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학연수13-2
2010.7.7(수) 계속
태호석으로 만든 두이슈산이라는데 중국의 정원중 곳곳에 이 태호석을 이용해서 꾸며놓은곳이 있다고 한다. 아무리봐도 정감가지 않는다. --->라고 말하는데 내가 보기엔 재미만 있구만... ㅋㅋ
셋이서 포즈를 잡고 함 찍어 봤는데 어둡게 나왔다.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 궁 밖으로 쫓겨나는 유모를 절규하듯 부르며 뒤따라 달려 가던 그 곳인 것 같다.
다시 입구로 되돌아가 짐을 찾은 뒤
자금성을 둘러싸고 있는 해자를 빙 돌았다. 5년 전에 왔을 때는 내부만 보고 다른 곳으로 갔는데 이 번엔 해자와 밖에서 보이는 고궁의 모습은 그 덕에 구경했다.
고궁의 후문과
경산공원의 입구가 있는 곳으로 걸어 갔다.
"몽골족의 수도 대도는 명 초기에 파괴되고 영락제는 원나라의 궁전터인 대내(大內)에서 조금 남쪽으로 이동해서 새로이 자금성을 지었다. 그런데 남쪽으로 이동한 결과 대내의 후궁인 연춘각(延春閣)은 자금성의 북쪽 성벽에 놓이게 되었다. 당시의 설계자는 계획적으로 이 점을 이용하여, 새로이 호성하를 팔 때 나온 진흙을 연춘각의 옛터에 쌓았다. 전 왕조의 기운을 누른다는 의미에서 이곳에 산을 만든 것이고, 그 때문에
'진산(鎭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정식명칭은 '만세산(萬歲山)'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지금의 경산이다. 명대에 자금성을 만들 때 이곳에 석탄을 쌓아놓았기 때문에 매산(煤山)이라고도 부른다."
[출처:임중혁 교수의 중국 역사 이야기 스무날 동안의 황토 기행중에서]
신무문과 마주하고 있는 경산공원에는 처음이다. 길만 건너면 되었는데 세 번째만에 자금성을 내려다볼수 있게 되었다. 북경의 경관 중 최고라고 할수 있는곳이라는데 그건 인정할수 없을것 같고...
이 곳에 서서 고궁을 내려다 보면
그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데 안에서도 이미 느꼈던 거지만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기분 나쁜 이야기지만 중국의 사신이 오면 거드름을 피우던 이유를 이 곳 고궁의 규모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경산공원에서 나온 우리는 밤기차를 타기 전까지 시간이 남아 택시를 타고 왕푸징으로 갔다. 5년 전에 한 번, 며칠전에 한 번 와보고 이 날로 세 번째다.
이 곳에만 오면 먹거리가 워낙 화려해 구경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날은 무슨 먹거리 축제라도 있는건지 대로면에 이런 먹거리 노점이 장사진을 치고 있어 다른 때보다도 더욱 볼만했다.
이 곳에서 파는 음식들 중 몇가지 꼬치를 먹어 보았지만 이날 초두부란 것을 처음으로 먹어봤다. 거무튀튀한 초두부를 튀겨 거무튀튀한 소스를 그 위에 뿌려준다. 거무튀튀하다기 보단 색이 분명치 않은 회색 같은 소스인데 썪은 도랑의 바닥찌꺼기를 연상시키는 지저분한 모양새다. 남들이 못먹는 음식을수록 도전해보고 싶어하는 내게 있어서는 먹어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뜀도령이 찍은 사진 속에 맛있게 먹는 내 모습과 역겹다는 듯 쳐다보는 찬바람의 인상이 대조적이다. 먹어 보라고 권하니 기겁한다. 맛만 좋구만...
뜀도령이 블로그상에서 투덜거린 말 --- 온갖 먹거리가 즐비하게 있고 아주 복잡하지만 그 복잡함과 사람들에게만 관심이 있을뿐 여전히 침은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코엉아님은 식성좋은 티를 내는지 썩은 두부같은 음식을 맛나게 먹었다. 혼자 맛있게 먹으면 될텐데 꼭 먹어보라는 친절함을 베푸는건 뭔 심술인지...
뜀도령의 썰렁한 포즈. 나도 따라서 해봤다. 뜀도령이 나보고 따라쟁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ㅡ,,ㅡ;
도대체 맛이 없어 보이는 떡볶이. 물과 고추장 외에는 아무것도 안쓴 것 같다.
왕푸징을 돌아다니며 대충 시간을 때운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베이징 서역 방향으로 갔다. 지도상에서 보자면 지하철 역에서 베이징 서역까지는 멀지 않아 보였다. 지하철에서 나와 길을 물으니 저 앞에 보이는 길에서 좌회전하면 금방 나온다고 했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기차역이 멀지 않다는 말을 들은 우리는 저녁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출발 시간으로부터 대략 한 시간 조금 넘게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저녁식사는 기차역으로 가는 코스에 아무 식당이나 나오면 먹을 참이었다. 시간이 좋은 식당을 찾아 다닐만큼 여유가 있지는 않았다. 리시엔셩이라는 프랜차이즈 식당을 발견했다. 맛은 둘째치고 내부가 깔끔하니 일단 이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나는 식당으로 들어가 음식을 주문했고 뜀도령과 찬바람은 열차 안에서 마실 맥주와 먹거리를 샀다. 음식이 나오자 곧 두 사람이 들어왔다.
좌회전을 하고 나면 곧바로 보일 줄 알았던 보니 베이징 역이 보이질 않았다. 그래도 가깝다니까 계속 걸으면서도 역이 눈에 들어 오지 않으니 조바심이 들기 시작했다. 길가던 사람에게 물으니 길 끝에 있다고 했고 길 끝은 보이지 않았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저 멀리 길 끝에 뭔가 보이긴 했지만 그 곳에 도착하면 아무래도 기차를 놓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세 사람은 길을 건너 버스가 되었든 택시가 되었든 일탄 타려고 했다. 이 곳에서 빈택시는 거의 보이지 않았고 차량도 뜸했다. 간신히 정거장에 들어서는 버스를 잡아탔고 겨우 한 정거장을 가서 내렸다. 일단 역앞에서 내리긴 했지만 길건너 베이징 서역은 규모가 보통 큰 것이 아니어서 안에 들어가더라도 헤매면 낭패였다. 우리는 허겁지겁 달려
역사 안으로 들어섰다. 시간에 약간의 여유를 두고 도착한 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시안행 열차에 올랐다.
우리의 객실로 가서 보니 현지인 일가족이 우리 객실을 장악하고 있었다. 우리는 객실이 맞는지 다시 확인해 보고는 이 객실이 그들의 객실이 맞는지 확인을 요구했다. 그들은 그제서야 꿈지럭거리며 안에 갖고 있던 짐을 들고 객실을 나오기 시작했다. 눈치로 봐선 일가족의 객실이 흩어져 있어 오는 사람마다 객실을 바꿔달라고 부탁할 참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일행 세 명이 한꺼번에 오니 부탁을 들어줄리 만무하고 실망감에 그제서야 꿈지럭거리며 몰아 놓았던 짐을 꿈지럭 거리며 들고 나오기 시작한 것 같다. 좀 어이가 없는 것은 아예 작정을 하고 출입문 위쪽 짐칸에까지 짐을 하나가득 쟁여놓은 상태였다. 그들은 일부 짐을 놓아둔 채 일부 짐을 들고 모두 나갔다. 우리에게 배정된 것은 아래층 침대 두 칸과 윗칸 침대 1개였다. 우리는 일단 아래 침대에 배낭을 내려놓고 기념 사진부터 찍었다.
흐믓한 표정의 찬바람 최철영군.
까칠한 표정의 뜀도령 최윤성군과 안친하지만 친한척 시도해 본 코렐리 윤상철군.
썰렁한 넘(찬바람), 까칠한 넘(뜀도령) 그리고 갠찮은 넘(물론 나지) 셋이 좁아터진 공간에 다 모였다. 생판 모르는 한 사람과 이 곳에서 밤을 보내야 하는 묘한 상황이다.
베이징 서역으로부터 시안역까지의 표는 같은 루안워(푹신한 침대칸) 객실이라도 배정된 침대가 윗칸이냐 아랫칸이냐에 따라 요금이 다르다. 아랫칸은 450위엔, 윗칸은 417위엔이었다. 나는 세 사람이 모이자 마자 제안했다. 구입한 표 중 2개는 아랫칸이고 1개는 윗칸이니 표를 아무것도 없는 뒷면으로 뒤집어 제비뽑기로 자리를 잡기로 했다. 윗칸으로 올라가는 사람은 그 차액인 33위엔을 돌려받는다는 금전적 이득이 있지만 불편을 감수하고 금전적 이득을 원하는 사람은 없었다. 찬바람과 뜀도령이 차례로 표를 뽑아갔다. 내 손아귀에 남은 마지막 표를 뒤집고 나자 "417"이라는 숫자가 대문짝만하게 보이는 느낌을 감수해야했다. 완전 좌절... OTL 연령 순으로 하자고 할걸 잘못했다. ㅡ,.ㅡ;
열차가 출발하자 우리는 수퍼에서 구입해 온 칭다오 맥주와 군것질거리를 꺼내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우리와 방을 같이 쓸 사람은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는지 한참만에야 돌아왔다. 가족 중 가장으로 보이는 30대 후반정도의 남자가 들어와 자기 자리인 2층 침대로 올라갔다. 나는 예의상 맥주나 같이 한 잔 하게 내려오라고 권했다. 그는 술을 마시지 못한다며 업드린 채 책을 보고 있었다. 조금 지나니 우리가 떠는 수다에 호기심이 생겼는지 함께 앉아도 되겠느냐고 묻는다. 나는 자리를 권했고 한국에서 가져간 백리향 초컬렛을 권했지만 역시 사양했다.
"중국에서 사시나요?"
"아뇨. 한국에 살고 있는데 베이징엔 단기 어학연수차 왔고 여학연수를 끝내고 친구들이 합류해 지금 시안으로 놀러 가는 중인데요."
그는 내가 중국어를 하는데 잔뜩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어디에서 공부했는지 얼마동안이나 공부했는지, 혹시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했는지 등을 물었다. 나는 그의 호기심이 그냥 외국인에게 느끼는 단순한 호기심인줄 알았다.
"내 여동생더러 오라고 해서 같이 이야기 좀 나눠도 될까요?"
나야 현지인과의 대화를 좋아하니 싫을 이유는 없었던 고로 찬바람과 뜀도령의 의견을 물은 뒤 조다고 했다.
그는 전화기를 들어 어딘가 전화를 했다.
"아무개니? 그래 난데, 나하구 같은 방에 있는 사람들이 한국에서 왔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중국어를 할 줄 알아. 너도 와서 이야기 좀 나눠보지 그래?"
조금 있다 여동생이 왔다. 그녀와 약간의 대화를 나누어 보고 여동생을 왜 챙겼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중국에서 곧 대학을 졸업할 예정인데 한국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하는 탓에 한국에서 대학원에 진학해 영화공부를 하고 싶단다.
"지금 나는 머시기 대학교에서 일하고 있는데 울학교에도 영화와 연극을 공부할 수 있는 대학원 과정이 있다"고 했더니 여간 반색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그러잖아도 한국 유학을 알아보려던 참이란다. 입학하려면 어떻게 헤야 하는지를 묻지만 내 업무가 아닌 탓에 알아봐 주겠노라고 했다. 내 명함을 주고 이메일 주소를 받았지만 여러 사람에게서 받은 이메일 중 어느 것이 그녀에게서 받은건지 표시를 해두지 않아 답변을 못해주고 있다. 나도 나이를 먹으니 치매인갑다. ㅡ,.ㅡ; 아쉬우면 먼저 이멜로 내게 연락할테지만 없으니 생각을 접은 모양이지.
옆에서 잠잠하던 뜀도령이 투덜거렸다.
"형은 중국어를 아니까 얘기 나누기가 재미있는지 몰라도 우린 뭐요?"
까칠한 뜀도령과 찬바람의 심심기를 달래주기 위해 간간이 통역 아닌 통역을 해 주었다. 나 통역할 정도의 실력은 아닌디? 그녀가 자기 객실로 돌아간 뒤 가장은 책을 보다 먼저 자겠노라며 자기는 신경 안써도 되니 마음껏 마시고 이야기 하라며 2층으로 올라가 책을 펴들었다. 수다면허(?)를 받은 우리는 맥주를 마시다가 부족해지자 비상용으로 준비해 둔 안동소주를 꺼내 마시기 시작했다. 반 정도 마신 뒤 나는 피곤해서 먼저 잤고 뜀도령과 찬바람은 술병의 바닥을 보고 할 일이 없어져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카이로로부터 룩소르로 가는 열차를 탔을 때는 공간도 좁고 창문도 열리지 않아 공기가 답답해 잠을 이루기 쉽지 않았지만 중국의 루안워 객실은 넓고 쾌적한데다 창문도 열 수있어 기분좋게 잘 수 있었다. 열차여행의 낭만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순간이었다. 뜁도령도 참바람도 이 번 열차여행에 무척 만족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