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11 스페인·포르투갈

하이 이베리아9(코르도바)

코렐리 2011. 4. 8. 16:00

2011.3.24(월)

열심히 돌아다닌 덕에 왠지 시간에 여유가 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마드리드에서는 큰 욕심 부리지 않고 가장 중요한 두 세가지만 보겠다는 생각을 이미 한 뒤여서 그랬는지 이 날은 마냥 여유를 부리고 싶어 오전 내내 늘어지게 잤다. 대충 씻고 밖으로 나갔다. 열심히 보자면 하루꺼리인 이 곳에서 하루를 더 묵으려고 했던 이유는 이 코르도바가 안달루시아 지방의 마지막 도시였고 내 여정상 플라멩코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코르도바는 로마 지배에 놓여 있던 시절부터 안달루시아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8세기 이슬람 세력이 침입하여 우마이야 왕조가 성립되었고 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로 크게 발전하였다. 929년 아브드 알라흐만 3세가 칼리프 선언을 하던 당시에는 인구 100만과 모스크 300개가 넘는 등 코르도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였으며 문화적으로는 이슬람, 카톨릭, 유대가 공존과 융합으로 다양성을 갖게 되었다. 그후 레콘키스타에 의해 이슬람 세력이 북아프리카로 완전히 밀려나자 쇠퇴를 거듭해 지금은 인구 30만의 소도시로 변모했다.

 

늦게 일어나고 보니 썰렁해진 속을 채우기 휘해 식당부터 찾아야 했다. 전 날 이 호텔을 찾아 오면서 메스키타 주변에 눈에 띠는 식당이 많았기에 우선 그 곳으로 나가 보았다. 전날 어둠 속에서 조명을 받은 상태에서 보았던 메스키타가 전혀 다른 분위기로 다가왔다. 전날밤은 환상적, 지금은 더욱 환상적. 묵직묵직하고 육중하게 사각진 건물 위쪽으로는 모스크에서 흔히 보는 삼각 계단 같은 난간장식이 보이고 중간중간 아라베스크 문양의 아치형 출입문과 장식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라베스크 문양의 아름다운 문은 많이 보았지만 장식 구성이 전에 본 것들에 비해 좀 더 특이하고 더욱 아름다운 것 같다.

 

특히 상단부에 겹쳐진듯한 아라베스크풍의 아치 장식이 눈에 두드러지게 아름답다.

 

메스키타의 규모는 듣던대로 그 규모부터가 어마어마했다. 역시 아쉬운 것은 골목 안에 있어서 전체적인 윤곽을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건물 탑에 올라가면 메스키타의 윤곽 전체를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럴 수 없으니 아쉽다. 무슨 공공 건물인 것 같던데 뭔진 모르겠다.

 

헐! 레콘키스타 이후 회교 사원 입구에 추기경의 것인지 주교의 것인지 카톨릭 고위 성직자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이런 짓을 하면 되겠나고...

 

 

메스키타의 남쪽으로 내려 가면 건너편 육지와 이 곳을 과달키비르 강이 가로막고 흐르는데 이를 연결하는 것이 아래 사진의 다리다. 이 다리는 로마시대에 축조된 유서깊은 건축물(Puerte Romano)인데 이는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전쟁에는 파괴와 복구가 이루어졌으며 현재의 모습은 이슬람 교도들이 정비한 것이라고 한다. 돌로 지어져 길게 이어진 이 다리는 아치형으로 물의 흐름이 지나가도록 뚫려 있는 것은 오래된 다른 다리와 같지만, 물의 저항을 완화하기 위함인지 그 앞으로 둥근 형태로 보강을 해 두었는데 이 것이 이 다리를 더욱 안정감있게 한다. 다리를 건너면 갈라오라 탑(Torre de la Calaorra)이 있다. 아래 사진의 오른편을 보면 자그마한 성곽같은 건축물이 있는데 이 것이 바로 갈라오라탑이다. 이는 시가지 맞은 편에 이슬람인들이 세운 요새로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인다고 하는데 안은 들어가 보지 않았다. 꼭데기에 오른다 해도 메스키타가 제대로 내려다 보일만큼 높은 탑도 아니어서 통과!

 

뱃속에는 전 날 넣어 준 음식물이 동났는지 장 운동 소리의 공명이 선명하게 귀에 전달되었다. 추가로 집어 넣으란 소리였다. 중요한 그 행위를 아무데서나 할 수 없어 근처를 슬슬 돌아다녀봤다. 이미 점심시간이건만 사람 많은 식당은 없어 보였다. 그 중 바깥에 내건 음식 사진에 이 집이 맛있어 보였고 붙어 있는 가격표도 나쁘지 않다는 판단이 섰다. 

 

들어가서 보니 나름 무하데르 양식으로 장식한 분위기가 좋고 특히 사각 건물로 식당과 호텔로 운영되는 이 곳은 가운데에 나름 중정까지 뚫어 놓아 그리로 쏟아지는 햇살이 조명을 받은 실내보다 훨씬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어 나도 모르게 이 곳에 기냥 주저 앉았다.

 

내가 앉은 중정에 면한 식당의 실내 방향으로는 일본의 단체관광객들이 조용히 식사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확실히 일본인들은 단체로 모여 다녀도 조용하기 짝이 없었다. 여러명이 대화를 나누는데 그들은 필요한 크기 이상의 목소리는 절대 내지 않는다. 심지어 접시에 포크와 나이프 부딪히는 소리 하나 나지 않으니 놀랍다. 한국의 아줌마들 같으면 단 몇 명만 모여 다녀도 보통 시끄러운게 아니다.

"우리 개똥이는 마늘을 싫어해서 개밥에 도토리 남기듯이 밥그릇에 마늘만 달랑 남아 속생해 죽겠는데 소똥이 엄마 아들은 으쩜 어른도 아닌데 이렇게 마늘도 잘먹을까. 냐하하... 그릇이 배고픈 강아지 핥아먹은 밥그릇 모냥 깨끗이 비워졌네. 우리 개똥이는 소똥이하구 같은 똥자 들어가는데도 어쩜 이렇게 다른지 말이지. 언제나 좀 소똥이처럼 가리는거 없이 잘먹을까..."

이런 류의 쓰잘데기 없는 소리를 필요 이상의 성량까지 과시하며 늘어 놓으면 비슷한 쓸데없는 얘기를 옆에서 비슷하게 생긴 아줌마가 받아치고 또 한번 우습지도 않은 이야기에 호감도 낮은 주파수의 웃음보가 터지고 인상을 찌푸리는 주변 사람들에는 아랑곳도 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가 일당 백이지 않은가. 아마도 외국에서 일본인들이 대접 받고 한국인들이 대접받지 못하는 것은 국제정치와 경제적인 국가의 위상은 둘째 문제고 이러한 것들이 외국에서 우리의 이미지로 가장 크게 자리잡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중국인들은 이런 문제가 더욱 심각해 여행전 정부에서 정신교육까지 시킨다고도 한다. 도쿄 사람들은 오사카 사람들을 가리켜 너무 시끄러운 사람들이라고 나무라는데 내 보기엔 오사카 사람들 정도만 되어도 조용하기 짝이 없다. 경쟁상대인 일본인을 찬양할 생각은 물론 없다. 남이 싫어할 일은 하지 않는 그들에게선 우리가 배울 것이 너무나도 많은 것만은 확실하지 않겠나 싶다. 구구절절이 삼천포까지 빠져가며 늘어놓는걸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가보다. 그러면서도 삼천포를 지우지 않는 이유는 또 뭐냐고... ㅡ,.ㅡ;

 

자리를 잡고 앉아 맥주와 두야지 고기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일본인 단체 관광객은 식사가 끝나가던 참이라 그들도 곧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음식이 나오기 전 맥주부터 당근 나오고 그러잖아도 추가로 주문할까 말까 하던 올리브 열매가 자그마한 접시에 소담스럽게 담아 식탁 위에 올려지니 감동을 넘어 감격에 뒤통수까지 입이 찢어지는줄도 모르고 좋아 어쩔줄 몰랐다. 그래도 문화시민이 이 정도에 겸격하면 쓰나. 젊잖게 표정관리를 해가며 맥주 한 모금에 올리브 한 개 맥주 한 모금에 올리브 한개... 올리브 하나 나하나, 올리브 둘 맥주 둘... 빈 속에 맥주 한 모금 올리브 한 알 맥주 두 모금 올리브 두 알... 헤롱헤롱... 가만 있자 내가 맥주를 몇 모금이나 마셨더라? 먹고 남은 올리브 씨알이 여섯개... 그럼 마신 맥주도 여섯 모금... 잔이 비었다? 그럼 더 마셔야징.

 

올리브 열매도 여러개 없어지고 맥주잔도 이미 갈아치울 때 쯤 되자 스테이크가 계란프라이, 감자튀김, 소박한 샐러드와 함께 곁들여져 나왔다. 이거 음식 맛이 왜 이리 좋은 거냐고. 아직도 지글지글  기름이 윤기를 머금은 스테이크 위에 반숙으로 출렁거리는 계란프라이를 그 위에 얹고 한 입꺼리를 쓸어내 입에 넣고 씹어 봤다. 맛은 두야지 특유의 단단한 육질에 물을 적당히 머금은 스테이크의 풍미가 삼삼하고 계란의 풍부함을 더해 입 안에 넣고 한참동안 오물거리는 맛은 삼겹살과는 또 다른 풍미를 느끼게 한다. 게다가 맥주하고 올리브는 아주 사람 환장을 하게 만드네. 아쭈그리 저 어지러운 모로코식 아줄레주는 지 혼자 빙빙 도는데 그래. 아쭈그리... 저게 날 웃기는데... 그래 좋다. 그래서 한잔 더 한다. 아저씨이~~! 맥주 한 잔 더! 킁.

 

이 식당엔 나 혼자밖에 없으니 내꺼나 다름없고 웨이터는 나만을 위해 대기중인데다 돈만 내면 뭐든지 갖다 줄테니 이건 왕이 따로 없었다. 아마도 식당이 운치 있는데다 채광량이 풍부한 중정에 혼자 앉아 빈 속에 맥 주 몇 모금 마시다 보니 알딸딸해지고 이 쯤 되니 맥주나 한 잔 하며 뭉개지 관광은 무슨 얼어죽을 관광이냐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된 때문이었던 것 같다. 혼자서 괜히 좋아 분위기를 즐기다 보니 이 기분을 남겨두기 위해 셀카를 찍어 보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 컷 찍어 봤다. 찍고 보니 얼굴은 벌건데다 눈은 살짝 풀렸고 이건 영 40대 아저씨의 괜한 술주정 장면 같아 컨셉을 바꿔봤다. 가만 생각하니 뜀도령이 사진 찍을 때 쓸 데 없이 인상을 쓴다는 것이 생각나 나도 함 해 봤다. 그나마 좀 낫긴 한데 내가 봐도 인상 참 드럽다. ㅡ,.ㅡ; 놈놈놈 중 두 놈이 더 와 있었다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함 해 봤다. 그래서 두 인간한테 문자를 넣었었지 아마? 적지 않은 시간을 이 곳에서 보낸 줄 알고 시계를 들여다 보니 오후 한 시에 들어가 두시에 나온 셈이고 그리 오랜 시간을 뭉갠 것도 아니었다. 숙소로 돌아가니 아줌마가 청소를 마쳤는지 침대와 테이블이 새로 정리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하루 더 묵는단 소릴 카운터에 했어야 했는데 안나가면 알아서 하루 더 연장해 주겠지 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청소 아줌마가 노크를 하고는 언제까지 묵는지를 물었다. 하루 더 묵는다고 이야기하자 알았다며 돌아갔다. 나는 대충 얼굴만 씻고 양치질을 한 뒤 침대위에 디비져 이 번에는 두시간 반 동안 이부자리를 또 뭉갰다. 낮술과 낮잠이라... 시간이 있어 이런거 종종 할 수 있으면 정말 대박이다.

 

알람을 해 두어었다가 곧 일어나 대충 다시 씻고 거리로 나가 봤다. 목적지는 없다. 그냥 아메바처럼 목적도 없이 방향도 없이 골목을 쑤시고 쏘다니기로 했다. 진지한 구경은 내일 하고 오늘은 마냥 여유만 부려보고 싶었다. 아래 사진은 과달키비르강가의 한 도로변. 자전거를 탄 이가 한가롭게 앞바퀴를 비틀거리며 여유를 부리고 길게 늘어선 하얀집들이 곡선으로 휘어져 배열되어 있어 있고 여기에 경치가 너무 맹맹할까 걱정되었던지 이따금 자동차가 돌아 다니며 공기도 살짝 오염시켜 가며 정적속의 잡음을 만들어낸다. 나도 기냥 여유를 두고 걸어 보았다.

 

대문 앞에 앉아 조는 노인도 직업이 없는지 역시 같은 모드로 시간을 죽이는 이들의 틈을 돌아다니니 역시 나도 한없이 릴렉스한 오후에 젖게 된다.

 

이 쪽 어딘가에 꽃의 골목으로 불리는 곳이 있다는데 이 근처 어디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고 보니 창밖에 꽃화분만 내 놓은 곳이 눈에 띠면 이 곳이 그 곳이 아닐까 혼자 지레짐작해 가며 돌아 다녀 봤다.

 

다른때 같으면 가이드 책자와 지도 그리고 계획표를 들고 이리저리 뒤지면서 다녔을테지만 이 때는 가방도 없고 그저 카메라 하나만 달랑 들고 돌아 다녔다. 이렇게 편안할 수가 있나.

 

이 날의 여유로움은 여행중에 한 번 쯤을 느껴 볼만하지만 그동안의 나는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 어지간히도 강행군만 했었다. 다시 이야기 하거니와 나는 이 날 이렇게 루즈하게 보냄으로써 마드리드에서 봐야할 것들을 대부분 포기해야 했지만 오늘까지도 이 날의 여유로움을 후회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다시 돌아온 메스키타. 이 곳 코르도바의 중심에 메스키타가 있으니 방향없이 돌아다니던 나의 눈에 이 곳이 또 들어온다. 왼쪽의 입구 장식은 카톨릭 교도들에 의해 변형된 곳인 것 같다.

 

이 곳을 지나쳐 계속 돌아 다녔다.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은 지천에 깔렸다. 이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자그마한 교회들은 건축양식이 뭔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별난 모양새가 많이 눈에 띤다.

 

오래 되었음직한 건물이 눈길을 끄는가 하면

 

자그마한 광장에 설치된 동상이나 탑같은 설치물이 발길을 묶기도 하고

 

큼직한 광장의 바닥 분수가 편안한 휴식을 유혹하곤 한다.이 곳이 아마도 La Plaza de Las Tendillas였던 것 같다.(17:00)

 

그리스 신전 유적으로 코린트식 기둥이 11개가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이 유적지를 정비하느라 공사장비가 부산하게 들들거리고 있었다.(17:40)

 

때가 찌들었지만 멋진 정문이 놓인 성당이 눈에 들어와 그 안을 들여다 보고 싶어졌다.

 

공동주택 틈바구니에 자리잡은 이 성당은 옆건물과 아예 붙어버렸고 단순 삼각 형태를 띠고 있지만 스테인드글라스는 큼직하고 입구 장식도 볼만했다. 하지만 정작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가 볼 순 없었다. 카테드랄도 좋지만 현지인들이 다니는 이러한 자그마한 성당이 또다른 볼거리를 줄텐데 들어가 볼 수 없으니 아쉽다. 평일인데다 미사도 없는 시간이었던 탓이다. 그래도 24시간 개방되어 있어야 되는거 아닌가...?

 

근처를 돌아 다니다 보니 대형마트가 눈에 띠었다. 경사났네... 그러잖아도 가게방에 가서라도 맥주를 사갖고 숙소로 돌아갈 판인데 이건 완전히 대박이었다. 맥주코너부터 가봤다. 다양한 맥주가 전시되어 있었다. 졸라 싸다. 이 곳에서 구할 수 있느 맥주를 죄 다 먹어보겠다고 다짐하며 들어갔던 나는 순간 약간 당황스러워졌다. 이거 뭐가 이래 가짓수가 많냐... 나는 이게 전부 맥주가 맞는지 하나 하나 들여다 봤다. 맥주는 많은데 이 곳 회교도들을 위한 것인지 무알콜 맥주가 눈에 많이 띠었다. 무알콜 맥주는 전에도 요르단에서 함 먹어 봤지만 이건 맥주 맛이 아니었다. 게다가 가미한 단 맛은 완전 NG였기에 무알콜 맥주는 일단 배제! 돈주고 먹으라고 하면 액수를 보고 생각해 보겠음. 혼자 먹겠다고 집어든 맥주는 7캔. 여기에 안주로도 먹고 다음날 장거리 이동할 때 먹겠다고 안주거리도 한아름 샀다.

 

방향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방향 감각도 놓쳐 버린 탓에 돌아가는 길에 좀 헤맸다. 장바구니 아니 참 장비닐백 든 채로... 우연히 발견한 광장. 유명한 광장이었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데다 카페에서 내놓은 테이블에는 앉아있는 사람도 없어 봤으면 어서 가라는 듯한 괜한 분위기가 느껴져 이 곳에서 어물쩍 거리며 노닥거리고 싶은 생각이 들질 않았다.

 

짐을 방에 풀어 놓고 나서 카운터로 가 추천할만한 타블라오(플라멩코 공연이 이루어지는 카페)가 근처에 있는지를 물었다. 사실 호텔 바로 앞에도 타블라오가 하나 있지만 출연진의 실력이 어떤지도 모르고(장르를 불문하고 실력 없는 출연자들의 공연을 보는 것만큼 짜증나고 화나는 일도 없다) 해서 그다지 눈여겨 보지 않았다. 카운터의 직원은 한 타블라오를 추천해 주었다. 메스키타 바로 근처에 있다고 했다. 공연은 보통 8시나 9시에 시작되지만 위치부터 확인하기 위해 그가 말한 곳을 찾아 다녀 보았다. 근처 사는 사람들이 더 모르는 것 같았다. 메스키타 근처에서 이사람 저사람에게 물었지만 이리 갔다 저리갔다만 반복했다. 메스키타를 기준으로 남쪽을 가리키길래 그리로 가서 사람들에게 다시 물어보면 북쪽으로 가라고 했다. 단거리를 두고 같은 곳을 북쪽으로 갔다가 남쪽으로 갔다가를 몇 번 하고 나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대충 이 쯤이겠다 싶은 곳에 서서 눈에 띠는 한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타블라오가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다. 이때는 이미 8시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40대로 보이는 레스토랑의 직원은 이 곳이 바로 타블라오였지만 지금은 없어지고 이 레스토랑이 들어선 것아라고 한다. 이런 젠장. 유령을 쫓아 다니고 있었군. 할 수 없이 호텔 바로 앞 지하의 타블라오로 가 보았다. 벽돌로 내부 공간과 장식을 변화있게 꾸미 놓은 이 타블라오의 분위기는 좋았지만 손님은 남녀 한 커플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리 봐도 이 정도로 적은 인원으로는 공연 초청 해봐야 적자일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이 날 공연이 몇 시에 있는지를 물었다. 종업원은 주말에만 공연이 있다고 했다. 이런 젠장. 이 곳에서 하루를 더 묵겠다던 이유 하나가 의미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래 좋다. 깨끗이 포기하고 맥주나 마시기로 작심했다. 호텔 내부의 정원도 아주 좋아 보였지만 이 곳에서 마시기엔 날이 너무 썰렁했다. 방으로 돌아와 샤워나 한 뒤 맥주 여섯캔 다 마시고 자리라 생각하고 샤워부터 했다. 

 

혼자서 만찬을 즐기려고 사다 놓은 맥주와 먹거리들이다. 초리소(전통소시지), 안초비(멸치의 일종) 통조림, 올리브, 홍합통조림, 하몽(돼지다리 생햄)과 7개의 맥주. 쳐다 보기만 해도 흐믓하다.

 

혼자 있으니 욕실 문은 그냥 열어둔 채로 샤워를 한참 하며 기분내고 있는데 방문에 열쇄를 꽂고 쑤시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놀란 내가 샤워꼭지를 잠그고 목욕 타올을 두른 채 물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열쇄를 이리저리 돌려 보는 소리가 들렸지만 열려진 않았다.

'아항 방을 잘못 찾은 사람이 엉뚱한 열쇄를 꽂고 헤매는 모양이군. 멍청한 녀석' 하며 다시 누구냐고 물었지만 대답은 없고 곧이어 문이 열려 나는 진짜로 놀랐다. 문이 열리더니 기타를 둘러멘 여행객이 들어서며 나를 한 번 보고 나서 침대쪽을 바라봤다. 두 개의 침대 중 하나는 이미 내가 낮잠 자느라 사용했던 탓에 담요가 휘둘려져 있고 나머지 하나에는 풀어 놓은 짐들이 잔뜩 어지럽게 널려져 있음을 보고 그도 당황해했다. 내가 먼저 말했다.

"뭔가 착오가 있는 모양인데 이 방은 내방이라우."

"나도 이 방에 배정 받았는데..."

나는 그제서야 이 곳이 2인실 도미토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까지 본 중 가장 작은 단위의 도미토리가 3인실이었기에 전에는 한 번 도 보지 못한 형태였다. 그럼 그렇지 도미토릴 달라고 했는데 침대 두 개 짜리 방을 내주었고 게다가 욕실까지 딸렸는데도 숙박료가 무척 싸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하지만 나도 어지간히 돌아다녔지만 독실이 없어서 2인실을 혼자 쓰는 경우는 많이 겪어봤지만 2인실 도미토리는 이 곳에서 생전 처음 본 탓이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나는 갑자기 당황스러워졌다. 그의침대를 내가 훼손한 셈이었다. 나는 서둘러 사용하지 않은 침대에 늘어 놓은 나의 짐들을 내 침대 위로 던지다시피 옮기며 물었다.

"나는 침대가 두 개밖에 없길래 혼자 쓰라고 내 준 방인줄 알았지 뭐야. 사실 처음에 도미토릴 달라고 했는데 이 방을 주길래 도미토리가 없어서 혼자 쓰라고 준건 줄 알았지. 이거 미안하게 됐는걸. 하지만 이 침대는 짐만 올려 놓았을 뿐 전혀 사용을 안했다구. 네가 사용하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을거야."

그는 괜찮다며 나를 오히려 안심시켰다. 이 친구는 입가에 작은 미소를 항상 머금고 있는 곱상한 청년이었다. 짐을 다 옮겨 놓고 나서 손을 내밀며 내 소개를 했다.

"난 Yoon이라고 해. 한국에서 왔어."

"난 마요라고 해. 프랑스에서 왔어"

나는 이 친구의 이름을 두 번 다시 묻지 않기 위해 마요에 연상되는 사물을 찾자 곧 웃음이 나올 뻔했다. '마요네즈가 뭐냐 이름이...' 마요네즈의 발상지인 이 곳 스페인에서 마요네즈와 함께 방을 쓰게 생겼군.'

인사를 나누고 보니 그제서야 내가 물에 젖은 채 홀랑 벗고 수건만 허리에 두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샤워를 하던 중이었네 그래. 나 먼저 샤워할게."

샤워실로 들어가 열려 있던 욕실 문을 닫고 샤워를  마저 했다. 샤워를 마치고 난 뒤 옷을 다시 입고 나서 그에게 맥주를 권했지만 그는 술을 입에 대지 않는 사람이었다. 밥 없인 살아도 술 없인 못사는 나로선 사는 재미를 반감시키며 사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기준이다. 특히 맥주를 마시며 음악을 들을때 나는 가장 큰 행복감을 느끼며 그 때 듣는 음악은 알콜 기운이 나로 하여금 음악의 감흥을 더욱 크게 확장해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침대 앞으로 테이블을 끌어다 놓고 그 위에 맥주와 먹거리를 펼쳐 놓고 침대에 걸터 앉아 맥주를 마셨다. 이미 준비해 놓은 안주 외에 가장 좋은 안주거리인 이야기 상대가 공짜로 생겼으니 활용 안할 수 없었다.

"여행중이냐?" 내가 물었다.

"아니, 이 곳 콘서바토르(음악원)에서 특별 강좌가 있어서 수강하러 온거야."

 아닌게 아니라 이 날 오후 메스키타에서 북쪽 골목으로 올라갔다가 고전적인 건물의 콘서바토르가 하나 있음을 발견했었다. 그저 건물 하나 달랑 있지만 이 곳엔 대학 규모가 크지 않아 건물이 달랑 하나인 경우를 종종 보게 되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학생이냐?"

"응"

"전공이 뭔데?"

"플라멩코."

"뭐야? 전공이 플라멩코라고? 그럼 스페인에서 공부중이냐 아님 프랑스에서 공부중이냐?"

"프랑스에서."

말 수가 적고 조심스러운 성격의 마요가 하는 대답은 항상 단답형이었다.

"아이구 이런, 나 오늘 플라멩코를 보려고 타블라오를 찾아 어지간히도 헤매고 다녔어. 찾던 곳은 문을 닫았고 호텔 바로 앞 지하에 있는 타블라오는 주말에만 공연을 한다데?. 내일이면 마드리드로 돌아가야 하고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오늘 뿐인데 이거 무척 억울하던 참이야."

"플라멩코를 좋아해?"

"물론이지, 나는 페페 로메로(Pepe Romero)하구 특히 파코 데 루치아(Paco De Lucia)를 무척 좋아하거든."

순간 마요의 눈치가 약간은 감탄을 머금은 듯했다. '너 그런것도 아냐' 하는 눈치다.

"이 곳이 호텔만 아니라면 네가 공연해 주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내가 그렇게 말하자 마요가 조심스레 물었다.

"내 연주 들어보고 싶어?"

"응, 하지만 호텔 안이라 소리가 크면 주변 사람들이 싫어할텐데 그것만 아니면 너한테 부탁하고 싶어."

"연주 소리가 그리 크지 않으니까 괜찬을거야. 원하면 연주해 볼게."

나는 맥주 안주에 생음악까지 곁들이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함 해봐."

마요는 기타를 꺼내 조율을 한 뒤 연주를 시작했다.

 

물론 파코 데 루치아와 페페 로메로, 알 디 메올라와 존 맥러플린이 연주하는 최고의 플라멩코만을 들어온 나로선 마요의 연주가 완벽하게 들리지 않았던 것만은 사실이지만 이건 순전히 나만을 위한 공연인 셈이었고 그게 나를 무척 기쁘게 해 주었다. 그의 연주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아 연결이 조금 매끄럽지 못하고 거칠지만 그에게서는 신선함이 묻어났다. 말 한마디를 꺼내도 조심스러워하는 내성적인 그가 정열적이고 격정적인 플라멩코에 빠져 이를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놀랍고 별스럽다는 생각을 해봤다. 한 곡의 연주가 끝나고 나는 갈채를 보내며 나만을 위한 공연에 감사한다는 인사를 한 뒤 마요에게 물었다.

"좋아하는 기타리스트가 누구냐?"

이건 좀 우문이다. 스페인 하면 플라멩코, 플라멩코 기타리스트 하면 파코 데 루치아 라는 명제 하에 그런 멍청한 질문이 어디 있었을까마는 항상 예외라는건 있게 마련이니까. 그래도 함 물어봤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나의 짐작을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고 주워 섬기는 기타리스트들은 전부 내가 전술한 연주자들이었다.

"내 연주 더 듣고 싶어?"

처음으로 듣는 마요의 조심스럽지만 적극적인 질문이었다. 하지만 입가에 보일듯 말듯 살짝 머금은 미소와 표정 속에는 이 놈이 내 연주를 싫어하지 않을까 조심스러워 하는 눈치였다.

"나만을 위한 공연인데 고맙지. 더 해줄래?"

그는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채로 날 한 번 더 쳐다 보더니 이내 그가 쥐고 있던 기타 넥(neck)으로 시선을 옮겼다. 넥을 볼 때 그는 웃지 않았다. 진지한 표정에는 그의 연주에 대한 자세가 엿보인다. 이 번엔 내가 먼저 한 곡 더 해달라고 부탁했다. 연주가 끝나고 그가 또 물었다.

"아직도 더 듣고싶어?" 역시 조심성이 묻어나는 질문이었다. 이 녀석은 연주를 그만 하려다가도 내가 연주를 더 듣고 싶어 하면 어쩌나 걱정을 하고도 남을 놈이었다. 아래의 동영상은 그가 연주한 곡 중 하나를 영상에 담은 것이다.

 

내 앞에서 몇 곡을 연주한 그는

"내일 콘서바토르 수강을 위해 연습을 좀 해야 하는데 그래도 괜찮겠어?" 하며 양해를 구하는데 이 질문 역시 극히 조심스러웠다. 리스본에서 만났던 니콜라스와 올리비에르 그리고 이 곳에서 만난 마요는 내가 가진 프랑스인들에 대한 선입감이 잘못된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만들었다. 밑도 끝도 없는, 근거도 없는 문화적 교만과 자신들의 언어에 대한 저희들만의 사랑도 웃기지만, 그들의 식민지를 겪은 지역 치고 인프라나 경제 발전 같은 것은 전혀 없이 알거지만 만들어 놓는 숭헌 눔덜이라는 생각만 해왔다. 그런데 내가 이 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배려인지 아님 자신이 남들에게 어떻게 비쳐질지 조심스러운건지 암튼 무지하게 내성적이었다. 이 날은 같은 방 안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는 동지가 생겨 반갑고 음악을 좋아하는, 게다가 플라멩코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나 같은 천장을 이고 있으니 이 또한 즐거운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