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1
2009. 6.17(수)
아침일찍 대구로 가는 출장길이었다. 떡본김에 제사지낸다고 했다. 출장 가서 일 끝나고 나면 주변 관광을 다니는게 경비도 절약하고 거리 이동의 노력도 줄어들고 아주 좋다. 대전 이남으로 내려가는 길은 무척 오래간만이다. 경치가 좋다.
버스터미널에 내리자마자 점심 먹을 시간이었다. 터미널 주변은 뜨내기들을 대상으로 하는 장사들이 대부분이라 안먹는게 보통이지만 이 집은 다른 집들에 비해 손님이 많아 호기심에 들어가봤다.
돼지국밥이란걸 시켜 보았다. 이름만 들어봤지 먹어보긴 첨이다. 뽀얀 사골 국물에 누르지 않아 보들보들한 돼지머리고기와 혀의 씹는 감촉이 일품이다. 가격도 3,500원으로 저렴하다. 부추무침도 깔끔하다. 강추!
세미나 장소인 대구 인터불고 호텔로 가던 길에 보이는 성문. 한국건축의 백미 중 하나인 기와의 곡선. 은근한 곡선이 있지만 왠지 투박하다.
대구 인터불고 호텔.
방을 배정받고 들어가니
낙동강 오리알의 전망은 없지만 정원에 깔린 조각(?)들의 군상이 볼만하다. 오후부터 교육과 총회가 이루어지고 나면 담날부턴 느슨한 회합과 주변 문화탐방이 이어진다고 한다. 첫날은 열심히 교육과 회합에 참석했다. 저녁식사 후에는 지역별 참가자들간의 간담회를 겸한 술자리가 이어졌다. 나는 당연히 서울지역 간담회에 참석했다.
2009.6.18(목)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끝내고 대구지역 탐방에 참가하느니 이 곳에서 1시간 거리인 경주로 갔다. 경주 어디를 가도 고전적인 기와지붕의 집들이 대부분이라 시간적 시대적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아파트라는 것도 거의 못보았고 심지어는 상점들까지도 밋밋한 현대적 건물은 거의 없었다. 이 곳 시민들은 집을 개보수하는데 제한이 있어 불편하겠지만 이러한 관리와 보존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문화유산이 지켜지는 것 아니겠나. 국내 관광보다는 해외 여행을 선호하는 나의 이유는 방문한 곳이 우리와 다르면 다를수록 열광하는 나의 취향때문이다. 그러나 이곳 경주와 이후에 들렀던 안동에서는 일상생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잊고 살아왔던 나의, 아니 우리의 정체성이 나의 감흥을 새삼 자극하되 깊은 감동을 받았다.
도착하자마자 터미널 근처의 information center 에서 관광지도를 받아들고 시내 중심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불국사와 석굴암부터 보기 위해 교통편부터 알아보았다. 지도는 상세하게 나와 있지만 교통편 표시는 전혀 없었다. 이사람 저사람을 붇잡고 물어보았지만 현지인들도 잘 모른다. 1000년 고도인 두 도시, 한국의 경주와 일본의 교토가 갑자기 교차하며 비교됨이 느껴진다. 몇 년 전 교토에 방문했을 때 그 곳에서 얻었던 관광지도에는 시내 교통편과 유적지가 한 눈에 들어오도록 정리가 되어 있었다. 그 곳에선 우왕좌왕한 기억이 거의 없다. 하긴 내가 다녔던 그 어디에서도 그만큼 완벽한 관광지도는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경주 지도에는 교통편 안내가 없어 적잖은 시간을 방황하고 헤맸다. 한 대학생의 도움을 받아 10번 버스를 터미널 건너편에서 타고 40분 정도를 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도착하고 보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지나가던 어르신께 근처 식당을 추천받았다. 내 보기엔 식당들이 고만고마내 보였다.
순두부 백반을 시켰다. 반찬도 맛있고 찌개 국물도 시원하다. 정작 순두부는 좀 퍽퍽하다.
불국사 입구
표를 사고 문을 들어서면(버스에서 내려 들어가는 입구는 후문이었다) 경내로 들어가는 긴 입구가 이어진다.
가장 먼저 눈에 띠는 종루
그 엽은 외부인은 들어 갈 수 없는 스님들의 수련장소 겸 거처 입구
사진으로만 봐오던 불국사에서 한 컷.
사진에서만 봐오던 불국사의 위용. 나는 우리의 고전건축물들을 보며 조상들의 위대한 숨결을 느낄 때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 자체가 무척이나 자랑스럽다.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짓기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년)에 완성했다고 하니 24년간 건축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임짐왜란 때 일부 소실된 것을 검증을 통해 복원하였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뒤쪽으로 돌아가 안으로 들어 가면
대웅전이 보인다.
주변 어디를 봐도 화려한 단청과
우아한 기와의 곡선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큰 규모의 불국사를 구석구석 다 본줄 알았는데 그 중요한 다보탑을 안보고 나왔다.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군. 담에 보셈. ㅡ,.ㅡ;
바로 옆에 붙어 있을 줄 알았던 석굴암은 버스를 타고 20분정를 더 가야 했다. 버스를 타고 뱀등을 타듯 이리저리 구부러지고 경사진 산속 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경치에 넋을 놓게 된다. 불국사와 석굴암 보는 것 못지 않게 즐거운 체험인 만큼 누군가 이 버스를 타게 되거든 맨 앞자리에 앉길 권한다.
도착하면 가장 먼저 보이는 종각과
석굴암 입구 현판
본존불은 이 안에 모셔져 있는데 유리로 막혀 있어 본존불만 간신히 볼 수 있고 금강역사등 다른 부조들은 보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다. 물론 사진도 찍을 수 없다. 그래도 보는 것만으로도 흐믓하다.
아래쪽에는 스님들의 수련을 위한 공간으로 일반에 공개되지 않아 밖에서만 보고 나왔다. 삼층탐도 이 안에 있어 물론 볼 수 없었다.
11번 버스를 타고 다음으로 들른 곳은 공예촌.
신라역사과학박물관이란 곳도 들러 보았다. 입장료 3천원이나 되는 이 곳은 모조품 일색인데다 전시물도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공예촌을 둘러보다가 발견한 한 공예가의 집. 정말 살아보고 싶은 집이었다. 주인이 농반진반인지 팔테니 사란다. 나도 그랬음 좋겠다.
안동 중심가로 나와 저녁 먹을 궁리를 하다 발견한 집. 이거 서울에서도 많이 보던 집인 것 같은데? 지도에 나온 해장국거리를 가서 먹을 참이었지만 해장국 거리에 있는 해장국집들은 하나같이 파리를 날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 지역을 나와 지나 가다가 그나마 사람이 많은 이집으로 갔다.
이 집은 도매값으로 80점정도는 줄만하다.
이 번엔 고가옥이 몰려있는 양동마을로 발길을 잡았다. 이미 해가 지고 주변이 어둑어둑해지고 나니 주변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지붕 조차도 고전적인 모습을 하고 있어 카메라에 담아보고 싶었지만 불가능했고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을 찍어 보았다.
이 마을엔 대부분을 차지하는 초가집과 일부 고택만이 있는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본거라 확실치는 않다.
그러다가 발견한 향단이라는 고택이다.
처음엔 늦은 시간이라 문이 굳게 닫힌줄 알고 주변만이라도 들러보고 나올 참이었다. 일부 공사중이라 땅은 파해쳐져 있고 장비가 방치되어 있었다.
뒤쪽으로 돌아드니 후문이 있고 그 안에 이 댁 후손들이 마루에 앉아 곡주를 나누며 담소중이었다. 실례를 무릅쓰고 좀 둘러 보고싶다고 했다. 고맙게도 쾌히 승락하기에 어둠속에서나마 내당의 방들을 제외한 구석구석을 둘러 보았다.
일부는 고택의 천적인 불에 타 소실되고 일부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과거 양반의 풍류와 기개가 묻어나는 분위기에 매료될만 하다.
안쪽과
대문과 사랑채의 지붕을 발밑에 둔 툇마루
저녁 느즈막이 너무 오래 있으면 실례될 것 같아 구석구석 봤다고 판단이 되자 서둘러 인사를 하고 나오려는데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분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늦게라도 이 곳을 보고 가려고 늦은 시간을 쪼개 찾아와 예의를 갖춰 허락을 구하려는 나를 오히려 좋게 보고 있었던 것 같다. 갈길이 바쁘지 않으면 올라와 한 잔 하고 가라는 제안에 몸둘바를 몰랐다.
사실 이런 고택 마루에 앉아 풍류를 즐기는 이 분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멋스러워 보이고 부럽던 차에 겸양으로나마 할 수도 있었던 사양 한마디 없이 덜컥 주저 앉아 감사의 인사부터 했다. 통성명을 하고 지금의 소감을 이야기하니 젊은 사람이(사실 젊지도 않지만) 이토록 늦은 시간에까지 외진 이곳에 찾아올만큼 우리문화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자체를 높이 평가하며 술을 한 잔 권했다. 술맛은 예술이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으로 담근 이술 맛이 내겐 너무도 좋았는데 술이 가장 좋은 맛을 경과해 조금 맛이 상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라고 한다.
대구 호텔로 돌아갈 막차시간을 체크하던 중 이 댁의 둘째손 되시는 이욱 선생님(아래 사진 좌에서 세 번째)이 방을 내줄테니 자고 가라는 제안에 너무나도 솔깃했지만 짐이 대구 호텔에 있고 체크아웃도 안한 상황이라 고민이 되었다. 짐을 아예 홀라당 싸서 나오려던 생각을 아직 바꾼게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좌측 세분은 이 가문의 후손들이고 나를 제외한 나머지 한 분은 이 곳 향단의 가문과 교유중인 모 대학교의 문화재 관련학과 교수님. 학생들을 대동한 두 번째 방문이라고 한다.
이곳 이씨 가문에서 교유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만 기회를 주는 방명록에 내 이름을 올리는 영광까지도 얻게 되었다. 이후 사양하지 말고 친한 사람들과 함께 내려오라는 말씀도 있었다.
안주로 맛보았던 해물과 나물. 담백하면서도 깔끔한 맛이다.
덕분에 안채까지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사실 이 마루는 대소사때 가솔들이 모이면 최고의 어른들을 안방에 모시고 나면 차순위의 손들이 앉는 곳이 바로 이 마루라고 한다. 둘째손 되시는 이선생님도 이 곳에 자주 앉지는 않으시는 모양이다. 그러니 이 곳에 초대받음이 더욱 감격스럽다.
막차 시간이 되어 하직인사를 고하려 하자 세째손 되시는 분이 집에 돌아가는 길에 안강 터미널에 내려줄테니 9시 40분 막차를 타고 가라는 친절한 말씀에 감사하고 염치없이 무거워진 둔부를 다시 마루에 붙였다. 떠날 때 집 바깥까지 따라나오던 강아지. 이름이 "하나"라고 했다. 평소 못생겨서 싫어하던 종인데 이상하게도 살갑게 따라 나오는 이 강아지 무척 귀엽다. 물론 나를 따라 나온 것은 아니고 나를 태워 주겠다던 향단의 3째 아드님을 따라 나선 것이었다.
호텔로 돌아와 싸돌아 다니느라고 피곤했던 몸을 뉘우자 이내 잠이 왔다. 돌아오던 중 버스 안에서 만난 한 여자분은 몇 년 전 국내에서 있었던 장예모의 푸치니 투란도트에서 주역으로 출연한 바 있는 소프라노 고미진씨였다. 내 기억에 이틀간의 공연이 있었는데 내가 본 공연은 이탈리아의 소프라노가 주역을 맡았던 낭의 것이었다. 오페라 무대와 성악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느라 지루하지 않게 대구의 호텔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 오늘 일정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으니 운이 아주 좋은 날이었던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