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배낭여행. 뭐가 그리 좋은거지?
시종일관 떠날 궁리만 하고 있는걸 보면 아마도 내게는 역마살이 붙어 있는 모양이다.
단체로 다니는 것보다는 인원이 적을 수록 좋고, 때로는 혼자 훌렁 떠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는 것을 보면 더더군다나 그런 생각을 갖게 된다.
과연 나만 그럴까.
집에서 떠나기 싫어하는 소수의 애향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스스로가 속한 각박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 책임과 의무로로 인해 저마다 받는 스트레스로부터 탈출을 하기 위하여, 그리고 내가 있는 바로 이 곳의 식상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어디론가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싶어한다.
때로는 도심을 떠나 근교로, 때로는 이 도시를 떠나 다른 도시로, 때로는 이 번잡한 곳을 떠나 저 한적하고 깊숙한 곳으로, 때로는 손쉽게 발길이 닿는 이웃 나라로, 한 발 더 나아가 화려하고 고전적인 유럽의 도시들이나 때로는 황량하고 척박한 유산밖에 없지만 위대한 정신문화나 장엄한 자연을 가진 나라로...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해외여행에 관한 것이다.
해외여행은 경비나 소요시간 등을 고려해 떠난다는 결정을 하기 쉽지 않지만 어떻게 떠날까 하는 문제에는 더욱 많은 고심거리가 될 수 밖에 없다. 여행에도 다른 사람이 세워 놓은 완벽한 계획에 편승해서 가는 방법이 그 하나요. 스스로가 세운 계획을 통해 좌충우돌하며 고단하게 다니는 방법이 그 하나다.
전자는 소위 패키지여행이라 일컬어지며 후자는 배낭여행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두바이 시내의 대형 국기 게양대)
패키지여행은 여러모로 많은 장점이 있다.
초보자로서 해외여행을 하자면 스스로 개척하며 다니자면 너무나도 알아야 할 것들이 많다. 항공권 구입과 발권, 출국수속과 경로, 항공기 탑승 장소와 절차, 도착국에서의 입국수속 등을 해결하고 나면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여행 루트와 경로, 경비, 교통수단, 현지에서 직면한 곤란한 상황 등으로부터의 대처 등 갈수록 태산이다.
여행사가 제공하는 패키지여행은 이러한 어려운 문제들로부터 여행자들을 보호해 주니 안심하고 자신을 내맡길 수 있다.
패키지 여행은 저렴한 경비가 그 첫 째 장점이다.
패키지 여행에서 제공하는 항공권과 호텔숙박권은 여행사가 항공사와 호텔로부터 사전에 할인된 가격으로 확보해 고객에게 제공한다. 게다가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호텔은 대부분 특급이거나 일급이다.
사실 항공권을 정가에 구입하고 특급 또는 일급 호텔을 스스로 수배하자면 귀찮기도 하거니와 경비는 훨씬 더 비싸지게 된다.
패키지 여행이 제공하는 장점 중 또 하나는 편리성에 있다.
공항에 집결만 하면 그 때부턴 여행사에서 모두 다 알아서 수배하고 처리해 준다.
항공권 발권으로부터 출국수속, 항공기 탑승, 도착 후 입국수속은 물론 대기중인 전용 차량의 운행, 특급 식사 제공 등 여행자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아도 되고 일정과 세부적인 사항에 일체의 고민으로부터 해방된다.
패키지여행이 제공하는 장점의 또 하나는 안전성에 있다.
아파서 병원으로 가야 할 경우, 불의의 사고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현지인과의 예기치 않은 시비가 생겨 경찰까지 오고가는 상황이 생겼을때, 대처방안이 필요한 테러 등으로부터의 위협을 받았을때, 여행사는 철저하게 고객을 보호한다.
이렇게 경제성, 편리성, 안전성이 확보되는 패키지여행을 마다하고 고단하기 짝이 없는 배낭여행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전정신이라는 나름 합리화를 추구하며 남거나 모자라는게 틀림없는 이 사람들은 혀를 차는 주변인을 외면하며 배낭 하나를 무기로 들고 돌진한다.
나도 바로 그 또라이에 해당한다.
나의 가장 큰 소원은 다니다가 붙잡혀 목짤릴 가능성이 있는 한 두 국가를 제외한 나머지 지구촌 구석구석을 안가본데 없이 홀라당 다 다녀보는 것이다. 다니다가 맘에 드는 곳이 나오면 그 곳에 한동안 머물며 친구도 사귀고 싫증나면 다시 떠나고 가다가 같은 방향의 여행자를 만나면 같이 다니다가 헤어지고... 가는 세월 붙잡거나 연연해 할 필요도 없다.
못하는 이유는 바로 직장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짤리지 않는다는 보장만 있으면 일년간 휴직원이라도 내고 기냥 발길 닿는대로 떠나보고 싶지만 이 것 역시 팔일동안 삶은 호박에 이도 들어가지 않을 쉰소리다. 이걸 못하니까 그나마 때만 되면 휴가를 얻어 배낭여행을 떠나는 소박한 즐거움을 만끽하곤 한다.
(해질녁의 산토리니)
배낭여행을 선호하는 이유는
첫째로는 행선지와 일정의 자율성에 있다.
배낭여행을 가기 위하여는 많은 사전준비가 필요하다. 복장 결정을 위한 현지 기후 조사, 경비 결정을 위한 물가 조사와 지출계획 수립, 목적지로부터 다른 목적지로의 이동을 위한 교통상황 및 교통편 조사 등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방문할 명소와 여행루트를 결정하는 일이다.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지만 이 조사를 제대로 하면 스스로 가보고싶은 곳만 골라 행선지를 결정할 수 있으니 관심이 가지 않는 곳은 가지 않아도 된다. 더구나 여행사의 상업적 목적에 의한 방문지 같은 짜증나는 장소는 더더욱 갈 필요도 없다. 마음에 드는 곳은 더 머물 수도 있고 막상 들렀을 때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좀 더 일찍 떠날 수 도 있다. 다만 자신이 세웠던 계획은 아무리 자료조사를 통해 철저한 고려끝에 수립되었다 하더라도 많은 것들이 현지 사정과 다름을 발견하게 된다. 이 때는 완벽하지 못한 자신의 계획에 억지로라도 두드려 맞추려는 매너리즘은 경계해야 한다. 자신이 세운 계획은 참고사항이지 교과서는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자신이 세웠던 계획을 어느 순간에 휙 뒤집는 재미도 짭짤하다. 그래도 계획은 반드시 세워야 하는 이유는 자료 조사를 했으니 어떻게 변경하는 것이 현명한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시간이나 경비는 더 소요되지 않는지 등을 신속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점때문이다.
둘째로는 문화체험 효과의 극대화를 들 수 있다.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는 외국의 다른 문화를 접해보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우리와 전혀 다른 외국의 문화를 접한다는 것은 무척 흥미진진하고 흥분되는 일이기까지 하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음식문화다. 음식문화 하나만 보고도 그 나라의 농경제의 한 단면을 볼 수 있고 풍토와 기후 등을 짐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어느정도는 민족성도 짐작이 가능하며 그들이 선호하는 향취와 맛을 즐기며 이색 체험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이 것을 간과하는데 이는 중대한 실수가 된다고 생각한다. 과거 직장동료들과 함께했던 패키지여행 중 현지음식은 거부하고 한국음식점만을 찾곤 했다. 외국에서의 한국음식점은 무척 비싼 관계로 여행사에서 한국음식점만 데리고 다녔다면 이는 특별히 신경을 써 준 것이었다. 현지 음식점을 가도 특유의 향신료는 빼고 제공되었다. 멤버 중 한 명은 장거리 다니기도 힘든데 먹는거라도 잘먹어야 체력 지탱이 될 것 아니냐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나의 주장으로 현지 전통식을 있는 그대로 먹는 경험을 할 수 있었지만 그건 여행을 통틀어 한 번 뿐이었다. 체험을 다양하게 하기 위해 음식점은 그나라 전통식으로만 하되 최고급과 최하급을 고루 체험하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를 조금이나마 제대로 체험하는데 도움을 준다. 배낭여행중에는 이 것 역시 원하는대로 할 수 있다. 그 나라의 생활상을 일부나마 엿볼 수 있는 시장도 들러볼 수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어머니 손에 이끌려 시장에 다니길 좋아했다. 잡다한 구경거리가 무궁무진한 시장에는 없는게 없고 군것질거리 또한 적잖은 행복감을 준다. 외국에서의 시장터 방문은 이러한 즐거움 외에도 그나마 그나라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가장 깊숙히 볼 수 있는 그들의 삶의 터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장바닥에 주인과 같이 퍼질러 앉아 값을 흥정하는 재미는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서민들의 생활을 볼 수 있는 주거지를 샅샅이 뒤지고 다니는 것도 보통 재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화려한 도시의 경관과 박물관, 그리고 유적지나 관광객을 위한 쇼프로그램도 좋지만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고 우리의 생활과 비교해 본다면 얻어 돌아오는 것은 결코 작지 않다. 사람 많은 대중교통을 그들과 함께 타고 부대껴 보는 재미도 꼭 느껴볼만 하다. 그 중에 특이한(?) 사람 한 명만 만나도 엄청 재미가 있어질뿐만 아니라 술자리에서도 안주삼는 이야기거리로 두고두고 회자될 수 있다.
세째로는 현지인과의, 그리고 여행자간의 교감을 들 수 있다.
한 때는 나도 미리 호텔을 예약하거나 여행사에서 자유여행팩으로 나온 에어텔(항공권과 호텔바우처만을 패키지로 묶어 파는 상품)을 구입해서 다니곤 했다. 이 경우 현지에서의 유동성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전술했던 배낭여행의 장점인 현지에서의 유동성이 현지 호텔 예약된 상황때문에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물론 현지에서 일정이 변경되어 숙박일자를 변경하는 방법도 있지만 취소를 하는 경우 예약금(예약금 없이 예약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취소시 금전적 불이익은 없어도 나 자신의 신용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자존심을 감수해야 한다)은 포기를 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호텔을 예약한 이유는 여행성수기 호텔 구하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절대 예약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그 뒤로 몇 번 더 돌아다녀 본 뒤였다. 다양한 경험을 위해 최고급 호텔과 최하급 호텔을 고루 다니다 보니 발견하게 된 사실도 하나 있었다. 고급 호텔에는 배낭 여행자가 거의 없고 만나게 되더라도 교감할 기회는 별로 없다. 반면 값싼 호텔의 도미토리 룸에 들어가 보면 비슷한 취향의 여행자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서로 정보교환을 하다보면 많은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그 것이 인연이 되어 그 이후 서로 방문하는 경우까지 생기게 된다. 십수명을 한꺼번에 수용하는 큰 도미토리에 들어가면 세계 각국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문화적 차이를 여기서 십분 체험할 수 있다. 같은 방에 이성 여행자가 있다면 옷을 함부로 갈아입지 않지만 서양인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 내의 바람으로 칫솔을 들고 욕실로 들어가 문도 안닫고 씻는가 하면 사람이 없는줄 알고 화장실 문을 열었다가 앉아있는 이성을 봐도 그러려니 정도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같은 여행자들을 만났을 때 느끼는 문화적 이질감의 체험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정보교환이다. 아직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는 생각 이상으로 유익하다. 이러한 방식으로 같은 여행자들간의 교감이 가능하고 현지인들과의 교감 역시 상당히 기회가 많다. 관광식당이 아닌 현지인들이 애용하는 식당을 가보자. 생전 듣도보도 못한 희안한 음식도 체험해 보자. 먹다가 뭐가 뭔지 모를 때는 근처에 앉아 식사하는 사람에게 음식 이름이며 재료가 무엇인지 함 물어도 보자. 조금 친해지거든 궁금한게 있으면 좀 더 깊숙히 물어보자. 그들은 반드시 나에게 호감을 표시해 온다. 자기들의 문화에 관심을 갖고 알고싶어하는데 누가 싫어하랴. 그들이 타는 만원버스에 함께 찡겨타 보기도 하자. 그들은 돈도 있으면서 왜 이고생을 사서 하는지 궁금해 말을 걸어오기도 한다. 그들과의 대화도 나누어 보자. 특히나 혼자서 싸돌아 다니다 보면 패키지여행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현지인들과의 교감이 새로운 세계로 나를 인도하게 된다.
네째로는 여행 후의 지식 및 메모리의 다량저장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말인 즉슨, 아무 생각없이 남이 짜 놓은 프로그램대로 따라다니던 곳은 지도상 어디에 위치해 있으며 찾아가는 길 등에 대하여는 무딜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배낭여행자는 애초부터 사전 조사한 자료를 토대로 찾아간다. 그들은 대부분 현지 역사에 대하여 어느 정도만이라도 사전에 공부를 하고 간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무신경하게 따라다니며 설명해주는 대로 듣고 나면 한쪽 귀로 들어간 가이드의 해설은 반대편 귀를 아무리 틀어 막아도 새나간다. 어차피 세월이 흐름에 따라 기억이 하나씩 지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고생해서 어렵게 푼 문제들이 오랫동안 머릿 속에 남아 잊혀지지 않듯이 배낭여행으로 다녀온 추억들은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는다. 게다가 찾아다니면서 수시로 발생하는 에피소드와 엉뚱한데서 헤매는 과정들은 목적지에 도달해서 눈으로 확인하는 것 이상으로 큰 의미로 남는다. 이러한 것들을 하나도 버리지 말고 어떤 형태로든 기록으로 남겨두자.
다섯째로는 지적호기심에 대한 충족, 합리적 사고와 도전정신의 함양이다.
이 말은 듣기에 무척 피상적이고 틀에 박힌 진부한 표현이지만 사실이다. 배낭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도전정신이 강하고 개척정신을 실행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많고 지적 호기심마저도 강한 사람들도 많다. 가용한 책자, 지도, 인터넷 자료는 물론 역사책까지도 끌어모아 가볼만한 곳을 찾아내고 루트를 설정하고 여기에 살을 붙여가는 과정은 합리적인 사고력를 키워준다고 생각되어진다. 현지에 대하여 알고싶은 것들을 하나하나 조사해 가는 과정에서 지적 호기심도 채워진다. 현지물가를 조사하고 매순간마다 소요될 경비를 산출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결정하는 것 자체가 기획력을 함양한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아무리 멋지게 잘 짜여진 계획이라 하더라도 이를 실행하지 못한다면 그저 자료를 통한 간접적 지식을 얻는데 불과하다. 결단을 하고 실행하는 배짱이야 말로 흔히 말하는 도전정신의 대표적인 케이스로 생각된다. 나는 지금도 젊은이들에게 진짜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스스로 알바해 돈을 만들고 그 돈으로 배낭여행을 반드시 다녀올 것을 권하곤 한다. 내가 늦게 시작한만큼 그들은 좀 더 일찍 깨닫고 더 많은 것을 얻어와 더 훌륭하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아가 그렇게 얻어진 국제감각과 패기를 세계무대에서 향상된 국제협상력을 발휘해 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카이로 리파이사원)
배낭여행에 빠져들게 되는 나 나름의 이유를 대충 주워섬겨 보았다. 같은 배낭여행자라 하더라도 나와는 생각의 궤를 달리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배낭여행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즐겁기 위해서이다. 체력과 금전이 허락되는 한 나는 계속해서 배낭여행을 즐기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