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이베리아4-3(리스본)
2011.1.20(목) 계속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본 카테드랄은 스페인에서는 거의 보지 못한(마치 스페인 전역을 둘러본 사람처럼 말하는군 ㅡ,.ㅡ;) 양식이어서 지금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카테드랄을 나온 나는 알파마 지구의 아랫동네서부터 경사진 오르막길을 훑으며 걸어 올라갔다. 다음으로 나온 곳은 산타 루치아 전망대(Miradouro de Santa Luzia). 이 곳에서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또는 속삭이는 연인들이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이는 오렌지 세개를 들고 곤봉돌리기처럼 묘기를 보이는데 제법 눈요기거리가 되었다. 이 곳이 유명한 전망대인지 모르지만 썩 운치가 있는 곳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려다 보이는 경치가 탁월한 것도 아니어서 이 곳에 머문 시간은 아주 짧았다.
여기서 다시 걸어 상 호르헤 성으로 갔다(Castelo de Sao Jorge). 아래의 사진이 호르헤 성 입구(16:10)다.
주변 골목의 집들과 골목은 무척 예쁘다.
이 곳은 리스본에서 가장 오래된 성으로 5세기경 로마인들이 축성하기 시작해 이슬람인들이 9세기에 완성했다고 한다. 표값이 3.5유로. 젠장 비싸군. 표 사기 억울하지만 안보고 가긴 더 억울하다.
저 아래로는 태주강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성곽을 따라 내려다 보이는 도시가 아름답다. 대충이지만 오래된 대포도 성곽에 걸쳐져 있고 한가로운 연인들의 속삭임도 달콤해 보이는 곳이다.
저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피궤이라 광장과 그를 둘러싼 건물들도 아름답다.
이 성곽 역시 대지진때 무너진 것을 1938년에 복구했다고 한다.
태주강을 배경으로 둔 도시의 모습이 고전적이고 우아한 리스본 도시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수컷 공작도 미녀는 알아보는지 짜식이 근처에서 얼쩡거리네. 아가씨! 빵쪼가리로 인심쓰지 말고 어디 가서 에스프레소 한 잔 어때? 우아함에서 열세인 비둘기 한마리가 뒤에 떨어져 멀거지 쳐다 보며 질투한다. 잘났어~~~!
호르헤 성을 나와 포르타 두 솔 광장으로 올라갔다(17:50). 올라가자마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성 빈센트(Saint Vincent)의 동상.
그 배경으로는 약간 더 높은 지대에 상 비센트 수도원이 보이고
주변 집들은 벽돌색 지붕을 한 희고 노란 벽을 가진 집들이 크기도 배열도 자유분방하면서도 통일된 느낌과 정겨움이 가득하다. 오른쪽 끝으로 가면 거대한 테주강도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다.
이런데서 어찌 맥주 한 잔 하지 않을 수 있을까. 50cc짜리였나보다. 이거 한 잔 사 들고 우아한 척 하며 홀짝거리고 있자니 이 곳에 온 것에 너무나도 행복한 느낌이 들었다. 유럽 문화에 식상해 있는 나지만 이 곳 이베리아 반도는 아직 제대로 돌지도 못했건만 강렬한 이들의 문화가 내게 넘치는 행복감을 선사하고 있었다.
전망대에서 둘러본 동영상이다.
낮에 봐도 행복하지만 해가 떨어지고 나면 주변 풍광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상 비센트 수도원은 아직도 튀는 모습으로 혼자 밝다.
해가 떨어지고 주변에 어둠이 깔리자 그제서야 곱창이 이를 감지했는지 허기가 느껴졌다. 근처에 전날 헤매다가 보아 둔 식당이 하나 있었다. 호텔을 찾고 나면 식사하러 다시 오리라고 마음 먹었지만 다시 나오기 귀찮아져 샌트위치와 맥주로 때웠던 일이 있었으니 이 날 저녁만큼은 제대로 먹자는 생각에 그 집을 찾아 가기로 했다. 게다가 이 날은 포르투갈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이니 만큼 궁상을 떨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래서 그 식당을 향해 걷다 보니 재미있는 현상도 목격하게 된다. 알파마 지구를 구불구불 종횡무진 뚫어 놓은 이 좁은 길로 트램만 다니는 것이 아니고 자동차도 사람도 모두 이 길을 공유한다. 당연히 자동차와 뒤죽박죽이 되기도 하고 잠깐 차를 주차해 놓고 사람이 없어지면 전차는 차주인이 돌아 올때까지 마냥 세월이 된다. 그 사이로 인간들은 이리 저리 실례하며 비켜 다닌다. 인도가 어딨고 차도가 어딨어... 트램 가는 길에 주차한 차와 좌회전하려는 차, 반대방향을로 우회전 하려는 차가 뒤죽 박죽이 되니 서로 못간다. 이들은 이런 일에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심지어 차주가 돌아오길 기다리다가 정 돌아오지 않으면 경적을 한 두 번 울리고 기다린다. 다시 경적을 울리는건 차주인이 듣지 못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이다. 경적을 들으면 차주인은 쏜살같이 달려 나오곤 한다. 불편하지만 서로를 배려한다. 어찌보면 배려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개념없이 차를 주차해 놓고 잠적하는걸 보면 무책임한 것도 같지만 그들은 언성을 높이지 않는다. 오래된 이 도시가 이러한 교통수단이 생기고 길이 좁아질 것을 예상하지 못해서 오늘날 이리 된 것이겠지만 그들은 불편함을 감수한다. 성질 급한 우리 같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서로 빵빵거리며 '두통 속에 뇌는 뒀다 뭣에 쓰냐'는 둥 '이 길이 당신 바지주머니냐'는 둥 들었을때 유쾌하지 않은 고성이 오갔을게다. 하지만 어느 쪽도 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들은 전통문화를 지키기 위해 불편하더라도 감수하겠다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고 우리는 불편한건 개선하고 빨랑빨랑 해결해 편하게 살겠다는 것이고 일장 일단이 있는듯하다. 근데 싸우진 말자고...
어찌어찌 대충 수습이 되고 나니 아무 일 없었던 듯 저마다 차량들이 제 갈 길을 뚫어 찾아 간다. 그래도 이 트램은 주차한 차주가 돌아오기 전에 아슬아슬 시도해 보더니만 결국 간신히 그야말로 간신히 지나간다. 만쉐이!
전 날 봐 두었던 그 레스토랑을 다시 찾아 왔다. 이 아저씨가 전 날 열심히 헤매던 내게 길을 가르쳐 준 사람 중 하나였다. 식사하고 가라길래 좀 이따 오겠노라고 길을 갔었다.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면서 호객하기 위해 나와 있던 그에게 인사하며 "약속 지킬려구 왔어요" 했더니 나를 빤히 쳐다본다. 기억을 못하는 모양이었다. "어제 내가 길을 물어 보고 나서 돌아 오겠다고 했잖아요." 했더니 " 어! 맞아...!" 하며 반가운 체 안내한다.
식당 이름을 뭐라고 읽어야 하나? 알펜드르라고 읽어야 하나? 암튼 이 집 간판 되겠음.
바깥에서 보기와 달리 운치가 있다. 와인이 잔뜩 전시되어 있고 노인들이 젊잖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자그마한 와인부터 한 병 주문해 마시며 음식을 기다렸다. 주문한 요리는 사르디냐(정어리). 테이블에는 곁들여 먹을 몇 가지 치즈가 놓여 있었다. 값이 매겨져 있을 것이라는 짐작을 했지만 와인 안주로 최고일 것 같아 하나 집어 들고 접시위에 올려 놓고 잘랐다. 근데 짜다. 드럽게 짜다. 느덜은 왜 이리 짠걸 좋아하냐. ㅡ,.ㅡ;
삶은 감자와 사르디냐 그리고 소박한 샐러드가 같이 나왔다. 군침이 돌았다. 표면에 굵은 알갱이는 뭔가 싶어 살을 발라 입에 넣고 행복하게 씹었다. 느낌은 젠장... 이거 표면의 알갱이가 소금이었다. 뭵! 가뜨기나 치즈도 짠데 너까지 왜 이러냐 웬수야. 나는 할 수 없이 작은 접시에 한마리씩 덜어내 껍질을 벗겨내고 감자와 빵의 반찬삼아 먹었다. 그래도 곁들이는 와인과 치즈 그리고... 짜지만 그래도 푸짐한 저녁이었다. 짜지만...
한 시간 정도의 식사를 즐긴 후 포르타 두 솔 광장으로 다시 가보니 낮에 본 모습보다 더욱 환상적인 주변 경관에 새삼 감탄이 나온다. 야외 카페가 문을 닫지 않았다면 여기서 맥주 한 잔 살짝 더 하고 싶었다. 성 빈센트 동상 바로 뒤로 불밝혀진 상 비센트 수도원이 조명을 받으며 뽐내듯 자태를 드러냈다. 아름다운 곳이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곳이 현실의 세계를 걷는 것인지 슬몃 의심까지 해가며...
내가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8시가 아직 안된 시간이었다. 전날 히피 차림의 사내가 파두 공연을 보고 싶다면 저녁 10:00시 프론트에 모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이들이 데려가는 곳이 그저 친구가 운영하는 집이거나 무슨 그렇고 그런 컨넥션이 있을지 모른다는 지레짐작을 하고는 가이드 책을 펴들고 그 중 마음에 드는 파두 카페를 하나를 가리키며
"이 파두 카페는 어떻게 가야 하지?"
하고 물었다. 프론트를 지키고 있던 이 친구는 중절모를 쓰고 심한 곱슬머리에 안경을 낀 친구였는데 왠지 유태인의 인상이었다. 맞으면 그런거고 아니면 말고... 그가 오늘의 당번이었던건지 공동사업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가 말했다.
"우리가 저녁에 모여서 갈 곳이 그곳이니 좀 기다려."
어허, 그래? 전날 말하기를 단돈 5유로면 와인과 함께 파두를 즐길 수 있다고 했는데 오호랏. 이 좋은 파두 카페에서 음료 단돈 5유로에 파두음악까지라... 좋아서 환장할 지경이다. 파두를 즐기겠다고 하나 둘 프론트로 모여든 인간들은 여럿 되었고 10시가 되자 개떼같이 이동했다.
호텔 프론트에서 우리를 인솔한 이 친구는 파두의 발생 기원과 발전 과정, 유행 지역과 그리고 포르투갈 전역에서 즐기는 파두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와 현황에 대해 브리핑했지만 나는 무슨 소린지 하나도 알아 들을 수 없었다. 이 친구의 발음이 않좋은건지 내가 영어실력이 후달리는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하나도 못알아 들었고 후자에 무게가 간다. 하지만 못알아 듣는 것은 두 놈의 프랑스 녀석들도 마찬가지더라는... 우헤헷! 그는 이 곳 저곳을 데리고 다니며 브리핑도 하고 주변 야경을 구경시키다 거의 열시가 되어 한 카페로 데리고 왔다. 메사 드 프라데스라는 파두 카페였다.아주 작고 겉보기에도 결코 화려해 보이는 카페는 아니었다.
안에 들어가면 아주 작은 공간에 사람들이 오밀조밀 모여 앉아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이들 모두가 파두 공연을 기다리는 것이다. 카운터 뒤에는 와인이 진열되어 있고 벽면은 아줄레주로 장식되어 있었다. 음료로 나온 것은 큰 유리 포트에 담긴 와인과 그 위에 동동 떠있는 잘게 썬 과일이었다. 이걸 이들은 샹그릴라라고 부르고 있었다. 떨떠름하고 시큼한 적포도주에 썰어 넣은 과일은 와인에 과일의 향취를 더하고 와인을 마시다 입 안으로 껄떡 넘어온 애들은 안주 역할을 했다. 잔 속의 와인을 다 마시도록 잔 속에 남은 애들을 손가락을 이용해 퍼먹을만큼 무식한 짓을 하는 놈은 나밖에 없지만 나는 이 특이한 짓을 잔이 바닥날 때마다 계속했다. 안보이잖아 뭐 어때~~~!
아래 사진의 왼쪽에 앉은 친구는 영국인 로렌스군. 그는 영국이 아닌 어딘가에서 영어교사를 하고 있는데 지금은 여행중이라고 했다. 내 뒤쪽의 두 남녀는 커플이었다. 붉은 티셔츠를 입은 친구는 호텔 프론트에서 우리를 인솔해 온 친구였다. 이들 외에도 프랑스인 친구 두 명이 더 있었는데 그들은 테이블에 자리가 모자라 바로 건너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이 사진을 찍은 친구가 그 중 한 친구였다. 조금 있다가 자그마한 아가씨를 가리키며 인솔자가 말했다.
"저 아가씨가 바로 오늘 파두를 부를 가수야" 하며 일러 주었다. 키 160도 되지 않는 작은 키에 높은 힐을 신고 검정 폴라 티셔츠에 검정 스커트를 입은 평범한 외모의 처자였다. 그에게서 가슴저미는 듯한 파두의 가락이 나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기다리기 심심해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봤다.
"나는 원래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번에 듣는 파두 음악이 처음은 아니고 전부터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음악을 조금은 들어 왔다"고 잰체헸다.
인솔자는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는 파두음악에 있어 신화와도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지금은 누가 가장 주목받는데?" 내가 물었다.
"마리사(Marza)"
"성이 뭐야? 음반 좀 사게 갤차줘봐."
"나도 몰라. 이 가수는 매체에 등장할 때 마리사라고만 하지 성같은걸 말하는걸 들어본 적이 없어."
'싸이 같은 앤가...'
로드리게스 외에도 요즘은 한국에서도 마리사의 음반이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 그녀가 그녀라는 사실도 잊었다. 나중에 음반을 사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아~~~! 얘구만~~~ 젠장!'
나는 또 다시 아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 이웃한 두 나라의 음악이 어쩌면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는지 신기하잖아. 스페인의 플라멩코는 정열적이고 외향적인데 반해 파두는 슬픈 음악이고 내향적이잖아. 두 나라의 감성이 그렇게 다른가?"
인솔자는 수백년간 서로 다른 감성과 역사를 가진 나리이니만큼 지리적 특징과 감성은 다를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할 얘기도 없고 하니 나는 계속 아는 척을 했다.
"파두는 포르투갈의 전통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몰라도 플라멩코는 진정한 스페인의 음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플라멩코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짚시음악이잖아. 전세계에 흩어진 집시들이 하는 음악은 서로가 완전히 다른 것 같지만 그들에겐 공통분모가 있다구. 그게 그냥 느낌이라는거지, 나도 그게 뭔지는 설명하지 못하겠어. 플라멩코는 그러한 집시음악의 하나인거지 이걸 스페인의 대표 전통음악으로 내세우는덴 문제가 있지 않겠어?"
이러한 아는 척도 내가 운영자로 활동하는 엘피음악 동호회에서 심심찮게 집시음악을 다루기에 알게된 사실이었다. 그런데 나로 하여금 입다물고 있는게 낫다고 생각하게 만든건 인솔자의 한마디였다.
"파두 음악도 사실 뿌리를 따라 가자면 짚시들의 음악이지. 너의 논리대로라면 파두도 진정한 포르투갈의 음악으로 보긴 좀 어렵다구.,"
"깨갱. 아는 척 종료... 입다물! ㅡ,.ㅡ;"
우리가 여기에 도착한 지 1시간이 되어 거의 12:00시가다 되어 가고 있었다. 12:00시가 되자 악기 연주자 두명이 카페 한 가운데 놓여진 의자에 앉아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한 사람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흔한 기타를 들고 있었고 나머지 하나는 기타처럼 생겼지만 조금은 넥이 짧고 소리로는 가냘프고 묘한 울림이 있는 악기를 들고 조율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불이 꺼지고 무드가 잡힌 가운데 그 자그마한 아가씨가 가운데로 나와 자신의 첫소절 부르기 전의 전주가 지나가는 이 순간의 긴장감을 머금은채 고개를 살짝 까닥 거리고 있었다. 그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좌중은 갑자기 끼얹은 찬물을 얻어 맞고 당황한 순간 만큼이나 고요했다. 그녀의 노래 첫 소절이 나가자 마자 나는 온몸에 닭살이 엄습해 오는 전율을 느꼈다. 가슴은 살짝 심박수가 증가함이 느껴졌고 두 눈가에 열기가 느껴졌다. 곧이어 뜨거운 뭔가가 눈을 뚫고 나와 볼을 적셨다. 오페라 극장에서 질다와 리골레토의 듀엣을 들으며 눈물을 쏟은 이후 처음으로 울컥 올라 오는 음악적 감동의 반응이었다. 그 때 나도 모르게 어두운 가운데서도 그 때의 감동을 남기고 싶어 메모지에 낙서해 둔 것을 여기에 옮겨볼까 말까 고민 아닌 고민을 좀 했다. 남들이 보면 쪽팔리고 그렇다고 안적어 두자니 추억이 희석되 잊혀질 것 같고....
아주 작은 한 여자가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아주 작고 평범했다. 어깨까지 드리운 생머리, 큰 눈망울, 메마른 뺨 아래에 살짝 길게 아래로 모아진 턱. 아무리 보아도 작고 평범하다. 희미한 조명을 뚤고 기타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희미한 조명과 기타 연주를 뚫고 이 곳에 앉아 귀기울이는 사람들의 가슴에 무언가를 뿌린다. 작게만 보이던 그녀가 갑자기 커졌다. 세상에서 그녀가 가장 아름다워 보였다. 영혼의 울림으로 보아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람의 가슴을 뭉클하게 잡아 당길 수가 있을까. 가슴이 울렁거린다. 뜨겁다. 뭔가 뜨거운 것이 내 안에서 솟구친다.지금의 이 순간을 감당하기 쉽지 않다. 한 쪽도 아닌 두 뺨에 지금 뜨거운 그 것이 흘러 내린다. 나는 그녀를 바라본다. 나의 디바여, 나의 마돈나여... 그대의 이름은 파두의 여신이라...
적어놓고 보니 역시 쪽팔리는군. 누군가 이 글 읽거든 웃지 마셈. ㅡ,.ㅡ;
나는 그녀의 노래 중 상당부분을 영상으로 담아왔다. 하지만 대부분 용량이 초과되어 찍어온 그대로이 영상은 올릴 수가 없었다. 그 중 하나 찍다 곡 자체가 파두 치고는 너무도 흥겹게 느껴져 감동이 덜해 찍다만 영상을 함 올려 보았다.
나머지 영상도 파일을 줄여 올려 보았더니 화질이 영 거시기하다.
1부 공연이 끝나고 그녀에게 다가가 노래에 감사를 표한 뒤 찬양 아닌 찬양을 했다. 그녀의 이름을 물어 정자로 써달라고 한 뒤 사진을 찍게 포즈를 취해 달라고 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일행 중 프랑스인 친구 올리비에르 녀석이 참견했다.
"그렇게 좋으면 그러지 말고 내가 찍어줄테니 함께 찍지 그래?"
그녀가 먼저 포즈를 취했다. 어색한 내모습과 표정이 지금 봐도 우스꽝스럽다. 그녀가 이름을 적어 준 수첩은 얼마 되지 않아 길에서 잃어버렸다. 언젠가 그녀의 음반이 나온다면 1번으로 살 생각이었는데... 그녀는 싹싹한 처자였다. 사진을 찍고 나서 그녀는 자신의 지인과 아무일 없었던 듯 다시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2부 공연에도 감동의 도가니는 계속 이어졌다.
그녀의 공연이 종료되었을 때는 아마도 새벽 1시가 훨씬 넘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공연이 더 있는지 인솔자에게 물었더니 한 명의 가수가 더 예정되어 있다고 했다. 우리가 마시던 샹그릴라는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커플과 나머지 한 남자는 숙소로 돌아가 쉬겠다고 갔고 남은 사람은 로렌스, 올리비에, 니콜라스, 인솔자, 그리고 나뿐이었다. 음료가 든 유리포트의 바닥을 확인한 로렌스가 물었다.
"어이 윤! 너 뭐 더 마실거야?"
"난 맥주! 돈 걷어 한 잔 더 하자구."
돈을 걷는데 잔돈이 없는 놈은 나뿐이었나? 로렌스가 내게 맥주를 사줬다. 얻어 먹기만 하는건 내 생리에 맞지 않는걸... 어쨌든 기다린 보람이 있어 다시 공연이 시작되는지 최소한의 조명만 남겨 놓고 다시 파두 가락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어디에도 가수는 없었다. 전주가 끝나고 노래가 시작되자 두 사람의 연주자 앞에 서서 주머니에 양손을 어렵게 찔러 넣은 콧수염의 뚱뚱한 대머리 아저씨의 입에서 노래가 흘러 나왔다. 나는 그 때까지도 그 아저씨가 가수일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두툼한 콤비와 무릎 나온 바지를 입은 이 아저씨는 무척 서민적인 모습이었고 인상이었다. 하지만 그의 노래는 역시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그들 파두의 음악이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것은 그네들의 감성이 상당부분 우리네 감성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사실 우리의 예술에 한을 머금었듯이 수많은 세월의 식민지와 침략 그리고 이웃 나라에 통합되는 아픔을 겪고 오랜 세월 한을 품은 그들이 내는 음악에는 우리와 공통 정서인 한이 어려 있고 이 것이 우리네 한국인들의 감성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 아닐런지... 그렇기에 진지하고 슬픈 이 파두 음악을 들을 때는 환호를 하거나 휘파람을 부는 일이 거의 없으니 이런 상식 정도는 알고 가야 한다. 노래가 끝나고 치는 박수도 조용하고 진지하다.
아저씨는 단 두 곡을 부르고 난 뒤 앵콜을 부르기도 전에 몸을 돌려 문을 열고 휙 나가버렸다. 이거 지나치게 쿨하신게 아닌지... 그의 노래를 더 듣고 싶었지만 너무나도 큰 아쉬움을 그냥 삼켜야만 하니 아쉬울 수 밖에... 난 이때까지 남자가 부르는 파두 음악은 처음 들어봤다. 남자가 부르면 슬픔과 한의 정서가 반감되자 않을까 했지만 왠걸. 포르투갈을 떠날 때 남자 파두 가수의 음반을 샀어야 했는데 나는 그 생각을 못하고 한국에서도 흔한 마리사의 데뷔 앨범을 사오고 말았다. 훨씬 비싼 값을 치루고 말이다. 이그~~~! 바보야.
한 잔 더 마시며 다음 공연을 기다리자고 했더니 인솔자는
"새벽 세시까지 기다릴 수 있어?" 하고 물었다. 약간 당황해하는 일행을 두러보며 인솔자가 제안했다.
"내가 아는 카페가 하나 있는데 파두 음악은 아니고 락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곳이지. 어때?"
여기까지 와서 락음악이라... 내가 다른 파두 카페로 가보자고 할까 하다 주위 눈치를 보니 로렌스가 먼저
"좋아 좋아 가자구. 어디야?" 하며 일어났다. 올리비에르와 니콜라스도 얼떨결인지 동의한건지 어정쩡하게 일어나며 말했다. "그러지 뭐." 하며 덩달아 말했다. 나도 얼결에 내뱉었다. "그러지 뭐."
가서 보니 아주 작은 카페였고 분위기도 평범하지만 아담한 곳이었다. 그 안에서는 특정 음악인의 노래와 연주가 아닌 함께 객들끼리 한 잔 하며 함께 노래 부르는 희한한 곳이었다. 이 곳에 도착하자 왠지 모르게 쿠바의 분위기가 풍기는 카페인듯하고 주인장 부부도 왠지 쿠바와 관련이 있어 보였다. 물어보지는 않았다. 인솔자는 이들 주인장 부부와 막역한 사이었던 것 같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노래를 부르던 이들이 하던 음악은 역시 락이었다. 에릭 클랩튼의 코케인이나 핑크 플로이드의 샤인 온 유 크레이지 다이어먼드 같은 고급 락을 어줍잖게 부르고 있었지만 못봐줄 정도는 아니어서 함께 즐길만 했다.
로렌스도 인솔자도 이따금 락음악을 시도했다. 넉넉한 인심의 주인장 부부는 이따금 객들의 음악에 반응하곤 했다.
여기서 로렌스가 데킬라와 와인을 돌린 뒤 계산을 해버렸다. 이 친구도 친구 사귀는걸 어지간히 좋아했던 모양이다.
"야! 아까 네가 산 맥주 지금 갚아야 되는데?" 했더니 웃으며 괜찮으니 걍 마시란다.
신세 지기 싫어하는 나도 그 자니 비워지자 데킬라를 한 잔씩 돌렸다. 이러다 보니 돌아가며 사게 된다. 왼쪽에 기타치는 친구가 로렌스, 가운데가 니콜라스, 그 옆이 올리비에르다. 이들 두 프랑스인들은 일행과 함께 어울리는데 어지간히도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짧은 머리에 두 남자면 휴가 나온 군인인건지(프랑스는 우리와 같은 의무병역제이니 그리 생각하는것도 무리는 아닐테지. EU안에서는 국경을 넘어도 국내처럼 인식되고 있으니 운신도 자유로울테고...) 아님 동성애자인건지 모르겠지만 함께 섞였을 때 주변인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 곳에서 쉬이 친해졌다. 대략 새벽 02:30이 넘은 시간까지 여기서 놀았던 것 같다.
음악을 연주하며 노래는 사양하는 로렌스군.
어정쩡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연주하고 노래하는 커플과 우리 일행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