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11 스페인·포르투갈

하이 이베리아11-1(톨레도)

코렐리 2011. 4. 27. 18:14

2011.1.26(수)

이 호텔은 각 방에 12명씩이 정원이어서 6개의 2층 침대가 놓여져 있었다. 저녁 늦은 시간에 도착해 체크인 하고 들어가니 조명은 꺼져 있고 커튼도 쳐져 있어 완벽한 침실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호텔의 분위기 자체가 그런 모양이다. 어둠속에 누워있는 사람들은 희미하게 담요를 뒤집어 쓴 실루엣만 얼핏 보이니 여잔지 남잔지 알 수 없다. 사람이 없는 침대에는 담요가 흐트러져 있거나 무언가 물건이 놓여져 있는 등 사용 흔적이 남아 있는걸 보면 이 객실은 정원이 모두 찬 것 같았다. 투숙객들은  여행중의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바르(Bar)나 호텔 운영의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고들 있는 모양이다. 몇 몇 사람들이 자고 있으니 방 안에선 속삭이는 소리라 할지라도 말을 해선 안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방 안에 자고 있지 않은 사람은 나 외에 한 명 더 있었다. 출입문 바로 옆에 붙은 침대 1층을 쓰던 그의 얼굴은 내가 문을 따고 들어가면서 얼핏 보았는데, 당시 그는 후레쉬를 들고 짐을 뒤지고 있었다. 보아하니 혼자 여행중인 것 같고 한창 때의 청년이라는 점만 빼면 나와 비스므리하게 생긴 동양인이었다. 우리와 비스므리하게 생긴 사람들은 많다. 일본, 중국, 티벳, 몽골 등등... 그래도 얼굴을 보면 어디 사람인지 대충 감이 오게 마련이다. 생긴 것으로 봐서는 한국인은 분명 아니었지만 어디 사람인지 도대체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사실 여행중에 만나는 극동지역의 동양인들은 거의 한국인 아니면 일본인들이다. 그들 외엔 아직 배낭여행에 눈을 뜨지 않았는지 거의 만난 기억이 없다. 대만인이나 홍콩인 또는 중국계 서방 국적인을 만나본 적 있지만 그도 드물다. 머리를 빡빡 밀었더랬는지 앞머리, 윗머리, 옆머리, 뒷머리가 모두 1.5cm정도로 균일한 단정치 못한 헤어스타일에 세디센 시골 바람을 맞고 살았는지 피부는 푸석푸석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에 촌티를 덕지덕지 달고 있던 이 친구는 내가 늦은 식사를 하고 돌아왔을 때 출입문 밖에서 전자 감응식 열쇄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헤매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하이, 난 Yoon이라고 하는데. 넌..."

"문이 고장났어."

이런 ㅡ,.ㅡ; 젠장 다른 놈들 같으면 '아, 그러냐? 난 우중충 왕국에서 온 멜랑꼴리라고 해...' 뭐 이러고 나와야 되는거 아닌가? 손목시계처럼 손목에 차는 이 전자감응식 열쇄는 워낙 민감해서 사용자가 익숙해질 때까지는 어느정도 헤매게 되어 있었다. 내가 나서 봤다.

"내가 해볼께....욜케졸케...시도 또 시도...끙...역시 안되는군. "

내가 해도 안되었다.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던 모양이다. 직원을 불러 오니 그냥 된다. 괜히 사람만 번거롭게 만들었군... ㅡ,.ㅡ;

출입문 문제가 해결되자 이 친구는 아무 말 없이 제 침대로 가 짐 속에서 후레쉬를 켜고 무언가 찾고 있을 뿐 나의 인사에는 여전히 답변을 하지 않았다. 매너 그지같은 놈이군. 일본인은 아닌 것 같고... 하긴 2차대전 다큐멘터리에 나올법한 태평양 이오지마 패잔병 같은 인상이었으니 일본인이었을 수도 있지만 나와 상종하기 싫은 것만은 틀림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어차피 이 방에서 하룻밤은 같은 천장을 그와 같이 이고 있어야 할테니 그에게 신경 안쓰기로 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08:30쯤 아침식사 시간에 맞춰 간이식당으로 가봤다. 아는 척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바(bar)에 앉아 기다려 보았지만 오는 사람 맞아 아침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얼굴이 허여므리한 세 사람의 처자가 간이식당 바에 모여 앉아 빵과 우유로 아침을 먹으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세 처자들 중 한 사람은 바 안의 주방에서, 나머지 두 사람은 바에 앉아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나는 그들이 모두 여행자들이고 셀프서비스중이라고 생각했다. 리스본에서 묵었던 호텔이 그랬고 이 이 곳도 역시 셀프 서비스를 하나보다 생각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안에 다른 두 여인네와 수다를 떨던 바 안의 처자가 눈이 휘둥그레지며 나를 제지했다.

 

"노노노노... 여기 들어 오면 안돼걸랑요. 식사를 하실려면 바 밖에서 말을 해야죠"

"엇! 난 당신들 셋이 친구들이고 당신도 여행자인줄 알았지."

"오호홍... 전혀 아닌걸..."

나는 바 밖으로 나가며 변명했다.

"리스본의 한 호텔은 아침식사도 셀프서비스라 여기도 그런 줄 알았어요. 미안함다."

그제서야 카운터 안에 있던 처자가 웃는 얼굴로 내게 줄 아침을 챙기며 물었다.

"괜찮아요. 어디서 왔어요?"

"한국요."

"유럽에 온걸 환영합니다."

"???"

스페인도 아니고 왜 유럽에 온걸 환영한다는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유럽에 온 것이 처음인지 아니면 골백번도 더 왔는지 어찌 안단 말인가? 아니나 다를까. 멜린다라는 이름의 예쁘장하게 생긴 이 친구는 루마니아에서 일하러 왔고 함께 수다를 떨던 나머지 한 처자는 독일에서 온 여행자였다. 스페인에 온 걸 환영하자니 내 집도 아닌 탓에 자기 영역을 유럽으로 확장한 것이다. 환영 인파(?) 속에 독일인 친구도 싸잡아 넣을 수 있으니 나름 생각끝에 나온 말인 것 모양이다. 독일인 처자가 주먹을 들어 나를 향해 내밀었다. 내가 그녀의 주먹을 한 번 보고 얼굴을 다시 쳐다 봤다.

 

"뭔데 이게?"

그녀는 좀 더 내게 가까이 주먹을 내밀며 내 눈을 빤히 쳐다봤다. 뭔가 내가 해야 하는 상황이었던거 확실한데 그게 뭔지 알 수가 있나. 내가 고개를 갸웃 거리니 내 손을 잡아 주먹을 쥐어 주고는 다시 자신의 주먹을 쥐어 내밀고 다시 내눈을 쳐다 봤다. 그녀의 손은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허걱 만지지 마셈...

그녀가 말했다.

"부딫혀야지!"

"ㅡ,.ㅡ;" 아항! 나는 그제서야 그녀의 의도를 알아먹고 주먹을 내밀어 그녀의 주먹과 부딫쳤다. 내가 눈치가 없었군.

"이런거 안해봤어?" 독일인 처자가 묻자 멜린다가 말했다.

"한국 사람들은 그런거 안해." 자신있는 그녀의 말에 내가 물었다.

"엉? 그걸 어떻게 그렇게 잘알어?"

"모른단 소리는 안한단 얘기 아니겠어?"

ㅍㅎㅎ 나름 논리적이군. 그래서 대답했다.

"젊은 사람들은 아마 할걸? 난 젊지 않거든."

두 처자의 미미한 웃음이 분위기를 만들었다.

큼직한 크로아상 1개, 코코아 한 잔 그리고 주스 한 잔이 아침으로 나왔다. 지나치게 소박하군. ㅡ,.ㅡ; 아침을 먹는 중에 어디를 거쳐 이 곳에 왔는지, 왜 왔는지, 어디가 좋았는지 등 여행중에 만나는 사람들끼리 나누는 쓸데 없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먹다 보니 음식이 순식간에 없어진다.

카메라를 들어

"한 장 찍어도 돼?" 하니 두 사람이 포즈를 취한다. 아래 사진의 왼쪽이 멜린다, 오른쪽은 이름을 안물어봐서 모르겠지만 독일인 처자다. 나머지 한 처자는 자릘 떴는지 사진에 없다. 여행자와 직원이 수다를 떨 정도로 친해질 수 있다는 사실도 재미있다.

"블로그에 소개해도 되겠어?" 내 질문에 멜린다가 대답했다.

"블로그 주소 함 적어봐. 검사하겠어."

주소를 적어 주는데 왜 그렇게 갑자기 생각이 안나던지. 적어준 주소는 잘못되었다. 안보여주려고 이상한 주소 써줬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ㅡ,.ㅡ; 아침 일정을 위해 먼저 일어나며 내가 먼저 인사했다.

"좋은 하루 보내라구 미녀들!"

좋아라 까르르 웃어댄다. 마침 그 때 같은 방을 쓰던 그 패잔병이 식사하러 들어오던 참이었는데 날 쳐다 보는 눈빛이 왠지 '쥐롤허구 자빠졌네.' 하는 것 같았다. 난 그런데 신경 안쓴다구.

  

간이 식당을 나서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배는 있는대로 나온 덩치 큰 중년의 사내였는데 그는 어디에서 왔는지를 내게 물어왔다. 영어는 못해도 정말로 못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는 내게 뭔가 볼 일이 있고 말은 해야 되겠는데 표현이 안돼 애를 먹었다.

"어디서 왔어요?"

"한국에서 왔는데요."

"아, 한국! 나 한국 좋아요."

 "한국에 가 본 적이 있어요?"

"아뇨 근데 나 한국 사업해요."

"그러시군요." 나는 그냥 인사치레인줄 알고 그를 지나치려 했다. 그는 나를 따라왔다.

"10분 얘기해요."

"안됐지만 난 지금 시간이 별로 없어요. 빨리 나가야 돼요."

"오래 아녜요. 10분 얘기해요."

"그럼 빨리 얘기해 봐요."

"저기 가서 노트북 켜고 얘기해요."

그는 간이 식당 테이블로 나를 끌고 가 켜지는데 한참이나 잡아먹는 똥퓨터를 켜고 부팅되기를 기다렸다. 인터넷아이콘을 누르고 느려터진 속도로 작동하는 노트북에서 브라우저가 열리기를 기다리는데 시간이 아까운 나는 복장이 터질 일이었다. 나는 기다리지 못하고

"그냥 말로 해봐요."

했다. 그는 설명을 하려고 숨을 들이키기만 했지 내뱉지를 못했다. 그도 답답했던지 마침 지나가던 멜린다를 불렀다. 뭔가 에스파뇰로 이야기하더니 이윽고 멜린다가 잠시 통역을 맡았다.

"이 아저씨 사업을 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도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대."

"지사가 있는건가?"

"아니, 그냥 자길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대."

"나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데?"

"당신 도움이 필요하대. 물론 당산도 돈을 벌 수 있다는데."

ㅡ,.ㅡ; 다단계가 아닐까 싶다. 그게 아니라 뭐래도 귀찮다. 월 500만원 거저 생기는 기깔난 부업이라면 모를까 여기서든 한국에서든 귀한 내시간 그에게 투자하고 싶은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었다.

"댔다그래. 나 그런거 안해도 먹고 사니까 더이상 내게 뭐 요구하지 말라고 그래."

멜린다도 가버렸고 나도 가려 하자 그는 통사정했다.

"그저 10분. 그저 10분!"

나는 더 기다릴 수 없었다.

"당신의 컴퓨터가 많은 시간을 먹고 있으니 나갈 준비를 마치고 다시 올테니 기다리쇼."

이미 씻고 나갈 복장도 갖췄고 작은 가방에 오늘 돌아 다니며 쓸 카메라, 수첩, 펜, 가이드북, 지도, 여행계획서 등만 들고 나오면 될 상황이었다. 약속이니 그래도 돌아왔다. 그새 브라우저가 열리고 자신의 홈페이지가 열렸는지 다행이 그는 다른 사람과 비즈니스가 어떻고 돈벌이가 어떻고 시원찮은 영어로 노트북을 들여다 보며 손짓발짓을 하고 있었다. 차라리 잘됐다. 약속은 그가 깼지 내가 깬건 아니니 더 볼일도 없었다. 

 

이 날 일정은 도시 자체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도 톨레도였다. 호텔을 나서 지하철을 타고 플라자 엘리프타카 역에서 내려 지하도를 통해 버스터미널로 갔다. 톨레도행 매표소를 찾아 10시 출발하는 톨레도행 버스에 올라탔다. 편도 4.82유로, 왕복 3.86유로 추가. 왕복 표를 구입했다. 아래 사진은 톨레도행 버스 승차장에 대기중인 버스와 올라타기 위해 줄 선 사람들.

 

톨레도 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10:45이었으니 45분이 소요된 셈이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바깥 경치를 내다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를 준다.

  

날씨가 우중충했다. 지도를 펼쳐들고 대충 방향을 파악 한 뒤 알 카사르 방향으로 올라갔다.

 

한 때 로마 성채 도시였던 고도 톨레도(Toledo)는 6세기에 서고트왕국의 수도로 정해졌고 이 때 크게 발달했다. 이슬람이라는 신흥 종교가 일어서고 세력을 확장한 이슬람의 침입으로 711년 정복되었다가 레콘키스타 시기를 거쳐 1085년 알폰소 6세에 의해 탈환되었다. 스페인의 다른 중남부 도시들처럼 이 곳 톨레도는 이슬람, 유대, 그리스도교의 문화가 공존하며 융합해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냈다.

 

언덕을 따라 올라가니 성채가 도시를 둘러싸고 있고 성문으로는 차량도 사람도 쉬지 않고 들고난다.

 

성벽 안으로는 이슬람 문화가 지배적인 매력적인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날은 잔뜩 찌푸린게 우중충하다.

 

고전적이고도 이국적인 그리고 강렬한 인상의 이도시는 우중충한 이 날에도 분위기를 내지만 밝은 날은 그 나름의 새로운 분위기를 만륻어 낼 것 같았다. 이 날은 비가 오는듯 마는듯 마는듯 오는듯 아주 조금식 노면을 적시고 있었다.

 

우럽연합에서는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 남유럽의 심각한 재정적자와 경제난 타개를 위한 구제금융 여부를 놓고 각국이 묘한 눈치를 보며 신경전을 벌이는 이 판국이고 보면 왜 없나 싶던 바로 그 시위부터 눈에 들어온다. 근데 난 지금 뭘 제대로 짚고 하는 얘긴지나 몰라. 뭐라고 써있는건지 알아야 뭘 아는척을 하지.

 

언덕이 진 이 도시에서 일단 가장 높은 곳으로 올가 봤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것이 알카사르(Alcazar)였다. 이 곳은 현재 대학 도서관으로 사용되는 것 같았다. 1538년에 카를로스 1세가 낡았던 요새를 개보수하여 1551년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스페인 내란에는 프랑코 정권이 이 곳을 요새로 사용해 인민전선군과 전투를 벌였고 포격을 받아 거의 폐허화 된 적도 있다고 한다.

 

입장료는 무료였다. 건물의 생김새는 약간 복잡했다. 장방형의 건물 가운데는 중정이 있고 옥상에는 중정을 내려다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사각의 모서리에는 탑이 하나씩 세워져 있었다. 입구를 통해 들어가 건물을 오르다 보니 바깥쪽 복도에 창가마다 의자가 하나씩 놓여져 있고 한 할머니가 그 곳에 앉아 바깥 경치를 즐기고 계셨다.

 

나도 함 앉아 봤다. 음마! 언덕진 도시의 가장 꼭데기인 이 곳에 건설된 건물 안에서 밖을 내다 보니 카테드랄을 비롯한 도시가 훤히 내려다 보였다. 도시 건물의 지붕들을 내려다 보는 감흥도 정말 좋다. 카테드랄의 탑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온다. 종탑 좌측으로는 십자형채로 구성한 교회 건물이 소규모의 탑들을 거느리고 있어 볼만한 전경을 제공한다. 

 

이 복도의 중간쯤에는 장서관이 하나 있었다. 영화 속에서나 볼법한 왕의 장서관으로도 손색없었다. 이 곳에 들어가자 상주 직원이 이 장서관에 대해 친절하게 브리핑을 했다. 나는 처음엔 사설 가이드인가 해서 살짝 경계를 했지만 그의 몸가짐이나 태도를 보아선 전혀 아닌 것 같아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대충 지금의 기억으로는 이 곳엔 1600년대로부터 1900년 전후의 귀중한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다고 했다. 사진을 찍는 것도 허용했다. 1600년대의 책이라면 종이가 아니니 양피지 책자였을테지만 눈으로 주욱 둘러보아도 그런 책은 보이지 않았다.

 

이 곳을 보고 나서 통과한 열람실은 사각 건물의 한 축을 모두 차지할 정도로 큼직하고 널찍했는데 많은 젊은이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고 스스로 뽑아온 책자를 펼쳐들고 열심히 메모를 하는 등 학문적 문위기가 자못 심상치 않았다. 나는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 숨소리와 발소리를 모두 죽였지만 민망할 정도로 시선이 내게 쏠렸다. 엥? 내가 못들어 올 곳을 들어왔나? 계속 보려면 이 곳을 통과할 수 밖에 없고 관계자 또는 열람자 외 출입금지 같은 표시도 없었다. 내가 여행자 행색이어서 그랬는지 아님 조심스레 다닌다는게 소릴 냈는지 아님 이 안에 노랗게 생긴 놈이 나 하나밖에 없어서 그랬는지  이 곳을 둘러 보겠다는 생각은 들어서자 마자 접어 먹고 반대편 출입문으로 나왔지만 나올 때까지의 시간은 왠지 길게 느껴졌다. 어쩜 열람실 내 불타는 향학열의 분위기에 내가 위축되어 지레 겁먹었는지도 모른다. 아래의 사진은 이 건물의 옥상이다. 

 

그냥 가기 섭섭해 전물의 중정을 내려다 보며 사각 모서리 난간에 카메라를 살짝 올려 놓고 셀카 한 컷 찍어봤다.

 

이 곳을 나와 이 번에는 카테드랄로 갔다. 골목을 내려가며 골목 끝을 보면 교회의 종탑이 눈에 들어온다. 골목골목에는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하다. 

 

 

이 카테드랄도 골목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어 전체적인 윤곽을 보기는 그리 쉽지 않다.

 

여기저기 보수중인 것은 다른 카테드랄과 다르지 않고 고딕 양식으로 세워진 이 대성당의 파사드는 뭐가 어떻게 생긴건지 뜯어 보기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카테드랄 파사드의 우측면

 

매표소는 건물에 딸려있지 않고 입구 건너편 기념품 가게에서 표(7유로)를 팔고 있었다(12:15). 기념품 가게 안에서 파는 중세시대 기사들의 칼. 화려하고 멋진 칼들이 많지만 왼쪽에서 세 번째의 칼이 왼지 원형에 가까울 것 같은 생각에 탐이 난다. 가격도 만만치 않을테니 아예 알아 볼 생각도 안했지만 이런 것들이 불법무기로 취급되는 한국에는 반입 자체도 불가능할테니 아예 생각에서 접었다. 이 곳엔 이러한 칼과 중세 기사의 갑옷을 만들어 파는 가게가 많았다. 보아하니 재질은 스테인레스인 것 같은데 그 옛날에도 스테인레스 합금을 썼나? --- 또 따진다. 또 따져.

 

내부 사진이 전혀 없었고 여행계획서 뒷면에 이 성당 내부의 모양새를 설명하는 메모가 있었던 걸로 미루어 이 곳은 내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던 가보다. 다녀 온지 3개월이 되고 보니 이젠 기억도 살짝 가물거리기 시작한다. 만일 사진 촬영이 가능했다면 이런 귀찮은 메모는 절대 안했을게 틀림없고 여행중에 사진을 마구 찍어대는 내 특성상 안찍었을 턱이 없다. 그럼 금지했던거지 뭐. 치매 싫어 잉. ㅡ,.ㅡ; 개발로 써도 이보단 나을 것 같은 나의 프리 메모를 보니 살짝 그때 보았던 내부 장면들이 기억나지만 이 때까지 방문했던 비슷비슷한 카테드랄의 모습이 자꾸 겹쳐져 내가 지금 딴데를 연상하는게 아닌가 의심도 들기 시작한다. 어쨌든 간단하게 옮겨 본다.

 

메인채플의 제단 배경은 5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제단 배경의 맨 위층은 십자고상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와 좌우에 함께 처형된 죄수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금장식으로 둘러쳐져 있어 무척 화려하다. 전형적인 고딕양식이며 각 층에 구성된 배경 속의 내용은 신약성서에 근거한 이야기들이다.

 

성가대석에는 야곱, 이삭, 아브라함, 아담과 이브 등이 형상화 되어 있는데 약간 가물가물하지만 지금 기억으로는 성화로 그려져 있었던 것 같다. 대리석으로 새겨진 인물상 등에는 다비드 등의 구약 인물들로 채워져 있고 좌우로는 어마어마한 오르간의 파이프가 화려한 장식을 달고 세워져 있는데 오르간 연주 소리가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들려와 경건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성가대석이 자리하고 있느는데 성가대원들이 앉는 저마다의 나무좌석 등받이 하나하나에는 기사들이 성을 함락해 나가는 장면들이 부조로 새겨져 있고 개개의 등받침에는 함락했던 성의 이름으로 보이는 도시명이 저마다 새겨져 있어 레콘키스타의 치열함을 보는듯하다.

 

천장에는 성모승천의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고...(이건 기억이 안나는데... 딴생각하면 적은건 아닐테고... ㅡ,.ㅡ;) 메인 제단을 중심으로 봤을 때 왼쪽으로 기억되는 내부 미술관에는 엘그레코의 그림들이 다수 전시되어 있었다. 채색 화려하고 작은 얼굴에 과장되게 긴 신체를 가진 인물들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색채감과 구성 그리고 그림에서 전해져 오는 강열한 느낌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그리스도의 체포, 기도하는 베드로, 요한(San Juan), 바오로(San Pablo), 루카스, 유다, 마태오, 마르코, 토머스, 안드레아 등 예수 제자들과 성 프란체스코 등의 초상화 등에서는 빛의 감각을 이용한 섬세한 표현 등이 볼만하다. 그 외에도 라파엘의 작품으로 보이는 작품들도 있고, 고야, 반다이크의 그림들도 보인다. 작은 미술관 노릇까지 하고있는 셈이다.

 

사제부에는 당시 고위 성직자들의 부와 권세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전시하는 동안 알비노니의 아다지오와 비발디의 만돌린 협주곡 같은 잔잔한 이지 리스닝의 음악들이 흘러 나온다.

 

여기까지가 프리로 메모한 내용들이다. 그나마 기록으로나마 이 곳의 감상내용을 남겨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여기에 정리하면서 느껴진다.

이 곳 카테드랄을 둘러보던 중 인상적인 두 젊은 처자 두 사람을 만났다. 나 이상으로 구석구석을 세밀하게 뜯어 보는 한국인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런 곳에 오면 잠깐 휙 둘러보고 나가곤 하지만 이 처자들은 무척이나 진지했다. 부조에는 무슨 내용이 새겨져 있는지, 장식은 어떤 모양새를 하고 있는지 등을 놓침 없이 보는 것 같았다. 12:15에 들어와 13:35에 이 곳을 나갈 때까지도 그들은 이 곳을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내가 먼저 말을 걸어봤다. 그들도 한국인들을 뜸하게 봤는지 그들도 내가 아는체 하는 것이 싫지는 않은 눈치였다. 그렇게까지 열심히 들여다 보는 모습을 보고 이미 전부터 공부해 오던 것을 확인하기 위해 그리도 진지한가 했다. 의외로 그들은 내가 알고 있는걸 이야기해 주길 바랬다. 나는 괜스리 으슥해 가며 아는대로 주워 섬겨 봤다.

건축에 있어 고딕 양식의 특징과 이 성당에 어떻게 적용 되었는지, 그리고 건축물을 볼 때는 건축물 자체에 대한 역사에 대하여 간단히 읽어 둔 뒤 전체 윤곽부터 파악하고 나머지는 뜯어서 살핀다는 나 자신의 노하우를 이야기했다. 이야기해 놓고 나니  남들 다 아는 이야기만 주워 섬긴듯 하니 괜스리 또 쑥쓰러워졌다. 드물게 문화에 깊은 관심을 보여 인상깊게 본 이 사람들은 이곳에서 한 번 만나고 만 인연인가 했지만 다음날 프라도 미술관에서 또 만났다.

 

카테드랄 내부는 끔찍하게 추웠다. 내가 알고 있던 스페인의 날씨보다 추운 날씨였던데다 카테드랄 내부는 돌로 만들어진 건축물의 냉기가 더해진데다 아침식사 이후 이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니 허기가 더욱 몸에서 느끼는 추위가 강하게 엄습해왔다. 카테드랄을 나온 나는 적당한 식당을 찾아 다녔다. 기준은 항상 그렇듯이 사람이 많은 식당이었다. 그러다 발견한 곳이 바로 이 식당이었다. 장미궁전이라...?

 

실내 분위기도 그만이고 오후 두 시가 다 되어 가는 시점에 사람들도 많았다. 큰 홀과 작은 홀이 벽을 사이에 두고 분리되어 있는데 나는 작은 홀로 안내 받았다. 안에서 식사하고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현지인들인 것 같다. 내가 앉았던 테이블의 옆쪽엔 세 사람의 노동자가 모여 앉아 식사하고 있는데 일 중간 휴식에 만찬을 즐기는 멋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레드와인 한 병씩 꿰차고 칠면조, 빠에야 등 푸짐하게 주문한 음식을 천천히 담소하며 먹는데 스페인 사람들이 먹고 즐기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는 말이 실감이 들 정도로 한국에서라면 점심으론 과하다 싶은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레드와인에 절인 산비둘기 요리와 맥주를 주문했다. 약간 질긴듯하면서도 와인 향이 살짝 밴 요리가 약간의 국물이 접시에 깔린 채 나왔는데 맛은 아주 좋은 편이다. 이들의 취향대로 요리된 음식인지 몰라도 약간만 육질이 부드러웠으면 하는 욕심이 든다. 어쨌든 이 곳에서의 식사도 멋진 경험으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