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여행3(샤프샤오엥→페스)
2010.1.19(화)
샤프샤오엥은 모로코 북부 리프산에 있는 자그마한 산악마을이며 샤오엥 주의 주도이다. 샤프샤오엥은 "저 정상을 보라"라는 뜻인데 주민들은 옛 이름인 샤오엥(정상)이라는 이름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이 마을은 사하라 이남에 살던 베르베르인들이 건설했으며 15세기 말 안달루시아에 거주하던 무슬림과 유태인들이 가세하면서 주민이 늘었다고 한다. 흰색과 청색으로 집을 칠하고 마당 한가운데 유자나무를 심는 것은 스페인의 유민들이 전한 풍습이라고. 샤프샤오엥은 외지의 침입이 드문 곳이었는데 전장에서 죽는 것을 명예롭게 생각하는 베르베르인들의 용맹한 기질이 많이 작용했다고도 한다.
전날 일찍 자고 이튼날 일어난 시간은 07:30이었다. 옥상으로 올라가 보니 기분 좋게 날이 밝았다. 대충 씻고 밖으로 나가 보기 위해 내려가 보았다. 문은 잠겨 있고 주인인지 종업원인지 전날 밤 나의 체크인을 해주었던 친구는 1층 소파에 담요를 뒤집어 쓴 채 자고 있었다. 게으른 친구 같으니라구. 문을 좀 열어줄 것을 부탁했다. 부시시 일어난 그는 문을 열어 놓고는 다시 담요를 뒤집어 썼다.
아침 식사도 하고 오늘 반나절꺼리인 이 마을을 본 뒤 1000년 고도인 Fes 로 가는 교통편도 확인할 겸 슬슬 나가 보았다. 문을 연 식당은 없었다. 가게마다 널린 바게뜨 빵이 먹음직해 보였다. 바게뜨와 음료수를 물고 돌아다닐 참이었다. 바게뜨 값은 놀라울 정도로 쌌다. 1개 1디람이다. 맛도 최고였다. 음료수로는 사과맛 탄산음료 Pomps(5.5디람). 털레털레 걸어가며 바게뜨를 씹고 음료수까지 마셔 대면서 아침 공기를 가르며 산책처럼 CTM 터미널로 걸어갔다. 아침식사 아닌 아침식사는 나름 즐거운 시간이 되어 주었다.
워낙 구석진 시골이라 그런지 주요 도시로 떠나는 일일 차편이 많지 않았으나 운좋게도 Fes로 가는 차편은 하루 네 차례여서 이 날 일정을 조금 탄력적으로 잡을 수 있었다.
조용한 아침에 한적한 이 시골길을 걷는 기분은 완전 굿이다.
다시 메디나 입구로 들어서 호텔로 돌아가 짐을 싸고 옆방에 묵고 있다는 한국인 학생의 방을 노크했다. 그는 스페인에서 넘어온 친구였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뒤 약간의 정보를 얻었다. 선물로 받은 오렌지를 먹어보니 단 맛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 때 이 곳의 오렌지에 맛들려 그 이후 종종 사다 먹곤 했다. 호텔 프론트에 배낭을 맡긴 뒤
메디나 구석구석을 쏘다니기로 했다. 그 전에 일단 호텔로 돌아와 좀더 릴렉스한 하루를 보내기로 작심하고 다시 침대에 디비져 10시 30분까지 침대위에 해골을 굴렸다.
이 곳 샤프샤오엥은 특별히 볼거리는 없고 골목이 재미가 있어 유명한 마을이다.
경사진 메디나의 오르막 길을 따라가 보면 광장과 카스바 그리고 그랜드 모스크가 오밀조밀 모여 있다. 그랜드 모스크의 미나렛은 이 곳 모로코에서는 흔치 않은 8각의 형태이고 문양보다는 단순한 건축법을 따랐다. 어쨋든 특이하다. 이 모스크는 15세기에 건설되어 보기보단 오래된 사원이다.
이 곳이 고지대인 만큼 바로 옆으로는 카스바가 자리잡고 있는데 문은 잠겨 있어 안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20세기 초에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광장에는 모스크, 카스바 그리고 카페들이 면해 있고
그곳에는 전통의상인 젤라바를 입은 노인들이 아침부터 한가로움과 여유로움을 즐기고들 있었다. 가까이서 인물사진 찍고 싶지만 이미 카메라를 의식하면 사진이 재미가 없어진다. 그렇다고 당겨 찍자니 똑딱이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결국 허락 없이 슬쩍 당겨 찍었다.
전술한 바 있지만 이 곳은 골목 때문에 유명한 곳이어서 어느 한 줄기의 골목도 안놓치고 돌아 다녔다. 골목의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여기저기 널린 기념품 가게들과
그 안과 밖으로 전시한 다채로운 물건들이 재미가 있어 구경하는 재미는 섭섭하지 않다.
아래의 사진까지는 광장 사진이고
여기부터가 골목 사진이다.
사실 라바트의 카스바 내에서 돌아다녔던 골목을 보며 이 곳과는 다른 곳이 아닐까 기대를 했지만 라바트의 카스바 골목과는 특징적 차이점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탕헤르로 갈걸 하는 생각이 은근히 들기도 했지만. 하지만 탕헤르로 가는 것보단 시간이 많이 절약되는 것도 사실이고 안와봤으면 궁금했을테니 이리로 와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여자들이 이 곳에 오면 좋아할지 모르겠다.
골목 골목 뛰어 다니며 노는 아이들도 보이고 그 좁은 골목에서도 골키퍼를 세워두고 돌아가며 슈팅 연습을 하며 노는 아이들도 보인다. 축구하는 아이들 하도 귀여워서 한동안 구경하다가 재미있는 상황이 나올 때를 기다려 보았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는데 그 중 8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이 오른 손을 들어 검지 손가락을 흔들며 나와 눈을 맞췄다. 사진 찍지 말란 소리였다. 눈이 크고 잘생긴 이녀석 까칠하기가 나에 버금간다. 여기서도 사이비 가이드의 접근이 있었지만 애당초에 싹을 잘랐다.
벽은 대부분 하늘색이고 문과 창틀은 거의 모두 청색으로 칠했다. 낡은 분위기에도 운치는 상당히 있다.
이 곳 아이들 중에는 눈을 떼기 어려울 만큼 예쁘거나 잘생긴 애들이 많았다.
그들 하나하나를 카메라에 담아보고 싶었지만 아이들도 대부분 카메라에 제물로 바쳐지길 무척이나 싫어해서 골목 속에 함께 넣어서 슬쩍 찍는 방법 외에는 방법도 없었다.
마을 끝으로 가보면 최근 폭우라도 쏟아졌는지 산으로부터 내려오는 물이 거의 쏟아 붓는 정도로 풍부해 도로와 산자락을 범람하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청량감이 느껴질 정도로 물소리는 요란하고 물은 깨끗했다.
물건너에 야산이 있어 마을을 내려다 보기 위해 올라 보았다. 아래 사진은 바로 옆 산자락에서 내려다 보며 찍은 샤프샤오엥 메디나 사진.
다시 메디나 안으로 돌아오니 젤라바를 입은 노인과 히잡을 두른 딸(아마도)의 진지해 보이는 대화가 왜 그리도 정겹고 아름다워 보이던지 허락 없이 뒤에서 슬쩍 도촬했다. 가까이서 찍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소리땜에 뻑날 것 같아 못했음.
골목에서 한 컷. 아무리 골목 색갈과 같은 파란 점퍼를 입고 벽에 들러 붙어봤지만 위장은 안되는군.
광장으로 다시 내려가던 차에 고무줄놀이 하던 세 명의 여자아이들이 눈에 띠었다. 놀이 방식은 우리 어렸을 때 보던 고무줄 놀이와는 많이 달랐다. 노래를 부르며 폴짝폴짝 뛰는 것은 같았지만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야 하는 고난이도의 기술(?)이 필요한 것이 달라 보인다.
이 애들이야말로 사진에 담고싶을만큼 예뻤다. 하지만 찍자고 하면 싫다고 할게 뻔했다. 그래서 좀 떨어진 거리에서 내려가던 길에 셔터를 눌렀다. 가다 말고 서서 놀이를 하던 양을 쳐다 봤더니 하던 고무줄 놀이를 멈춘 여섯 개의 눈이 나를 향해 일제히 쏠렸다. 나는 그들의 고무줄 놀이를 더 보고 싶었지만 그들은 내가 가야만 계속할 것 같았다. 웃으며 계속하라고 했더니 아이들 역시 웃으며 뭐라고 하는데 내가 가야만 계속할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자리를 뜨며 손을 흔즐어 인사를 나누고 내가 자리를 떠줬다. 세 아이 모두 이 담에 크면 남자들 눈물깨나 뽑을 것 같다.
이 좁디 좁은 골목에 이따금 소형 용달과 다마스같은 작은 차량들이 들어오곤 한다. 아마도 이 마을에 물류 공급을 위한 것이겠지만 한 대 들어오면 골목이 꽉찬다. 두 대가 마주치면 심히 고단하겠다.
광장 쪽으로 내려와 혹시 사원 문이 열렸나 기웃겨려봤다. 이 곳은 들어갈 수 있을까 생각해 봤지만 이 곳에서 체면 깎여가며 물어볼만큼 걸출한 건축양식이나 매리트는 없어 보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카사블랑카에 있는 핫산 2세 모스크를 제외하면 비무슬림의 입장을 허용하는 모로코 내 회교사원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비무슬림의 사원 입장을 금하는 나라는 여기밖에 못봤다. 까칠하긴...
광장으로 다시 나왔다.
오후의 평화로움과 여유로움이 느긋한 분위기를 준다.
아무래도 노숙자인 것 같은데 줄무늬 빵모자에 수염은 덥수룩하고 낡은 콤비를 입은 이가 인상적이어서 사원 앞을 지나던 그를 한 컷 담아봤다. 노숙인이 아니라면 죄송하지만 어쨌든 개성 만점인 것만은 확실하다.
어느 식당이 잘하는지 알 수가 잇나. 게다가 이 곳엔 나를 제외하고는 관광객도 그리 많지 않았다. 음식을 잘하면 사람이 꼬여들테지만 광장에 면해 있는 식당들은 하나같이 파리만 꼬였다. 그래도 배가 고파 밥은 먹어야겠고 아무데나 들어가 타진(30디람)을 시켰다. 치킨타진이 안된다고 해서 쇠고기타진을 주문했다. 쇠고기는 원래 바싹 익으면 맛없는딩... 음식이 나왔다. 이런 젠장 곱배기를 봤나. 들어갈 때부터 느낌이 별로였던 이 식당의 타진은 맛이 없어도 더럽게 없었다. 식당을 연 주인이 패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 국물이 흥건한 이게 스프지 타진이냐? 스프래도 그렇지 맛으로 보자면 용서가 안될만큼 거시기했다. 점심 먹고 장거리를 또 떠날텐데 안먹으면 나만 손해였다. 어쩌겠어. 그렇다고 "이 작자야, 음식이 더럽게 맛없어서 돈을 못내겠어!" 할 수도 없고 걍 꾸역꾸역 먹었다. 인생 뭐 있냐고? ㅡ,.ㅡ;
민트티가 마시고 싶었다. 다른 곳 가서 마실까 하다가 어디로 가야 좋을지도 몰랐고 이곳 조그마한 광장에서 다른 집 가봐야 "저 넘이 밥은 울 집에서 먹고 티는 왜 저 집 가서 마시고 지롤이야?" 아니면 " 저 집에서 밥처먹은 넘이 올려면 진작에 오지 왜 여기에 티만 마시러 오고 난리야?" 아니면 "저 넘이 밥은 저 집서 먹고 차는 왜 딴 집에서 마시지? 밥먹은 집 쥔넘하구 싸웠나?" 할 것 같았다. 장고 끝에 주저 앉은 채로 민트티를 주문했다. 다행이 이건 좀 마실만했다. 맛은 너 댓 마리의 벌들이 먼저 와서 알고는 붕붕거리며 컵 안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마실 때마다 휘휘 입으로 불고 난 뒤 마시거나 찻잔을 든 팔을 크게 원까지 그려 휘두른 다음에 다시 벌이 몰려들기 전에 서둘러 마셔야 했다. 어떤 놈은 민트티에 빠져 젖은 민트잎 이리저리를 헤매며 뜨거운 찻속에서 사투를 벌이기까지 했다. 이 놈들이 마셔봐야 얼마나 마시겠냐마는 보통 신경쓰이는게 아니었다. ㅡ,.ㅡ;
민트티까지 마시며 이 곳에 뭉갠 시간은 1시간 30분. 밥먹는데 오래 걸리는 걸 보면 나도 유럽화 되어가나 보다. 식당에서 일어날 즈음 한국인 처자 세 명이 광장을 거닐고 있었다. 생김새로 보아 한국인이 틀림 없는데 그들이 식사중이던 내 앞을 지날 때 들리는 말은 분명히 한국어였다. 사실 이 곳 광장에서 보기 직전 골목에서 그들을 본 적은 있었지만 확신이 없어 말을 걸진 않았었다. 보아하니 그냥 주변을 거니는 중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먼저 인사하고 말을 걸었다. 그들도 이 곳에서 한국인은 거의 보지 못했는지 반가운 기색이다. 아님 말구. 그들의 여행은 이제 막바지에 있었다. 어쨌든 나는 그들에게서 적지 않은 정보를 얻었다. 무엇보다도 마라케시로 가면 사막투어부터 알아볼 참인데 정보가 너무 없어 막연하던 차였다. 어느 여행사의 프로그램이 좋은지, 혹시 알고 있으면 연락처를 갖고 있는지 등을 물었다.그들은 Sahara Expedition이란 여행사를 추천해 주었다. 전화번호는 없지만 여행자들 사이에 워낙 유명한 곳이라 찾는데 어려움은 없을거라고 했다. Fes 가는 길에 휴게소에서 숫불구이를 꼭 먹어 보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 중 한 처자는 사막여행은 마라케시로 가는 것 보다는 어디였더라 기억은 안나지만 어딘가로 가서 사막투어를 한 뒤 마라케시로 넘어 가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이 이야기는 흘려들었는데 나중에야 그 조언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였음을 깨달았다.
그들과 작별 인사를 한 후 호텔로 돌아가 짐을 찾은 뒤 15:13분 차를 타고(70 디람) Fes를 향해 떠났다.
내가 탔던 세티엄(CTM) 버스다.
Fes로 가는 길에는 잘 가꾸어진 밭이 끝없이 펼쳐졌다.
휴게소에서 한국인 처자들의 조언대로 정육점에서 양고기 1인분(20디람)을 사서
바로 옆 숫불로 구워주는 코너에 가서 3디람을 내면 맛있게 구워서 빵과 함께 내준다. 이제껏 먹어 본 가장 맛있는 고기였다.
초저녁이 되어 Fes에 도착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지도를 보았다. Youth Hostel로 가고 싶었지만 구경 다니기엔 동선이 너무 멀어 시간적으로나 경제적(교통비)으로나 가지가지 유리할 것이 없었다. 나는 론니 책자를 보고 Hotel Erraha가 숙박비도 가장 저렴하고 구경을 다니기에도 동선의 중앙이라 그렇게 결정했다. 결정하고 터미널을 나오기까지 배낭을 옆에 두고 터미널 안에서 꼼짝 않고 지도만 들여다 보고 있으니 호텔 삐끼들이 번갈아 와서 찝쩍거린다. 파리 쫒듯 쫓아내고 터미널을 나오자 마자 큰 길로 보이는 쪽으로 내려가 보았다. 뭔지 모르게 어수선한 분위기에 이상해서 주변을 둘러 보았다. 사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무엇엔가 집중을 하고 있었다. 아니 구경을 하고 있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경찰 한 명이 다수를 붙잡아야 하는 상황인 것 같았다. 곤봉을 든 경찰이 표적을 두고 쫓으면 도망가고 쫓던 경찰이 멈추면 도망자는 하던 도망을 멈추고 뒤돌아 서서 빤히 쳐다보며 조롱 아닌 조롱을 하고 있었지만 도망하던 사람도 긴장의 표정도 역력했다. 경찰은 어느 한 놈만 잡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했지만 그게 그리 여의치 않은 것 같았다. 군중들은 구경하며 때로 웃음을 터뜨리며 철저하게 방관자의 입장들을 고수했다. 이 곳 경찰들은 그다지 시민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는 인상은 못받았다. 나는 본의 아니게 그 한가운데 서있었다. 나는 서둘러 그 곳을 벗어나 밥 부 즐루드(Bab Bou Jeloud: 부 즐루드 문)로 가는 길을 물었다. 내가 가고자 했던 호텔이 부 즐루드에 있었다. 9번 버스를 타고 Batha에서 내려 걸어 가란다. 버스를 타고 사람들에게 물어 바타에서 하차해 밥 부 즐루드를 찾아갔다. 가다 보니 내가 가고자 했던 곳들의 이정표가 줄줄이 꿰어져 공짜 정보를 덤으로 얻었다.
초저녁 한적한 도시 외곽을 걸어가는 재미도 여간 쏠쏠한게 아니다.
조명을 비춘 분수가 나오고 이 곳을 지나쳐
카페거리를 지나니 밥 부 즐루드가 나왔다. 에라하 호텔은 어렵지 않게 찾아냈다. 문제는 방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곳 Fes가 1000년 고도인 만큼 그 어느 곳 보다도 관광객과 여행객이 많이 눈에 띠었다. 그러니 인기있는 호텔은 아무래도 방이 없을법도 했다.
방이 없다고 프론트에서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 곳에서 얼쩡거리던 청년 하나가 자기가 좋은 호텔을 소개하겠다며 나섰다. 호텔을 소개하고 그 호텔에서 커미션을 받으려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호텔비는 비싸지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 거절했다. 그는 나를 따라 오며 욕실과 화장실이 딸린 방을 에라하 호텔과 동일한 200 디람에 수배해 주겠다고 했다. 에라하의 200디람짜리 방은 론니 책자에서 본 중 가장 저렴했지만 다른 도시보다는 현저하게 비쌌다. 그 가격에도 불구하고 욕실은 딸려있지 않았던 것 같았다. 게다가 이 저녁에 여유있게 즐기고 싶었지 호텔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를 따라 갔더니 한 가정집으로 데리고 갔다. 일반 가정집 민박을 수배하려 했던 모양이다. 문을 열고 중개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아부머니는 큰 덩치에 서글서글한 눈매의 소유자였던지라 이 곳에 방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방이 찼단다. 그는 다시 다른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 곳엔 방이 있단다. 꼭데기층이었다.
간이 침대 3개와 테이블이 놓여진 이 방은 직사각형이 아닌 각각의 변의 길이가 각기 다른 찌그러진 사각형(그렇다고 마름모꼴도 아님)의 방이었고
바로 옆으로는 욕실이 놓여 있는데 제법 깨끗했다. 중개인이 말을 바꿨다. 이 집은 이틀 이상 묵어야 하고 이틀 묵을 경우 450디람이라고 했다. 나는 그자리에서 거절하고 나왔다. 그는 따라 나오며 이 곳은 에라하 호텔과 달리 욕실도 딸렸고 깨끗한데 왜 거절하느냐고 물어왔다. 옥탑방 같은데다 찌그러진 방, 그리고 대충 만든 간이 침대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400 디람에 수배해 준다던 말과는 다르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400에 해주겠다고 했다. 대꾸도 없이 "내가 직접 알아볼거야" 했더니 이틀 동안 300디람으로 값이 다운되었다. 이것 봐라? 사실 그 곳엔 TV도 있고 전기 라디에이터도 있었다. 나는 바로 OK했다.
나는 그에게 맥주를 구할 수 있느지를 물었더니 원하면 구해다 주겠단다. 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맥주 이름 두 가지를 대며 하나는 300디람, 나머지 하나는 600디람이라고 한다. 왜 이렇게 비싸냐고 물었더니 암시장이란다. 이 곳은 음주가 불법이라 공공연하게 술을 팔 수 없으니 관광객들 때문에 암시장에서 거래가 되고 값은 올라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맥주를 포기했다. 카사블랑카에서 BAR를 몇 군데 보았고 맥주를 파는 수퍼마켓도 보았는데 그것은 단지 카사블랑카에서만의 이야기였다. 나는 샤프샤오엥으로부터 오는 길에 양고기와 빵으로 저녁식사를 했기에 차나 마시려고 부 즐루드 문 주변 카페거리로 나갔다. 민트티를 주문했다. 난 아무래도 이 곳에서 민트티에 맛이 들린 것 같다. 차 한잔 놓고 여행일기를 정리하다 보니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구운 치킨과 야채를 주문했다. 앉은 자리에서 먹으려고 했는데 그 옆자리로 옯기라는 거였다. 밥먹는 자리하고 차마시는 자리하고 다른가 싶어 옮겨 앉았더니 차를 주문받았던 주인이 무슨 영문인지 어리둥절해했다. 알고 보니 차 주문을 받은 사람과 식사 주문을 받은 사람은 각기 다른 옆가게 사람이들었다. 나도 당황해서 차를 주문받았던 이에게 상황설명을 했더니 웃으며 괜찮다고 한다. 어쨌든 민트티(10디람)와 구운 치킨과 야채(40디람)으로 식사를 마치고 카페에 앉아 지나다니는 관광객들과 여행객들을 구경했다. 혹시나 했지만 한국인은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일본인들도 단체 관광객들이 대부분이었다. 도미토리에서 여행자들과 사귀어 보고 싶었지만 이 곳 모로코에는 호텔 시설에 그런 개념이 없어 그런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옥상에서 내다본 Fes의 메디나 야경. 구시가지인지라 화려한 조명은 없고 우중충하지만 나름 운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