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여행13(카사블랑카)
2010.1.29(금)
시간상 사무실에 전화해 보려면 아침에 일어나(07:30) 당장 밖으로 나가봐야 했다. 유스호스텔 문이 잠겨 있었다. 08:00가 되어야 나갈 수 있다는 안내가 적혀 있었다. 엉성한 일본어로 내게 인사를 했던 남자가 사무실 앞에 있었다. 지금 나갈 수 있는지 물어 보았다. 그는 안된다고 했다. 전화걸기를 포기했다. 세면도구를 들고 세면실로 가려다 말고 입구를 보니 어느새 호스텔 문이 열려 있었다. 예정보다 일찍 문을 열었나 싶어 나갈 수 있는지 물었다. 나갈테면 나가란다. 근처에 공중전화기가 있었지만 전화가 걸리질 않았다. 해외전화에 취약한 기기였던듯. 다른 전화기를 찾아 봤지만 근처에는 없었다. 할 수 없이 돌아와 보니 이미 문은 다시 굳게 잠겨 있었다. ㅡ,.ㅡ; 일찍 열었던 것이 아니고 주인이 바깥일을 보기 위해 잠시 열어 두었던 모양이다. 다른 사람들의 아침잠을 방해하거나 주인에게 폐를 기치기 싫어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15분은 기다려야 할 상황이었다. 세면도, 양치질도, 아침식사도 못한 아침에 낮을 곳도 없는 밖에서 15분 기다리기란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어서 결코 짧다고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의외로 문이 바로 다시 열렸다. 문을 연 사람은 다름 아닌 엉성한 일본어 인사를 했던 그 주인장. 나를 보더니 찌그러진 인상에 짜증기를 섞어 내뱉듯이 물었다. "들어올거요, 말거요?" 어이가 없었다. 나는 말없이 들어와 "귀찮게 했다면 미안하다"고 말하고 들어왔지만 눈치는 뭐 이런 섀이가 들어와서 귀찮게 구나 하는 식이었다. 어이가 없고 불쾌했지만 똑같아지고 싶지 않아 내색하지 않았다. 씻고 나서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응접실 겸 식당으로 가 빵과 잼, 그리고 커피를 받아 들고 고맙다고 인사했지만 그는 들은척도 안했다. 신경 안쓰고 식사했다. 식사 후 식기를 반납하며 "맛있군요." 했다. 물론 빈말이었고 그는 역시 들은 척도 안했다. 일본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난 다음부터 달라지기 시작한 그의 태도는 심히 불쾌했지만 거기서 나까지 화를 내면 그날은 기분 잡칠 것 같아 참은 것이었다. 짐을 싸서 나가자 그가 그제서야 표정이 달라졌다.
"아니, 왜 더 묵지 그냥 가요?"
"새벽에 공항으로 가는 기차를 타야 하기 때문에 기차역 근처에서 묵으려고요."
"혹시 나 때문에 불편해서 그러나요?"
그는 나의 태도를 보고 내심 미안한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았다.
"아뇨, 아침에 규정을 일부러 어기려 한 것은 아니고 문을 일찍 연건줄 알고 나간 것이 폐가 될 줄은 몰랐네요. 급한 전화를 하느라고 그랬으니 이해해 주면 고맙겠네요."
그는 더욱 미안해 했다.
그는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09:00에 인사를 나누고 나왔다.
그나마 얼굴 붉히지 않고 나와 다행이었다. 사실 그의 머릿 속에 박힌 한국인에 대한 인상이 어떤 것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이걸 바꿔놓고 싶었다. 가끔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런 것들이 나로 하여금 속상함을 느끼게 하곤 한다. 나도 그 반대로 남을 이해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벽을 두지 않았는지 다시 생각해 볼일이다. 길을 떠난 나는 모로코에서 가장 크고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다는 핫산 2세 모스크(Hassan II Mosque)를 향해 걸었다. 적은 거리는 아니었지만 걷기 좋아하는 나의 취향과 튼튼한 두 다리, 그리고 볼거리가 길에 널려 있으니 이 아니 행복한 일인가. 모스크의 미나렛은 장애물만 없으면 워낙 거대해 멀리서도 똑똑히 보였다.
코 앞 현장에 도착하자 그 어마어마한 규모에 압도되고 말았다. 우뚝 선 미나렛도 그렇고 사원의 건물도 웅장했지만 그 섬세함과 아름다움은 이전에 보았던 훌륭한 사원 어디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사원 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10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하루 두 번의 입장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왔는데 9시에 이미 한 차례 관광객들이 들어간 것 같았다. 오후 두 시에 다시 한차례 관광객 입장이 허용된단다. 그 시간까지 어딘가 가서 시간을 때우고 와야 했다.
나는 우선 사원 외부부터 하나하나 뜯어보기 시작했다. 아라베스크형 아치문은 굳게 닫혀 있지만 밖에서도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문과 아치 윗부분에는 커다란 갭이 있어 안의 거대한 샹들리에가 얼핏 보였다.
핫산 2세 모스크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와 메디나에 있는 모스크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사원이다. 핫산 2세 전 국왕이 국민의 성금으로 1987년부터 1993년까지 6년에 걸쳐 건설했다고 한다. 대지면적은 약 19800 제곱미터이며 동시 수용인원은 2만 5천명이 넘는다. 여자 기도실까지 포함할 경우 2만 9천명까지 수용이 가능하다. 미나렛의 높이는 세계 최고이며 실내에는 모로코 전통 젤리지 10000 제곱미터, 석고 67000 제곱미터, 목재 53 제곱미터가 사용되었다. 이 건설에 참여한 모로코 장인들은 자그마치 3300여명. 안식일인 금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0시, 11시, 오후 2시에 각각 투어가 있다고 책자에 기록되어 있지만 내가 갔던 날은 아마도 단 두 번 뿐이었던 모양이다.
이 곳에 들어가면 모로코에서 유일하게 들어가 보는 모스크가 될테니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당장 안으로 들어가 보지 못하니 바깥에서 충분히 봐두려고 노력했다. 외부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넋이 빠질 지경으로 웅장하고 화려하고 우아하고...
시간이 남으니 메디나부터 가보기로 했다. 사람들에게 물어 105번 버스(4디람)를 타고 메디나 입구에서 내렸다.(11:30) 버스에서 내려 행인들에게 물어 도보로 조금 가니 광장과 시계탑이 나왔다.
메디나로 들어가는 성문입구다.
안으로 들어가니 메디나의 골목과 시장통이 눈에 들어온다.
바다를 낀 도시여서 그런지 이 곳에는 해군 복장을 입은 군인들이 종종 눈에 띤다. 대서양과 지중해를 끼고 있으니 해군이 있는 것은 당연힌 일인데도 아랍국에서 해군을 보니 신기한 생각만 든다. 골목을 다니다 지나치던 빵집에서 구수한 냄새가 흘러 나왔다. 냄새에 이끌려 들어간 제과점에는 갖가지 빵과 과자가 갖구워져 나와 후각을 흠씬 자극했다. 나는 세가지의 페스추리를 하나씩 샀다(3디람). 이걸 봉지째 들고 나니며 눈은 눈대로 메디나 골목의 볼거리로 호강하고 입은 입대로 잘 구워진 페스추리로 호강하고 코까지도 냄새에 행복해졌다.
걷다 보니 벼룩시장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에서도 좋아하던 벼룩시장인데 외국에서의 벼룩시장이니 더욱 호기심을 갖고 들여다 보게 되었다. 절대로 팔리지 않을 것 같은 물건들이 널려 있는 동대문 풍물시장과 동묘 벼룩시장에 널려있듯이 이 곳에도 그런 물건들이 깔리고 깔렸다. 벼룩시장의 매력은 없는것 빼고 다 있어서 무언가 필요한 물건이 있어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다면 이런 곳에서 종종 발견된다는 점이다. 혹시나 해서 둘러 보았지만 나의 구미를 당기는 물건은 없었다. 그래도 벼룩시장은 둘러본다는 것 자체가 재미 아니던가.
재래시장도 재미있는 볼거리중 하나다. 뻔한 시장이지만 지역마다 분위기도 조금식 다르고 사람 구경하기도 재미 있다.
돌아다니며 일본어나 중국어로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은 많이 봤다. 상인 중 한 사람이 내게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맨날 일본인이냐 중국인이냐 물어보는 사람들 뿐이어서 그랬는지 무척이나 한국어 인사가 반갑게 느껴졌다. 한국말을 어디에서 배웠느냐고 물으니 자신의 아저씨가 한국에서 살다 돌아와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며 그도 반가와했다.
이 곳은 그동안 다른 도시에서 들렀던 메디나(구시가지)에 비해 골목이 꽤나 넓어 미로같다는 인상은 별로 없음이 다른 점이었다.
두 소년이 오락실에서 하는 축국 게임은 보통 노련한 수준이 아니어서 길을 가다 말고 한참 그들이 하는 게임을 들여다 보았다. 이들에겐 전자오락은 없고 그냥 이런 아날로그적인 게임이 대세지만 여기에도 전자오락 못지 않은 즐거움이 있는 듯하다.
서민들의 주거지역. 내가 가장 관심있어 하는 부분이다.
예배중인 한 사원을 지나다 본 정경이다. 그리 큰 사원은 아니었는데 사원 안에 신도들이 꽉찼는지 사람들이 바깥에 돗자리를 깔고 메카를 향해 기도를 드렸다. 사원밖에서의 흔치 않은 진풍경이다.
자그마한 공원에 앉아 이따금씩 아파트 창문을 통해 안에서 밖으로 내다보는 사람들의 하는 양을 쳐다보기도 재미있다. 창밖으로 빨래를 너는 아낙네도 보인다. 무슬림 여자들은 집안에선 히잡을 쓰지 않고 밖으로 나올 때 쓰는 모양인데 빨래를 너는 아낙은 집안에서도 여전히 히잡을 쓴 채 하던 일을 하고 있었다. 바깥에서 남정네들이 볼 수 있기 때문일까. 불편하고 답답할 것 같다.
13:00가 되어 공원에서 충분히 쉰 나는 따라 슬슬 모스크로 가 보았다.
마침 예배를 마친 무슬림들이 어마어마한 모스크로부터 개미떼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런 모습은 모스크를 보는 즐거움 못지 않게 감동적인 풍경이다.
나는 지하에 있는 매표소로 가서 표를 사고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되자 이탈리아노, 에스파뇰, 잉글리시, 프렌치 등 언어별로 묶어 입장객을 나누었다. 영어권 인솔자가 사람을 모으는 곳으로 가서 기다렸다. 이 곳에 모인 인종은 다른 어떤 언어권보다도 참으로 다양했다. 지상으로 다시 올라와 무슬림들이 예배를 마치고 나오던 그 출입문으로 들어갔다. 신발은 벗어 미리 나누어 준 봉지에 담아 들었다.
바깥은 전형적인 아라베스크의 문양과 형태였지만 내부는 유럽적인 구조와 아랍적인 문양과 꾸밈새, 그리고 웅장한 실내가 눈을 압도하고 압도된 눈의 반사작용으로 떡 벌어진 입은 닫힐 줄을 몰랐다.
안으로 들자마자 가이드가 앞쪽으로 인솔을 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곳이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를 향하고 있다는 말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이 모스크는 핫산 2세 왕이 절친했던 프랑스인 친구의 설계로 건축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지붕은 전기 작동으로 열리고 닫힌다고 한다. 바닥재는 모로코 남부에서 가져온 대리석으로 충당했다. 실내에는 360개의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고 창살은 고급소재인 티타늄으로 제작되었단다. 미나렛의 높이는 자그마치 210미터! 끼야아~~~~~~~~! 엘리베이터는 이탈리아산, 카펫은 이란산이라고 한다.
하맘은 지하에 아름다운 타일장식과 함께 깨끗한 물로 채워져 있지만 사용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한다. 하긴 이 어마어마한 모스크의 지헤에서 왕이나 즐김직한 이 하맘에서 누가 감히 목욕을 할 엄두가 날 것인가.
혹자는 이 모스크가 6년동안 지어져 1993년에 완공되었으니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없으니 굳이 비싼 돈을 내고 들어가 볼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건 천만의 말씀이다. 모로코 내에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유일한 모스크인데다 내외적으로 이렇게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스크를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모스크인데다 3300여명의 장인이 6년간 매달린 것이니 만일 이 것이 과거 건축기술과 공법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지어졌다면 최소 너댓배의 시간을 걸렸을 엄청난 곳이다. 역사적의미는 충분하다. 이 모스크가 세워짐에 따라 모스크 건축의 역사는 이미 새로 쓰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후세 사람들이 이를 보고 놀라고 기억하겠지만 우리는 바로 이 곳에서 새로운 역사의 현장을 보고 있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모스크 내부 투어가 끝나자(15:00) 이 번에는 이 카사블랑카의 명물 중 하나인 등대를 보기 위해 바닷가 방파제를 따라 걸었다. 등대는 이 모스크에서도 뻔히 보였다. 뒤돌아 본 모스크는 마치 바다에 떠 있는 듯 보였다.
등대를 향해 30분 정도 걸었다.
등대는 담벼락에 둘러쳐져 있어 더 이상 가까이 접근할 수 없었다.
등대는 한 마을에 면해 있었다. 그 마을은 마을 전체가 담벼락으로 둘러쳐져 있고(성곽으로 둘러싸인 메디나와는 전혀 다른 폐쇄된 분위기였음) 그 곳은 이제까지 모로코 네에서 다녀본 어느 곳 보다도 생활환경이 열악해 보였다. 마을 입구로 들어섰다. 마을 입구에서 뛰놀던 아이들과 오가던 아낙네들이 보는 이방인에 대한 눈초리는 왠지 냉랭했다. 나는 등대까지 접근하는 루트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마을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때 세 명의 청년이 험악한 분위기를 내며 기세 등등하게 내게 다가와 왜 왔는지를 물었다.
나는 단지 등대를 보러 왔을 뿐이고 등대에 좀 더 접근하고 싶어서 들어왔는데 내가 못올 곳을 왔는지를 되물었다.
그는 "이 동네 사람들은 외지인이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으니 여기에 들어오면 안된다"는 말을 하며 방금 찍은 마을 사진은 지워 주길 요구했다. 나는 내심 속으로 약간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태연한 척 하며 "불쾌하다면 지워주겠지만 의도된 일은 아니니 이해 하라"고 했다.
카메라에서 찍은 사진을 보는 앞에서 지워주고 남은 것이 없음을 재차 확인시킨 뒤 등대 근접 사진을 찍고 나가겠다고 했다. 그 사진이 바로 윗사진이다. 밖에서 보라며 나를 마을 입구까지 데리고 나가더니 자기가 안내하겠단다. ㅡ,.ㅡ; 나는 그 곳을 벗어나는게 낫겠다는 판단을 하고 가이드를 원치 않으며 볼건 이마 다 봤다고 한뒤 그 곳을 빠져 나왔다.
바깥 쪽으로 나오니 근처에는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 몇 군데 있었다. 길을 나오는데 푸조를 몰고 가던 프랑스인이 가는 길이 같으면 태워주겠다고 친절한 말을 했다. 나는 그냥 걷고싶어 사양했다. 아래 사진은 마을을 벗어나며 바닷가로 나가자 사진을 찍어 달라며 포즈를 취한 사람들이 있어 함 찍어 봤다. 받아 보지도 못할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니 재미있는 사람들이다. 16:00
말로만 듣던 도시 카사블랑카의 바닷가를 걸으며 나는 영화 카사블랑카를 떠올려도 봤고, 최헌이 부른 노래 카사블랑카도 흥얼거리며 기분 좋은 이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다시 모스크를 지나 도시 중심부 쪽으로 걸어 보았다. 모로코 전통양식과는 전혀 달라 보이는 이 건물이 무엇인지 궁금해 안뜰로 들어가 보았다. 건물의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밖에서 자물통을 채웠고 축구공 자국이 건물벽 여기저기에 찍혀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랫동안 폐쇄된 건물이었지만 정원은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어 더욱 궁금했다. 그 안에 축구하는 청소년들이 있었지만 누구에게 물어봐도 말이 통하지 않아 건물의 용도는 알 수 없었다. 교회나 성당 건물 같기도 하고... 작년 겨울 중동에서는 거리마다 지천에 깔린 차량이 현대와 기아 차였다. 그 곳을 누비는 수많은 한국 차들을 보고 뿌듯했던 기억이 여기서는 상대적으로 다른 차들에 비해 적은 듯 보였다. 심심기가 발동했는지 나는 걸어다니면서 한국 차가 몇 대 중 몇 대나 되는지 세어 보았다. 움직이는 차들을 모두 셀 수 없으니 가는 곳마다 내 앞에 주차된 차량들만 세어 보기로 했다. 결과는 내 생각과 달리 의외로 많은 한국 차들이 있었다. 86대의 차량을 세는 동안 현대차와 기아차가 10대나 되었다. 그렇다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다. 이 곳에는 르노, 벤츠, 푸조, 폭스바겐, 도요다, 미쓰비씨, 피아트 혼다 등 유럽차, 일본차, 한국차가 각축전을 벌이는 곳이었다. 한국의 차들은 이 곳에서도 그런대로 선전하고 있는 셈이었다.
시내 중심부로 여기지는 곳들을 돌아다녀 봤다. 공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지나 다니는 사람들, 축구하는 아이들, 손주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여유를 즐기는 노부부, 장사꾼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보며 한없는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이 곳에서 불량배들에게 삥을 뜯겨도, 누군가에게 사기를 당해도 행복하기만 할 것 같은 순간이었다. 시계탑과 주변의 야자수가 어우러져 이국적이고도 기분좋은 이 거리풍경이 여행의 막바지를 행복하게 장식해 주고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걸으면서 느끼는 거지만 보행자들에겐 그다지 좋은 곳이라고만 할 수도 없었다. 6차선에서 조차 보행 신호등도 없고 차량들은 보행자를 배려하지 않으니 위험스러운 거리이기도 했다.
길가다 발견한 영화관. 이 곳의 영화를 한 편 볼까도 생각해 봤다. 인도에서 영화와 관객의 하나됨이 유별나다고 한 이야기를 블은 적이 있었다. 현지에서 현지 영화를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카사블랑카의 영화 포스터가 영화관 입구에 크게 내걸려 있어 이들이 이 영화에 느끼는 애정이 각별한 것인지 아님 관광객들에게 눈요기거리를 제공하는 것인지 알 길은 없다. 모로코 영화를 한 편 보고싶었지만 시간도 안맞고 이 날의 영화프로가 뭔지도 알 수가 없었다.
길을 계속 걷다가 발견한 카톨릭 교회다. Mers Sultan 거리에 있는, 외부에서 보기에 특별한 이 건축물에 대한 호기심은 물론이고 가톨릭교 신자인 내가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들어가 봤다.
조명이 모두 꺼져 있고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빛에 의지해 보는 거대 모자이크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나도 모르게 성당의 맨 앞으로 가 앉았다. 한동안 앉아 모자이크를 감상하고 있자니 현지인들이 들어와 모자이크를 감상하며 내게 물었다.
"무슬림이 여기 들어와도 되나요?"
나는 단지 여행자에 불과한데 내게 물으니 웃음이 나왔다.
"물론이죠."
30분 정도를 이 성당안에서 머물다 나왔다. 밖에 사람이 있어 이 성당의 이름을 물으니 "노트르담 성당"이라고 한다.
성당 안에서 느꼈던 편안한 기분은 곧 행복감으로 이어졌다. 내겐 미지의 세계였던 모로코의 많은 문화를 접하고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여행을 마쳐가는 이 순간의 행복감을 허락 받은 이 순간이 너무나도 즐겁고 행복했다. 다시 길을 걸어 카사 보이저 역을 향해 걸었다.
기차역 거의 다다른 곳에 깔끔해 보이는 식당이 하나 있어 들어가 보았다.
작은 이 식당 한 켠에 모로코의 젊은 남녀 셋이 이 곳에서 주스를 마시며 이야기 꽃을 한참 피우던 중이었다. 메뉴표에 나온 음식값은 매우 저렴했다. 하지만 아랍어로 쓰여 있으니 뭐가 뭔지 알 수가 있나. 치킨 타진을 주문했다. 주인이 못 알아 들었다. 할 수 없이 장식용으로 놓여진 타진 도기를 가리킨 뒤 날갯짓을 하며 "꼬꼬댁" 했더니 알아듣는다. 하지만 막상 나온 타진은 치킨 타진이 아니고 전통식도 아닌 퓨전이었고 내용물은 완전 아작낸 것이라 뭐가 들어간 것인지 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런대로 먹들만은 했지만 전통식을 먹었을 때의 만족감은 아니었다. 맛도 전통식과는 상당히 달랐다. 그래도 깔끔함에 만족하고 군말없이 먹었다.
식사 후 카사 보이저 역으로 가서 공항행 첫 차가 몇 시 차인지 확인해 봤다. 새벽 4시 45분인가에 첫차가 있고 한시간 단위로 있다고 했다. 나는 다음날 아침 일찍 공항에 가야했으므로 기차역 건너편 골목으로 돌아다니며 방을 구했다. 욕실 딸린 독방으로 200디람이었다. 리셉션이 깔끔한 것으로 보아 방도 그러할 것 같았다. 아침식사도 제공된다지만 새벽 일찍 나가야 하니 내겐 의미가 없었다. 방은 널찍하고 TV도 있고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짐을 대충 풀고 밖으로 나가 PC방을 찾아 다녔다. 직장에서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인사발령 내용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무척 궁금했고 이 것 저것 인터넷으로 확인해 볼 일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20:30부터 정확하게 한시간을 인터넷으로 꼬박 버렸다. 속도는 느렸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는 그래도 빠른 편이었다. 호텔로 돌아온 나는 샤워를 마친 후 TV 잠깐 보다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