하게 설득할 수 있었지 않나 싶다. 패싸움을 하기 전 욕으로 점철된 입씨름은 재치가 넘쳐나고(이 걸 외국에서 상영한다면 번역이 불가능하다) 여기에서 폭소를 터뜨리고 나면 남자들도 동화되어 여자들의 피곤한 입씨름에 빨려든다. 여자이기에 강해지는 사소한 질투는 남자들에게도 설득력이 있을만큼 디테일하게 묘사했다. 자신이 처한 지금의 현실을 오랜 친구에게 감추고 싶어 하는 허영과, 현재 교우하는 사람들에게는 과거를 숨기다 못해 잊고 싶어하기 까지 하는 심리는 남녀 모두에게 있지만 여자들에게 강하게 드러남을 여기에서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공감은 가능하다. 바람을 피운 남편의 욕을 나는 해도 친구가 동조하면 화를 낼 수 밖에 없는 상황은 그러한 감독의 재치 중 하나다.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여자들의 심리에 공감을 표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는 나 자신이 어색하고 묘하기만 하다.

 

이 영화의 설득력은 얼마나 있을까. 우선 영화를 시작할 때는 몰랐지만 중장년층이 대세일 것이라는 나의 짐작은 영화를 보고 나가는 연령층이 매우 다양함을 발견하고 완전히 빗나갔음을 알게 되었다. 청소년들이 겪는 고뇌와 사고는 성인이 되면 대부분 잊는다. 하지만 시대를 초월해 청소년기의 방황은 일맥상통함이 있기에 중장년층의 추억과 함께 젊은이들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영화 전반적으로 설득력은 내게 있어 반반이다.

한국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욕으로 대사가 도배되곤 한다는 점이다. 리얼함을 더하기 위해 하는 조치로 이해하고는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치다. 욕이 빠져도 '대부' 같은 불후의 명작들이 나온다. 과연 필요한가 의문을 지금도 갖는다.

고등학교 다닐 때 들었던 말들이다.

"세계에서 욕이 가장 다양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성기에 관련된 욕만도 200가지가 넘는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중학교 시절에 본 영화 "빠삐용"에서 스티브 맥퀸이 처음 갇혔던 독방에서 간신히 기어나와 쓰러지기 직전에 한 욕 "개새끼들!"(아마도 "Basters!"였겠지...)을 듣고 나는 당시에 충격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어떻게 영화에서 이런 대사가 나올까 의아함을 느낄 정도로 그 때까지의 영화들에선 욕이란 것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 영화들을 봤을 때는 이건 아름다운 우리 고유의 한국어에 불과하다. 영화가 계속 한류를 타고 수출되는데 이런 욕은 번역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고 보면...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이 욕들이 귀엽게만 들리는 나 자신에 자기모순에 빠져 있음을 발견하게 되니 이 아니 묘한가 싶다.

나미 할머니의 걸쭉한 욕도 귀엽기만 하다.

"야 이 18놈아 들어와 밥이나 쳐먹고 가라."

 

영화 '친구'와 '말죽거리 잔혹사'에서는 불량청소년들에게는 미래가 없음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것이 훨씬 현실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써니에서는 이와 좀 다른 말을 하고 있다. 모범생인 나미는 '친구'에서의 모범생처럼 생활의 만족 여부를 떠나 남들이 부러워하는 비교적 성공한 삶을 사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불량소녀들의 중년인 현재 삶은 최소 평균 이상이 대부분이다. 말보다 주먹이 먼저였던 춘화는 퇴학을 당했지만 카리스마에 걸맞게 평생을 혼자살며 사업가로서 성공했고, 나미는 대학을 졸업해 유능한 남편을 만나 부유한 생활을 누리고, 장미는 남편도 있고 보험아줌마로 자신의 실적에 집착한다. 욕쟁이 진희는 부잣집에 시집가 상류생활을 하고, 마지막 장면에 나타난 수지는 아무 설명 없지만 세련된 삶을 살고 있음을 암시한다. 금옥이는 평범하게 국문학과를 나와 출판에 관한 꿈을 못버린 서민가정의 며느리로 나온다. 물론 미용실집 딸 보미가 술집 여자로 불행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들의 삶은 대부분 평균치 그 이상이다. 우선 그들의 인생에 써니(Sunny)가 비추고 있지만 내 보기엔 좀 설득력이 떨어진다.

 

과거 나미가 짝사랑하던 삼수생 오빠와의 짧은 재회를 영화의 말미에 스쳐가게 하지만 꽃미남 오빠의 오늘날의 모습을 살짝 느끼하게 한 것은 감독의 고의적 표현인지 몰라도 그래야만 했는지는 좀 의문이 남는다. 청소년기에 음악다방을 찾았고 지금은 엘피 음악을 틀어주는 바를 찾아 다니는 나로선 그 오빠가 경영하는 엘피 바(LP Bar)에 감독과 강하게 공감하는 바이다. 

 

80년대 중반에 유행했던 배경음악 역시 추억을 떠올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전술한 신디 로퍼의 곡 외에도 마그마의 '알 수 없어,' 나미의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 계속해서 배경으로 제시되는 보니 엠의 'Sunny' 외에도 당시 음악성이 부족하다며 매니아들로부터 괄시받던 'Touch by Touch'도 추억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다만 그 시절에는 추억의 명곡으로 떠오르던 곡들이 비지스의 'Dom't Forget to Remeber,' 폴 앙카의 'Creazy Love,' 엘비스 프레슬리의 'Love Me Tender,' 캔사스의 'Dust in The Wind,' 이글스의 'Hotel California,' 비틀스의 'Let It Be'등이었다. 격세지감을 실감하지 못하는 나로선 이 영화에서 배경으로 사용된 곡들이 나의 청소년기와 대학생때 들었던 탓에 오랜 추억의 명곡으로 자리매김 했다는 사실이 아직도 의아하다. 내가 나이 먹었음을 실감하지 못함인 것이다.

 

어쨌든 불량소녀들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이들을 미화한 이 한 편의 영화는 아련한 추억을 가진 우리 40대에게는 스케치같은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한 번쯤 경험해볼만도 하다는 의견이지만 이는 저마다의 취항에 맡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