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08 터키 the 2nd

터키여행 the 2nd(샤프란볼루)

코렐리 2009. 1. 7. 11:50

 

2008. 12. 20(토)-12. 21(일)

초등학교 시절 소풍가기 전날이면 싸놓은 소풍가방을 연신 열어보고 또 열어보고 자다말고 어둠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소풍가방을 보고 흐뭇한 웃음을 짓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이 번 떠나기 전날이 그랬다. 이 날은 새벽 출근전 중국어 학원도 빼먹고 퇴근후 그 좋아하는 수영까지도 땡땡이 쳐가며 집으로 일찍 돌아와 집안 치우고 빨래하고 셔츠와 정장바지 다리미질 해놓고 나서야 떠날 준비를 했다. 여행 후 고단한 몸으로 돌아와 소일거리 생기면 심란하다. 이제 남은 일은 배낭 꾸리기. 이 번엔 혼자 가는 만큼 카메라 다리도 가져가야 하고, 가고자 하는 지역이 영상 10~17도인 겨울의 중동. 침낭도 가져가야 한다. 중동지방은 지금 겨울이면서 우기인 관계로 비를 그슬릴 대책이 필요하다. 운동화와 모자만 빼고는 전부 고어텍스 등산복으로 무장했다. 짐을 최소화하기 위해 초소형 초경량으로 덕다운 침낭 하나 구입했다. 나의 여행 지침 제 1호는 배낭 20리터 한도 내에서 해결. 이 번 여행은 특히 이동이 많아 더더욱 짐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런데 이거 안될거라고 생각하는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난 된다. 왜? 나니까. 등산복 차림에 콧구멍만한 륙색 하나 메고 집을 나섰다. 인천공항으로 가는길에 부모님 댁에 들러 만두국 한 그릇 얻어 먹고 15:20 이스탄불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넉넉한 여유시간을 두고 공항에 도착했다. 가면서 여행이란게 도대체 뭐길래 적잖이 나이든 이 가슴을 항상 설레게 하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낯선 곳에서, 낯선 문화 속에서 낯선 이들 속에서 새로움을 경험하는 나를 만나고 다시금 새로운 나를 경험하는... 뭐 이런 생각이 든다. 어쨋든 티케팅을 완료한 뒤 Star Line을 타고 이동했다. 공항에서 나를 놀라게 만든 것은 항상 부산하던 공항이 최근 상황에 의해 급변해버린 한산한 공항의 정경이었다. 티케팅을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은 온데간데 없고 항공사 발권창구마다 한 두명의 승객이 발권을 받고 있었다. 피크는 아니어도 성수기에 진입한 이시기에 이렇게 한산하니 극심한 불황의 늪을 새삼 체험하게 한다. 아래의 항공기는 내가 탑승했던 터키항공의 15:25 인천발 이스탄불행이다. 카메라 충전이 거의 되어있지 않은 상태라 나는 탑승구 근처의 돼지코를 찾았다. 발견한 두 개의 돼지코 중 하나는 한 외국인이 노트북을 쓰느라 한 개를 사용하고 있었고 나는 그 나머지 하나에 카메라 충전코드를 꽂았다. 출발시간 20분정도 남겨놓고 비행기에 올라타기 위해 코드를 뽑는데 아뿔싸. 남의 노트북 코드를 뽑고 말았다. 뷁! 호인인 그는 웃으며 괜찮단다. ㅡ,.ㅡ

 

비행기 내부도 텅텅비긴 마찬가지. 덕분에 난 가운데 4개의 좌석을 독차지하고 누워 실컷 잤다. 을매나 좋노 딴지거는 웬수도 없고... 화장실 안에서 똥싸느라 안나오는 넘 일 다볼 때까지 안지둘려도 되고 배고플 때 내앞에 서빙 올때까지 긴시간 안지둘려도 되고... 게다가 관광지에 바글댈 여행객들이 없으니 좋다.

 

음료수로 터키의 에페스 맥주를 선택했다. 맛과 향이 여전하군. 얼마나 그리던 에프스 맥주의 맛이더냐.

 

첫 번째 기내식. 생선 선택. 맛이 쓸만하다. 가지 샐러드가 특히 맛있고 밥에 얹어 제공되는 삶은 채소와 생선이 신선하고 맛있다. 와이트 와인도 그런대로 오케이.

 

두 번째 제공된 기내식. 쇠고기 선택. 역시 쓸만한 맛이었다. 매 번 고추장 기본 제공. 댕큐.

 

드디어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에 도착해 간단한 무비자 입국수속을 마쳤다. 공항을 나와 지하철을 타기 위한 제톤(토큰 같은 동전형 승차권)을 구입하려고 보니 환전을 안했군. 이런 돌텡이. 공항으로 되돌아가 환전하고 다시 돌아왔다. 70유로를 내어 놓으니 140터키리라를 준다.

 

샤프란볼루로 가기 위해 에센레르 오토갈(고속버스터미널)역에서 하차했다. 내려서 버스터미널로 가려면 두 개의 출구 중 어디로 나가야 하는지를 역사내 가게방 주인에게 물었더니 어디로 갈거냐고 되물어 본다. 샤프란볼루로 갈거라고 했더니 골똘히 생각해 본다. 터미널 가는 방향만 갤차주면 되지 복장터지게스리 뭘 그리 고민하나 했다. 알고 보니 이 지하철역은 그 거창하게 규모 큰 터미널 내부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것이었다. 삥~~~! 그는 어느 회사의 삼실로 가야 샤프란볼루행 버스표를 살 수 있는지를 되새기고 있는 것이었다. 이미 이스탄불을 다녀간 바 있지만 이 곳은 내게 있어 낯선곳이다. 3년전 이스탄불에서 카파도키아를 갈 때는 볼거리가 없는 이 곳 오토갈까지 오기도 귀찮고 시간을 좀 더 아껴 보스포러스 해협을 구경하며 가느라고 하렘 가라즈에서 버스를 탔었다. 그러니 이 곳이 초행이라 익숙치 않을 수밖에... 어쨋든 가장 큰 회사인 메트로사의 버스표를 구입했다. 버스표 구입에 쓴 돈은 30터키리라(2만 7천원정도). 버스표에 탑승 구역 번호를 펜으로 써준다. 안그러면 이 어마어마한 오토갈 어디에 내가 탈 버스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바로 그 구역을 찾아가서 11시 30분에 출발하는 샤프란볼루행 버스를에 올라탔다.

 

이 곳의 터키의 고속버스는 대부분 벤츠사의 제품으로 안락하고 시설이 좋기로 유명하다.

 

한참 자면서 가다가 들른 휴게소. 3년전 카파도키아로 가던 도중 들렀던 바로 그 휴게소인 것 같다. 잠깐 내려 물을 버린 뒤 다시 앉아 디비져 잤다. 자면서 가는 고속버스는 역시나 지겹다.

 

새벽이 되어 샤프란볼루 터미널에 도착했다. 이 곳은 마을로부터 좀 떨어진 곳이라 세르비스(Service)라 불리는 미니버스를 운행했다. 이 버스는 말 그대로 고속버스 이용자들에 대한 무료서비스였다. 그런데 이 세르비스라는 차량의 개념은 앞으로 가게 될 다른 중동지역인 시리아, 레바논 그리고 요르단에서는 합승차량의 개념으로 사용된다. 어쨋든 세르비스를 타고 크란퀘이에서 내렸다. 시간은 새벽 05:30 이었다. 지금은 주변이 어두워 아무것도 볼 수 없고 해서 운치있는 카페를 찾아보았다.

 

진작부터 이 곳을 발견했지만 좀 더 좋은 곳을 찾아보았다. 여기 빼곤 빵집 밖에 문을 연 곳이 없었다.

 

이 곳을 들어가니 차를 즐기던 노인들이 반갑게 이방인을 맞아주며 자기들 사진 찍기를 허락(?)했다.

 

주인과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무척 인상들이 좋다. 나는 자리를 잡고 '수르'라는 이름의 빵과 커피를 아침으로 주문했다. 카메라 충전코드를 이 레스토랑 한 켠에 꽂아 놓고 천천히 이 음식을 즐겼다. 빵은 치즈가 들어있고 맛은 좋지만 기름이 흥건해 거의 다 먹을 때쯤엔 무척 느끼하게 느껴진다.

 

날이 밝기 시작했다. 나는 카메라를 챙기고

 

가까운 곳부터 둘러보기 시작했다. 

 

어딜 가나 보이는 자미(모스크). 그래도 한국의 개신교회만큼 분포밀도가 높진 않다. 작은 마을에는 한 두개, 큰 마을에서나 여러개 보인다. 규모가 큰 것은 4개의 미나레를 모두 갖추고 좀 작은 곳은 2개, 사진에서처럼 소규모는 1개의 미나레를 설치한다는 사실을 돌아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조금 다니다 보니 운치있는 호텔 창문턱에 올라가 더 오르고 싶은데 어디로 오르면 좋을지를 두리번 거리던 고양이와 마추쳤다. 도망이라도 치지 않을까 조심스레 카메라에 잡아 두었다. 문위에 그려진 파란 문양은 행운을 불러오는 눈이라고 하는데 터키의 식민지를 겪은 탓인지 그리스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다.

 

크란퀘이로부터 내리막길을 따라 가면서 볼 수 있는 유명한 사프란볼루의 오래된 가옥들로 구성된 마을이 이 언덕배기에서 훤히 내려다 보이는데 오락가락하는 비와 자욱한 안개로 인해

 

아쉽게도 마을이 선명하게 보이질 않았지만  한편으론 신비롭다는 인상도 덤으로 받았다.

 

이 마을 입구에는 1994년 마을 자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내걸고 있다. 이 곳 마을의 가옥들은 최소 100년에서 200년까지도 세월을 감내해온 유서깊은 소중한 유산인 것이다.

 

나는 마을 왼쪽부터 돌아보았다.

 

가다 보니 한 소녀가 자기 사진을 찍어 달란다. 촬영후 카메라 모니터를 통해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신기해하는 소녀에게서 순박함이 묻어난다. 소녀의 집 2층에서 난간 아래를 내려다 보던 그 동생이 자신을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한다. 역시 찍어주었다. 이 번엔 그 어머니인지 할머니인지 집 밖을 내다 보길래 찍어 주었더니 들어와서 차라도 한잔 하고 가라는 시늉을 하며 들어 오길 청했다. 그러잖아도 이들은 이방인을 손님으로 맞기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생각보다 빨리 그런 기회를 얻었다.

 

부인의 성화에 이제 막 잠에서 설익은 눈을 비비며 자리를 터는 노인에게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들어오는 손님을 기꺼이 맞아주며 밤새 장작을 아끼느라고 식어있었을 난로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내게 처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던 소녀. 이름은 구르벳(Gurbet)이라고 했다. 이름이 예쁘다. 손님을 위해 가스 버너에 차를 올리다 말고 미소짓는 모습이 귀엽다. 이중으로 된 주전자의 아래쪽은 물이 팔팔 끓고 위쪽으로는 차가 담긴 물이 은근히 데워진다. 준비가 되면 윗주전자의 차를 반정도 붓고 나서 아래주전자의 끓는 물을 부어 희석해 마시는데 맛이 아주 좋다.

 

쓰고 있던 모자를 씌워주고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동생과 함께 포즈를 취한다. 동생의 이름은 무스타파(Mustapha)

 

나를 위해 난로에 온기를 넣은 이 집 가장 핫산(Hassan)씨의 아침기도 모습. 이교도이며 이방인인 내 앞에서 뭔가 감사하는 듯한 기도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워 보였다. 기도 속에는 나를 위한 기원도 들어 있었을 것만 같다.

 

옷을 차려입고 홍차가 준비되자 이들의 아침식사가 시작되었다. 바게뜨와 비스킷, 치즈와 올리브 그리고 홍차 한 잔. 이들의 아침식사는 행복해 보였고 이 곳에 나를 초대해 준 그들에게 감사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이가 없어 제대로 된 대화 없이 그저 서로의 이름과 미소를 주고 받았을 뿐이자만 많은 대화보다 더 깊은 대화를 나누었음에 다름아니었다. 두 아이들에게 용돈을 쥐어주자 그러지 말라며 손을 내저었지만 난 그들에게 줄게 이것 밖에 없음에 융숭하고 황송한 대접에 몸둘바를 더욱 알지 못했다. 하직인사를 고하자 문간으로 나와 손님을 떠나 보내는 노부부의 모습이 더없이 아름답다.

 

마을을 조금 더 올라가니 내가 들고 있던 카메라가 신기했던지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들을 찍어주길 바라며 내게 다가왔다. 나중엔 근방의 마을 주민이 죄다 몰려 나온듯 했다. 오른쪽의 야구모자를 쓴 소년은 내가 찍는걸 몇 번 보고는 그새 카메라 사용법을 익혔는지 내게서 채간 카메라를 들고

 

이놈도 찍어주고 저놈도 찍어주고 개도 찍어주고 염소도 찍어준 뒤 찍힌 사진을 그들에게 들이민다. 내 인생철학과 이 소년의 행동이 으쩜 그렇게도 흡사한가 모르겠다. 남의 물건을 갖고 선심 쓸 때가 가장 기분이 좋은 일 아니던가. 나는 한동안 이 소년에게 카메라를 하는대로 내맡겼다. 아주 신이 났던 모양이다. 자리를 뜨기 위해 카메라를 회수했을때 묻어나는 섭섭한 표정에 웃음이 났다. 주민들은 저마다 내게 주소를 적어주며 뭐라고 뭐라고 이야기한다. ㅡㅡ; 이거 다 부쳐야할 것 같은...

 여기부턴 그 소년이 찍은 사진들이다. 이 소년이 찍은 사진에 나는 놀랐다.

 

생전 처음 만져보는 물건일듯한 이 물건 사용법은 물론

 

피사체를 정중앙에 두어야 한다는 사실 조차도 본능적으로 깨달은 듯하다.

 

게다가 배경으로 잡은 구도 또한 나쁘지 않았다. 특히 그가 찍은 첫번째 사진은(다섯명 사진) 문외한인 내 눈엔 구도가 거의 완벽에 가깝다.ㅡ,.ㅡ;

 

 

이 곳의 여자들은 꾸밈이라는 것이 없다. 저마다 스스로를 꾸미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으랴마는 그들은 나름대로 꾸민건지 몰라도 내눈엔 있는 그대의 순수함이다. 조금만 꾸며도 예쁠 것같은 인물이 종종 눈에 띤다.

 

이 곳을 벗어난 나의 마을 구경은 계속 이어졌다.

 

이 곳 샤프란볼루라는 작은 도시에 대하여 되새겨보자.

 

과거 샤프란이 많이 군생하여 붙여진 이름이 샤프란볼루다.

 

샤프란 꽃은 값비싼 최고급의 향신료에 속한다는 것을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본 기억이 있다.

 

지금도 이 마을 어디엔가 샤프란을 재배하는지 알아본다던 것을 이내 곧 잊고 말았다.

 

이 곳의 인구는 2만7천명정도밖에 안되는 소도시다.

 

오래전에 지어진 이 유서깊은 가옥들은 비교적 형태가 매우 온전하고

 

개개의 집들이 자연녹지와 어우러져 고고한 분위기를 한껏 머금고 있다.

 

게다가 흩날리듯 조금씩 내리는 겨울비와 안개에 마을분위기는 온통 신비감마저 감돈다.

 

조금 걷다가

 

마을 한켠을 차지하는 냇물이 까마득한 절벽 아래서 흐른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는 이 곳이 평범한 인간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만들고 말았다.

 

 

나는 이마을 한 구석도 놓치지 않고 다니려고 구석구석을 비맞아가며 누볐다.

 

 

어느 도시의 뒷골목이 이렇게까지 푸근함과 여유로움을 주던가. 시간이 이미 멈추어 있었다는 착각은 이른아침 주민들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욱 빠져들었다. 마을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차르쉬광장에 선 회교사원과

 

엄청나게 김이 모락거리는 하맘(오른쪽 갈색 돔지붕)을 발견했다. 지난번 이스탄불 방문했을 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하맘을 한 번쯤 체험해 볼걸 잘못했다는 후회가 들었었는데 이 번이 기회다싶었다.

 

마을을 마저 홀라당 다 쑤신 다음에 하맘으로 돌아오기로 작심했다.

 

마을 구석구석 어디를 보아도

 

정겹고 아름답다.

 

어지간히 돌아다녔으면 실증날만도 하건만 이 마을에서 느끼는 이놈의 기쁨은 식을 줄을 몰랐다.

 

 

 

 

 

 

중세시대를 연상하게 하는 이 시설물은 다름아닌 하수도. 이 하수도 자체가 역사의 무게를 지니고 있음에 감탄사가 나온다.

 

샤프란볼루가 민가로 유명한 만큼 미니어처 집들이 기념품으로 전시되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나를 제외하고는 관광객도 그리 보이지 않는다. 전세계적인 불황의 여파인지... 아님 광활한 터키의 많은 관광지들과 달리 소외된 곳이라 그런건지...

 

어쨋든 남들이 빼먹고 잘 오지 않는 곳에 왔다는 기쁨이 또한 마음 한구석에 크게 자리하고 내심 흐믓한 기분이 빗물과 함께 젖은채 감상에 빠졌다.

 

인적이 거의 없을법한 비포장 언덕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의 모습을 보면 신비로운게 스머프들이 살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마을을 모두 쓸고 다녔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마을 중심부로 돌아왔다.

 

9시간의 비행과 곧이은 6시간의 고속버스 여행에 피곤함을 느낀 나는 하맘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잡았다.

 

하맘입구

 

들어가서 보니 손님이 아무도 없다. 탈의실은 공동이 아닌 여러개의 개인용 독실로 이루어져 있다. 사용중인 탈의실은 없는것 같다. 손님이 나혼자이니 덜컥 이상한 집이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했다. 이거 혹시 한국에서 왜곡된 그런 변태 터키탕 아녀? 에이, 설마... 회교국에서 그런 짓거리 할까... 독실 하나를 배정받은 나는 안으로 들어가 방수가 되는지라 표면만 젖은 등산복을 벗어 널어놓고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나왔다. 실내 공기가 조금서늘하다.

 

탈의실은 이층에도 널렸지만 모두 비어 있는 것 같다.

 

중앙에 있는 목욕탕 입구 안으로 들어가니 문이 하나 더 보인다. 좌우로는 화장실이 보이고 정면에 보이는 또하나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위로는 오래된 느낌을 주는 궁륭형 지붕이 엊혀 있고 그 지붕에 인색하게 뚫린 네 개의 창으로는 채광량이 많지 않아 우중충한 느낌이다. 해가 드는 날이면 좀 다르겠지하는 생각도 든다. 어쨋든 이 목욕탕 안에도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한 쪽 구석에 사우나 방도 있는데 너무 뜨거워서 발바닥에 화상입는줄 알았다. 허걱거리며 여우발을 한 채 도로 나와버렸다. 공용으로 사용하는 탕은 없다. 온탕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그게 없으니 포기. 목욕탕 벽을 둘러 하나씩 설치된 개인용 대리석 붙박이 물동이가 있는데 하수구멍이 없다. 그 위로는 온수와 냉수 꼭지가 각각 하나씩 설치되어 있었다. 온수와 냉수를 틀어놓고 바가지로 물을 퍼서 한참을 끼얹고 있다 보니 등발이 이따만하고 온몸에 털이 덥수룩하고 콧수염을 기른 마사지맨이 들어왔다. 맛사지를 위해 따로 설치된 옆방으로 들어가 맛사지 침대에 업드렸더니 뜨거운 물을 몸에 붓고 나서 때를 밀었다. 맨날 샤워를 하는 나도 지우개처럼 때가 밀렸다. 그런 다음 온몸에 비누칠을 한 뒤 본격적인 맛사지를 시작한다. 맛사지가 끝나자 비누를 넣고 공기를 넣어 빵빵해진 면포자루를 온몸에 문지른 다음 다시 물을 끼얹어 주고 마사지를 종료했다. 한국의 때밀이에 맛사지를 추가한 형태였다. 

 

탕에서 수건을 두르고 나오니 머리와 어깨에 새로 수건을 둘러준다. 어쨋든 심신이 많이 개운해졌다. 여기서 몸을 말리며 잠시 쉰 뒤 입욕료와 마사지서비스료(30리라+알파)를 내고 다시 길을 나섰다.

 

차르쉬광장 한쪽에 있는 아래의 가게방에 들어가

 

에페스 흑맥주를 한 캔 샀다. (3.75리라) 얼마만인가. 이 환상적인 맛이... 3년 가까이 되어간다.

 

회교도들에게는 길에서 술마시는게 보기에 좋지 않음을 의식해서인지 신문지로 살짝 말아서 준다. 터키에서는 가게방만 찾아내면 맥주를 구할 수 있어서 너무나 좋다. 인도,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에서는 엄청 찾아다녀야 했다. 가게 앞으로 나와 알량한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며 맥주를 마셨다. 잊지 못할 그맛이여... 맥주를 모두 들이킨 뒤 근처를 순찰중이던 두 명의 경찰관에게 버스터미널 가는길을 물었다. 어둠이 짙은 새벽에 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세르비스로 갈아타고 조명도 없어 가늠이 되지 않는 길을 가서 크란쾨이에 내린 통에 그 버스터미널이 어디에 위치한건지 감도 잡히질 않은 탓이었다. 손가락으로 찔러주는 방향으로 걸어가려고 했더니 택시나 버스를 타란다. 얼마나 걸리는지를 물었다. 2km가 넘는단다. 걷기 좋아하는 내가, 그리고 이 마을 떠나기가 섭섭한 내가 그깟 2km를 못걸으랴며 찔러준 방향으로 걸었다. 가던 길을 뒤돌아 찍으니 저멀리 하맘의 갈색 돔지붕이 보인다. 계속 걷다 보니 한국인 여대생으로 보이는 젊은 처자 두 명이 마주오길래 "안녕하세요" 인사했더니 나보다 더 반가와한다. 그들도 이 곳에서 한국인을 처음 보는 모양이었다. 한참을 가다 보니 그들이 아직도 나를 신기한 듯 응시하고 있길래 손을 다시 한 번 들어 흔들어 주었다. 그 쪽에서도 손을 마주 흔든다.

 

2킬로는 족히 넘은 것 같은데 터미널같은거 안보인다. 외딴 곳에 소방서가 있길래 들어가 물어 보았다. 두 소방관이 차에 올라타며 나보고 타란다. 마침 그 방향으로 볼 일이 었었던 모양이지만 급친절에 급감격. 그들이 내리면서 터미널 방향을 일러준 곳은 크란쾨이. 엥? 결국 돌아온거잖아. 결국 이 곳에서 세르비스를 타고 다시 터미널로 가란 의미였다. 나는 크란쾨이의 삼거리에 위치한 '사프란'이란 회사의 앙카라행 버스표를 구입했다. 앙카라행 버스 시간표를 보니 04:15, 04:45, 07:45, 10:45, 13:45, 15:45, 17:30 이었다. 운행시간이 매우 불규칙적이다. 나름 수요조사의 결과인갑다. 운좋게도 마침 13:45 차를 타면 적당한 시간이었다. 

 

표를 구입하고 조금 기다리니 세르비스가 왔다. 이걸 타고 터미널로 갔다.

 

새벽에 먹은 커피와 수르, 그리고 초대받은 집에서 얻어먹은 아침이 아직도 뱃속에 그들먹해서  점심 먹기도 뭐한 터라 터미널에서 물과 과자 부스러기를 좀 사서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거의 텅텅 비어 있고 예정시간보다 늦은 시간에 출발했다. 앞에는 아까 마을 기념품가게가 밀집된 시장에서 보았던 쭝궈꾸냥 세명이 나보다 먼저 와서 버스를 타고 있었다.

 

가다 보니 비가 오더니만 급기야 눈으로 바뀌었다. 터키에서 눈을 보게될 줄이야... 허허...

 

수도인 앙카라에 도착한 시간은 17:15경이었다. 나는 가기로 작심했던 Suna 호텔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울르스역에서 내려

 

걸어서 찾아갔다. 이게 무슨 박물관 건물이었던 것 같은데... 담날 확인해 봉게 군사박물관.

 

터키 공화국의 아버지 아타튀르크의 동상이 있는 사거리를 돌아 세간다 지도에 나온대로 찾아가니

 

정확하게 호텔이 나온다. 아, 감격.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에서 써먹었던 론니 플래닛에 나온 지도는 워낙에 개판이라 호텔을 찾는데 항상 애를 먹었다. 지도를 차라리 안보는게 낫더라는... ㅡ,.ㅡ; 

 

어쨋든 18:30경 체크인(25 리라)부터 하고

 

방에 짐을 풀었다.

 

욕실 청결상태도 양호.

 

짐을 대충 푼 뒤 민생고를 해결하러 나갔다. 사람 많은 곳이 어딘지부터 찾아 다니다가 발견한 한 곳에선 사람이 넘 많아 자리도 없고 혼자 오니 시큰둥해한다. 디르브서... 여기서 안먹는다 조또. 다른데를 찾다가 발견한 치킨집 Ugrak

 

안에 들어가니 깔끔하다.

 

에페스(Efes 3.5 리라)와 치킨과 라이스[Pylic(yarim:반쪽) 6.5 리라]

 

그리고 샐러드(Ezme Salata 3.3 리라)를 시켰다. 숙성시킨 고추와 토마토를 얹었는데 맛이 시큼짭짤하다. 거기에 올리브유를 잔뜩 뿌린 이 샐러드 무척 맛있다. 특히 이 고추와 토마토를 치킨과 함께 먹으니 환상이더라는...

 

 좌우당간 이 날은 저녁을 먹고 나서 호텔로 돌아와 속옷 빨고 샤워하고 지친 몸을 달래기 위해 저녁 아홉시가 되자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두통을 침대에 대자 담부턴 격안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