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11 스페인·포르투갈

하이 이베리아3-2(바르셀로나→리스본)

코렐리 2011. 2. 25. 16:42

2011.1.19(수) 계속

폐쇄된 구엘저택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람블라스 거리로 나왔다. 거리에는 행인들의 시선을 잡는 두 사람의 행위예술가(?)가 있었다. 온 몸에 흰색 칠을 하고 변기위에 바지 벗고 앉은 사람과 시커멓게 온 몸을 칠한 카우보이가 그들이다. 그들은 미동도 하지 않은채 이따금 구경꾼들이 보내는 손짓에 반응해 눈동자만 움직이는 것이 고작이었다. 젊잖은 영국풍 신사복을 입은채 바지는 벗어내리고 변기에 앉아 신문을 뒤적거리는 폼을 한 하얀칠의 사람은 상당히 많은 인기를 얻고 있었다. 행인과 관광객들의 카메라가 그들을 담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띠고 앞에 놓은 통에는 사진 찍은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동전이 적지 않게 담겨있었다. 여성 관광객이 그 옆으로 다가가 함께 사진을 찍으려 하자 변기맨의 눈동자는 바로 옆에 포즈를 취한 여인을 향하며 살며시 미소를 짓더니만 입으로 푸짐한 방귀 소리를 냈다. 여자는 순간 코를 막았다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이기지 못해 몸을 틀며 웃음을 뱉어냈다. 구경하던 행인들 사이에서도 웃음보가 터졌다. 나도 사진을 찍으려고 보니 마침 동전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 사람 하나 찍자고 5유로짜리 지폐를 쓰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면전에서 공짜 사진을 찍어 짠돌이 동양인의 인상을 심어주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자리를 살짝 떠 뒤쪽에서 살며시 찍었다. 나도 참 도둑놈이다. ㅡ,.ㅡ; 아래의 사진 중앙에 변기맨의 능청한 모습이 보이고 그 오른쪽으로는 카우보이맨의 시커먼 배경이 설치되어 있다. 그 앞에 포즈를 취한 카우보이는 사진에선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인기가 전혀 없었다. 컨셉을 잘 못 잡은 것 같다. 하지만 측은하게 볼 필요도 없다. 바로 옆에 함께 퍼포먼스를 하는걸 보면 두 사람이 일당인게 틀림없었다.

 

나는 이 람블라스 거리에서 점심을 먹은 뒤 공항으로 갈 참이었다. 이 식사가 카탈루냐 지방에서의 마지막 식사인만큼 이 지방의 음식으로 먹을 참이었다. 하지만 이 곳은 내가 원하는 요리를 하는 레스토랑 보다는 바르(Bar)가 많은 거리였다.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 바르에 들어가 전시된 메뉴 중 사르수엘라(Zarzuela)를 찾아 보았다. 사르수엘라란 생선, 홍합, 오징어, 새우 등 해물요리로 약간의 국물이 담겨진채 함께 제공되는 요리였다. 이 곳 카스티야 지방은 지중해를 면하고 있어 해물 요리가 많은 편이다. 하지만 이 집에는 그 메뉴가 없었다. 거리도 좀 걸어볼 겸 슬슬 걸어 분위기가 끌리는 레스토랑을 찾기 시작했다. 레스토랑을 찾기도 전에 먼저 발견된 것은 바로 시장이었다. 여행중에 시장을 마주쳐 그냥 지나본 적이 없는 내게는 반가운 구경거리였다. 이 것이 정말로 시장인지 의아할 정도로 깔끔하다.

 

들어가 보니 모든 농작물과 수산물이 볼만하게 전시되어 있는데 그 정도가 예술에 가깝다. 견과류 가게

 

과일가게

 

야채가게

 

해산물 코너

 

평일 이른 오후라 그다지 번잡하진 않지만 나름의 활기를 머금은 곳이었다.

 

 

축산물 가공품 코너도 먹음직한 햄과 소시지 그리고

 

색색의 치즈가 보는 이의 눈을 통해 미감을 자극한다. 먹음직한 치즈의 깔끔한 진열은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 그 자체다. 육류 가공품과 치즈는 사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들었지만 그나마 작게 남은 배낭의 공간 안에 이 것들을 채워 뭘 할 것인가 따져 보고는 생각을 접었다.

 

 

시장 중앙의 저쪽 끝에는 간이 바르가 있어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고 유혹했다. 나도 그 유혹에 굴복하고 일단 앉았다. 이 곳에서 간단하게나마 식사를 하고 갈 참이었다. 하지만 이 곳에는 사르수엘라도 없었고 뭔가 식사가 될만한 만족스런 먹거리는 없었다. 그저 맥주 한 두잔에 곁들일 음식들 뿐이었다. 빠에야가 있는지를 물었지만 역시 없었다. 배가 고픈데다 곧 비행기를 탈 참이라 빈 속에 맥주를 마시고 대로에서 화장실을 찾아 다닐 생각은 없었다. 나는 곳 자리에서 일어나 시장 밖으로 나왔다. 

 

나는 오다 가다 보아 둔 식당 중 하나를 떠올렸다. 지금 이 순간에는 식사를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고 비행 전까지 시간이 남아 있었다. 나는 산 자우메 광장을 다시 지나 피카소 박물관 방향으로 걸었다. 이 곳을 지나며 다시 든 생각은 광장은 굳이 찾아다닐 필요 없이 저절로 찾아내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이미 봐두었다는 식당이 바로 이 곳이었다. 이 곳에는 쌀요리인 각종 빠에야가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어 식욕을 돋구는데다 주변 다른 식당 보다는 안에 사람도 제법 있는 편이었다.

 

이 곳에서 주문한 음식은 오징어 먹물 빠에야와 맥주. 빠에야는 이슬람의 지배를 받으며 전래된 쌀이 이지방 특유의 요리법으로 발전한 것인데 납작한 남비에 쌀을 넣고 기름을 이용해 조리된 일종의 밥요리였다. 안에 들어간 재료에 따라 메뉴가 천차만별로 갈라지는데 내가 주문한 오징어먹물 빠에야(Arraz Negro)에는 시꺼먼 오징어먹물 색깔이 물든 밥 속에 새우와 홍합, 오징어 같은 해산물이 함께 들어가 입안에 퍼지는 풍미가 가득하고 맛이 풍부하다. 음식을 먹으며 나는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떠는 두 여인 중 한 여인을 이따금 훔쳐 보았다. 두 여인의 수다는 쉬지않았지만 시끄럽지는 않았고 알아듣지 못하는 수다의 내용은 그다지 고상하고 품위있는 내용은 아닐거라는 지레짐작을 해봤지만 이는 아줌마들에 대한 선입감인지도 모른다. 그 중 이따금 훔쳐 본 여인의 외모는 내 기준엔 정말 환상적인 정도였다. 앉아 있었지만 170은 좋이 되어 보이는 훤칠한 키에 갈색 머리와 섞인 금발을 묶어 올린 머리칼 아래로 새하얀 서양인의 얼굴에 동양인의 눈을 가진 여인이었다. 결혼반지를 낀 여인을 이렇게 넉놓고 쳐다 보는 것도 처음인 것 같다. 그녀들은 내 눈길은 의식 조차 못할 정도로 수다에 집중하고 있었다. 맥주를 한 컵 더 들이키고 살짝 달근해진 나는 에스프레소를 한 잔 시켜 자리를 뭉개고 앉아 커피향을 즐겼다. 공항으로 가기 위해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온 나는 지하철 역으로 갔다.

 

지하철을 타고 산츠 에스타시오 역으로 가 공항으로 가는 렌페(Renfe)로 갈아타고 프라트 국제공항으로 갔다.

 

공항에 도착해 이지젯(Easyjet)항공의 부스를 찾아 보았다. 공항 메인 청사로 가 부스를 찾아 보았지만 도대체 눈에 띠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청사 밖으로 나가 어느 방향으로 쭉 가라고 한다. 일러준 방향으로 가면서도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을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적잖은 거리를 걸어야 했다. 걸으며 약간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유 있게 두 시간 전에는 발권부스에 도착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데다 그 널찍한 공항에서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이 맞는지도 살짝 의심까지 들었기 때문이었다. 공항의 끝부분이라고 생각되는 한 구석에 드디어 이지젯 부스가 있는 자그마한 청사가 나타났다. 예약번호를 내밀자 잠깐 사이에 표를 내어 준다. 나는 출입국 절차가 없을거라고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생각 이상의 간단한 수속에 놀랐다. 유럽연합의 국가들끼리는 한 번 회원국에 입국한 사람이 다른 회원국으로 갈 때는 비자를 면제하는 협정이 맺어져 있기 때문이었지만 제주도로 갈 때보다 더욱 간단한 절차로 인해 시간은 1시간 30분 이상 남게 되었다. 

 

탑승구로 가 음료수를 사서 테이블에 앉아 있으려니 얼마 후 내가 탈 리스본행 이지젯 항공기가 머리를 들이대고 승객을 태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남는 시간동안 가이드북에 나온 포르투갈의 역사를 다시 읽어 보았다. 오래전의 포르투갈 역사는 스페인과 그 궤를 대부분 같이한다.

이슬람 세력을 축출하는 레콘키스타 과정에서 남부로 영토를 확장하던 중 1249년 알가르베(Algarve)지역 전역을 통합함으로써 현재의 포르투갈 국경의 기초를 형성하였다고 한다.1415년 북부 모로코의 북부 해안 도시인 세우타(Ceuta)를 점령하면서 포르투갈 역사상 가장 찬란한 대항해와 식민지 개척의 시대가 열린다. 인도 항로의 발견, 아프리카 연안 조사, 브라질 발견 등 항로 개척과 더불어 식민지 개척과 무역 활동이 활발해져 엄청난 부를 축적하게 되고 스페인과는 경쟁관계가 더욱 강화된다. 1494년에는 스페인과 국가간의 영토분할을 골자로 한 토르데시아스(Tordesihas) 조약을 맺게 된다. 1578년 세바스찬 왕이 원정 중 전사한 뒤 스페인 카스티야 왕국의 펠리페 2세의 포르투갈 침공과 1668년 리스본 조약으로 완전히 독립을 완성해 낼 때까지 스페인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18세기에는 브라질로부터 들여오는 황금과 다이아몬드로 재정이 튼튼해졌으나 이후 왕가의 지나친 사치로 국가는 재정적 파탄을 맞는다. 나폴레옹의 침공과 1916년 1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국가는 더욱 피폐해졌다. 이후 1928년 단일 후보로 대통령이 선출되었고 1955년에는 유엔에 가입하며 국제사회에 더욱 다가갔지만 독립을 하려는 식민지와의 전쟁이 13년동안이나 지속되었다. 모잠비크, 카보베르데, 상투메프린시페, 앙골라 등이 독립해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를 벗어났다. 1976년 신헌법 제정과 동시에 사회주의 체제를 도입하였고 1986년에 유럽연합에 가입했다. 3년 후에는 헌법 개정을 통해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하였고 1998년에는 유로화를 도입했다.

 

현재의 리스본 시내의 대부분 건물들은 1755년 대지진 이후 폼발 후작의 지휘 아래 정비된 것이라고 한다. 이 곳의 서쪽 끝에는 마누엘 양식의 벨렘탑과 제로니무스 수도원이 남아 있다. 

 

17:55에 탑승구를 떠나 리스본을 향해 이륙한 항공기는 두 시간의 비행 끝에 리스본에 내려 앉았다.

시차가 한 시간인 탓에 도착 현지시간은 저녁 18:55이었다. 공항을 빠져 나오는데도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리스본 공항에 도착하자 나는 곧 밖으로 나가 91번 공항버스를 타고 로시우(Rossio)광장 앞에서 내렸다. 로시우 광장은 리스본 시내 관광의 중심축이며 내가 가고자 했던 알파마 파티우 호스텔(Rossio Patio Hostel)로 가자면 이 곳에서 트램으로 갈아타야 했다.

 

내리자 마자 광장의 높은 탑이 눈에 들어 온다. 탑 꼭데기에 시내를 내려다 보며 서 있는 이는 동 페드로 4세라고 한다. 탑과 그 주변은 이미 어둠이 깔렸지만 조명을 받아 화려하고 우아한 도시의 분위기를 더욱 화려하게 만들어 놓았다.

 

광장에는 27미터 높이의 분수가 물을 뿜어내고 있다.

 

 

 

골목을 하나 지나면 피궤이라 광장(Praca da Figueira)이 있다. 광장에는 말을 탄 후안 1세(Joao I)의 동상이 서 있다.

 

이 곳에서 나는 28번 트램을 찾아 보았다. 다른 여러 번호의 트램 정거장은 보이지만 28번 트램은 보이지 않았다. 얼핏 지나가는 트램을 보고 나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낭만적인 모양새의 구식 트램을 타보고 싶었지만 이제까지 그 어디에서도 그렇게 멋진 트램은 구경 조차도 못해 봤다. 그런데 이 곳에서 구닥다리 트램을 보니 반갑기 그지 없었다. 게다가 지금 막 지나간 그 트램이 바로 내가 타려던 28번 트램이었다.

 

 

그 트램이 막 지나간 정거장에 가 정차 교통편을 보니 역시 28번 트램은 표기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28번 트램을 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간신히 타기는 했다. 올라 타기 전 기사에게 포르타 두솔 광장에 가는지를 물었다. 묵고자 했던 그 숙소가 포르타 두솔 광장에서 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약간 머뭇거리더니 올라 타라는 시늉을 했다. 나는 그의 태도가 왠지 석연치가 않았지만 일단 간다니까 올라탔다. 나중에 알았지만 가긴 가지만 이 곳에서 타면 반대방향으로 돌고 돌아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리기 때문이었다. 그 반대방향으로 가자면 다른 곳으로 가야 했지만 그는 영어로 그걸 설명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올라탄 트램 내부는 나무로 내장이 되어 있어 오랜 향기가 묻어났다.

 

트램 내에는 매력적인 사람들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사진으로 담고 싶었지만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에 불쾌해 할지 몰라 카메라를 위에서 내려다 보고 액정을 위로 향하게 만든 다음 그걸 이용해 살짝 찍어 보았지만 사진은 흔들렸다. 하지만 그 분위기를 이 사진으로나마 전할 수 있으니 반가울 뿐이다.

 

약 30분정도를 가자 사진으로 봐 두었던 카테드랄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이 곳에서 일단 내렸다. 반대 방향으로 왔다는 사실을 모르던 나는 이 카테드랄을 기준으로 금방 찾을 수 있었던 호텔을 빙빙 돌아 찾아내는데 어지간히도 애를 먹었다.

 

내가 이 곳 포르투갈에서 가장 마음 설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전통음악인 파두였다. 이 곳 알파마 지구에는 파두 카페가 많기로 유명하다. 헤매던 와중에 파두 카페가 간간히 눈에 들어왔다. 호텔은 나중에 찾고 파두 음악이 흘러 나오는 카페로 들어가 보고 싶은 유혹은 수시로 들었지만 그러지 않았던 이유는 이미 깊숙히 깔린 어둠이 숙소를 찾아야 하는 나로 하여금 약간의 초조함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휴식의 부족함을 걱정할 정도로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숙소를 정해놓고 짐을 풀어야 마음이 편해질텐데 배낭맨채 미로 같은 골목 한가운데서 숙소를 찾을 수 있을지 확신이 가지 않는 이 상황에선  그럴 수 밖에 없었다.

 

헤매느라고 지났던 아래 사진의 길에도 파두 카페가 보인다. 한편으로는 헤매면서도 바닥에 네모진 돌을 깔아 놓은 전형적인 유럽풍의 운치있는 이 거리가 걷기에 좋은 곳임을 부인할 수도 없었다.

 

한참을 헤맨 끝에 뚱뚱한 한 현지인 아가씨의 도움으로 찾아낸 이 호텔은 이미 내가 지나쳤더라도 호텔 표식이 눈에 크게 띠지 않아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곳이었다. 이 호스텔은 28번 트램을 타고 지나간 곳이었다. 한 번 출발하면 결국 원점으로 돌아오는 원형 노선이 반대 방향으로도 운행되기 때문이었다. 그 방향을 거꾸로 탔다는 사실만 알았어도 찾는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을 텐데 시간이 아깝다. 이 호텔을 찾는데는 1시간 가까이나 소요되었고 찾아낸 시간은 밤 21:00였다.

 

이 곳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가서도 연립 주택이 빽빽히 들어차 있어 약간 헤맸다. 입구를 못찾아 거기서 또 헤매는 나를 본 한 투숙객이 호텔을 찾느냐며 그 안에 설치된 또 하나의 대문을 가리키며 바로 이 곳이 입구라 일러 주고는 초인종을 눌렀다. 개인 주택의 대문인 줄 알고 있던 나는 이 투숙객 못만났으면 여기서 또 헤맬뻔 했다. 좀 이따 히피풍의 사내가 문을 열고 맞아 주었다. 리셉션은 넓지 않지만 따스하고 밝은 분위기였고 투숙객들이 이 곳에 앉아 대화를 나누거나 인터넷을 즐기고 있었다. 이 곳은 인터넷이 공짜다. 

 

사진속의 히피풍 사내가 문을 열어 주고 체크인을 도와 준 사람이었다. 컴퓨터에 익숙하지 못함 때문인지 아님 에러때문인지 프로그램을 이용해 체크인 처리를 하려던 그의 노력에는 비교적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도미토리에서 이틀을 묵겠다고 했더니 첫 날은 14유로, 이틀째 되는 날은 15유로라고 했다. 어찌된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일마다 숙박료가 다른 모양이었다. 5유로인가 10유로인가를 체크아웃 할 때 돌려 주겠다며 보증금으로 별도로 받았다. 

 

체크인 처리가 끝나고 내게 안내해 준 방은 아직 아무도 배정받지 않은 방으로 운 좋으면 혼자 쓸 수도 있는 곳이었다. 기분 좋은 출발이다. 결국 운좋게도 난 이 호텔을 떠날 때까지 이 방을 혼자서 썼다.

 

2층침대 두 개가 설치된 이 방은 깨끗하고 아담했으며 밖으로는 트램이 지나가는 철로가 보였다.

 

체크인을 도와 주었던 히피 차림의 사내는 친절하게 구석구석을 데리고 다니며 안내해 주었다. 리셉션 바로 바깥에 있는 운치있는 천막과 테이블들.

 

바로 옆 계단을 올라가면 알파마 지구의 시가지와 테주 강(Rio Teju)가 내려다 보이는 훌륭한 전망대가 있었다. 아래 사진은 전망대에서 뒤돌아 본 호텔의 정원과 천막인데 운치가 특별하다.

 

전망대에는 한 백인 남자가 나와 눈을 마주치고 인사하려는지 나를 계속 쳐다 보았다. 나중에 인사를 나누었던 그는 영국인으로 이 곳 포르투갈에서 영어 교사를 하고 있는 40세의 로렌스군이었다. 주방 겸 작은 식당에는 아침에 셀프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공개되어 있고 냉장고에는 각종 음료와 샌드위치가 있어 알아서 저금통에 값을 치르고 알아서 꺼내 먹도록 되어 있었다. 느낌부터가 신선한 곳이다. 나는 샤워부터 마친 뒤 늦은 시간이라 샌드위치(2.5유로)와 맥주(1유로)로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마쳤다. 식당을 찾아 나가기도 귀찮고 그저 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저렴하게 저녁 식사를 마친 나는 한동안 공짜 인터넷을 즐기다 잠자리에 들었다. 기분좋은 밤에 독방 아닌 독방에 혼자 누워 편안하게 밤을 보낼 수 있으니 여행중에 피곤할 때 얻을 수 있는 가장 행복한 호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