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이베리아4-2(리스본)
2011.1.20(목) 계속
수도원에서 길건너 테주 강변 쪽으로 나오면 발견기념비가 있다. 해양강국으로서의 기초를 쌓는데 크게 공헌한 엔히크 왕자를 기념하여 1960년에 세워진 설치물이라 하니 생긴 모양새 보다는 오래된 셈이다. 맨 앞쪽에 서있는 이가 엔히크 왕자이고 기사, 천문학자, 선원, 선교사가 차례로 서 있는 모습이라고 하는데 여기엔 마젤란, 바스쿠 다 가마, 콜룸부스 등 개척사에 중요한 획을 그은 인물들이 있다고 한다. 누가 누군지 알 턱이 있나. 걍 보는거지. 이 안에는 엘리베이터가 있고 비디오 상영관이 있다고 하는데 이 곳은 그저 지나는 길에 있으니 인심쓰고 봐준거지 돈까지 내가며 들어가 볼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아 벨렘 탑으로 바로 가기로 했다.
테주 강은 워낙 거대해서 이 곳이 강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바다라는 착각을 자주 일으킨다. 하기는 이 강은 1,008킬로미터로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긴 강이며 강폭도 놀라울 정도로 넓어 모르고 보는 사람이면 바다로 잘못 알기 쉽다. 벨렘탑으로 도보이동하며 뒤돌아 찍은 발견의 탑 사진.
이걸 해협이라고 하지 누가 강이라고 생각하겠나. 저 멀리 4월 25일의 다리가 보인다. 이는 2,278미터의 현수교인데 테주강을 가로지르는 이 다리는 최초 건설당시의 독재자 '살라자르의 다리'로 명명하였으나 1974년 포르투갈 혁명 쿠데타를 기념해 4월 25일의 다리로 개명해 부르고 있다고 한다.
가는 길에 가지런히 정박된 요트도 보인다.
이 곳이 벨렘탑이다.
이 탑은 항구를 지키기 위해 마누엘 1세가 세운 탑으로 요새로 사용되었다. 이 탑이 서 있는 곳이 태주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이다. 브라질과 인도를 오가며 통관 절차를 밟았던 곳이기도 하며 바스쿠 다 가마가 이 탑에서 인도를 향해 출발한 바 있다고 한다. 1983년에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 한 층 한 층 올라가 봤다. 여기서 밖을 내다 보던 두 여인네가 사진을 찍어 달라길래 찍어 줬더니 나보고도 포즈를 취해 보라며 찍어준 사진이다.
그다지 크지 않은 탑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먼 곳까지 내다 보인다.
마누엘 양식은 바로크 양식 못지 않게 장식적이지만 내 보기에 우아한 모습은 없고 무척 투박한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강인한 인상을 갖게 하는 것 같다. 왠지모르게 견고하다는 인상도 있어 안정감도 느껴진다.
공간 절약형 급하강 원형 계단이다. 빙빙돌며 내려가다 보면 굴러버릴 위험성도 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바이샤 지구로 이동하며 다시 본 공원과 수도원.
바이샤 지구로 돌아와 많은 사람들이 있어 호기심에 들어가 본 레스토랑이다.
이 곳에서 바칼라우(대구) 요리를 맛보기 위해 메뉴판을 뒤져 보았다. 종업원에게 추천메뉴를 물어 받은 것이 아래 사진의 요리다. 바칼라우 브라스(Bacalhau Braz)라는 요리(6.5유로)인데 대구살을 계란에 입혀 튀긴 요리같다. 맛에는 특별히 잔재주를 부리지 않고 양념도 소금 이외에는 쓰지 않은 듯하다. 처음엔 밋밋하다고 느껴졌던 이 요리가 씹으면 씹을수록 재료 자체의 맛을 극대화한 정직한 맛에 녹아든다. 자그마한 와인(Albernaona)도 한 병(3.5유로) 주문했다. 내가 좋아하는 탄닌은 비교적 적은 편이었지만 잔향이 비교적 길고 싫어하는 신맛이 약해 즐길만하다. 시키고 나니 서비스로 주는 올리브와 스페인에서 맛 본 것과 같은 소시지 그리고 소박한 상추 샐러드도 보인다. 나는 이 번 여행에 올리브에 맛이 들어도 단단히 든 것 같다.
바로 옆자리에는 노인들이 앉아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계셨는데 그 교양 있어 보이는 이 노인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나도 은퇴하면 이렇게 친구들과 모여 이렇듯 여유롭고 한가하게 즐기는 모습이 나의 이상적인 노후라고 생각되기 때문이었다. 카메라 액정화면을 위로 당겨 들여다 보고 슬쩍 찍었는데 한 어르신이 눈치 채셨는지 자꾸 쳐다 보신다. 이 분은 수전증을 앓고 계셨다. 어르신들 건강하십시오.
이 사람은 주인인지, 지배인인지, 종업원인지 모르겠지만 친근하고 싹싹한 사람이었다. 서민적인 분위기의 식당 치고는 깨끗하고 분위기도 우아한 편이었다. 실내는 이들이 좋아하는 아줄레주로 장식했다. 와인 덕에 살짝 알딸딸해진 나는 그냥 앉은채로 뭉개고 싶어 후식으로 에스프레소를 한 잔 주문해 천천히 향을 즐기며 마셨다. 노인들의 대화내용은 알지도 못하지만 그들의 모습이 너무 좋아 이따금 바라보곤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받은 서비스가 좋아 싹싹하고 친근한 그 종업원에게 2유로를 팁으로 주고 나왔다.(13:48)
뒤쪽 겨 경사진 길로 아무 생각 없이 올라가 봤다.
곳곳에 운치있는 노천카페와
광장들이 나오는데 이 곳은 어째서 가이드 책자에서 빠졌는지 모를 정도로 우아하고 걷기에 좋은 거리였다.
리스본에서 인기 있는 교통수단이라는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로 가봤다. 거대 엘리베이터만 떨렁 하나 있는 곳이지만 나름 관광 명소다. 나름 말이다.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엘리베이터를 운영하는 직원 두 사람만이 수다를 떨 뿐 사람도 없다. 슬쩍 찍어 봤지만 역시 들통났다. 이거 쉽지 않은걸. 차라리 허락 받고 제대로 찍을걸 잘못했다. 바깥의 철재틀과 달리 내부는 나무로 내장 마감했고 의자는 벤치식으로 사방을 둘렀다. 널찍한 내부에 어느정도 사람이 차야 올라간다. 이 엘리베이터는 저지대인 바이샤 지구와 고지대인 바이루 알투 지구를 잇는 교통수단이다. 하지만 굳이 돈들여 이걸 타고 올라갈 필요는 사실 없다. 교통카드를 갖고 있으면 무료지만 그게 없으면 돈낸다. 살짝 경사진 길을 걸어 가도 되는데 돈들일 필요가 있을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더 올라가면 전망대도 있는데 이 것도 돈낸다. 나라면 총알맞고 헤롱거리는 정줄놓 아니면 안간다. 사실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으로는 이후 들렀던 상 호르헤 성이 훨씬 멋지다. 아래의 사진에 로시우 광장이 내려다 보인다.
걸어서 뒤로 돌아 내려와 아우구스타 거리를 통해 코메르시우스 광장으로 가봤다.
이 광장은 리스본에서 가장 큰 광장으로 주말이면 화가들의 작품과 행위예술가들의 퍼포먼스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날은 평일인데다 이른 오후 시간이라 비교적 한산하다. 이 곳은 대지진 이전에 마누엘 1세의 궁전이 있었던 터여서 궁전광장으로 불리기도 한단다.
아래의 문은 개선문이라고 하는데 대지진 후 재건을 진두지휘했던 폼발 후작과 대항해의 주역 중 한 명인 바스쿠 다 가마의 조각이 있다고 한다. 좌우로 인물상이 각각 하나씩 있는데 누가 폼발이고 누가 다 가마일까...왠지 왼쪽 인물의 복장이 대항해 시대의 복장일 것 같고 오른쪽은 비교적 오래지 않은 복장처럼 보이니 지레짐작 함 해 본다. 아님 말구.
이 곳은 패션디자인박물관이라고 한다. 원래 가고자 했던 곳은 아닌데 길가다 눈에 띠어 인심 쓰고 함 들러봐 줬다. 글쎕쇼... 안에는 가구와 텍스타일 등 각종 생활 관련 디자인물이 전시되어 있는데 내가 디자인을 이해하지 못하는건지 몰라도 눈에 들어 오는 물건은 하나도 없다. 역시 인심을 너무썼군. ---> 이거 내 기준임.
나는 이 곳을 벗어나 28번 트램을 탔다. 카테드랄로 가기 위해서다. 젠장. 워낙 가까운 거리라 걸어서 가도 될 뻔했다. 카테드랄은 역사의 무게에 시달렸는지 외관이 매우 낡았다. 그 앞으로는 나를 방금 태워 준 트램이 쭐쭐거리며 꼬불꼬불한 언덕을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얼핏 보고 좌우 대칭인 줄 알았는데 가만히 보니 좌우 종탑의 모양이 좀 다르다. 왜그랬을까. 넘 똑같으면 재미없어서? 파사드는 아예장식도 없어 다른 카테드랄에 비하면 좀 밋밋하지만 오랜 세월과 풍파를 감내해온 이 성당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실제도 견고하고 안정감 넘치는 이 커테드랄은 1755년의 대지진 와중에도 살아남아 그 참상을 지켜 봤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 봤다.12세기에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리스본을 탈환한 알폰소 왕이 1147년에 건축한 건물이라고 한다. 만일 이 건물이 고딕양식이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 같다. 이 건물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벽과 기둥이 무척 두텁게 지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다양한 양식이 혼재한다. 카테드랄 입구 상단의 원형 스테인드글라스는 영락없는 고딕양식의 일부분이고 제단을 둘러싸는 천장과 벽면은 영락없는 바로크 양식이다.
벽면과 기둥이 굵직한 걸 보면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이름하여 짬뽕건축양식이랄까. 한 켠에 놓여진 피에타상이 아들을 잃은 마리아의 인간적인 슬픔을 전해준다.
다양함이 혼재하는 건축양식도 흥미가 있지만
이 곳의 스테인드글라스 역시 적지 않은 구경거리를 제공한다.
2층으로 올라가면 박물관이 있는데 고위직 사제들이 입던 제의와 성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화려함, 섬세함, 럭셔리함은 당시 성직자들의 권력과 권세를 가늠케 한다. 원래 사진을 찍으면 안되는 곳인데 무심코 한 장 찍고 나니 카메라 금지 사인이 눈에 들어온다. 2충엔 아무도 없으니 찍어도 누구 하나 뭐랄 사람은 없지만 착한 내가 그럼 안돼지. 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