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이베리아5-1(신트라)
23011.1.21(금)
전날 아침과 같은 메뉴의 아침식사를 마치고 전 날 저녁 미리 싸 두었던 짐을 프론트에 맡겼다. 가이드북, 카메라 그리고 손수 정리한 자료만 들고 09:20쯤 숙소를 나섰다. 이 날 저녁에는 세비야로 가는 야간 버스를 타고 떠날 참이었다. 숙소를 나선 나는 정거장에서 트램을 기다리며 주변 골목의 건물들을 둘러 보았다. 운치 있고 고풍스럽지만 낡은 느낌이 이 곳 포르투갈 알파마 지구에서 받은 인상이지만 푸근하고 정겹기는 이만한 곳도 그리 흔치 않다는 느낌이 든다. 완벽하게 정리된, 그리고 더 이상 할 것도 없는 고요한 분위기야말로 내겐 가장 식상한 곳이고 서유럽이 그러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바로 이 포르투갈의 알파마 지구의 이러한 허술함이 뚫고 들어가 자리잡고 앉을 심적여지가 있어 많은 정감이 든다. 낡은 건물에 널려진 빨래의 정돈되지 않은 느낌과 건물들 사이로 종횡무진 뚫린 골목 여기저기로 얼기설기 자리잡은 트램 전선, 벗겨진 아줄레주와 그 아줄레주가 벗겨진 곳에 자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여유와 여백은 이 도시에서 느끼는 도시의 인간적인 면과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하면 이 것 역시 아이러니라고 해야 하나... 이 곳에서의 실질적인 시간은 오후에 되돌아와 한 두 군데 유적지를 더 들러 보는 것 외엔 거의 이 곳에서의 시간도 종료되어 가는 시점이라 묘한 서운함이 가습 한가운데 자리 잡았지만 정열의 도시 세빌랴로 떠날 일만 생각하면 가슴이 뛰는 것도 사실이었다. 28번 트램에 올라타고 피궤이라 광장으로 나가는 동안 나는 이 곳의 골목 골목을 좀 더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눈에 담은 이 도시의 정감을 가습에 좀 더 선명하게 새겨 두기 위함이었다.
피궤이라 광장 방향으로 가며 약간은 혼잡한 이 시간에도 어김없이 차량과 트램이 뒤섞여 있었다. 접촉사고가 발생했고 경찰도 와 있는 가운데 조용히 시시비비를 가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여유와 느긋함이 있어 경적도 없다. 이러한 일상에서 낙천적인 그들의 일면이 보인다. 나는 이 곳에서 내려 걸어서 기차역으로 갔다.
로시우 기차역에 도착한 나는 이 곳에서 신트라로 가는 열차표를 알아 보았다. 신트라, 카스카이스, 호카곳을 연결하는 1일권이 12유로에 판매된다. 새벽에 움직여 세 도시를 모두 돌아보는 방법도 있지만 내겐 이 도시들을 다 둘러 보기 보다는 신트라 한 군데만 돌고 다시 알파마 지구로 되돌아와 상 비센트 수도원을 마저 들러보고 떠나는 것이 이 날의 계획이었다. 요금은 3개 도시를 모두 돌건 한 군데만 돌건 요금은 무조건 12유로였다. 열차표를 사면서 한국인 부부를 만나 신트라로 이동하면서 약간의 대화를 나누었다. 포르투갈에서 처음 만나는 한국인이다 보니 내심 반갑게 느껴졌자. 이 들 부부는 그리 젊은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자주 함께 여행을 떠나곤 한단다. 이러한 삶의 여유를 누리고 사는 흔치 않은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50분정도의 이동 끝에 11:00경 신트라역에 도착했다. 부부와 작별을 고한 뒤 지도상으로 가장 떨어져 있는 신트라 궁전부터 들러 보기로 했다. 하지만 도달하기에는 이 곳에 가장 용이하고 시간도 별로 들지 않는 곳이었다. 왜냐 하면 나머지 두 곳은 언덕 높은 곳에 있어 많은 시간이 걸리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역에서 내려 신트라 궁전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건물이 왠지 동화속에서 볼법한 모양새에 눈을 한 번 더 주게 된다. 아마도 탑때문인듯하다.
조금 더 걸으니 가고자 했던 방문지에 대한 안내가 모두 나오는 이정표가 보인다.
신트라 궁전으로 가는 길은 자연과 간간히 떨어져 있는 주택들이 조화를 이룬 전형적인 유럽의 시골길이었다. 산길을 따라 휘어진 도로 끝에 신트라 성의 특이한 원뿔모양의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매표소에 가니 단체로 견학 온 중고등학생들이 인솔교사의 지도 아래 입장대기중이었다. 이 들보다 먼저 들어가는 것이 여러 모로 부대끼지 않읗 거라는 생각에 서둘어 표를 사서 들어가려 했지만 이들은 나를 앞서 입장하기 시작했다.
이 왕궁은 14세기부터 공화제가 선포된 1910년까지 포르투갈 왕실의 여름별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몇차례의 증개축으로 안하여 건축 양식이 혼합되었다고 하는데 이슬람 양식, 고딕양식, 마누엘 양식이 혼재되어 있다고 한다. 아래의 방은 백조의 방으로 불리는데 벽에는 창틀마다 아줄레주로 장식해 모로코의 이슬람 양식 문양을 넣었고
천장에는 27마리의 백조가 그려져 있다. 그림이 우아할 것 같지만 실제로 보면 의외로 별로다. 그래도 이 천장 장식 그림 때문에 유명한 방이라나.
원뿔형 탑.
아줄레주를 이용해 이슬람 양식의 문양의 벽장식은 얼핏 보면 섬세해 보인다.
모로코의 타일장식을 흉내낸 이 아줄레주 벽장식은 자세히 들여다 보면 모로코의 문양과 비교해 조잡하기 짝이없다. 하지만 그나마 이 정도의 문양이라도 낸 것을 보면 공은 엄청나게 들인 것 같다.
까지만 잔뜩 그려진 천장 장식
이 곳은 침실인 것 같은데 그 정도가 더 심하다.
가구도 이슬람 양식을 많이 도입한 것 같다. 벽에 걸린 그림은 라파엘의 그림인 것 같은데... 아님 말구.
당시 사용되던 가구와 유물이 전시된 방 위에는 대항해 시대의 영광을 재현하듯 범선 몇 척이 그려져 있다.
중국의 장식물도 눈에 띤다.
왕실예배당이었던듯 하다.
타일로 장식한 방 한가운데 있는 자그마한 분수야말로 이슬람 문화의 가장 직접적인 도입이다.
이 곳은 접견실이 아닐까.
이 곳을 나와 무어인의 성과 페나성으로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와 왔던 길을 되짚어 오르막길로 접어들었다.
누군지도 모르고 걍 찍어 봤다.
주면엔 개인 저택인지 궁전처럼 지은 집들이 적잖이 눈에 띤다.
경사진길을 쉬엄쉬엄 올라 가는데 그 길이 무어인의 성까지만도 3.5킬로미터라고 한다. 이 곳에는 버스가 다니지만 그리 자주 있지는 않은 편이어서 승차장 알아보기도 귀찮고 기다리기도 싫어 그냥 걸어서 올라가 봤다. 1시간을 넘게 걸었지만 무척 쾌적하고 경치도 좋아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한 번쯤 걸어서 다녀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