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08-09 요르단

요르단여행2(암만)

코렐리 2009. 1. 16. 15:25

2009. 1. 1(목)

6시에 일어난 우리는 짐을 싼 뒤 7시에 밥을 먹었다. 아침식사는 그냥 저냥 먹을만한게 어딜 가나 똑같은 아침식사였다. 함께 떠난 일행은 사사키와 재승 그리고 나 일케 셋이다. 

 

이 곳이 버스터미널이다. 숙소에서 도보로 얼마 걸리지 않는 거리다. 나는 택시를 타고 온 관계로 처음 와보는 곳이다.

 

암만에 도착한 뒤 터미널 바로 앞에서 세르비스를 타고 다운타운에서 내렸다. 나는 낸시호텔 안주인과의 약속대로 다시 찾아 가려 했지만 재승, 사사키 두 사람 모두 클리프 호텔을 원하니 나도 그리로 따라 갔다. 사사키상은 여기서 하루 묵은 뒤 시리아로 넘어갈 생각이었고 재승도 사해를 본 뒤 시리아로 넘어갈 참이었다. 난 하루 묵고 나면 인천으로 돌아간다. 내게는 마지막 날이라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더 즐겁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나는 이제 오늘 암만 시내를 둘러볼 참이지만 암만은 이미 사사키상의 손바닥이 되어있는 관계로 호텔을 찾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시리아에서 호텔 찾는데 헤맨걸 생각하면 왠지 공짜로 찾아낸 듯한... ^^

 

이 노인 엄청 친절하시다. 이 곳의 사장은 아니고 직원인지 모르겠지만 사사키를 보더니 무척 반가와한다. 나는 사사키의 기를 살려 주기 위해 그의 칭찬을 듣고 따라왔다고 했더니 노인이 웃음짓는다. 체크인을 위해 이야기중인 재승(좌)과 사사키(우)  

 

최고의 시설은 아니지만 저렴한 숙박비와 핫샤워비(4 JD+0.5JD)가 장점이다. 그런대로 실내도 괜찮은 편이다. 무엇보다 장점은 사장과 직원인 노인이 영어에도 능하고 친절하다는 것.

 

이 곳이 우리 세사람이 묵은 방이다.

 

우린 호텔을 나왔다. 밥을 먹고 나서 한 바퀴 돌아볼 참이었다.

 

알 후세인 모스크를 지나기 전 나는 팔미라에서 만났던 은퇴 여행자 두 분을 여기서 또 만났다. 무슨 인연인지 시리아 팔미라에서 처음 뵌 이후 레바논에서도 한 번 이 곳 요르단에서도 한 번으로 벌써 세 번째다.

 

 

사사키가 싸고 맛있고 청결한 식당을 안다고 해서 그리로 갔다. 카이로 레스토랑. 바로 이 곳 카이로 식당은 알 후세인 모스크 바로 뒤쪽 골목에 있어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우리 다섯 사람은 이 곳으로 갔다.

 

내가 주문한 치킨과 라이스(2JD). 이 곳의 메뉴엔 사진이 함께 나와 있어 주문하기에 아주 좋다.

 

식사 후의 한담

 

식후에 나는 알 후세인 사원부터 들러보고싶었다. 사사키와 두분 은퇴 여행자 부부는 이미 보셨지만 나와 재승을 위해 기꺼이 동행애 주었다. 

 

암만을 대표하는 대사원 치곤 무척 소박하다.

 

 

내부 장식도 역시 다른 대사원들과는 달리 장식도 거의 전무하다시피하다.

 

 

기도중인 노인의 모습이 경건해 한 장 찍고 싶었다. 기도하는 사람보고 한 장 찍자고 할 수도 없고 도촬했다.

 

다른 곳에서 본 사원들과 비교해 크게 독창적인 양식도 없었다. 이 곳을 빼면 로마극장과 언덕위 성채, 로마극장이 이 곳 암만의 볼거리의 전부라고 한다.

 

 

이 번엔 언덕 위로 올라가 성채 유적을 찾았다. 이 곳 아랍에선 Citadel 을 물으면 영어를 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못알아 듣는다. 하기는 약간은 고급 단어로 봐야 하나...? 그들 말로 '꽐랏'이라고 하면 그나마 알아듣는 사람들이 좀 있는데 그 단어에 대한 내 발음이 시원치가 않은지 못알아 들을때도 많다.

 

헤르큘리스 신전으로 알려진 로마 유적. 기둥만이 남아있다.

 

기둥 자체는 코린트식이다.

 

 

암만 다운타운에서 가장 고지대인 이곳에서 내려다 본 로마극장(보따라지 로마니).

 

 

비잔틴 교회. 규모가 작은 소박한 교회였던 것 같은데 기둥은 역시나 화려하다.

 

'우마야드 홀'이라는데 함 들어가 봤다.

 

 

 

 

무엇인가 대화를 열심히 나누시는 두 분. 사모님 영어실력은 누구와의 대화도 어떤 내용의 토론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유창하다.

 

흐린 하늘 잔뜩 낀 구름 사이로 쏱아지는 햇볕이 나름 장관이다. 암만의 주택가는 녹지가 없는데다 개개의 집들이 기와가 없는 납작한 지붕에 블럭과 시멘트로 지어 놓고 칠도 하지 않아 약간 흉물스럽다. 이날 날이 무척 쌀쌀했다.

 

두 분이 묵으시는 파크호텔에서 갖고 계시던 양주로 한 잔 하고 나서 나의 제의로 아라비아 카페를 찾았다. 페트라에서 1인당 7JD를 냈었지만 전체 7.5 JD를 냈으니 엄청 싼걸로 느껴진다. 15,000원이면 사실 싼 것도 아니구만... ㅡ,.ㅡ;

호텔로 돌아오니 사사키가 먼저 돌아와 있었다. 우린 이미 한잔 그들먹하게 했고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2009. 1. 2(금)

오늘은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다. 아침식사는 호텔 바로 맞은편 골목 안 식당에서 했다. 사사키가 가진 정보에 따라 가장 싸고 맛있는 아침 식사를 하게 되었다. 요구르트와 샌드위치, 그리고 걸레빵. 이거 먹고 나니 배가 불러 눈에 뵈는게 없더라는.

 

사사키가 가진 정보력의 비결은 바로 이 책자였다. 세간다의 일본 원본. 중동편은 한국에서 수요가 없어 번역본이 나오질 않았다.

 

시리아로 곧 넘어갈 사사키(좌)와 사해로 갈 재승(우)

 

그들과 헤어진 나는 암만 시내를 더 둘러보기 위하여 체크아웃을 한 뒤 슬슬 돌아다녔다. 사실 암만에선 로마극장,  성채, 그랜드 모스크, 시장이 볼거리의 전부였다. 이 곳에서 멀지 않은 제라쉬를 가보고 싶었지만 오후 3시 20분발 비행기 시간이 왠지 여유가 있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냥 다운타운을 슬슬 배회했다. 

빵냄새가 구수한 빵가게를 지나가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안으로 들어오라며 자신들의 사진을 찍어달란다.

 

화덕에 반죽을 넣고 구워진 빵을 끄집어내는 손동작은 거의 예술의 경지.

 

모처럼 빵을 만드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주는 빵을 극구 사양하고 나온건 좀 전에 먹은 아침이 그들먹하기 때문.

 

시장통으로 들어가 보았다. 정육점. 

 

야채코너

 

시장통 안에서 맥주생각이 나길래 수퍼마켓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맥주를 사려면 전문매장으로 가야 하는 데 혹시나 해서 들어가 보니 무알콜 맥주가 있었다. 맛은? 뷁!

 

이 음료를 들고 돌아다녔더니 이 곳 야채가게 아저씨가 길거리에서 알콜음료를 마신다며 째려보고 눈치를 준다. 무알콜이라고 했더니 미소를 짓는다.

 

교회가 있길래 들어가 보았다. 무슨교회였을까.

 

교회당 입구

 

들어가 보니 그리스정교의 교회당이었다. 이 곳에서 장례 기도가 있었다.

 

시간 여유가 있어 슬슬 교회를 둘러보았다. 

 

 

 

이 곳을 나와 마지막 점심을 먹고 떠날 참이었다. 어제 갔던 카이로 식당에 가서 생선과 밥을 시켰다. 바로 옆에서 양머리 요리를 먹고 있었다. 에고. 저거 한 번 먹어볼걸. 음식 호기심이 많은 나지만 이게 마지막 식사이니 기회는 물건너 갔다.

 

밥을 먹고 나오니 그랜드 모스크 앞을 중심으로 엄청난 인파가 모여 기도를 하고 있었다. 엥? 나 공항 가야 하는디 내가 탈 차앞에서 뭣들 하는거여?

 

기도가 끝나자 가자지구를 공격중인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시위를 시작했다. 그덕에 뉴스에서나 봄직한 장면을 여기서 보았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뭔가가 꼬이기 시작하는 듯한 불길한 예감이 은근히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시위대가 멀어져가자 나는 세르비스를 타고 가서 공항버스로 갈아타기 위해 무잠마 샤말 버스터미널(Mujamma Shamal Bus Turminal)로 갔다. 론니에는 압달리 버스터미널로 가라고 나와 있지만 압달리 터미널은 없어지고 이 터미널이 새로 생겼다. 다운타운에서 무잠마 샤말 터미널까지는 4JD이다. 4인이 합승해 나눠 내는 것인데 무잠마 샤말로 갈 사람은 나밖에 없고 합승객이 차길 기다리자니 비행기 시간이 걱정되어 단독으로 터미널로 갔다. 세르비스를 타고 가는 도중 세르비스 운전자는 시원찮은 영어로 뭐라고 자꾸 떠드는데 무슨 소린지 알 수 가 없다. 자꾸 이르빗 21JD라며 떠든다. 이르빗이 뭐냐고 물으니 계속 "이르빗" "이르빗"하며 떠든다. '난 이르빗 모르고 Airport로 가는 버스를 탈거고 버스터미널만 가면 된다'고 다시 이야기 했더니 계속 "이르빗 21JD"이라면 떠든다. 짜증이 났다. 나는 에어포트를 이르빗이라고 하는 줄 알고(나는 에어포트를 말하는데 자꾸 이르빗 이르빗 떠드는데다 공항까지 세르비스 단독 승차하면 21JD이니 공항을 이르빗이라고 하나보다 했다) 발음 참 희안하게 한다고 생각했다. 터미널에 도착했다. 그 넓은 터미널에 여기 저기에 버스 몇 대가 서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터미널 한가운데 의자 놓고 않아 기록판과 펜을 들고 있는 사람에게 배차원인가싶어 공항가는 버스를 물어보았다. 들고 있던 볼펜을 들어 뒤꼭지로 가리키는 버스는 중형버스였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리무진 버스가 아니잖아? 고맙단 인사를 하고 그 버스 앞에 남자가 서있길래 공항 가느냐고 다시 한 번 물었다. 대답대신 올라 타라는 시늉이다. 일단 올라탔다. 뒤돌아 보니 방금 바깥에 서있던 사람이 올라타 좌석에 앉았다. 엥? 이 사람도 승객이잖아. 혹시나 해서 이사람에게 다시 '국제공항이 여기서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른다는 듯 어깨를 들썩이곤 양손 바닥을 들어보이며 의아한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나는 이 사람이 에어포트란 말 자체를 제대로 들었는지 의심스러워 이 버스가 국제공항을 가는지 다시 확인해 볼 참이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아가씨가 1시간 걸린다고 말해준다. 나는 그제야 안심을 했다. 조금 기다리니 버스 기사가 올라타고 시동이 걸렸다. 나는 조금 지나자 졸음이 오는 통에 아무 의심 없이 잠을 잤다. 한 40분정도 잤나보다. 이젠 거의 다 왔겠지 하며 밖을 내다 보는데 수시로 보이는 이정표에 Airport는 없었다. 갑자기 직진 화살표에 IRBID 라는 지명이 보였다. 세르비스 기사가 계속 이르빗 이르빗 하던게 생각나면서 뭔가 겹쳐지는게 느껴졌다. 이 멍청이들은 내가 에어포트라고 말한걸 이르빗으로 알아들은 모양이엇다. 어떻게 아무리 영어를 모르기로 에어포트를 모르냐... 에휴...! 버스기사에게 황급히 공항 가느냐고 물으니 안간단다. 갑자기 하늘이 노래졌다. 그 시간이 이륙 두시간정도 남았다. 공항은 남쪽에 있고 나는 그 반대편 북쪽으로 40분을 온 것이었다. 황급히 버스를 세우고 고속도로를 건너 덮어놓고 히치하이크를 시도했다. 대부분 그냥 지나가는데 다 썪은 폭스바겐 한 대가 나를 위해 서주었다. 공항으로 가려고 한다니 같은 방향이라며 일단 타란다. 적당한 곳에 내려 줄테니 갈아타란다. 나는 공항에 빨리 가야 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를 물으니 1시간 30분은 걸린단다. 암담한 표정을 지었더니 20JD를 주면 공항에 데려다 주겠단다.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닌 나는 대뜸 그러자고 했다. 공항 가는길 곳곳에 경찰이 깔려 있어 속도를 더 낼 수도 없었다. 이륙 30분 남겨두고 공항에 도착해 터키항공 부스를 찾아가 보았지만 이미 직원이 한 명도 없었다. 세상에 이럴수가 있나. 한국같으면 직원이 있고 부탁하면 그래도 항공권을 발권해준다. 내가 탈 항공편을 보니 라스트 콜을 하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터키항공 직원을 찾아 보려고 했다. 바로 옆 부스의 다른 항공사 직원들에게 터키항공사 직원들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니 자신들의 일만을 볼 뿐이었다. 자신의 일 외에는 관심없는 아랍인들에게 도움 청하기란 쉽지 않았다. 발권만 받아 바로 옆 에스컬레이터만 오르면 탑승구는 그곳에 고작 6개가 있을 뿐이다. 당일 1개 뿐인 운항편 발권시간 지났다고 한놈도 안남고 가버리는 아랍인들의 이 시스템에 질리고 말았다. 완죤 떡실신 정줄놓! 아시아나 항공에서 승무원 경험이 있는 친구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국같으면 해주고도 남았다. 발권을 안해주더라도 상담은 해주어야 할게 아닌가 말이다. 욕지기가 나온다. 이미 돈이 떨어졌으니 비상용으로 가져간 카드로 50JD를 인출했다. 터키항공사에 전화해 보기 위해 전화카드부터 샀다. 4JD짜리를 샀는데 방금 인출한 50JD짜리를 줬더니 44.5JD를 거슬러 준다. 하도 어이가 없어 왜 이렇게 거슬러 주냐니까 세금 별도란다. 이미 표시된 가격이면 세금은 당연히 포함되어 있게 마련이다. 비행기를 놓친 이마당에 한심하고 정신나간 듣보잡하고 싸우기도 싫어 그냥 주는 것만 받고 말았다. 다른곳 전화카드를 살 곳을 찾아볼만큼 맘의 여유도 없었고 듣보잡과는 싸우기는 더더욱 싫었다. 잘쳐먹고 잘 뒈지셈. information center로 가서 터키항공 요르단 지사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시리아, 레바논 , 요르단 세 군데를 돌아다니며 공중전화는 한 번도 본 일이 없었다. 그래서 center에 공중전화가 어디 있는지를 물었다. 안내인은 전화카드가 있느냐고 내게 되물었다. 방금 산걸 내밀었더니 포장을 뜯어 뒷면을 동전으로 긁으니 12개 정도 단위의 숫자가 나온다. 그러더니 자신 앞에 놓인 전화기를 들어 해당 번호를 누르고는 다시 터키항공 전화번호를 누르더니 내게 준다. 나는 공중전화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이제서야 알았다. 신호가 가지만 전화를 안받는다. 이런 젠장. 오늘이 회교도들의 안식일인 금요일이었다. 아뿔싸... 뭐가 되는게 하나도 없군. 터키항공의 금일 운항이 완전 종료되었으니 그 회사 직원을 공항에서 만날 방법도 없어지고 통화할 벙법도 없어지자 암담한 생각에 일단 공항을 떠나 호텔로 되돌아왔다. 말도 되지 않는 실수에 무력감을 넘어 정신적 공항상태까지 겪는 신세가 되니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나는 힘없이 공항버스를 타고(공항버스를 처음 본 순간 이놈의 버스를 미리 알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지만 무슨 소용이랴) 호텔로 돌아왔다. 프론트에 있던 사장이 눈이 휘둥그래지면 오늘 떠난다더니 왠일이냐고 묻는다. 비행기를 놓쳤다고 했더니 안타깝다는 시늉을 한다. 하루 더 묵자고 다시 체크인을 하는 중에 한국인으로 보이는 젊은 처자가 내게 다가왔다. "비행기 놓치셨어요?" 하소연 상대가 필요했던 나는 재승이가 돌아오길 기다리던 중 무척이나 동향인의 만남이 반가왔다. 그녀의 이름은 하림. 재승은 사해로부터 돌아와 이미 시리아로 떠났다는 것을  나중에 확인했다. 어쨋든 나는 걸프항항공의 스튜어디스인 하림씨에게서 많은 정보와 도움을 얻었다. 특히 크게 얻은 것은 정신적 도움이었다. 술한잔이 간절히 생각나던 상황인데 하림씨는 술생각이 없다고 해서 바로 아래층 아라비아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물론 나는 시샤도 했다.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눈 뒤 호텔 프론트에 다시 올라와 보니 와디무사 사막에 갔었던 마사요시가 돌아왔다. 마사요시도 내가 떠나지 못한 걸 보고는 놀란 눈치였다. 창피스럽지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왼쪽부터 나, 하림씨 그리고 마사요시. 하림씨는 어느 항공사나 24시간 상담창구가 있다며 터키 본사로 전화해  항공권 수배를 시도해 주었다. 이스탄불로 가서 뱅기를 갈아타야 하는데 문제는 암만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비행기 좌석이 화욜밖에 없단다. 희안한건 일단 이스탄불만 가면 인천가는 뱅기 좌석이 텅텅 남을텐데 암만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뱅기는 왜그리도 꽉꽉 차는지 알 수가 없다. 패널티와 추가요금[(할인항공권을 구입했기 때문에 변경시에는 정가를 내야 한단다. 그 차액(500유로)+패널티가(115유로)] 총 110만원 정도 되었다. 세상 어이가 없다. 일단 보류했다.

 

월욜에 삼실에 전화해 상황을 설명하고 휴가를 추가로 더 신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휴가는 어차피 며칠 더 남은 상태다. 상황이 어차피 이리 될거라면 그 때까진 휴가를 더 즐기는 것이 상책이란 결론을 얻었다. 하림씨는 낼 떠날 예정이고 마사요시는 사해로 갈 참이었다. 나는 마사요시에게 함께 가자고 했다. 그러잖아도 혼자 갈 참인데 마시요시가 반기는 눈치다. 하림씨가 쳌인 한 3인 도미토리에 어떤 남자의 가방이 놓여 있고 그 남자는 아직 보지 못했다고 했다. 알고보니 그 남자가 마사요시였다. 나는 사장에게 이야기하고 방을 그들과 함께 쓰기 위해 옮겼다. 이 날 잠자리가 장난 아니게 추웠다. 나중엔 참다 못해 빈 방에 가서 담요를 두 개 훔쳐다 하나는 하림씨에게 덮어주고 하나는 내가 덮었다. 마사요시는 침낭안에 들어가서 맛있게 자고 있는데 재승에게 빌려준 침낭생각이 간절하더라는... 그동안 침낭을 갖고 다녀서 추운줄 모르고 잤는데 이케 모야...  

 

2009. 1. 2(금)~4(일)

점퍼는 물론이고 후드까지 머리에 쓰고 훔쳐온 담요까지 덮어도 그 끔찍한 냉기는 피할 길이 없어 거의 자는둥 마는둥이었다. 아침이 되어 나는 마사요시와 하림씨를 대동하고 아침을 먹으러 갔다. 전 날 그집으로. 이 날 첨먹어 보는 이 집의 스프 맛이 장난이 아니다. 혹시 클리프 호텔에 묵는 사람이 있으면 이집 스프 시식을 강추함. 아침식사 후 하림씨는 혹시 자리가 그새 생겼을지 모른다면서 터키항공 본사에 다시 전화해 보았다.  정말이지 고마운 사람이다. 마침 당일 항공편 자리가 생겼단다. 어이가 없다. 어제 500유로라던 차액이 590으로 늘었다. 어제는 500이라고 하던데 어찌 된거냐고 물으니 590 이 맞는단다. 어이 없어 일단 끊고 다시 전화하니 이 번엔 570 이란다. ㅡ,.ㅡ; 하림씨가 도대체 기준이 뭐냐며 전화를 받는 사람마다 요금이 다른 이유가 뭐냐고 따졌지만 자기가 말한게 맞다는 주장만 하더란다. 아무래도 더 받아내면 그만큼 수당이 더 주어지는 모양이다. 하림씨가 어쩌겠느냐고 묻는다. 빨리 가야 하니 표를 확보하고 어디서 표를 받으면 될지를 물어보자고 했다. 암만 시내 지사가 문을 1시에 문을 닫으니 그 전까지 표를 수령하란다. 나는 사해로 떠나는 마사요시에게 같이 떠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작별인사를했다. 마사요시가 무척 섭섭한 눈치다.

 

마사요시가 떠난 후 그새 같은 호텔의 투숙객인 유끼상,  아오이상과 친해졌다. 유끼와 아오이는 제라쉬로 가서 마지막 관광 후 칸사이로 돌아간단다. 그들과 인사를 나누며 기념촬영. 좌로부터 나, 유끼, 아오이, 호텔 사장, 하림.

 

결코 찾기 쉽지 않은 터키항공 암만 본사를 찾아갔다. 빌딩 안에 있는데 이노므 지사 간판도 없어 물어물어 찾느라 애먹었다. 간신히 찾아가 보니 문을 안열었단다. 또 욕나오려 한다. 듣보잡! 본사에 다시 전화하니 그럴리가 없다며 1시까진 업무를 한다며 다시 알아보라나? 짐 놀리냐? 결국 가까운 곳에 오픈한 여행사로 가보니 카타르 도하에서 갈아타되 칸사이를 경유하는 인천행 오늘 표가 있단다. 요금을 알아보니 터키항공 재발급 비용과 비슷하다. 이 표를 끊고는 터키 본사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취소하니 환불은 없다는 말을 재차 삼차 강조하며 예약 취소를 접수했다. OTL

이젠 공항으로 가서 뱅기 타는 일만 남았다. 무잠마 샤말로 가서 확인한 공항버스 두 종 중 하나. 이 걸 보니 왜 속이 울컼하냐 ㅡ,.ㅡ;

 

나머지 한 종류. 혹 요르단 가실일 생김 꼭 참고하셈 ㅜ.ㅜ

 

공항에서 유꼬와 아오이를 또 만남. 엥? 알고 보니 이들도 나와 같은 카타르항공란다. 벌써 제라쉬까지 다녀 왔단다. 그래서 또 기념촬영. 좌로부터 하림, 아오이, 유꼬 글구 나.

 

나보다 약간 이른 시간의 비행때문에 먼저 탑승구에 들어가는 하림씨를 얼싸안고 작별인사를 했다. 바깥에 내가 탈 카타르항공이 보인다.

 

암만을 떠나며 내다보는 공항청사

 

카타르항공이 의외로 기내시설과 기내식이 최고였다. 맥주에 굶주린 나는 한꺼번에 맥주 두 캔을 들이켰다.

 

그 뒤로도 몇 번을 먹으면서도 음식은 잘나오지만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며 얼큰한 음식을 눈빠지게 고대하다 보니 웨엑!

 

또 웨엑!

 

칸사이 공항에서 대부분의 승객이 내리고 몇 몇 인천으로 갈 승객들만 남았다. 일본을 거치자 음식이 좀 입에 맞는다. 장어 덮밥이 맜있다. 기린 맥주도 좋고.

 

 암만을 떠나면서 요르단 여행을 정리해 보았다.

요르단엔 페트라를 제외하면 볼 게 없다는 이야기들을 다녀온사람들은 많이 한다. 그건 볼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라 그런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가서보니 맞긴 맞넹. 사실 요르단에 대하여는 별로 기억에 남지 않는다.

호텔도 다른 레바논이나 시리아 등 다른 곳에 비하면 좀 많이 떨어지는 것 같다. 그나마 클리프 호텔이 괜찮다. 여기엔 사장 아들인지 종업원인지 일본인들한테는 알랑방구끼고 주제에 한국인을 우습게 아는 쓸개빠진 찌질이가 하나 있다. 이모병! 이런 듣보잡은 혹시 이 곳에서 만나거든 걍 무시하셈. 이런 찌질이 상종하고 짜증내면 시간만 아까.

요르단의 도시 분위기도 우중충한건 시리아의 도시와도 마찬가지지만 주택가는 유난히 더 우충충하다. 사실 이곳 중동지역에서도 시리아와 요르단은 콘크리트나 시멘트 블럭으로 집짓고 나면 지붕을 올린다거나 칠을 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한다. 왠지 요르단이 시리아보다 더 우중충하게 느끼는건 내가 가진 선입감일지도 모르겠다. 

건축물도 아름답거나 새로운 특징적 모습을 본 기억도 전혀 없고 내가 좋아하는 모스크도 그다지 내세울 건축물이 없는데 이건 좀 실망스러웠다.

어쩌면 나름 다른 나라와 비교해 좀더 우수하거나 아름다운 그 무엇을 좀 보려고 나름 노력해 보았지만 별로 얻은게 없는 것은 내가 이 곳에서 별로 겪고싶지 않았던 일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두 번 다시 터키항공을 타고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걸 보면... 

그러나 페트라같이 듣도보도 못했던 아름답고도 기이한 건축물과 유적,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은 두고 두고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한 편, 한국인 여행자들이 이 곳에서 그다지 좋은 평을 듣지 못하더라는 한 편 심기가 불편하면서도 여러가지로 생각해 볼 여지를 준다.

호텔이나 여행사 등 여행자를 대상으로 하는 업자들이 특히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그저 요금 깎기를 좋아하고 같은 요금을 하더라도 하나라도 더 얻어내려는 모습이 곱게만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절대 나쁘게 평하고 싶지 않다. 미지의 땅에 배낭여행을 다니는 이들은(게다가 넉넉지도 않은 돈을 쥐고 떠나는 이들은 더더욱) 도전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호텔비와 투어비까지도 협상할 자세가 되어 있다면 당장은 그들의 눈에 밉살맞게 보일지는 몰라도 장차 그들이 국제무대에 섰을 때의 협상력을 그만큼 키워가고 있다는 반증으로 생각한다.

다만 항공기 안에서 제공되는 담요를 집어감으로써(손실되는 담요 때문에 항공사에서 연간 담요 구입비만 해도 엄청나다고 한다) 또는 남의 나라에서 그들의 문화나 금기를 지켜주기를 거부하거나 남의 식당에서 다른 곳에서 구입한 것을 꺼내 먹는 등의 추한 짓들은 좀 안했으면 좋겠다. 이러한 것들은 한국인에 대한 분노나 무시의 결과로 종종 초래되기 때문이다.

하기는 여행자들도 그렇지만 이주한 한인들 중 현지인들을 무시하고 사기까지 치는 이들 때문에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가장 걱정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