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여행1(도하→카사블랑카→라바트)
2010.1.17(일)
도하 코니시 해변공원에 있는 Al Mourjan Restaurant에서 1시간 동안 먹은 늦은 점심이 워낙 양이 많아 저녁 늦게까지 밥생각이 없었다. 초저녁까지 도하시내를 싸돌아 다니다 공항으로 돌아와 멀건하게 시간죽이기를 하던 중 밤 10시 반이 넘어 가면서 부터 시장기가 돌기 시작했다. 돌아다니며 쓰다 남은 카타르 리얄화로 밥이나 먹을까 하다가 이내 생각을 접었다. 밤 12쯤이면 항공기 탑승이 시작될거고 새벽 1시에 항공기가 이륙하고 나면 식사가 제공될텐데 넘 어정쩡했다. 그래서 과감한 결단을 내려 쫄쫄이 굶었다. 항공기에 탑승하고 나니 쾡해진 눈앞에 보이는 것은 기내식의 환영뿐이었다. 도하 시내에서 영감님께 드렸던 비상식량(영양바)도 눈앞에 아른거렸다. 항속고도에 올라 아줌마들이 밥을 주기 시작했다. 닭고기와 양고기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양을 선택하고 음료는 적포도주로 했다. 나도 모르게 밥과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밥아, 너 본지 오래다. 어디 갔다 이제 왔어 웬수야?" 누릿한 양고기와 풀풀 날리는 공중전쌀이지만 달디단 밥이었다. 걸레처럼 시든 야채가 타즈마할 호텔의 야채보다 못할 게 없었다. 와인 맛은 또 어떻고... 반찬투정하는 인간은 굶길지어다.
이 항공기는 리비아 트리폴리를 들러 일부 승객들이 내리고 나면 트리폴리에서 카사블랑카로 가는 승객들이 탑승한다. 카타르항공이 좋아하는 짓거리다. 내 옆엔 리비아인 아저씨가 타고 있었고 트리폴리에서 이 아저씨가 내릴 때는 졸려서 작별인사도 간신히 했다. 곧이어 내 옆에 앉는 승객은 팔등신에 가까운 모로코 처녀(짐작)이었는데 미녀를 옆에 앉혀 놓고도 쏟아지는 잠은 깰 줄을 몰랐다. 카타르항공의 깔끔한 기내는 모로코로 돌아가는 근로자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들이 벗은 신발과 발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기내 전체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내가 신은 양말도 벌써 하루를 넘겨 이틀이 다되어 가는데다 도하 시내를 12시간 넘게 싸돌아 다녔으니 나 역시 냄새가 고울리는 없었다. 생화학전에서 나는 물론 대부분의 승객이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였던 셈이다. 밥을 먹고 나자 무슨 영화를 볼까 고민하던 차에 한국영화 몇 편이 눈에 띤다. 애자, 10억, 국가대표, 우리생애 최고의 날, 이태원 살인사건 글구... 하나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어쨋든 애자를 보았다. 옆에서 영화를 보던 아저씨가 내가 보던 영화에 대해 허락없이(?) 내 앞에서 촌평을 했다.
"이 영화 아주 재미가 있지. 내용이 슬프고 재미도 있어. 잘 만들어진 영화지. 감동적이라니까."
나는 한국인 외엔 기내에서 한국영화 안볼 줄 알았다. 아하 이 리비아 아저씨도 한국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니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답했다.
"한국영화도 재미있는 게 많지요." 했더니 이 아저씨 깨는 소리를 한다.
"이 친구 모르는 모양이군. 이건 중국 영활쎄."
엥???? 이건 또 무슨 쉰소리?
"이거 한국 영환데요?" 했더니
"중국말이던데?"
아~~~! 이거 미치겠네.
"제가 한국인이걸랑요. 여기 나오는 말들은 전부 한국어고요." 했더니 그제서야 꼬리를 내린다. 뭐야 이거... ㅡ,.ㅡ; 어쨋든 영화는 재미가 있었다. 주연배우가 TV에 나오기만 해도 채널을 돌려버리곤 했는데 연기는 잘하더구만. 재미있게 봤고 주연배우에 대한 인식이 조금 달라졌다.
아저씨의 알지도 못하면서 하던 아는 척은 계속되었다.
"어디로 가시나?"
"모로코로 갑니다."
"모로코 좋지. 왜 리비아도 좀 놀러 오지?"
"리비아도 가고 싶어서 조사를 해 보았는데 단체여행객이나 사업목적의 비자가 아니면 발급 불가능한 것으로 아는데요? 저같은 개별 여행자는 안반가운가 보죠?"
"허, 이친구 모르는구만. 유럽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놀러 오는데 그러나?"
"어? 그럴리가 없는데? 그래서 포기했는뎅? 론니 플래닛이라는 여행 책자에도 그렇게 나와 있고 여행사에도 알아봤다니까요?"
나는 그 때 그 얘기를 듣고 내가 잘못된 정보를 접했던건 아닐까 했지만 오히려 자국인이 더 모를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영화를 보고 중국영화라고 우기던 이 아저씨 자국정보에 대해 본의 아닌 사기를 친 것이었다.
기내에서 밥을 먹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내내 잤다. 아저씨 내릴 땐 간신히 인사하고 다시 잤다. 조금 후 차도르나 히잡을 쓰지 않은 미모의 아랍처녀가 옆에 앉았다. 다른 때 갔았으면 헤빌렐레 했을텐데 다 귀찮고 잠만 잤다. 항공기에서 내리기 직전 아침식사로 간단한 기내식을 한 번 더 주었다. 부실한 내용물은 아침이니까 용서해 준다.
9시간 30분가량의 비행 끝에 카사블랑카에 도착했다. 인천에서 출발해 오사카를 경유한 시간 포함해 14시간을 비행한 뒤 10시간 이상 시내를 싸돌아 다니다 또 다시 10시간 가까이를 또 비행했으니 여정이 실로 지루했다. 어쨌든 고대하던 모로코 땅에 드디어 도착했다.
론니 책자의 설명을 잠시 빌어 역사를 함 살펴 보자
이 곳 모로코의 최초로 거주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고대 이집트의 먼 친척뻘 되는 유랑민들이 동방으로부터 와서 정착하였다고 한다. 페니키아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BC800년 경이고 로마인들의 지배는 BC4세기경라고 한다. 7세기 중반에 예언자 모하메드의 군사가 북아프리카로 세력을 확장하여 이 곳에 이르게 되었고 829년 지방 토호들이 Idrisid State를 건설하고 Fes를 수도로 하였다. 그 뒤 이슬람 왕조들이 일어서고 쇠퇴를 거듭했다. Almoravids 왕조(1062-1147)에는 마라케시를 수도로 하기도 했다. 1830년 프랑스의 통치를 받았고 1912년에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분할 통치하에 놓였다가 1956년에 독립하여 왕국이 수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모두가 내릴때까지 기다렸다가 널럴해진 뒤 나도 배낭을 주워 매고 졸린 눈 비비며 쭐레쭐레 걸어 나갔다.
08:30에 도착해 입국심사를 받고 공항에서 지하로 내려가면 카사블랑카행 열차가 한시간 단위로 출발한다. 환전창구가 보여 일단 200 달러를 환전해 봤다. 1, 530디람을 준다. 달러당 7.65 디람인 셈이다. 나는 평소 습관대로 공항 전경 사진을 찍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모하메드 5세 공항이라... 이걸 찍고 다시 들어가려는데 젠장, 나올 수만 있고 다시 들어갈 수 없는 출구였다.
자그마한 공항이 다 그렇듯이 한 곳밖에 없는 입구로 찾아가 짐검색을 한 뒤 다시 들어와야 했다. 줄서서 검색대에 배낭 밀어넣고 주머니 홀랑 뒤져 확인시킨 뒤 지하로 내려가 보았다.
이 곳이 입구였다.
9시 차가 가버린지 10분도 안되었다. 젠장, 한 시간 가까이를 기다려야 했다. 표는 출발 30분 전에야 파는 것 같다. 매표소 안에 사람은 있는데 칸막이 뒤로 들어가 있고 매표소 앞에는 차표를 사기 위해 기다리던 여인이 있었다. 아무리 봐도 한국인 처자였다. 다짜고짜로 한국말로 물었다. "표 아직 안팔아요?" "네 아직..." "여행 오셨나요?" "아뇨 여기 살아요." "그러시군요." 한동안 말이 끊어졌다. 카사블랑카행 표(40 디람)를 샀다. 아가디르로 돌아가야 한다는 그녀는 누군가를 배웅 나왔었던 모양이어서 나보다 먼저 내려 갈아타야 한단다. 개찰구를 통해 플랫폼으로 들어갔다. 짐이 많길래 하나 들어 주었다. "여행 오셨나요?" "넹" 하며 대화가 다시 이어졌다. 선교사업을 한다길래 몇 명이나 탕헤르에서 선교활동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혼자란다. "목사님도 없이요? 했더니 자신이 목사라고 한다. ㅡ,.ㅡ; 아래 사진은 행선지별 열차 시각표인데 촬영할 때는 영문표기였는데 지금 와서 보니 셔터를 누르는 순간 아랍어로 바뀌어 있었던 모양?
종착역인 이곳에 열차가 들어 오고 사람들이 내렸다. 기차에 올라타고 보니 객실이 무척 작아 앙증맞다. 이미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 선교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나는 여목사님과는 부담스러운 종교얘기 없이 이 곳 생활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몇가지 여행정보도 팁으로 얻었다. 모로코 유일의 온천 이야기는 여행정보 정리할 대는 들어본 바도 없었는데 메크네스에서 어쩌고 저쩌고 해서 욜케졸케 찾아 가면 아는 사람들만 가는 온천이 있다고 한다. 지금 당장이라면 혹사당한 몸을 쉴 겸 가볼만도 하지만 이후의 여정에나 가능한 위치였고 그 때가 왔을 때는 그 곳에 들를 여유는 없었다.
바깥으로는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사막이나 황무지가 아닌 녹지가 대부분이었고 그 녹지들은 이미 가지런히 개간되고 정비된 옥토였다. 요르단과 시리아에선 도시간 이동시마다 사막을 거쳤지만 레바논에선 가는 곳마다 녹지여서 쾌적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있고 레바논과는 또다른 분위기이지만 이런 모로코의 첫 인상이 나를 들뜨게 했다.
집들도 대부분은 깔끔해 이 곳 사람들의 비교적 높은 생활수준을 엿보게 한다. 이따금씩 보이는 회교사원의 미나렛은 화려하고 섬세한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고 이제까지 본 사원들의 건축양식들과는 달리 미나렛의 규모가 컸다. 눈에 디는 것은 단연 미나렛의 문양. 이 곳은 문양의 나라라고 해도 좋을만큼 가는 곳마다 섬세한 문양을 볼 수 있고 문양 자체를 연구하기 위해 많은 학자들이 방문한다고 한다.
카사블랑카 역에서 내렸다. 카사블랑카에는 3개의 기차역이 있어 행선지와 열차시각에 따라 가야 하는 역도 달랐다. 내가 내린 곳은 카사 보이저역(CASA VOYAGER'S TRAIN STATION)이었다.
역사를 나오니 야자수가 가로수로 심어진 역광장이 눈에 들어왔다. 역사의 모양은 달랐지만 왠지 역광장과 뚫린 길은 천안역을 연상시켰다.
나는 우선 라바트로 갈 참이었다. 카사블랑카는 수도가 아닌 제 2의 도시다. 이 곳 카사블랑카(CASABLANCA)는 모로코의 경제 중심 도시이고 라바트(RABAT)는 모로코의 행정중심이며 수도였다. 집으로 돌아갈 항공기의 공항이 이 곳에 있으니 이 곳은 나의 여행 계획상 떠나기 전 마지막 여정의 도시가 되어야 했다. 라바트는 이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버스만 타면 금방이지만 그놈의 버스를 어디서 타야 하는지부터 알아야 했다. 전부터 론니 플래닛의 지도는 믿지 않았지만 대충의 위치만 파악하기 위해 잠깐 들여다 본 뒤
같은 여행자로 보이는 배낭맨에게 물었다. "세이테이엠(CTM) 터미널이 어디 있는지 아쇼?" "나도 지금 왔슈." ㅡ,.ㅡ;
CTM은 장거리를 연결하는 럭셔리 고속버스였다. 이걸 불어로 어떻게 발음하는지 몰라 어느 책에서 보니 세이테이엠이라고 발음했는데 현지인들이 못알아 들었다. 수첩에 써서 보여 줬더니" 아항~~~! 세티암!" ㅡ,.ㅡ; 젠장 현지 발음은 완전히 달랐다. 불어를 알지 못해 의사소통에 약간 불편함이 뒤따랐다. 길을 물어 영어를 모르는 사람이면 묻는 족족 프렌치를 아느냐, 에스파뇰은 아느냐, 아라빅은 아느냐고 묻곤 했다. 모르닌디유... 방향만 물었다.
이 분에게 길을 물었다. 젊잖게 고개를 저으신다.
대충 지도 보고 대충 물어 가지만 중동여행때처럼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척을 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 왔던 길을 수없이 되돌고 헤매는 일은 없었다.
가는 길은 유럽풍의 낡은 건물과
모로코 고유의 아라베스크 문양이 혼재하는 독특한 도시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마지막 날 묵으려던 유스호스텔이 이 근처였나보다. 반가운 생각에 이정표 사진을 찍어 두었지만 나중에 다시 카사블랑카로 돌아와 여기서부터 유스호스텔을 찾아가 보았지만 이 근처가 아닌 전혀 엉뚱한 곳에 무성의하게 대충 놓은 것에 불과했다. 사실 이 곳에서 유스호스텔 이정표 표기를 한다면 내가 걸어온 반대 방향만 아니면 어떻게든 갈 수 있을만큼 꼬불꼬불한 길을 통해야 했지만 찾는건 결코 쉽지 않았다. 어쨋든 그건 나중 애기니까 삼천포로부터 나와서...
물어물어 세티엄을 찾았다. 사람들이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데다 불어로 하는 나의 CTM 발음이 엉성한지 못알아 들었다. 그 때마다 "CTM"이라 쓰인 수첩을 내밀었다. 얼씨구리? 팔자좋은 고양이가 남의 찬지 주인 찬지 몰라도 햇볕을 받아가며 그 위에 널부러져 맛있게도 잔다. 다가가 카메라를 들이대니 귀찮은 듯 한 쪽 눈을 샘눈뜨더니 기냥 다시 감고 잔다. 팔자가 상팔자다.
드디어 찾은 세티엄 터미널. 11시 30분 차 표를 사고 나서
물을 하나 샀다. 이 곳에 있는 동안 물은 거의 사디 알리 상표의 물이었다. 물값 3디람.
라바트는 카사블랑카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로 고대 로마의 식민도시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라바트에 도착해 큰 현대차 매장이 눈에 띠었지만 이 곳은 중동과 달리 의외로 현대차가 눈에 잘 띠지 않았다. 1시간이 넘게 소요되어 라바트에 도착한 시간은 12:50. 세티엄 터미널에서 나와 론니 지도와 나침반의 방향으로 미루어 방향을 잡고 일단 걸어 보았다. 라바트의 초입에 있는 터미널인 만큼 주변엔 사람들이 좀처럼 없었다. 내가 묵고자 하는 호텔은 메디나(구시가지: 메디나는 어느 도시에나 있고 그 메디나 주변으로 신시가지가 들어서 있었다) 초입에 있으니 길가던 사람을 붙잡고 메디나 가는 길을 30대 가량의 한 남자를 붙잡고 물었다. 그는 영어를 몰라 불어로 말했지만 택시를 타라는 권유는 얼핏 들렸다. 이 곳에서 얼마나 먼지를 물었더니 "싼 킬로미터"란다. 나는 그가 하는 말이 불어라는 사실을 잊고 중국어로 착각해 3킬로미터로 받아들였다. 나는 확인차 "싼 킬로미터?" 하고 되물으며 손가락 세 개를 들어 올렸다. 그는 고개를 젓더니 "싼 킬로미터" 하며 손가락 다섯개를 내보였다. ㅡ,.ㅡ; 5킬로미터 정도였다. 바보~~~! 아랍인에게 길을 물었을 때는 실제 소요시간이나 거리보다는 적게 이야기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미루어 알고 있던 나는 걸어 갈 곳이 아님을 직감했다. 택시를 타기보단 버스를 타고, 버스를 타기보단 걷기를 좋아하는 나는 휘익 가버리기 보다는 찬찬히 도시의 분위기를 만끽하며 사색하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버스편을 물어 보았다. 그는 내가 내민 수첩에 교통편과 내릴 곳을 적어 주었다. 30번 버스를 타고 Place Bab Alhd에서 내리란다. 밥 알흐드는 우리나라의 숭례문이나 동대문 같은 성문의 이름(알흐드 문)이다. 요금은 3.5디람
버스를 타고 가서 목적지에 내리고 보니 걸어 올 수 있는 거리는 분명 아니었다.
도착하자마자 눈에 띠는 구시가지의 성벽은 높이와 규모가 높고 커서 보는 이를 압도했다. 흙으로 세운 이 성벽은 오래도 되었을텐데 보수를 잘한건지 보존을 잘한건지 상태가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아래 사진의 오른 쪽 성벽 끝으로 길이 뚫려 있고
성벽은 문짝없는 문을 통해 길만 내놓은 채 계속 이어져 내달렸다. 고지대도 아니건만 견고한 성벽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모양새다.
메디나에 들어서서 바로 찾을 수 있는 이 도르미 호텔을 바로 근처에서 개판인 론니 책자의 지도를 보며 헤맨 통에 30분은 족히 찾아다닌듯 하다.
론니에 나온 물가정보는 도대체 몇 년 전 자료이길래 대부분 책내용 보단 1/3~1/2 정도를 더 줄 생각을 미리 해야 했다. 이 곳은 도미토리가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곳엔 여러명의 여행자들을 한 방에 몰아넣는 도미토리(dormitory)라는 개념이 없었다. 어딜 가면 "도미토리? 그게 뭔데? 일본어야? 영어로 말해 영어로!" ㅡ,.ㅡ; 할 수 없이 독방을 달라고 했더니 침대 2개가 있는 방 뿐이란다. 책자엔 17달러정도(130 디람)로 표기되어 있고 주인장이 요구한 방값은 200디람이었다. 게다가 핫샤워를 하려면 별도로 돈을 내야 했다. 10디람이었던가...? 샤워는 무조건 해야했다. 이틀동안 씻지도 못하고 여기까지 왔으니 세미 거지꼴이다.
이틀을 묵을걸로 예상했지만 혹시 몰라 일단 하루치 방값과 핫샤워비를 내고 방을 안내 받았다. 하루치 방값만 지불한 것이 잘한 일이었다는 것은 담날 샤프샤오엥(Chefcheouen)으로 떠나게 되면서 깨달았다. 바닥은 타일이고 화장실은 바깥 공용화장실을 사용해야 했다. 세면대 오른 쪽은 옷장이다.
방으로 들어와 배낭을 내려놓고 방안에서 바깥을 향해 사진을 찍어 보는데 주인장이 수건을 들고 조심스럽게 들여다 보는 통에 재미있는 사진이 찍혔다.(아래) 오후 한 시가 넘었다. 뜨거운 물을 틀어놓고 마음껏 샤워를 했다. 기분 좋기가 형언하기 쉽지 않다. 거지꼴을 벗고 환골탈태한 뒤 더운물로 신고 있던 양말과 입고 있던 내의도 대충 빨았다. 여행중에 성의 있게 빨래했다간 공공의 적으로 지탄받을 일이니 잠깐사이 대충 빨아 대충 널고 나니 널려진 네 조각의 빨래를 쳐다보기도 흐믓하다. 지도를 펼쳐들고 정보를 얻어볼까 했다. 주인장은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고 나는 불어를 전혀 몰랐다. 서로 영어로 묻고 불어로 대답하고 알아듣는 사람은 없고 쓸데없는 시간 허비를 5분정도 하고 난 뒤 포기했으니 득도에 소질이 없는 나인가 보다.
오늘은 모로코에 도착한 첫 날이고 그동안 도하까지 가느라, 도하시내 구경하느라, 여기까지 다시 갈아타고 오느라 만 이틀 이상을 혹사시키고 보니 그냥 쉬엄쉬엄 메디나 산책이나 하고 일찍 디비져 잘 참이었다. 미린다 한 병(2.5 디람)을 사서 빨며 돌아 다니다가 얼핏 론니 책자에 소개된 리베라티옹 레스토랑(Restaurant de la Liberation)을 발견했다.(14:00) 값이 싸지만 음식은 훌륭하다던가 어쩧다던가. 모로코 전통음식 중 하나인 꾸스꾸스가 바깥에 쓰여 있어 이 곳이 전문점인가 했다.
시켜놓고 보니(29 디람) 완전 아작내다시피 한 쌀가루로 밥을 하고 채소와 쇠고기가 들어간 찌개국물을 내놓았다. 말이 찌개지 찌개 맛은 아니고... 어쨋든 접시에 밥을 덜고 그 위에 야채와 국물 반을 부어 먹어봤다. 총알같은 밥알이 식도를 타고 넘으며 신경질적으로 목구멍을 까칠하게 긁어댔다. 맛은 젠장뉴스에 소개되면 딱이다. 하지만 나중에야 꾸스꾸스가 맛있는 음식임을 알게 되었다. 국물을 부어 밥이 좀 불어야 맛이 있는 음식이었다.
어쨋든 이른 새벽에 아침을 먹고 비행기에서 내린 이후의 늦은 점심이라 남김없이 다 먹었다. 간만에 곱창이 풍만해지니 파란 색이 파랗게 보이고 노란 색이 진짜로 노랗게 보이기 시작했다.
일반 집의 대문 문양도 아름답다는 사실이 이젠 제대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메디나도 식후경이었다. 노란 칠을 한 문틀과 징을 박은 대문, 그리고 대충 방치해 둔 수레가 인상적인 풍경을 빚어낸다.
아무 생각 없이 아메바처럼 메디나 안을 구석구석 싸돌아 다녀봤다.
메디나 골목골목은 듣던대로 두 사람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좁았다. 아마도 과거 침략자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랬을 것 같다. 외지인이 오면 길을 잃을 정도로 골목이 좁은데다 미로이니 성이 함락되어 대군이 밀려 들어와도 오합지졸 되기 딱이다. 지리를 아는 병사들은 반격하기 좋았을게고. 아님 말구. 성질급한 세 사람이 마주오다 엇비껴 지나가면 세 사람이 양쪽 벽틈에 끼어 못움직일 것만 같다.
이 곳은 다섯시만 되면 해가 진다. 호텔로 어둑어둑해져 돌아온 나는 지친 몸을 쉴겸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모로코에서의 첫 날은 이렇게 무위도식하며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