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여행/군바리시절

후보생의 추억(포항에서의 각개전투)

코렐리 2008. 5. 29. 14:16

후보생 시절의 포항 전지훈련중에 있었던 각개전투 훈련은 여러가지로 기억에 남는다.
비온 직후 황토가 대부분인 포항 각개전투장은 그야말로 진흙투성이였다.
훈련 도중 김명규 선배는 우리를 쉬지 않고 선착순을 돌렸다.
왜 그랬는지는 말 안해도 우리 동기들 모두가 기억하고 있을 터다.
포항의 각개전투장은 비로 인해 질퍽거렸고 우리는 비에 맞아 생쥐떼가 되어 있었다.
질퍽거리는 땅에서의 선착순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비에 맞아 젖은 훈련복, 군화에는 진흙이 떡이되어 무겁고, 달리느라 발을 디딜 때마다 진흙에 미끄러지면서도 발을 뗄때는 찰흙의 장력으로 발이 땅에서 잘 떨어지지 않아 걷기조차 지겨운 상황이었다.
동기들은 열심히 뛰었다.
일단 뛰어 일찍도착하면 맨뒤가 찰때까지 한 숨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젖은 땅때문에 맨 뒤가 다 차는데는 적잖은 시간이 소요됨에랴...
나는 오줌이 무척 마려웠다.
이거 아주 환장할 상황.
그 와중에 참다못했는지 당할지도 모르는 봉변을 감수하고 한 동기가 김명규 선배에게 달려나가 화장실을 가고싶다고 했다.
김명규 선배는 어이가 없었던지 여기가 화장실이니 그냥 바지에 싸라고 했다.
당황한 그 동기는 알겠다고 돌아가려고 하는데 김명규가 붙잡고 그냥 싸라고 하는것이 아닌가.
순간 나는 그 때가 기회라고 생각했다.
내가 중간쯤이었던 것 같은데 삐뚤삐뚤한 선착순줄 안에서 구대장이 보지 못할 휘어진 열 틈으로 가서 기냥 갈겼다.
동기들은 날보고 안�다는 표정이었지만 내겐 절호의 기회를 얻은 것이었다.
오죽하면 김명규 선배가 한 번은 날 보고 그러더구만
"이새끼 존나게 뺀질거리는데 막상 팰려면 껀수가 없단말야."
어쨋든 그 와중에도 내가 들키진 않을까, 그 친구는 어떻게 될까 등이 궁금해 계속 상황을 주시했다.
그는 구대장이 보는 앞에서 바지에 싸지 않는 한 자리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훈련복이 젖어 있는 상태였으므로 대충 흉내만 내고 쌌다고 하면 될 상황이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했던 것 같다.
'이슬을 먹고 사시는 위대한 선배님. 그러고 나면 속이 후련하십니까'
그에게 맞는다면 아마도 머릿속에서 케첩과 마요네스가 동시에 터져 나올 만큼 솥뚜껑같은 주먹의 소유자였던 그다.

그 뒤로 각개전투장에서 우리에겐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김명규 선배에게 "어이! 김명규! 거시기 뭐시기..."라고 말하는 교관선배는 정말로 대단해 보였다.
그 멋쟁이 교관선배(69기 선배인데 이름이 기억날동 말동)는 첫 동원예비군 훈련 때 만났다.
어찌나 반갑던지.
그 선배도 우릴를 기억하고 있었다.

어쨋든 우리에겐 한많은(?) 포항 각개전투장이었다.